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가 음악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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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길 - 소록도로 가는 길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가는 길.//
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횡단보도를 건너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는데 사시인 거예요. 순간 그가 먼저 눈을 피하더라고요. 목이 메었어요. 얼마나 이런 일을 많이 겪었으면…. 이후엔 내가 먼저 무심한 듯 눈을 돌려요. ‘당신을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뜻으로.”
그가 한센병(나병) 환자였던 시인 한하운님의 ‘전라도 길’을 입에 올린 건 이 얘기를 한 뒤였다. “아주 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죠.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아픔을 그려내고 싶었던 걸까? 그는 데뷔 때부터 일관되게 “상처입은 이들의 정서”를 노래해왔다.
이기용. 록밴드 허클베리 핀의 리더. 10여년간 음악 생활을 통해 3장의 밴드 정규앨범과 2장의 솔로 앨범(‘스왈로우’라는 이름의 원맨밴드 형태로 발표)을 냈다. 올해 우리나이로 서른여섯.
이쯤 되면 자리를 잡을 법도 하건만, 여전히 그는 힘겹게 음악을 하고 있다.
고1 때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머리털이 다 빠지고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였다. 학교를 그만뒀다. 밤무대를 전전하며 음악을 하던 외삼촌이 손에 기타를 쥐여줬다. 힘들 때면 노래를 해보라고. 이렇듯 음악과의 첫 인연은 괴로움에서 비롯됐다.
2년 뒤 홍익대 영문과에 들어갔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 이게 아니다 싶었단다. 고전에만 집중된 교과과정은 당대비평으로 가지를 뻗쳐나가길 원하던 그에게 크나큰 벽으로 다가왔다. “뒷북만 치는 느낌”이 들어 2학년 도중 그만뒀다. ‘이제 뭐 하지?’ 술도 마시고 기타도 튕기고…. 당시 홍대 앞에서 막 태동하기 시작하던 인디음악 판에 발을 들이기로 했다.
음악인 이기용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1998년 허클베리 핀 데뷔 앨범 ‘18일의 수요일’을 냈을 때. 뒤늦게 명반으로 인정받게 됐지만, 당시엔 “공연에 40명 이상 온 적이 없는 비주류 중의 비주류 밴드”였다. 연봉 50만원의 전업 음악인 생활에 지칠 때면 대학 졸업장을 따지 못한 게 후회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음악은 포기할 수 없는 신체의 일부와도 같았다. 2004년에는 직접 음반사를 차리고 3집 앨범 ‘올랭피오의 별’을 냈다. 스스로 음반을 들고 언론사를 찾아다니며 홍보했다. 적자를 보면서까지 지방으로 공연을 다녔다. 올 초 싱글앨범 ‘허클베리 핀’을 발표하고 4집 앨범(6월 예정) 막바지 작업 중이다.
그는 노랫말 하나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마치 시와 같은 노랫말 행간 사이사이에는 분노, 절망, 아픔 따위의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그는 음반보다도 시집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그동안 사 모은 시집만도 1200권이 넘는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시를 읽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문학가의 꿈도 이룬 듯하다.
“쉽게 혁명, 변혁, 진보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5명 미만의 작업장에서 노조운동이 일어나는 거 보셨나요? 그런 이들이 얼마나 많고, 또 어떻게 일하는지를…. 난 주위에 있는 그런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을 들어내고 싶은 거예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선 앞으로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갈 집착 같은 게 있어요.”(2002년 음악평론가 박준흠씨와의 인터뷰에서)
“그 집착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라는 그는 사회당 당원이기도 하다. 다달이 당비 1만원씩 꼬박꼬박 낸다. “그렇다고 제가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급진주의자는 아니에요. 그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이 땅에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죠. 진보에 대한 제 믿음은 명확해요. 모든 이들이 다함께 가는 것. 그러려면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야 마땅해요. 사람과 동물의 차이가 바로 그런 거 아니겠어요?”
“뇌로 음악을 하게 되면 음악을 그만둬야 한다”고 목놓아 외치던 그.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는 평생 가슴으로만 음악을 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허클베리 핀 싱글앨범 수록곡 '낯선 두 형제'를 들으시려면 플레이 버튼을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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