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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고개 다시 넘기

[서기자의 변죽때리는 소리]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본문

   
 
 
며칠 전 점심 먹고 잠시 들른 아파트단지 놀이터. 꼬맹이들 몇몇이 개구지게 뛰어논다. 놀이터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득하게 바라보는데, 문득 낯선 장면 하나가 클로즈업 되어 들어온다. 녹색 바닥! 누런 흙이 있어야 할 그 자리를 폭신한 네모 타일들이 대신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아파트 놀이터를 포함해 최근에 본 거의 모든 놀이터가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흙장난 하는 꼬마들을 본 기억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니. 옆에 있던 후배에게 건넨 말.

"저 아이들은 두꺼비 집 놀이를 알까?" "글쎄, 몇십년 뒤엔 그 노래마저 없어지는 거 아닐까요?"
돌아오는 길에 노래 하나가 입안을 맴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몇주 전 술 몇잔 걸치고 들른 노래방. 누군가 장윤정의 '어머나'를 불렀다. 흥겨웠다. 갑자기 다른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 던진 말. "니들이 트로트의 참맛을 알아?"
그리고 노래를 시작했다.

'미~아~리~ 눈물고개~' 푸훗. 젊은 놈이 '단장의 미아리고개'라니.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 그런데 이 기분은 뭐냐.
가슴속 저 밑바닥에서부터 뭔가 올라오는 듯한 이 느낌은.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고개/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뜨고 헤매일 때/당신은 철사줄로 두손 꼭꼭 묶인 채로/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끌려가신 이 고개 한많은 미아리고개 (반야월 작사/이재호 작곡/이해연 노래)

얼마 뒤 안 사실. 노래 제목의 󰡐단장󰡑은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의 단장(斷腸)이란다. 그런데 왜 난 서커스단 단장쯤으로 알고 있었을까?

소규모아카시아밴드. 김민홍이 기타 치고 송은지가 노래하는 듀오다. 2004년 말 발표한 데뷔앨범의 타이틀곡 'So Goodbye'가 뒤늦게 조인성이 나오는 빵집 광고에 쓰이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눈감고 들으면 가슴이 한켠이 푸근한 듯 먹먹한 듯….

   
 
이들이 2집을 냈다. 이전 앨범의 '골방' 느낌을 떠올리며 이어폰을 꽂았다. 쿵~짝 쿵~짝 쿵짜짝 쿵~짝. 통기타로 튕기는 '뽕짝' 리듬이라니. 당황스러웠다. 이 리듬은 앨범의 거의 모든 곡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련된 느낌. 듣다 보니 김민홍의 간결한 통기타와 송은지의 담백한 목소리가 주를 이루는 소박한 편곡이 뽕짝 리듬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노랫말은 더 독특하다.

두껍아 내게 새집을 지어다 줄래/두껍아 그럼 내 손목을 가져가도 돼 (두꺼비)
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로/또 돌아보고/미아리 눈물고개 넘어가면서/피눈물 흐르도록 돌아보누나 (또 돌아보고)

어린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이 부르시던 노래. 그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익숙한 듯 세련된 듯, 구전동요와 트로트의 재발견.

"독일 음악잡지 기자가 묻더군요. '한국엔 서양음악을 닮으려는 음악들로 넘쳐난다. 한국적인 음악이란 뭔가?' 이전부터 해오던 고민이 더욱 깊어졌죠. 결론은 우리가, 그리고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가 듣고 불러온 노래다, 싶더라고요." (김민홍)

"공연 때 꼬맹이들이 사인해달라고 졸랐어요. 머리가 희끗한 아저씨께서 '너무 좋았다'고도 말씀해주셨고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들 좋아해주는 것 같아 행복해요. 그게 우리 음악의 가장 큰 장점 같아요." (송은지)

둘의 말을 뒤로 하고 나오며, TV에 지겹도록 얼굴을 내미는 가수들의 전유물처럼 돼버린 '대중성'이란 말의 참뜻을 곱씹어본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두꺼비-

작성자서정민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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