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죽여라~!”
3인조 밴드 페일슈
본문
3인조 밴드 페일슈. 창백한 신발(pale shoe)이라는 뜻의 여린 이름도 그렇지만, 반듯한 모범생 이미지에 가까운 외모도 아들을 죽이라는 노래와는 쉽게 매치가 되질 않는다.
Kill the son, kill the boys, with your incredible love.
Feel the sun, feel the breeze, with your untouchable,
untouchable, untouchable lung.
“아들(son)과 소년(boy)은 남성성에 대한 강박을 상징해요. 남자애들이 크면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말일 거예요. 점점 남자다움에 대한 강박감에 사로잡히게 되죠.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예요. 양성평등을 부르짖는 여성조차 ‘남자라면 이래야 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회 분위기가 너무 싫었어요.”
페일슈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은 변준섭은 이 곡을 쓸 당시 스스로가 남자인 게 너무 싫었을 정도로 남성성에 대한 강박이 싫었단다. 신병교육대에서 근무한 군대 경험이 이런 생각을 더욱 굳혔다고 했다. 하긴 신병교육대란 곳이 이 시대 남성성의 성지와도 같은 곳일 테니 말이다.
그는 남성성에 대한 강박을 죽여버리라고 외친다. 강박에서 벗어나 태양과 바람을 가슴으로 느끼며 자유로움을 만끽하라고 노래한다. ‘킬 더 선(Kill the son)’은 파괴가 아닌 자유를 외치는 노래인 셈이다. 페일슈의 이 곡은 2004년 홍대앞 인디밴드들이 참여한 컴필레이션 앨범 <라이브클럽 페스트 Vol.1>에 실린 것이다.
페일슈가 결성된 건 2002년 3월. 변준섭과 박태성(베이스)이 먼저 뭉쳤고, 몇 달 뒤 여성 드러머 한숙영이 합류했다. 연세대 국문과 학생 시절, 변준섭은 펑크밴드 활동을 했다. 96년 연세대 한총련 사태 때도 학교 안에서 공연을 했다.
군대에 다녀와 프로젝트 밴드 활동을 하면서 박태성을 만났다. 프로젝트 밴드는 서너 달간 일시적 활동을 마치고 해산했다. 같은 학교 법학과 학생이었던 박태성은 사법고시를 준비하겠다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던 변준섭은 공부 대신 본격적인 음악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심했다. “연구는 저 말고도 할 사람이 많을 것 같더라고요.” 그는 박태성에게 전화해 일시적인 프로젝트 밴드가 아닌 정식 밴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박태성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 음악에 발을 들이는 건 다른 길을 다 포기한다는 뜻인데….’ 한 달여 장고 끝에 밴드 참여를 결정했다.
페일슈는 2003년 홍대앞 라이브클럽 빵이 제작한 <빵 컴필레이션 2집>에 ‘보이 인 더 윈드(Body in the wind)’를 실으며 강호에 이름을 알렸다. 반응이 꽤 좋았다. 그리고 이듬해 발표한 ‘컬 더 선(Kill the son)’은 페일슈라는 이름 석 자를 홍대 앞 인디씬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페일슈는 데뷔앨범을 내기도 전부터 강력한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페일슈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 했다. 박태성이 2003년 입대했기 때문이다. ‘컬 더 선’은 그가 휴가 나왔을 때 녹음한 곡이다. 2005년 박태성이 제대하고 합류하자 이번에는 드러머 한숙영이 개인적 사정을 이유로 탈퇴했다.
그해 안에 첫 앨범을 내려던 계획은 한없이 늘어졌고, 기다리던 팬들은 하나둘 지쳐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 드러머를 구하려고 수십 명을 만났지만, 인연은 쉽게 찾아지질 않았다. 변준섭은 정신적 방황을 거듭했다. 그렇게 지지부진하는 동안 인터넷 팬카페는 문을 닫았다.
2007년 9월 21일. 변준섭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늘 보고 연락드려요. 드럼 구하셨나요?’ 오디션 때 변준섭은 딱 첫 마디만 듣고 ‘바로 이거다.’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같이 합시다.” 새 드러머 노권일의 합류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페일슈는 이제 신발끈을 조이고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뜻에서 밴드 이름을 새로 지을 생각까지 했다. 11월부터 클럽 공연을 시작했다. 내년 3월 첫 앨범 발매가 목표다. 결성 1년여 만에 공백기에 들어가 4년여 동안 헤맸던 페일슈는 이제 제2의 탄생을 앞두고 있다.
“우리 음악은 속에 있는 걸 날것 그대로 끄집어내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다보니 하고 싶지 않을 땐 음악이 정말 안 돼요. 공연 때 관객들이 아무리 앙코르를 외쳐도 내키지 않으면 못하겠더라고요. 프로답지 못하다고 하는 분도 있지만, 억지로는 안 나오는 걸 어쩌겠어요. 그런 고집마저 놔버린다면 음악을 아예 못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 속에서 음악이 펑펑 솟아나요. 페일슈가 제대로 보여드릴 때가 온 거죠.”
기다리다 지쳐 떨어져 나간 이들이 다시금 페일슈에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가 변준섭의 말속에 담겨있다.
- Kill the son을 들으시려면 플레이 버튼을 눌러주세요 -
작성자서정민(한겨레신문사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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