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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도 영화를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장애코드로 문화읽기] 나의 영화 이야기

본문

본래 음악이 전공인 나는 대학생 시절부터 문화생활에 목말라 있었다. 음악감상은 라디오 방송을 활용할 수 있었으나, 연극과 영화감상은 현장을 가야만이 가능한데 함께 할 만한 동행인이 없어, 그야말로 한을 품으며 살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1988년 1월부터 대중극단의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구경하는 것을 계기로 길지 않은 문화생활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지금은 사라졌다고 하는데, 당시 정동에 위치해 있던 마당세실 극장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매월 보내오는 할인권으로 연극을 보고, 가보고 싶은 음악회와 영화를 골라 관람하는 재미에 빠져 보낸 세월이 약 2년여, 결코 길지 않았으나 나의 인생에 있어서는 이 시기를 황금기라 부르고 싶을 만큼 풍성함을 가져다 줬었다.

그런데 연극과 영화, 음악회 관람에 있어 시각장애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안타까움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문화 향유의 한계를 인정해야 했다. 음악회장에서 팸플릿을 보지 못해 작품 사전 이해를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 연극에서도 소극장에서는 마이크 사용을 하지 않는 관계로 꼭 가운데 자리에 앉아야 하는 문제나, 사람들의 동작 설명과는 별도로 소품이 움직이고 있는 상태 등에 대한 설명을 미처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어려운 장르가 영화인데,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과 대사 없이 소리나 영상으로만 처리되는 장면, 그리고 지나치게 큰 음향 때문에 동행인이 설명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문제 등, 시각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요소가 산재해 있다.

   
ⓒ영화 '의형제'
지난 음력 설 연휴 전날 밤, 동네 영화관에서 최신영화 중 하나인 <의형제>를 관람할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말로만 듣다가 처음 가게 되어 은근히 설레기도 했다. 젊은 인파속에 섞여 극장에 들어가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고, 팝콘을 줄곧 먹어가면서 영화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단지 걱정인 것은, 동행인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화면해설을 해 줄 것인지의 문제였는데, 예상대로 열심히 설명은 했으나 너무 목소리를 작게 내고 액션이 나오는 장면에서의 음향은 지나치게 커서 발음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살인하는 장면에서 크게 퍼지는 소리는 총성인 것을 알겠는데 작게 연속해서 나는 소리는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지만 그 순간엔 차마 물어보기가 어려워 애써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소리 없이 끝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영화에서 총성 외에 났던 작은 소리가 소음방지기를 낀 총소리였었다는 걸 알았을 때의 딱히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은 시원함도 아닌, 허탈감도 아닌 씁쓸함이었다고나 할까?

“영화 잘 보셨어요?”라는 물음에 바로 대답을 못하다가 궁금했던 몇 가지를 물어 답을 들은 후 머릿속에서 상황을 정리했다. 영화도 잘 보고 많이 고마웠는데도 인사는 제대로 못한 체 헤어졌다.

지난 2008년 11월 5일 오후, 서울여성플라자 시청각실에서는 전도연·송강호 주연의 <밀양>이 상영되었다. 입사한 지 열흘 된 20대 초반의 아르바이트생과 그의 남자친구가 함께 가게 되었는데, 아직 시각장애인들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이들이었기에 영화가 시작되기 전 나는 “화면해설을 잘 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또 했다.

그 때 나는 동행인들과 함께 뒷자리에 앉아야 했고, 영화가 시작되면서 내 귀에 속삭이지 못하고 약간 목소리를 크게 내어 상황설명을 해 주는 동행인에게 속삭여 달라고 요청해야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설명이 끊어져 있었다. 조금 지나 느낌이 이상하여 옆자리를 살짝 만져보니 자리도 비어 있었다. 설명을 하지 않는 건 그렇다 치고, 어찌 중간에 자리를 비울 수 있단 말인가!

영화가 끝나자 아르바이트생이 다가와 “영화 잘 보셨어요?”하고 상냥하게 말하며 나를 바깥으로 로비로 안내했다. 이 무슨 해괴한 인사란 말인가? 영화의 반 이상을 설명 없이 관람한 시각장애인에게 ‘영화를 잘 봤는지’를 묻다니…. 로비에 앉아마자 곧바로 하나하나 따져 묻기 시작했다. 왜 설명을 멈췄는지에 대한 대답은, “이야기를 계속하려니깐 늦게 들어와 뒷자리에 앉은 이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더라.”는 것. 왜 자리를 비웠느냐는 질문엔 “영화가 너무 파격적이어서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는 대답.

나는 다음 질문을 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화면해설을 잘 해 달라는 부탁을 괜히 한 줄 알았는가?”

동행인 왈 “그럼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다녔을 때에도 일일이 설명 해 드렸단 말인가요?”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의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순간, 방금 전 감상한 영화의 대한 여성주의적 해석을 듣는 시간이 되었다고 다시 시청각실로 모이라는 바람에 화를 눌러 참아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동행인들은 나의 다음 말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노기 띤 목소리로 하려던 말은 “그럼 눈 감고 영화 한번 감상해 보라.”는 거였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지금까지 이야기한 영화들은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것들이다. 다만, 화면해설이나 동료의 자상한 설명이 없으면 중간 중간 상황 판단이 안 되어 머릿속에서 정리를 못 한 채 뒷이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요즘 작품성이 있다고 인정받는 영화들 대부분이 과거·현재를 넘나들면서, 음성언어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게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몇 년 전 TV를 통해 방영된 <친절한 금자씨>이다.

외국영화에 대해서는 어차피 TV에서 성우들의 더빙이 없으면 아예 감상할 꿈도 못 꾸기에, 작년 봄 TV에서 <패션오브크라이스트>가 방영되었을 때, TV가 나오는 라디오의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더빙을 기다리다가 끝내 실패하고 어머니가 읽어주시는 자막의 의지하여 들을 수밖에 없었던 기억은 지금도 여전히 서운함으로 남아 있다.

나는 꿈꾼다. 2008년 4월 명동 시너스 극장에서 열렸던 ‘제2회 인권애니메이션 시사회’현장이 하루 빨리 일반화되는 날을. 그날 나와 동행한 비시각장애인과 저시력인은 둘 다 수신기의 음질이 나빴다느니, 눈을 감고 들어봐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느니 불평했지만 난 그런 좋지 않은 음질의 수신기라도 화면해설을 들으면서 다른 관객들과 같은 호흡으로 웃을 수 있었기에 행복했다. 영화관에서 늘 겪는 일이지만, 왜 웃는지 모르다가 나중에 그 이유를 알면 혼자 웃을 수가 없었던 것도 내겐 아픔이었다.

더 이상 그런 사소한 것 때문에 아파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내 지나친 욕심은 아니라 믿으며, 오늘도 장애인들의 온전한 문화향유권을 보장받기 위해 장애인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비장애인들과 동료장애인들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작성자전인옥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 상임이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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