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로 날아간 김완선?
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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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완선에 충격 먹다
1986년 김완선의 데뷔는 파격이었다. 섹시한 옷차림, 화려한 춤에 짙은 아이라인의 두 눈을 살포시 치켜뜨고 “나 오늘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라고 속삭이던 그는 도발 그 자체였다.
‘한국판 마돈나’의 출현. 많은 여성들이 “니 눈이 더 무서워!”라고 질투(?) 어린 우스갯소리를 내뱉었지만, 뭇 남성들의 두근거리는 가슴을 잠재우지는 못 했다.
여기 김완선에 푹 빠진 여자아이가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최소희 양은 텔레비전에서 김완선의 무대를 보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러지?” 소녀는 훗날 당시의 느낌을 ‘충격’이라고 표현했다. 그때부터 소녀는 동요계를 졸업하고 가요계에 입문했다. ‘오늘밤’을 따라 부르며 몸을 흔들어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신해철의 1집 음반에 감동을 먹었다. ‘난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원하지 않아…’(안녕)
2. 아이돌 가수 포기하다
고등학생 때 가수를 꿈꿨다. 당시 심취했던 흑인음악 팝송 테이프를 틀어놓고 그 위에 노래 부른 걸 녹음해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다. 여기저기 기획사에 닥치는 대로 보냈다. 대여섯 곳에서 오디션을 봤고, 한 군데에선 앨범 한 번 내보자고 연락도 왔다.
그런데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어린 나이에 가수 한다고 나섰다가 내 뜻과는 상관없이 어른들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건 아닐지, 괜히 얼굴만 팔리고 빤짝하다가 그냥 사라지는 건 아닐지….’ 기획사의 제안을 그녀는 끝내 거절했다.
3. 인디씬에 발 들이다
대학생이 된 뒤 학교 수업은 뒷전으로 미루고 홍대앞 클럽 ‘드럭’에서 살다시피 했다. 당시 드럭에서 죽치던 크라잉넛, 노브레인, 이지형(당시 위퍼) 등과 트고 지내며 록 음악에 눈을 떴다. 기타, 베이스 등 악기도 배웠다. 드럭에서 만난 몇몇과 어울려 밴드 ‘잠’을 결성했다. 맡은 악기는 베이스였다. 앨범을 내고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에 접어들었다. 학교는 곧 그만뒀다.
4. 보사노바를 만나다
교보문고 음반매장에 갔다가 우연히 아스트로 질베르토(브라질의 유명 보사노바 여가수) 베스트 앨범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누군지, 무슨 음악을 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단지 예쁜 앨범 재킷이 맘에 들었을 뿐이다. 두 장짜리 더블앨범을 한 장 값에 준다는 것도 맘에 들었다. 무작정 집어들고 계산을 했다.
집에 와서 들어보니 세상에, 너무 좋았다. ‘이런 음악이 있었다니….’ 인터넷에서 브라질 음악 동호회를 찾아 가입했다. 얼마 뒤 동호회로부터 밴드 베이스를 모집한다는 이메일을 받고 ‘뚜드지봉’(따봉의 원래 말)에 합류했다. 엠피비(MPB, Musica Popular Brasileira)라 불리는 브라질 대중음악을 카피하는 밴드였는데, 보컬과 기타는 브라질 사람이었다. 흥겨운 브라질 음악에 제대로 취했다.
5. 소히로 태어나다
2004년 3집까지 내고 밴드 ‘잠’을 탈퇴했다. 등을 떠민 건 다름 아닌 새로운 음악에 대한 욕구였다. 곧 ‘소히(Sorri)’라는 이름을 내걸고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R을 ㅎ으로 발음하는(Ronald를 호나우두로 부르는 걸 보라) 브라질식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보사노바 등 브라질 음악을 부르고 연주했다. 소히는 브라질 말로 ‘미소짓다’라는 뜻이란다.
“그동안 해온 음악에선 결핍 같은 걸 느꼈어요. 흑인음악이고 록이고 아무리 잘해봐야 걔네들 흉내 내기밖에 안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브라질 음악은 달라요. 보사노바, 삼바 같은 브라질 고유음악에다 팝, 록, 힙합 따위의 서구음악 요소들을 마구 뒤섞은 ‘멜팅 팟(Melting Pot)’ 같은 게 브라질 대중음악 엠피비거든요. 여기에 한국적 감성을 뒤섞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요. 섞음의 미학,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음악이랄 수 있죠.”
소히는 2006년 첫 앨범 <앵두>를 발표했다. 가요에 보사노바 리듬을 차용한 곡은 이전에도 적지 않았으나, 이처럼 본격 브라질 음악을 접목한 경우는 흔치 않다.
“브라질 너무 가보고 싶은데, 아직 한 번도 못 가봤어요. 그래서 브라질이랑 비슷한 마카오라도 가보려고요. 거기도 옛 포르투갈 식민지여서 브라질이랑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하네요. 호호~”
2008년엔 꼭 2집 앨범을 낼 거라며 이름처럼 환하게 웃는 소히의 얼굴에서 엠피비가 아닌 한국 대중가요의 밝은 미래를 봤다면 지나친 걸까? 연말 지상파 방송 가요대제전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그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심증을 굳혔다. 솔직히 거기 나온 가수들, 너무 뻔하고 지루했다.
작성자서정민(한겨레 신문사)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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