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불패에 대한 변증법적 보고서
본문
소위 신파(新派)에 대하여
유난히 눈이 많고 바람이 드센 겨울입니다. 따뜻한 호빵과 눈사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이지요.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가을날만의 특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은 흔하디 흔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식상하다고요? 그렇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맥이 풀린 카드게임과 같지요. 누군가가 이길 것이고 누군가가 분명히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카드게임과 사랑이 다른 것은 함께 이기거나 질 수도 있는 동반(同伴)의 역설(逆說)이 자리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 영화의 특성을 한 가지만 들라면 ‘신파불패’ 혹은 "멜로불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불변의 원리는 동서를 막론하고 영화가 만들어진 이래 지속된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닥터지바고’, ‘카사블랑카’, ‘고스트’, ‘러브레터’ 등의 명작들도 시대적 배경이 갖는 시각적 요소를 제외한다면 두 남녀의 지순한 사랑만이 남게 됩니다. 역시 동서양판 신파극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지요.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 나그네’, ‘국화꽃 향기’ 등으로 이어지는 영화들은 모두 신파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신파를 사전적으로는 ‘현대 세상풍속과 인정 비화를 소재로 하는 통속적인 이야기’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참고로 신파는 몇 가지 원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순결과 순교적 자세입니다. 착한 주인공은 언제나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면서 죽습니다. 주인공이 살아남는 영화는 신파가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둘째는 권선징악입니다.
영화 속에 부귀영화를 누리는 악인들은 영화의 후반부에 예외 없이 벌을 받습니다. 아니면 죄를 뉘우치고 착한 사람으로 뜬 구름 잡듯이 변하게 됩니다.
여기서 ‘왜(why)’ 라는 이성적 판단이 들어가면 당신은 더 이상 신파를 볼 자격이 없습니다. 세 번째는 극단적 상황이 연출됩니다. 가령, 주인공은 늘 불치의 병 혹은 희귀한 병에 걸립니다. 만일 아프지 않다면 두 남녀의 사랑은 이몽룡과 춘향이가 저리가라 할 정도로 계급을 두 계단 이상 건너뛰는 그 시대의 파격적인 사랑입니다. 주변으로부터 주인공은 늘 냉대를 받고 시련을 건너 결국 두 사람은 합쳐지거나 죽습니다.
오늘 소개할 최신 두 편의 신파는 ‘내 머리속의 지우개(이하 지우개)’와 ‘너는 내 운명(이하 운명)’입니다. 각기 2004년, 2005년도 한국 멜로영화의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입니다.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여자 주인공이 ‘알츠하이머 치매’와 ‘에이즈’라는 희귀한 불치병에 걸린다는 것이고 남자 주인공은 생애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설혹 어떤 독자들은 ‘너는 내 운명’은 다르다고 읍소할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이 영화의 도입부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자막이 처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시각은 다릅니다. 두 영화 모두 불치의 병을 앓아가는 당사자 분과 가족들에 대한 인권과는 동떨어진 연출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두 영화는 모두 신파극입니다. 극단적인 설정을 위한 위장이었을 뿐입니다. 그저 오늘은 신파에 몰입하시기를 거듭 부탁드립니다. 그렇다면 왜 시대와 동서를 막론하고 신파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형성할까요? 단순무지하면서도 빛바랜 의문입니다.
사랑은 지독한 혼란, 그러나 지극히 정상적인
우선 사랑이 편안하고 포근한 것이라고 느끼시는 분이라면 다음과 같은 울리히 벡 부부가 말한 사랑의 정의에 대해 이해하시기가 어려우실 겁니다.
사랑은 점점 황량해져 가는데, 사람들은 사랑이 깨졌을 때조차도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다.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커다란 희망을 사랑에 걸고 있다. 사랑이야말로 온갖 개인적 배신이 난무하는 불쾌한 현실에 맞설 수 있는 버팀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온갖 기대와 좌절에 짓눌려 버린 이 사랑이야말로 전통이 해체된 이 시대의 새로운 삶의 중심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지독한 혼란입니다. 그러나 매우 정상적인 혼란일 뿐입니다. 만일 이 사랑에 이성이 개입한다면 이미 그것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닌 사랑의 관념으로 변질되어 버립니다. 사랑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그 고통이 큰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압니다. ‘지우개’의 정우성과 ‘운명’의 전도연이 처음에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다시 사랑을 찾게 되는 것은 매우 비이성적입니다. 쉽게 말해 제 정신이 아닙니다. 스스로 허물어질 것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고 그 사랑 자체는 바로 중독을 의미합니다. 신파는 이렇듯 정확하게 인간의 중독현상에 호소합니다.
눈물, 콧물 나는 최류성 멘트가 그것이지요. 의학적으로 중독은 엔돌핀, 단백질 합성과 연관되며 이는 기억으로 이어집니다. 엔돌핀 자체가 중독성이 있는 체내 마약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중독성과 기억 그리고 진화
만일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랑 그 자체는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합니다. ‘지우개’의 손예진이 이미 영화 속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을 견딜 수 없다고 독백합니다.
‘운명’의 전도연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되느니 차라리 잊히는 존재가 되기를 갈망합니다. 모두 기억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분명히 기억이 사랑보다 더 아프다는 증거들입니다. 그리고 이 기억은 인간 진화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기억에 의해 인간은 성숙되고 파괴되며 진화되어 갑니다.
세대를 건너뛰어 사랑의 감정이 전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기억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 사람의 향기, 목소리, 웃는 얼굴, 독특한 버릇 등 모든 것을 기억하십시오. 신파가 오랫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 마음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여전히 기억과 진화의 반복에 지나지 않음을 받아들이십시오.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는다는 바보 같은 다짐도 하지마시고 사랑 때문에 더 이상 편안해 하지도 마십시오. 어차피 지극히 정상적인 혼란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이 진화해 가기를 기다리는 현명함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신파불패! 신파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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