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언제나 고달픈 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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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언론에 보도되는 자살에 대한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사회경제의 변화가 심하다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놀라운 것은 이 같이 높은 자살율의 배경에 40대와 50대의 남성 자살율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걱정하는 청소년들의 자살이나 노인들의 자살, 여성 우울증보다도 더 심각한 현상이 우리나라 내부에 공존한다는 사실에 저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스트레스가 심한 연령대이고 사회적 책임이 크다는 것만으로 그 결과를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저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장년층 남성의 자살율 증가는 약해지고 유연하지 못한 한국의 남성상을 반영합니다.
무모함과 용맹이 교차되며 호기로 버틴 30대가 지나가고, 이제는 지혜로움으로 대처해야 할 시기에 현명함과 유연한 사고, 시대와 동화되는 깊은 감정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막상 가정이라는 울타리로 고개를 돌려보지만 그곳에 더 이상 아버지의 자리가 없습니다.
직장내에서는 구조조정과 후배들과의 경쟁에 허덕입니다. 더 이상 타고 올라갈 자리도 없습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 ‘즐거운 인생’은 바로 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80년대 대학에서 멋진 밴드를 꿈꾸며 살았던 중년의 남성들이 리드보컬이던 친구의 장례식에서 다시 만납니다. ‘라디오 스타’, ‘왕의 남자’ 등의 천만관객 영화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이 또 다시 이 사회의 보편적 감성에 키를 맞춥니다. 영화는 매우 단순하게 진행됩니다.
말도 안되는 남자들의 황당함에 아내들이 각자 반대하고, 집나가고, 이혼하게 되지만 ‘활화산’이라고 명명된 밴드의 공연에서 ‘터질거야’라는 메인 테마곡을 목터지게 부르며 영화는 끝납니다. 흥행과 연관된 모든 요소들을 잡아넣은 일종의 퓨전 비빔밥이지요. 맛은 있지만 다시 먹고 싶지는 않습니다. 클래식으로 분류되지는 않겠지만, 우리 시대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영화로는 평가될 만합니다.
대책 없는 밴드꾸리기에 기가 찬 아내가 던진 질문 하나. 그거 왜 하는데? 라는 당연한 질문에 김윤석은 특유의 표정으로 답합니다. 하고 싶으니까.
이준익 감독의 한계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바로 치기어린 남성 우월성과 무모함이 일종의 자기 신념이 굳은 자아실현형 인간으로 그려지면서 관객들을 잠시 속입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짧은 인생 뭐 별 거 있나?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도 모자란데. 마침 때맞춰 ‘터질거야’라는 세미 하드락이 귀를 울립니다.
감정이입과 몰아지경을 유도하며 감독의 의도에 따라가야 합니다. 집나간 아내도 돌아와 열심히 응원을 해줍니다. 그러나 이제부터입니다.
지리지리하게 지겨운 일상은 다시 시작할 것이니까요. 이 영화의 카타르시스는 한편으로 우리에게 더 큰 우울함과 좌절을 줍니다. ‘즐거운 인생’에 더 이상의 즐거움은 없습니다. 술 한잔 먹고 잊어버리자는 한탕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준익 감독에게 깊은 감정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나 봅니다.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끙끙거리지 말고, 아내와 함께 소통해야 되며, 술자리에서 더 이상 나라걱정, 회사걱정 하지 말고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되지도 않는 골프 싱글의 꿈을 접고, 지리산 자락을 지켜보며 클림트의 그림을 혹은 스파게티의 소스 맛을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적 상상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타짜’의 아귀가 그랬습니다. 상상력이 많으면 인생이 고달프다고.
맞습니다. 인생은 원래 고달픕니다.
치기어린 호기로움이 자기 신념으로 비쳐질까 두려운 마음으로 이 영화를 지켜봤습니다. 이상! 저에게로 보내는 독백이었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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