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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을 가장한 필연 속에 우리는 살아갑니다

[이영문의 영화읽기] "신과 함께 가라(Vaya con 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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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깊게 놓여 있습니다. 그칠 줄 모르는 빗줄기를 보며 자신의 잃어버린 집을 쳐다보는 수재민들의 한숨이 느껴집니다. 정녕 신은 존재하는 것인지요? 저는 특정 종교에 대한 신념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무신론자는 아닌 유신론자입니다.

절대적인 어떤 힘에 인간은 종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말의 유희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오늘은 3년간의 제 개인적 고민을 가다듬고 새로운 인생의 결정을 하게 만든 영화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신과 함께 가라(Vaya con Dios)". 2002년 독일에서 제작되고 이듬해 한국에서 하루만 개봉한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왜 하루만 개봉했냐구요? 다음날이 바로 "매트릭스 2편" 개봉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로 잠시 들어가 보겠습니다. 바티칸으로부터 200여년 전 파문당한 칸토리안 교단은 유럽에 단 2개만의 수도원이 유지되는 소수 교단입니다. 주에 대한 찬양을 생명처럼 여기고 수도생활의 대부분을 침묵수행과 찬양으로만 보내는 생활원칙을 고수합니다.

수도원 재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갑작스런 원장의 사망으로 세 명의 수도사는 쫓겨나서 이탈리아에 단 하나 남은 칸토리안을 찾아갑니다. 수중에 돈은 물론 없지요. 독일에서 이탈리아까지 걸어서 갈 예정입니다. 젊은 시절 좀 놀아본 벤노, 시골 농부 출신의 타실로, 아기 때부터 수도원에서 성장하고 속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아르보, 이 세 명의 수도사는 교단의 보물인 규범집을 챙겨들고 먼 길을 떠납니다.

여행 도중 여기자 키아라를 만나게 되고 천신만고 끝에 이탈리아에 도착하게 되는 험난한 여정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찬양은 점차 힙합 뮤직으로 바뀌고 유혹의 절정에서 그들은 고민합니다. 자신의 선택을 한 번도 해 본적 없던 아르보는 키아라에게 난생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고, 신학대학 출신의 벤노는 학구적 욕심과 명예욕에 빠져듭니다. 중년의 타실로는 식욕과 가족에 대한 사랑에 머물게 됩니다.

이들의 여러 유혹은 결국 "주의 손길 받아들이는 자"라는 찬양에 의해 희석되지만 아르보는 자신의 마음에 깊게 귀 기울이고 사랑을 찾아 떠납니다. 조용히 떠나가는 아르보를 벤노와 타실로는 소리죽여 울며 찬양으로 배웅합니다. 진정한 순수는 유연성과 탄력성을 가지고 사람을 맞이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영화를 DVD로 보게 된 것이 2004년 봄이었고 그 이후 다섯 번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신론자이기는 하나 기독교 신앙이 없는 저에게 이 영화가 반복적으로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반복 강박(사람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거나 동일한 상황에서 반복하는 생각, 감정, 행동 양상을 말합니다)처럼 교회에서의 찬양 장면에 늘 눈물이 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될 때, 가령 사랑해서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을 결정할 때나, 인생의 방향을 크게 유턴할 때, 무엇이 이런 결정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합니다. 그리고 잠시 머물다 답을 냅니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네 멋대로 해라."
신과 함께 간다는 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의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르보가 혼자 떠나는 장면에서 찬양은 반복되고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결정을 존중하는 용기를 배웠습니다.

어떤 성스러운 영화보다 이 영화가 더 성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경건함을 가장한 인간의 숙연함을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과 경건함을 가장한 숙연함은 서로의 상반된 면을 본다는 점에서 동일한 패러다임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이 영화를 보면서 함께 울고 공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선과 악, 기쁨과 슬픔, 얻음과 버림은 빛과 어둠처럼 늘 함께 존재합니다.

살아가면서 얻어지는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놓아버린다는 것은 무척 힘이 듭니다. 부와 명예, 학문욕과 영향력, 그리고 그 길을 함께 했던 사람들을 남겨두고 새로운 길을 떠난 다는 것은 분명 외롭고 힘든 여정일 것입니다. 수도원을 떠나는 아르보의 용기와 진실함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수도원을 떠나서도 그는 신과 함께 갈 것이라는 믿음이지요.

우연을 가장한 필연 속에 우리는 살아갑니다. 만난 사람들이 그러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그러합니다. 제가 <함께 걸음>에 영화 이야기를 쓰는 것도 우연이었고 그 우연에 의해 얻어진 필연적인 힘이 그러합니다. 앞으로는 더 자유롭게 영화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한참 우시기를 권합니다. 소나기 뒤의 하늘은 더 푸르고 맑기 때문입니다. 이제 장마는 끝나가고 있습니다. 건강한 여름휴가 보내시기 바랍니다.   

작성자이영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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