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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가는 길

서기자의 변죽때리는 소리 _ 마이앤트메리

본문

우린 삼총사였다.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딱 우릴 두고 한 말일 거라고 자부하던 터였다. 그래서였을까? 대학도 나란히 낙방했다. ‘따로 또 같이’ 재수생이 됐다. 각자 다니던 학원은 달랐으나, 수업을 마치기만 하면 만나서 같이 지냈다는 얘기다.

동네 경양식집에서 함께 아르바이트도 하고, 술도 마시고, 가끔은 학원 땡땡이 치고 놀러가기도 하고…. 내게 타임머신이 주어진다면,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 시절로 날아가는 버튼을 누를 것이다.

“나, 유학 가기로 했다.” 어느 날 그 중 한 녀석이 불쑥 꺼낸 얘기였다.
순간 느꼈던 감정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놀람, 슬픔, 서운함, 배신감, 부러움…이 뭉뚱그려져 치솟아 올랐다. 그날 밤 우리 셋은 동네 뒷산에 올라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떡이 되도록 펐다. 나중에 듣자하니, 녀석은 그날 집에 들어간 뒤 화장실에서 쓰러져 잠들었다고 한다.

몇 달 뒤, 우리는 녀석의 아버지 차에 올랐다. 녀석이 미국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어스름한 새벽 공기를 헤치며 올릭픽대로를 달리던 차 안에서 우리는 말이 없었다. 김포공항에서 돌아오는 길, 둘이 된 우리는 역시 말이 없었다. 어색하게 한 손을 삐죽 치켜들던 녀석의 굳을 대로 굳은 얼굴이 좀처럼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걸 참느라 연신 마른 침만 삼켜댔다.

   
마이앤트메리

아무도 없는/ 파란 새벽에/ 차가운 바람/ 스치는 얼굴
불안한 마음과 그 설레임까지/ 포기한 만큼 너 더 이상 쓰러지지 않도록
또 다른 길을 가야겠지만 슬퍼하지는 않기를/ 새로운 하늘 아래 서 있을 너 웃을 수 있도록

어색한 미소/ 너의 뒷모습/ 조금 상기된 너의 얼굴/ 이젠 익숙한 공항으로 가는 길
불안한 마음과 그 설레임까지도/ 포기한 만큼 너 더 이상 쓰러지지 않도록
또 다른 길을 가야겠지만 슬퍼하지는 않기를/ 새로운 하늘 아래 서 있을 너 웃을 수 있도록

언젠가 우리가 얘기하던 그때가 그때가 오면/ 어릴 적 우리 얘기하며 우리 또다시 만나길

마이앤트메리 3집 ‘Just Pop’의 ‘공항 가는 길’을 들은 건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2004년이었다. 노래를 듣는 순간, 거짓말 같게도, 난 12년 전 그 올림픽대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내 경험을 도용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난 CD 플레이어의 무한반복 버튼을 눌렀다. 그날 밤 달린 올림픽대로 거리를 합산하면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지 모른다.

녀석은 한국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미국에서 학교를 마친 뒤 때늦게 군대에 다녀왔다. 그리고 꽤나 번듯한 회사에 취직했다. 우리 셋은 그 시절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주요 안주는 물론 옛날 얘기였다. 언젠가 함께 노래방에 갔을 때 ‘공항 가는 길’을 불렀다. “언젠가 우리가 얘기하던 그때가 그때가 오면~ 어릴 적 우리 얘기하며 우리 또다시 만나길~” 녀석들은 이 노래를 잘 몰랐다. 혼자 센치멘탈해져서 붉어진 눈으로 천장에서 빙빙 돌던 미러볼을 올려다봤다.

녀석은 몇 년 전 또 미국으로 갔다.
미국 회사에서 일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일단 5년 정도 일해 보고 한국으로 돌아올지, 아예 말뚝을 박을지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번엔 공항에 같이 가지 않았다.
하루 휴가를 내서라도 내 차로 인천공항까지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녀석은 끝내 사양했다. 그땐 녀석 혼자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이번엔 아내와 어린 딸이 함께 하기에 부담 없이 보내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는 공항 장면으로 시작해 공항 장면으로 끝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곳이 바로 공항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 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또 만남이 있다.

16년 전 우리들에게 공항은 헤어짐의 장소였지만, 언젠가 녀석이 다시 돌아오는 날 공항은 만남의 장소가 될 것이다.
그땐 녀석이 아무리 말린다 해도 꼭 공항으로 마중 나갈 것이다. 그때 달릴 ‘공항 가는 길’은 기대와 흥분, 설레임으로 가득찰 것이다.

- 마이앤트메리 '공항 가는 길'

●●●지금까지 2년 가까이 숨가쁘게 달려온 이 코너를 접으려 합니다. 개인적 사정이 생겨 매달 함께하기가 버거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떠나는 건 아닙니다.

지금은 공항에서 어색하게 손을 흔들고 있지만, 언젠가 이 공항으로 다시 돌아올 날이 올 걸로 확신합니다. 그날이 오면 모두들 마중 나와 반겨주실 거죠? 그럼,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작성자서정민 (한겨레신문사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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