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연재] 미국 장애우 운동사 (17) : “우리는 만년 어린아이가 아니다”
본문
저자 : 조셉 피 쉐피로
이 책을 쓴 조셉 피 쉐피로는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인 유에스월드앤리포트지 기자로서 사회정책에 관한 다수의 기사를 썼다.
그는 미국 알리샤 페터슨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 장애우 인권운동을 연구해서 이 책을 썼다.
역자 : 서동명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다.
다른 장애우들 보다 정신지체인 다른 사람들과 그 존재를 동등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적절한 호칭으로 불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듯하다.
우리 나라도 비하의 뜻이 담긴 ‘정신박약’이 아닌 ‘정신지체인’이라는 호칭을 되찾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수반해야 했다.
미국에서도 그냥 정신박약자와 같은 뜻의 호칭에서 ‘정신지체를 가진 사람(People with retardation)’이라는, 그들이 존중받아야 할 인권을 가진 동등한 인감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운동이 주창되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정신지체인 당사자들이 그러한 자기권리 주장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번 호에는 그 구체적인 움직임과 그로 인한 놀라운 변화들을 소개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혁명이다”
코네티켓의 첫 번째 ‘피플 퍼스트(People first)’ 총회에 참석한 T. J. 먼로가 원했던 ‘해결’은 사실 당시 사회여건으로 보면 혁명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행사장이었던 한 호텔에는 자기권리주장운동의 개척자들인 먼로와 3백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이 운동은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사는 것 대신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개혁운동이었다.
“당신들은 오늘 두 가지 행동을 해야만 한다.” 먼로는 우두커니 서 있던 동료들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우선 천둥과 같은 소리를 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권리를 위해서 크게 외쳐야 한다.”
1990년 먼로는 모임에 모여든 청중들을 향해 사회변화를 위해 대담하게 행동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당신은 자신을 위해서 무엇이 문제라는 것을 이야기할 줄 모른다. 나는 천둥소리와 같은 여러분의 외침을 듣기를 원한다.”
결국 혁명적 독립선언이 만장일치로 통과 될 것이었다. 그것이 목표하는 해결방안은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주요한 이슈와 관계된 것이다. 모든 정신지체인시설은 문을 닫아야 한다. 그들에게 휴가가 주어져야 하고, 보호작업장이 제공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권리-심지어 시설이나 그룹홈에서 성행위를 할 권리까지-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정신박약’이라는 말 자체가 그들을 어린아이와 같이 보이게 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주정부의 ‘정신박약자부’와 같은 이름은 바꾸어야 한다. 만약 불러야만 한다면 정신지체를 가진 사람(People with retardation)으로 불러야 한다. 사람을 먼저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권리주장(self-advocacy)은 정신지체인의 새로운 권리운동이다. 정신지체인은 어린아이로 취급되고, 수준낮은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취급되어 왔다. 이렇게 지금까지 낮게 평가되어 왔던 것에 반대하는, 자기 결정권의 외침이다. 자기권리주장은 모든 장애 권리운동의 한 부분이며,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슈에 초점을 맞추는 구분된 변형이다. (많은 자기권리주장은 뇌성마비와 자폐, 그리고 머리손상 등을 포함하는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포함했다)
캘리포니아의 자기권리주창자들은 주의회 의사당에서 주정부가 사회서비스 프로그램을 줄인 것에 대해 항의하였다. 덴버의 보호작업장에서는 정신지체인들이 파업을 하면서 그곳의 비장애 고용인들과 동등한 임금을 지급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자기권리주창자들은 선거인 등록과 교육프로그램을 시작한 워싱턴시의 케네디협회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코네티컷에서 먼로는 자기권리주창자들과 함께 시설에서 무조건 그룹홈으로 보내지는 것을 거부하고 그 시설에서 그냥 살기를 원하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1990년의 한 비공식 조사에 의하면 피플퍼스트 혹은 그와 비슷한 성격의 협회 지부가 미국에 3백74개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곳에 1만여 명이 넘는 자기권리주창자들이 있는데, 이것은 1985년의 55개, 1987년의 2백여 개에 비해서 크게 증가된 수이다.
이러한 운동의 영향력은 이들의 수의 증가나 새로운 현상과는 모순된다. 가장 중요한 점으로 전문가들과 부모집단들은 정신지체인에게 영향을 주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바꾸거나 결정할 때 정신지체인들의 의견도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때로 이것은 실제로 권력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명목적인 것(tokenism)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1년에 정신지체인협회(ARC)에서 그들에 대한 공식적인 호칭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정신박약(retarded)이라는 용어 사용중지를 요구하는 자기권리주창자들의 의견을 반영시키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이것은 단지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옹호하는 전문가나 부모들 집단의 이름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름을 변경하는 것은 자기권리주장운동의 첫 번째 요구였으며, 그ARC의 활동은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위한 새로운 관심을 보여주었다.
가장 참신한 의견은 장애우 당사자에게서 나온다
자기권리주장은 정신지체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문가들에 대한 두 번째 반란의 물결이다. 첫 번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다음 해에 부모들의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부모모임은 자신들의 정신지체자녀를 위한 더 많은 사회적 서비스 프로그램을 얻어내기 위해 생겨났다.
대개 부모들이 너무나 죄책감에 싸여 있어 자신들의 아이를 위해 적절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의 사고방식에 항의하기 위해서 형성된 것이다. 정신지체인협회를 포함하는 이 모임은 1950년에 ‘정신지체아의 친구와 부모 전국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으며, 전문가들이 부모들의 의견에 관여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권익옹호를 위해서 서로 협력하도록 유도하였다.
이제 자기권리주장은 이 모임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 연합의 설립자 중 한 명인 구나다이브웨이드라는 부모운동에 대해서 이것이 점차 소진되고 있으며,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발전시키는 것에 대한 가장 참신한 의견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로부터 나오고 있다. 코네티컷의 진 보웬은 자기권리주창자들이 심지어 부모들보다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서 투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에 대해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끊임없이 들어왔다”고 그녀는 말한다.
자기권리주장운동을 지지하는 것은 중증정신지체인이라 할 지라도 정신지체를 가진 사람이 알맞은 선택을 하도록 교육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우리는 자유주의 국가이며, 자신을 위해서 이야기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이 총회에서 먼로가 설명한 방식이다. “당신은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당신 자신을 위해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먼로가 지적하였듯이, 만약 자기 권리주장이 전문가들과 정신지체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반란이라면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에 대한 의존을 지속하는 것이다. 정신지체인은 다른 사람들보다 학습에 있어 더 큰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신지체를 가진 사람들이 때로는 선택을 하고 그들 자신의 활동을 판단하는데 도움을 필요로 한다. 자기권리주창자들의 지부는 거의 언제나 일종의 활동지지자들에게 의지하는데, 이들은 복잡한 사회 정보를 분류하는데 도움을 주는 비장애우 조언자그룹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자기권리주창자들에게 의사결정권을 남겨놓는다. 일반적으로 이 지부의 특징들은 조언자그룹에 의해서 결정된다. 몇 지부들은 사회통합에 우선권을 두고, 다른 지부는 정치적인 행동주의에 크게 지배되는 의제를 강요한다.
코네티컷의 자기권리주장이 혁명과 같은 것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도전하는 바로 그 제도에 의해 격려받고 있었다. 코네티컷의 피플 퍼스트 총회에서 먼로에 이어 발언한 사람은 주정부의 정신지체인부서의 행정관인 토니 리차드슨이었다. “당신들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포함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한다.”
그녀는 마틴 루터 킹의 자기권리주장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당신들 모두는 새로운 시대에 책임이 있으며, 그러한 당신들을 위해 나는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행사 마지막에 리차드슨은 자기권리주장이 그녀에게 더 많은 골칫거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그녀가 상대하는 업무영역의 사람들이 대우받던 방식에 대한 불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도록 장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역시 잠재적인 이점이 있었다. 리차드슨의 업무영역은 코네티컷에서 예산삭감과 직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권리주창자들은 그룹홈의 신설을 위해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데 정치적으로 효과적인 동맹자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리차드슨이 자기권리주장운동의 가장 막강한 지원자가 될 수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이것이 올바른 방향이었기 때문이었다.
리차드슨은 대학교 1학년인 1969년부터 먼로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사우스베리의 트레이닝 스쿨에서 사람들이 밥을 먹고 씻고 잠자리를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후에 그녀는 그 시설의 교사가 되었다가 교육 서비스의 관리자가 되었다. “지금 자기권리 주장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20년 전부터 나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고 있으며, 우리 직원들은 그들의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함께 하는 동료이고 친구이다”라고 리차드슨은 말했다.
의외와 협력자
리차드슨은 자신이 자기권리주창자들을 강요하거나 조직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협회 주위에서 그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주에서 운영하는 그룹홈 입소를 장려하였으며, 시설 생활자들이 총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도왔고, 심지어 주에서 운영중인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도록 도왔다.
자기권리주창자들 중 대다수가 휠체어 장애우였기 때문에 이것은 실제 커다란 도움이 아닐 수 없었다. 남서부 코네티컷의 작은 도시 미들버리에 있는 컨벤션호텔에 갈 방법이 없어 사람들은 고민중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차드슨은 5천불이라는 상당한 액수를 그 모임을 위해서 기부했다.(또 다른 1만불은 다른 방식으로 모금되었다.)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능력의 범위는 굉장히 광범위하다. 이것은 코네티컷의 자기권리주창자들 사이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비록 그들 중 혼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그룹홈에 살고 있거나 혹은 부모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일부는 이 곳에서의 총회 이후에 자신들이 많은 시간을 보낸 집에서 시설로 다시 돌아갔다.
미국정신지체인협회에 의하면 경증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약 7백50만 명의 전체 정신지체장애우 중 89% 정도가 된다고 추정된다(다른 전문가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정도의 정신지체장애우의 수를 1백70만 명 정도로 이야기하고 있다.)
코네티컷의 자기권리주창자들 중 일부는 글을 읽고 쓸수 있으나 다른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이해시키는 데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상당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부분 장애우만으로 고립시키고 있었다.
자기권리주창자들의 총회는 하나의 정형을 만들어 냈다. 여기에는 진지함이 있었고, 남자들은 코트와 넥타이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여자들은 니트 스커트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먼로는 이 총회를 위해서 몇 개월 동안 여러 자기권리 주창자, 조언자들과 함께 준비 하였다.
총회에서 먼로가 발언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단상을 열어놓았을 때가 가장 절정의 순간이었다. 2시간 동안, 마이크는 여러 사람들 손에 옮겨졌다. 발언을 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전에 한 번도 군중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모두들 조마조마해 했지만, 그것은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행위였다. 한 사람은 너무나 간절한 떨리는 목소리와 심한 사투리로 발언을 해나갔다. 군중들은 사실 그의 말을 한 마미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진심어린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그들은 결혼이나 자신의 가족, 친구, 연인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며,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는 직업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또 자신들의 일터에서 경험하고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이지 않고, 열등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자신들의 다양한 고통을 나누었다. 최근에 어머니의 집을 떠나 자신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게 된 45살의 헤리트 스누코우스키는 “우리는 인간이지 동물이 아니다”라며 소리치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자기권리주장은 언제나 ‘어떻게 우리가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다룰까’ 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생각을 중지시켰다. 얼마나 많은 보호를 필요로 할까? 이들에게 보호가 필수적인 것이고 좋은 것인가?
“No라고 소리쳐라”
정신지체인을 위한 시설은 정신지체인과 같은 사회적 취약자들을 돕기 위해 선각자들에 의해 처음 설립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시설들은 모두 시설 생활자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으며, 심지어 이들을 지역사회에서 고립시키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에 동의한 전문가들에 의해서 속속 문을 닫았다. 오늘날 이러한 시설들은 어떻게 그들을 돌볼 것인가 하는 방법을 연구하게 하는 것을 가로막기도 한다. 보다 궁극적으로 사회에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들고 무작정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는 온정주의적인 반응으로 보여지게 되었다.
동시에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지적인 수준이 크게 떨어지고, 어떻게 그들이 배우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영향력을 끼쳤다. 코네티컷의 자기권리주창자들은 성인이었지만, 정신지체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완전하지 못한 어른들로 비추어졌다. 이러한 것들은 이 총회에서 개최한 2회의 워크숍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 첫 번째 워크숍의 주제는 “올바른 방식으로 연애하기 : 어떻게 연애하는가?”라는 것이었다.
뉴헤븐스 피플 퍼스트 지부의 한 여성지원자는 어느 파티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서 역할극을 이끌었다. “당신이 이상형의 상대를 파티에서 만났다. 그러면 어떻게 그 사람에게 당신이 갖고 있는 관심을 전달하겠는가?” 그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상대방의 이름을 알게 되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다가가는 방식을 배우게 되었다.
한편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지역 강간위기센터의 관리자가 “NO라고 말하기 : 우리는 성적인 폭력을 원하지 않는다” 라는 제목의 강습회를 진행했다. 이것 역시 역할극으로 진행됐다.
이러한 두 개의 주제는 세미나를 통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첫 번째의 연애에 관한 세미나는 정신지체인들도 나이에 걸맞게 연애하고, 또 성행위를 즐기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강습회는 진행자가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가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하였다. 참석한 정신지체인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약점이나 정신지체인이라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주위에서 그들을 아이로 만들고 있어, 강간등에 대한 방어를 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강간의 희생자가 되기가 더 쉽다. 그들의 몇몇 약점을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강간위기센터의 워크숍에서 이 점은 명확해졌다. 한 여성은 불과 몇 주 전에 자신이 있던 시설에서 강간을 당하였다고 고백 하기도 했다. 자신이 혼자 있을 때 그 가해 남성이 그룹홈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며 들어왔다는 것이다.
강간 방어를 위한 세미나에서는 30여 명의 성인여성들이 참석했다. 그들 중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악몽과 같은 그 경험을 하루 빨리 떨쳐버리기 원했으며, 자신을 보호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기를 간절하게 원했다. 그러나 세미나의 주최측에서는 이러한 끔찍한 경험을 단지 개인적인 비극으로만 한정하지 않았다. 진행자는 역겹게 웃고 있는 악마 같은 가해자가 폭력적으로 접근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위험을 어떻게 감지하고, 그 즉시 외칠 수 있도록 하고, 그리고 나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설명했다. “NO라고 이야기하라. 도망쳐라. 그리고 책임있는 어른에게 이야기하라.”
궁극적으로 자기권리주창자들은 그들 주위의 다른 성인들처럼 살아가면서 위험을 파악하고 이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감과 존중감을 갖게 되기를 원하는것 뿐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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