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 사랑의 모호함에 대하여
영화 ‘사랑과 추억’, ‘가족의 탄생’, ‘봄날은 간다’
본문
▲ 영화 <봄날은 간다> | ||
그렇다면 드라마 ‘굿바이 솔로(2006, kbs)’, ‘네 멋대로 해라(2003, mbc)’ 그리고 영화 ‘사랑과 추억(1992, 미국)’, ‘가족의 탄생(2006, 한국)’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소외당하고 버림받고 상처받은 기억들을 소재로 한 점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현자들은 사랑의 실천을 얘기했고, 그 근원이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설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가족이라는 근원으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사랑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오는 상처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아닌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봄날은 간다(2002, 한국)’에서 유지태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느냐고 이영애에게 항변합니다. 우둔한 남성들은 사랑이 변하는 것으로 그 영화를 해석합니다. 상처의 경험이 있는 현명한 여성이라면 사랑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한다는 것을 간파합니다.
갈대밭에 서서 해맑게 웃는 유지태의 얼굴에 저녁 햇발이 내리는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순진무구한 청년 유지태는 이제야 사랑이라는 묘약을 이해하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배신과 고통. 그 바닥에는 가족이라는 깊은 강이 흐르고 거기서 헤엄쳐 나온 자신을 둘 곳이 없는 소외받은 영혼이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부부라는 이름으로,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형제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배신에 우리는 너무 힘이 듭니다. 그
러나 이것은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이 깊고, 기쁨이 크면 슬픔도 크다는 진리를 가끔 잊어먹은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듯이 사람을 사랑하는 힘도 그러합니다.
▲ 영화 <사랑과 추억> | ||
‘사랑과 추억’에서 어머니는 어린 톰 윙고(닉 놀테 분)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톰, 너란다.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야’. 닉 놀테가 그 말의 모호함으로부터 헤쳐 나오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고 그의 상처는 깊었습니다.
미국판 마마보이의 모습이지요. 이 땅에 살고 있는 성인 남성 대다수(저를 포함합니다)가 아직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마 보이라는 사실을 저는 인정합니다.
사람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 세상의 유일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너만을 사랑해’ 정확하게 이 말은 틀렸습니다. 사람의 사랑하는 힘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나온 말이지요. 이 말을 길게 풀어쓰면 이렇지 않을까요?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어 너를 사랑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은 너만을 사랑하고 있어. 이런 내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끝없이 노력할께’
▲ 영화 <가족의 탄생> | ||
영화 ‘가족의 탄생’에 숱하게 나오는 명대사지요. 허망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온 힘을 다해 그래도 내뱉는 말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에 그 말이 너무도 아프지만 우리는 감내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한, 우둔하지만 아름다운 결과이니까요.
부모는 자식에게 배신당하고 그 배신당한 이는 그 다음에 또 배신당하고. 사랑하는 연인은 서로를 또 배신하고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되고. 그렇게 사랑은 잔인한 것입니다. 어느 사랑이 옳든 현재의 그 사랑을 갖기 위해 우리는 또 다른 사랑을 배신해야 합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건강해지려면 서로 사랑하는 것이 기본으로 전제되지만, 떠나간 사랑에 몸부림치지 말고 이 배신의 삼각함수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사랑 따위 믿지 않는다는 친구들도 많지만, 그래도 사랑하고 배신당하는 편을 저는 권합니다. 배신이라는 것 또한 사랑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니까요.
저희 집 가훈(?)을 소개하며 글을 맺습니다.
‘서로 폐 끼치며 살지 말자’.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작성자이영문(아주대학교 정신과 교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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