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삶의 무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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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작년 이맘때 눈 속에 파묻힌 술 취한 말을 깨우던 소년을 기억하시는지요? 만일 당신이 후자를 생각할 수 있다면 당연히 바흐만 고바디 감독을 떠올리실 것입니다. 이란과 이라크 국경지역에 일정한 국가 형태도 없이 난민으로 머무르는 쿠르드 족들의 겨울을 우리는 상상해볼 수조차 없습니다.
그들에게 겨울은 크리스마스와는 거리가 먼 동토의 계절일 뿐입니다. 더구나 눈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지뢰밭을 걷다가 성한 다리마저 날려버려야 할 쿠르드 소년들의 지어진 운명을 우리는 결코 생각해 보지 못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비웃는 쿠르드족 소년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쿠르드 족은 4천년 전 러시아에서 이주한 민족입니다. 지난 4천년간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 본적이 없으면서도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와 종교를 지켜가는 독특한 민족이지요. 이란, 이라크, 터키, 아르메니아의 국경지역에 거주하면서 분리운동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1922년 이래 매년 전쟁이 일어나며 죽음을 숙명처럼 받아들이지만 국가건설이라는 꿈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인구 2천만의 소수 민족입니다.
이라크 국경지역에서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텔레비전 수신안테나를 만들어 주는 소년 위성(위성 접시 안테나를 만지는 사람이라는 별명입니다)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무표정한 소녀 아그린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아그린을 위해 위성은 물도 길러다 주고 아그린의 아기를 돌봐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그린은 이라크 군인들의 성폭행으로 인해 잉태되고 탄생한 아기 리가를 언제나 죽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있는 불운한 소녀입니다. 오빠 헹고는 지뢰에 의해 양쪽 팔이 날아간 상태이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소년입니다. 물론 부모님은 후세인의 침략으로 인해 돌아가셨습니다. 자살과 유아살인 충동에 시달리는 아그린은 영화 내내 웃음 하나 없이 살아갑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리가는 언제나 거북이를 물에 놓아주려고 애쓰고 지뢰밭에 들어간 리가를 구하려다 위성마저 한쪽 다리를 잘라내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미군이 진주하는 이라크 국경에서 아그린이 연못에 뛰어드는 것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영화 내내 마음이 무겁고 천진한 아이들의 장난 속에도 웃기가 힘든 영화입니다.
마치 얼마 전에 개봉한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와 똑같은 설정입니다. 두 영화 모두 어른들의 무책임한 일상이 나타나고 아이들은 무표정하게 본능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영화가 끝난 뒤 과연 사람들은 거북이가 날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을까요? 거북이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아그린의 아기 리가는 앞을 보지 못한 덕분에 거북이가 날 수 있다는 상상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보지 못한다는 것은 참혹한 불행이지만 인간에게는 또 다른 상상력의 창조성을 길러준다고 합니다.
현실이 비참할수록 인간이 꿈꾸는 상상의 세계는 더욱 커져가는 법입니다. 만일 거북이가 날 수 있다면 전쟁이 끝날 것이고 어쩌면 리가는 앞을 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감독과 아이들의 염원이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수입으로 리가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지금은 앞을 볼 수 있는 잘생긴 어린이가 되었습니다. 양팔이 없는 헹고는 살아갈 용기를 얻었고 아그린은 쿠르드 방송국의 진행자가 되었으며 위성은 영화계에 투신하게 되었습니다. 고바디 감독의 소망대로 희망이 없던 거북이들 같은 아이들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지뢰는 위험한 물건이지만 또한 생계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한 번 다리나 팔을 잃어버린 아이들만이 두려움 없이 지뢰제거를 할 수 있고 이 지뢰를 시장에 내다팔며 아이들은 먹을 것을 구합니다.
쿠르드 애들은 모두 미래를 읽을 수 있다는 헹고의 암시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전쟁 자체에 대한 쿠르드 아이들의 체념적 운명입니다. 전쟁 속에 태어났고 일상을 지뢰와 폭음속에 살아가는 그들이 가장 바라는 미래는 전쟁없는 현실일 뿐입니다. 몇 년 뒤에 다시 전쟁은 일어날 것이며 그들의 현실은 여전히 힘들고 어둡고 아플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예언이 틀리기를 기원하며 살아갑니다.
쿠르드족은 천성적으로 두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언제나 죽음과 직면한 사람들이라 조그만 여유와 공간이 있으면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을 춘다고 합니다. 음악과 유머는 그들에게 있어 빛과 소금에 해당됩니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된지는 오래입니다.
또다시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따뜻할 것이지만 눈이 많을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쿠르드족들의 전쟁에 비견할만한 절대 빈곤이 우리 주변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이 영화의 소년들처럼 장애를 지닌 어려운 이웃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완벽한 이해 없이도 온전하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새해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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