어느 장애인의 독백 그리고 넋두리 ①
본문
그는 복잡한 일로 고민거리가 생기거나, 골치 아픈 문제가 불거지거나, 감당키 어려운 감정이 북받쳐 오르거나 할 땐, 낮과 밤 새벽 등 시간을 가리지 않고 자동차를 무작정 몰고 나온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자동차길이 보이는 대로 무작정 내달린다.
소낙비가 퍼붓고 천둥번개가 번쩍거리는 날이든, 여름 장마철이든,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든, 상관치 않고 차를 몰고 무작정 나온다.
목적지를 미리 정하지 않고 어디든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길만 있으면 내달렸다.
그는 한 평도 채 안 되는 자동차 공간을 유일한 안식처로 삼았다.
사람을 만나 일하고 놀 때는 명랑하고 쾌활한 그였으나 혼자 있을 땐 우울증에 젖어들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끝없는 물음과 속으로부터 물밀 듯 밀고 들어오는 말꼬리가 이어져,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들곤 했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그의 유일한 안식처인 자동차 공간은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질주할 수 있고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울고 떠들어도 쳐다볼 사람이나 참견할 사람도 없을 뿐더러 절룩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지 앉아 그에겐 더 없는 안락한 공간이었다.
그는 유년기를 거치고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장애인이라는 놀림을 진저리나도록 들으면서 성장했다.
절름발이, 다리병신, 찐따, 닐니리맘보, 앉은뱅이, 쩔뚝이 등 이름 외에 수 없는 별명을 덤으로 얻어들으면서 자랐다.
강제로 별명을 부쳐주면서 그를 놀리고 골탕을 먹이는 짓궂은 사람들은 그것도 성이 안 차는지, 절룩거리는 걸음걸이까지 흉내 내었다. 그의 가슴속 멍든 상처, 아물 시간조차 없이 곪고 덧났다.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이 짓궂은 주변사람들에게 마음에 생채기를 당하면서 성장한 탓인지, 그는 언제나 주눅 들어 지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은 의도적으로 피해 멀리 돌아서 갔다.
사춘기 때 마음속에 그리는 짝사랑하는 여성과 마주칠 때면 돌부처처럼 꼼짝 안하고 서 있다가 여성이 지나간 뒤에서야 잰걸음으로 그 자리를 도망치곤 했다.
마음속에 그리는 이성이 있어도 혼자 속을 태우고 끙끙 앓을 뿐, 사랑하노라고 구애를 청하거나 편지 한 장 보내지 못할 정도로 소극적이었고 병적일 만큼 소심했다.
이렇게 굳어진 그에겐 마음 놓고 소리를 지르고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은
유일한 1평도 채 안 되는 그의 전용 자동차 안이었다.
혼자 운전을 하고 갈 때 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한바탕 넋두리와 속에 담아두었던 설움과 울분을 여지없이 터트리곤 했다.
중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았다.
이를테면 느닷없이 달려드는 고독에 휩싸여 갈팡질팡 하기도 하고, 외로움에 젖어 우울증 걸린 사람처럼 집안 식구들에게 조차 알리지 않고 말없이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년에 두세 번 홍역을 치르듯 역마살 병은 어김없이 찾아와 방황과 외로움의 병치레를 심하게 치렀다.
장대비가 퍼붓던 작년 여름엔 새벽 2시에 집에서 나와 차를 몰아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물론 목적지는 정해놓지 않았다. 남도민요가 담긴 CD를 넣어 볼륨을 있는 대로 틀어놓았다.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빗 길 고속도로 위를, 남도민요 가운데 ‘꿈이로다’를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달렸다. 밖엔 장대비가 쏟아지고 그의 두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져 빗물과 눈물이 뒤섞여 어지러운 시야로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1평도 채 안 되는 자동차 공간에서 나 홀로 벌리는 눈물의 파티를 1년에 두세 번은 거르지 않고 열었다.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미친 사람처럼, 혼자말로 웅변을 하듯 고함을 지르고 독백을 쏟아내었다.
그는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천천히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꿈이로다’를 틀어놓고 고함을 내지르기도 하고 신세타령을 하기도 하면서 혼잣말로 지껄이며 평소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쌓인 응어리를 하나씩, 하나씩 서러운 고름을 터트려 짜나갔다.
꿈같은 꿈속 세상에서 꿈꾸는 것도 고통이고 고통 받는 뒤숭숭한 개떡 같은 내 삶도 꿈일런가?
장애인이 되어 고통 받는 꿈이라면 차라리 꿈속에서 깨고 싶다. 제아무리 꿈속이라 하더라도,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가슴 무너지는 뒤숭숭한 아린 꿈속에서 깨어나고 싶다.
당신의 실명된 두 눈까지도 애틋하게 사랑하는 꿈을 꾸고 절룩거리는 내 다리도 당신의 사랑을 받는 꿈을 꾸게 하라.
‘달빛사랑’으로 이어나가는 외줄타기 위험한 사랑일지라도 깨이지 않는 영원한 꿈속 ‘달빛사랑’으로 이어지게 하라.
흉악한 자식들.
사악한 자식들.
어둠의 자식들.
장애인을 위로한다면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장애는 슬픔이 아니고 단지 불편할 따름이며 장애인들보다 정신이 병든 인격 장애인들이 더 많다고 씨부렁대는구나.
야, 가증스런 자들아, 개 같은 소리 당장 집어 치워다오.
네놈들이 슬픔이 어떤 것인지 알고나 지껄이는 것이냐.
불편하면 가슴이 슬픈 것이고, 슬프면 몸도 마음도 불편한 것이지, 불편과 슬픔은 별개의 것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어느 권력자까지 나서서 장애는 고통이 아니라 단지 불편할 뿐이라고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말장난을 쳐대는구나.
당신은 고통의 멍에를 짊어진 채 날마다 씨름을 벌여 보았는가?
당신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처절한 피눈물로 베갯머리를 흠뻑 적시어 봤는가?
이 세상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보물을 손에 넣으려고 달리기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아수라장이다. 달리기 경쟁을 벌리는 처절한 아비규환 게임에서 장애인은 단지 슬픔이 아니라 불편할 따름이라는 웃기고 자빠지고 얼빠진 이야기가 통하는 따듯하고 사랑이 넘치는 넉넉한 세상이라도 된단 말인가?
잘 달리는 놈이 왕창 움켜쥐는 냉엄한 정글법칙의 삶의 질서 속에서, 장애는 고통이 아니라
단지 불편할 따름이라고, 어쭙잖은 위로와 위선적인 말잔치가 통하는 사회라는 말인가?
이웃사랑을 들먹거리면서 ‘장애인 먼저’라고 떠들어대는 당신들은, 달리기 경쟁에서 움켜잡은 보물 가운데 장애인들과 몇 개를 나눠 가졌는지 양심적으로 고백해 보라.
단지 장애를 당했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이동의 권리가 박탈당하고, 여기 저기 높은 턱에 무수히 가로막히는가 하면, 밀렵꾼이 쳐놓은 덧처럼 곳에 장애물로 둘러쳐져, 완전포위를 당한 채 아우성치고 있는 처절한 외침뿐이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죽음의 그림자만 드리워진다.
집중폭우에 떠내려가듯 밀리고 밀려서 원하든 원치 않든, 무방비상태로 내몰려 후미진 곳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비정한 현장이, 바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들의 고단한 삶의 현주소이다.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이 문제이듯, 장애를 입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고르지 못한 환경과 제도로 인권과 권리를 몰수당하고 기회를 박탈당하는 잔인한 폭력이 문제로다.
이동권 박탈, 취업기회 봉쇄 등 수없이 많은 차별과 따돌림으로, 장애인들의 삶은 고단하고 생존권마저 위협 당하고 있다.
고통의 멍에를 홀로 뒤집어 쓴 채 떡시루에 얹혀진 고사떡처럼 응어리 켜켜이 쌓이고, 한을 키우면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차별로 얼룩진 뒤틀린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철저하게 홀대 당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고통이고 절망이다.
이 땅위에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고통의 짐을 덜어달라고 손을 벌렸는가?
아프다고 도와달라고 언제 보채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무리 고통스럽고 아프다고 해도 동정 따위는 바라지 않고 이제껏 살아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위엔 장애인복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막막하기만 하다.
그냥 내버려두면 살 것 같은데, 세상은 요란스럽게 ‘장애인 먼저’, ‘장애인을 사랑하자’는 등
빈 깡통이 요란하고 빈 수레가 시끄러운 것처럼, 말잔치로 시끌벅적 빈 깡통만 흔들어 댄다.
군사정권이나 민주정권이나 어인 일인지 장애인복지는 달라진 것도 없이, 그 밥에 그 나물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 없이 여전하다.
무얼 도와주겠다고 호들갑을 떨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어라.
그것이 장애인을 슬프게 하지 않는 길임을
이 땅위에 서럽게 살아가는 장애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절규하고 있다.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 봐야하며 무엇을 도와줘야 하고, 무슨 도움을 줘야하는지를 연구하고 찾는 수고를 일부러 할 필요도 없다.
굳이 장애인 비장애인 나뉘어 가타부타 떠들 필요도 없다. 내가 잘났니, 네가 잘났니, 우쭐대어 본들, 누가 더 잘나 보일 것이며 도토리 키 재기만큼 잘나본들 얼마나 잘났겠는가?
행여 잘났다고 한들 무엇을 더 얻을 것도 아니지 않는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인권표어대로 그냥 겸손하게 살면 될 터인데, 소문난 잔치 집에 먹을 것 없는 꼴이로구나.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자동차길이 보이는 대로 무작정 내달린다.
소낙비가 퍼붓고 천둥번개가 번쩍거리는 날이든, 여름 장마철이든,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든, 상관치 않고 차를 몰고 무작정 나온다.
목적지를 미리 정하지 않고 어디든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길만 있으면 내달렸다.
그는 한 평도 채 안 되는 자동차 공간을 유일한 안식처로 삼았다.
사람을 만나 일하고 놀 때는 명랑하고 쾌활한 그였으나 혼자 있을 땐 우울증에 젖어들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끝없는 물음과 속으로부터 물밀 듯 밀고 들어오는 말꼬리가 이어져,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들곤 했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그의 유일한 안식처인 자동차 공간은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질주할 수 있고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울고 떠들어도 쳐다볼 사람이나 참견할 사람도 없을 뿐더러 절룩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지 앉아 그에겐 더 없는 안락한 공간이었다.
그는 유년기를 거치고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장애인이라는 놀림을 진저리나도록 들으면서 성장했다.
절름발이, 다리병신, 찐따, 닐니리맘보, 앉은뱅이, 쩔뚝이 등 이름 외에 수 없는 별명을 덤으로 얻어들으면서 자랐다.
강제로 별명을 부쳐주면서 그를 놀리고 골탕을 먹이는 짓궂은 사람들은 그것도 성이 안 차는지, 절룩거리는 걸음걸이까지 흉내 내었다. 그의 가슴속 멍든 상처, 아물 시간조차 없이 곪고 덧났다.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이 짓궂은 주변사람들에게 마음에 생채기를 당하면서 성장한 탓인지, 그는 언제나 주눅 들어 지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은 의도적으로 피해 멀리 돌아서 갔다.
사춘기 때 마음속에 그리는 짝사랑하는 여성과 마주칠 때면 돌부처처럼 꼼짝 안하고 서 있다가 여성이 지나간 뒤에서야 잰걸음으로 그 자리를 도망치곤 했다.
마음속에 그리는 이성이 있어도 혼자 속을 태우고 끙끙 앓을 뿐, 사랑하노라고 구애를 청하거나 편지 한 장 보내지 못할 정도로 소극적이었고 병적일 만큼 소심했다.
이렇게 굳어진 그에겐 마음 놓고 소리를 지르고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은
유일한 1평도 채 안 되는 그의 전용 자동차 안이었다.
혼자 운전을 하고 갈 때 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한바탕 넋두리와 속에 담아두었던 설움과 울분을 여지없이 터트리곤 했다.
중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았다.
이를테면 느닷없이 달려드는 고독에 휩싸여 갈팡질팡 하기도 하고, 외로움에 젖어 우울증 걸린 사람처럼 집안 식구들에게 조차 알리지 않고 말없이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년에 두세 번 홍역을 치르듯 역마살 병은 어김없이 찾아와 방황과 외로움의 병치레를 심하게 치렀다.
장대비가 퍼붓던 작년 여름엔 새벽 2시에 집에서 나와 차를 몰아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물론 목적지는 정해놓지 않았다. 남도민요가 담긴 CD를 넣어 볼륨을 있는 대로 틀어놓았다.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빗 길 고속도로 위를, 남도민요 가운데 ‘꿈이로다’를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달렸다. 밖엔 장대비가 쏟아지고 그의 두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져 빗물과 눈물이 뒤섞여 어지러운 시야로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1평도 채 안 되는 자동차 공간에서 나 홀로 벌리는 눈물의 파티를 1년에 두세 번은 거르지 않고 열었다.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미친 사람처럼, 혼자말로 웅변을 하듯 고함을 지르고 독백을 쏟아내었다.
그는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천천히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꿈이로다’를 틀어놓고 고함을 내지르기도 하고 신세타령을 하기도 하면서 혼잣말로 지껄이며 평소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쌓인 응어리를 하나씩, 하나씩 서러운 고름을 터트려 짜나갔다.
꿈같은 꿈속 세상에서 꿈꾸는 것도 고통이고 고통 받는 뒤숭숭한 개떡 같은 내 삶도 꿈일런가?
장애인이 되어 고통 받는 꿈이라면 차라리 꿈속에서 깨고 싶다. 제아무리 꿈속이라 하더라도,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가슴 무너지는 뒤숭숭한 아린 꿈속에서 깨어나고 싶다.
당신의 실명된 두 눈까지도 애틋하게 사랑하는 꿈을 꾸고 절룩거리는 내 다리도 당신의 사랑을 받는 꿈을 꾸게 하라.
‘달빛사랑’으로 이어나가는 외줄타기 위험한 사랑일지라도 깨이지 않는 영원한 꿈속 ‘달빛사랑’으로 이어지게 하라.
흉악한 자식들.
사악한 자식들.
어둠의 자식들.
장애인을 위로한다면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장애는 슬픔이 아니고 단지 불편할 따름이며 장애인들보다 정신이 병든 인격 장애인들이 더 많다고 씨부렁대는구나.
야, 가증스런 자들아, 개 같은 소리 당장 집어 치워다오.
네놈들이 슬픔이 어떤 것인지 알고나 지껄이는 것이냐.
불편하면 가슴이 슬픈 것이고, 슬프면 몸도 마음도 불편한 것이지, 불편과 슬픔은 별개의 것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어느 권력자까지 나서서 장애는 고통이 아니라 단지 불편할 뿐이라고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말장난을 쳐대는구나.
당신은 고통의 멍에를 짊어진 채 날마다 씨름을 벌여 보았는가?
당신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처절한 피눈물로 베갯머리를 흠뻑 적시어 봤는가?
이 세상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보물을 손에 넣으려고 달리기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아수라장이다. 달리기 경쟁을 벌리는 처절한 아비규환 게임에서 장애인은 단지 슬픔이 아니라 불편할 따름이라는 웃기고 자빠지고 얼빠진 이야기가 통하는 따듯하고 사랑이 넘치는 넉넉한 세상이라도 된단 말인가?
잘 달리는 놈이 왕창 움켜쥐는 냉엄한 정글법칙의 삶의 질서 속에서, 장애는 고통이 아니라
단지 불편할 따름이라고, 어쭙잖은 위로와 위선적인 말잔치가 통하는 사회라는 말인가?
이웃사랑을 들먹거리면서 ‘장애인 먼저’라고 떠들어대는 당신들은, 달리기 경쟁에서 움켜잡은 보물 가운데 장애인들과 몇 개를 나눠 가졌는지 양심적으로 고백해 보라.
단지 장애를 당했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이동의 권리가 박탈당하고, 여기 저기 높은 턱에 무수히 가로막히는가 하면, 밀렵꾼이 쳐놓은 덧처럼 곳에 장애물로 둘러쳐져, 완전포위를 당한 채 아우성치고 있는 처절한 외침뿐이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죽음의 그림자만 드리워진다.
집중폭우에 떠내려가듯 밀리고 밀려서 원하든 원치 않든, 무방비상태로 내몰려 후미진 곳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비정한 현장이, 바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들의 고단한 삶의 현주소이다.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이 문제이듯, 장애를 입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고르지 못한 환경과 제도로 인권과 권리를 몰수당하고 기회를 박탈당하는 잔인한 폭력이 문제로다.
이동권 박탈, 취업기회 봉쇄 등 수없이 많은 차별과 따돌림으로, 장애인들의 삶은 고단하고 생존권마저 위협 당하고 있다.
고통의 멍에를 홀로 뒤집어 쓴 채 떡시루에 얹혀진 고사떡처럼 응어리 켜켜이 쌓이고, 한을 키우면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차별로 얼룩진 뒤틀린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철저하게 홀대 당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고통이고 절망이다.
이 땅위에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고통의 짐을 덜어달라고 손을 벌렸는가?
아프다고 도와달라고 언제 보채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무리 고통스럽고 아프다고 해도 동정 따위는 바라지 않고 이제껏 살아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위엔 장애인복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막막하기만 하다.
그냥 내버려두면 살 것 같은데, 세상은 요란스럽게 ‘장애인 먼저’, ‘장애인을 사랑하자’는 등
빈 깡통이 요란하고 빈 수레가 시끄러운 것처럼, 말잔치로 시끌벅적 빈 깡통만 흔들어 댄다.
군사정권이나 민주정권이나 어인 일인지 장애인복지는 달라진 것도 없이, 그 밥에 그 나물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 없이 여전하다.
무얼 도와주겠다고 호들갑을 떨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어라.
그것이 장애인을 슬프게 하지 않는 길임을
이 땅위에 서럽게 살아가는 장애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절규하고 있다.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 봐야하며 무엇을 도와줘야 하고, 무슨 도움을 줘야하는지를 연구하고 찾는 수고를 일부러 할 필요도 없다.
굳이 장애인 비장애인 나뉘어 가타부타 떠들 필요도 없다. 내가 잘났니, 네가 잘났니, 우쭐대어 본들, 누가 더 잘나 보일 것이며 도토리 키 재기만큼 잘나본들 얼마나 잘났겠는가?
행여 잘났다고 한들 무엇을 더 얻을 것도 아니지 않는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인권표어대로 그냥 겸손하게 살면 될 터인데, 소문난 잔치 집에 먹을 것 없는 꼴이로구나.
작성자이철용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 이사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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