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서는 안 될 당신
본문
스물하고도 여섯 해가 흘렀건만,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군요.
그래서였나 봐요.
당신을 사랑했던 그 사람은 비문 뒤에 이렇게 써 넣었죠.
"여보, 당신은 천사였소..."
1956년에 태어나 스물다섯 살이 되던 그 해,
그 오월은 당신에게 따사로운 신혼의 봄이었습니다.
훼방 놓을 수도 없고, 훼방 놓아서도 안 되는
그런 행복의 시간이었을 거예요.
그런 당신이 쓰러졌습니다.
계엄군이 빛고을을 피로 물들이던 그날,
당신은 남편 걱정에 집을 나섰다가 흉탄에 맞고 말았습니다.
흉측한 총탄이 당신의 머리를 꿰뚫었습니다.
첫아이 진홍이는 아직 첫돌도 되지 않았죠.
당신의 따뜻한 몸에는 곧 태어날 둘째 아기가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습니다.
쓰러져서는 안 될 당신이 쓰러진 겁니다.
쓰러뜨려서는 안 될 당신을 쓰러뜨린 겁니다.
쓰러진 당신은 오늘도 쓸쓸히 망월동 묘역을 지키고 있는데,
당신을 쓰러뜨렸던 자는 국가원로를 자처하며 이 나라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가진 돈이 29만원밖에 없다는 그 자의
아들과 초등학생 손자 녀석의 통장에 출처불명의 45억원이 입금되었답니다.
가진 돈이 29만원밖에 없다는 그 자가
강남 금싸라기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 났습니다.
오월의 그날이나,
스물하고도 여섯 해가 흐른 지금이나,
세상은 요모양 요꼴입니다. 요상망측하기 짝이 없습니다.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당신을 쓰러뜨린 자의 묘비에 이렇게 쓸 날이 오긴 할까요?
"여보시오, 당신은 괴물이었소....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
그런 날이 오긴 할까요?
천사였을 당신은, 그러지 말라고 타이를지도 모르겠군요.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