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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얘기 한번 들어볼래?

<커피프린스 1호점>의 티어라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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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박성훈. 내 얘기 한번 들어볼래?
난 어릴 때부터 방송 PD가 되고 싶었어. 재밌는 예능 프로를 만드는 게 꿈이었지.
그래서 동아방송대에 갔어. 군에서 제대한 뒤에는 학교생활 접어두고 방송국 FD로도 일했지. 난 음악도 좋아했어.

고등학교 때 베이스를, 대학교 와선 드럼, 기타를 차례로 독학했지. 노래도 만들었어.
물론 정식으로 배운 건 아니라서 지금도 악보는 볼 줄 몰라. 음악은 늘 해왔지만,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전혀 없었어. 음악은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취미도 아니야. 내게 있어 음악은 ‘열정’ 그 자체거든.

2004년 초 구인광고를 통해 6인조 밴드 ‘티어라이너’를 만들었어. 멤버들과 지낼 방이 필요했어.
인터넷방송 PD로 일하며 번 돈 600만원을 탈탈 털어 보증금으로 내놨는데, 아 글쎄, 이걸 드러머 형이 갖고 튄 거야. 그 형은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를 여럿 치고 지금은 감옥에 있다더군.
암튼 당시엔 너무 실망스러워서 데모테이프 딱 다섯 장만 돌리고 연락 없으면 음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려 했어.

근데 처음 보낸 음반사에서 바로 연락이 온 거야. 앨범을 내자고. 앨범 준비를 하며 우린 많이 다퉜어.
음악적 견해도 많이 달랐고, 늘 그렇듯 돈 문제도 우릴 괴롭혔지.

결국 멤버들 뿔뿔이 흩어지고 나만 남았어. 키보드를 치던 김성민만 남아 세션으로 앨범 작업을 도와줬어. 그 친구는 지금도 날 도와주고 있지. 정말 고맙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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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까지 건너가 녹음해온 결과물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어. 맘에 안 드는 부분을 들어내니 남은 곡이 몇 안 되더군. 결국 내가 살던 반지하 방에서 혼자 다른 곡들을 녹음했어.

그렇게 홈레코딩한 앨범에 <작은방, 다이어리>라 이름 붙였어. 일본에서 작업한 앨범엔 <Letter From Nowhere>라 이름 붙여서 함께 발표했어.

데뷔앨범이 두 장짜리가 된 이유야.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평론가들이 좋아해줘서 기뻤어. 얼마 뒤 처음으로 저작권 등록을 하는데 실감이 나더라고.

아, 이젠 나도 프로 뮤지션이구나. 기분이 이상했어. 그해 방송국 PD 시험은 줄줄이 낙방했고, 9급 공무원 시험도 미끄러졌어.

그 즈음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어. 드라마 PD인데, 내 앨범을 들어봤다면서 같이 일해보자는 거야.
그렇게 해서 이윤정 PD의 베스트극장 <태릉선수촌> 음악감독을 맡게 됐어. 일은 재밌었어.  여러 상황에 맞는 다양한 음악을 만들면서 스스로도 많이 배웠고. 전에는 혼자 골방에 들어앉아 우울한 음악만 만들었는데….

반응도 나름 괜찮아서 OST 앨범을 내려 했는데, 가운데서 일이 틀어져서 잘 안됐지. 결국 당시 곡들은 2007년 3월 1.5집 <Polaroid Life(우리들만의 발자취)>란 앨범에 담아냈어.

이윤정 PD한테서 또 연락이 왔어. 미니시리즈 <커피프린스 1호점> 음악감독을 맡아달라고.
의욕에 넘쳐 열심히 일했어. 극중 선균이 형이 부르면서 유명해진 ‘바다여행’ 같은 곡도 만들고,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동료들의 음악도 적재적소에 넣었어. 허밍어반스테레오, 몽구스, 포츈쿠키, 더멜로디, 루시드폴, 푸른새벽…. 다들 이런 좋은 노래들이 어디 숨어있었냐며 난리더군. 좀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좋은 음악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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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드라마 막판 작업에는 아쉬움이 많아. 후반부 들어 제작진이 다들 시간에 쫓기면서 방송 하루 전에야 영상이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었거든. 그걸 토대로 선곡하고 곡을 만들고 하는 게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었어.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이 많이들 좋아해주긴 했지만, 개인적으론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커. 드라마 쫑파티 때 미안해서 이윤정 PD 얼굴도 제대로 못 봤다니까.

드라마가 뜨면서 내 이름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사실 난 부담스러워.
드라마 인기에 기대지 않고 내 음악만으로 인정받고 싶었거든. 그래서 인터뷰 같은 것도 되도록이면 거절했고, 드라마 마지막회 뒤 방송하는 스페셜 편을 만들 때 인터뷰를 따겠다는 것도 정중하게 고사했어.
드라마도 끝났고 하니 이제 음악에만 전념해야지. 2집 준비도 하고.

이젠 음악만 하면서 살 수 있게 됐냐고? 남들은 이제 성공한 거 아니냐고 하는데, 여전히 내 생활은 변한 게 없어.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반지하 방에서 어머니랑 외할머니랑 살고 있지.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이제 또 다른 일을 찾아봐야지.
정말 음악만 하면서 살 순 없을까? 영화음악 일을 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Impossible is nothing)’라는 광고카피도 있던데,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겠지?

 

 

작성자서정민(한겨레 신문사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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