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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 잡초

한 장애 여인 이야기

본문

“앵벌이가 뭐냐구요? 그것도 모르세요? 우리 부부가 하고 있는 일이 앵벌이잖아요. 우리 부부처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납작 엎드린 채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동정을 구하는 걸 앵벌이라고 불러요. 말 그대로 앵앵거리면서 구걸을 한다는 뜻이죠. 우리처럼 구걸로 먹고 사는 장애우 중엔 앵벌이 말고 꼬지와 기바리도 있죠. 꼬지는 꼿꼿이 앉아 구걸하는 장애우, 기바리는 시장 바닥에 엎드리거나 혹은 앉아서 리어커를 밀며 고무장갑과 수세미를 파는 장애우를 말하는 거예요. 이제 아시겠어요? 형사 아저씨?”

여자가 고함치듯 목소리를 높여 설명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앵벌이가 뭘 말하는지 몰라서 여자에게 물었던 건 아니었다. 형사 생활 십 년 차인 내가 앵벌이라는 말이 구걸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비속어라는 것을 모릴 리 없었다.

더욱이 나는 유괴사건 전담 형사로서 불과 한 달여 전에도 멀쩡한 아이들 네 명을 유괴해서 집에 가둔 채 앵벌이 일을 시켰던 미성년자 착취범을 붙잡아 구속시킨 적이 있던 터였다. 그런 내가 앵벌이가 뭘 말하는지 모르다니, 그건 말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여자에게 앵벌이가 뭐냐고 물었던 건 순전히 여자가 정상적인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그 사실을 알고 싶어서였다.

조금 전 조사실에 들어선 여자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이 여자를 상대로 과연 참고인 조사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라는 걱정부터 앞서 해야 했다. 그만큼 여자의 행색이 남루했던 것이다.

여자는 바짝 야윈 몸으로 두 다리가 모두 불편한지 양 손으로 목발을 짚고 조사실에 들어섰는데, 신상명세서에는 서른다섯 살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삶에 지친 표정이 얼굴에 역력히 드리워져 있어 한 눈에 보기에도 마흔은 족히 넘어 보였다.

또한 거리에서 앵벌이로 살아온 이력을 속일 수는 없어서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가 새까맣게 타서 흡사 검둥이에 가까웠다. 입고 있는 싸구려 티가 나는 꽃무늬 원피스는 한 마디로 꼬질꼬질했으며, 거기다가 여자 몸에서는 악취까지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여자의 두 눈만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는데 여자의 두 눈을 제외하고 행색만을 놓고 본다면 내가 아닌 누구라도 여자가 혹 지능이 약간 모자란 것은 아닐까 라고 충분히 의심할만 했다.

“김덕수 씨가 남편 되시죠?”

여자의 설명으로 일단 여자가 정상적인 사고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조사를 서두르기 위해 책상 위 노트북을 끌어당겼다. 여자 너머로 흘깃 바라본 벽시계가 어느 새 저녁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어서 마음이 조급했다. 그저께는 김덕수, 그리고 어제는 공범 박인수를 붙잡아 조서를 꾸미느라고 집에 들어가지 못해서 여자 몰골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내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가서 옷이라도 갈아입고 나와야 되겠다고 초저녁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마음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나는 여자가 오기 전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늦어도 열 시 전까지는 귀가하겠다고 통보했던 것이다. 때문에 열 시까지 집에 들어가려면 어떻게든 한 시간 내에 여자를 상대로 한 참고인 조사를 마쳐야 했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내 첫 질문부터 대답이 없었다. 나는 사정을 몰라주는 여자에게 슬며시 짜증이 났다.

“이거 왜 이러세요, 아주머니! 시간 끌면 피차 피곤하니까 빨리 묻는 말에 대답하세요. 김덕수 씨가 남편 맞죠?”

내가 재차 다그치자 여자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네 맞아요. 우리 시현 아빠 이름이 김덕수지요.······”

“김덕수 씨가 유괴사건을 저지른 사실은 알고 계시죠?”

“······”

“알았어요, 몰랐어요? 남편이 이미 다 자백했으니까 시간 끌어봤자 소용없어요. 그러니 아주머니 남편이 왜 아이를 유괴했는지 아는대로 말해 보세요.”

“······ 시현 아빠는 아이를 태워다 준 죄밖에 없다고 했는데······ 인수 아저씨가 아이를 태워다 주면 십만 원을 주겠다고 해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시현 아빠는 차로 그 아이를 데려온 것뿐이라고 했어요.······”

나는 잔뜩 기대했는데 어렵게 여자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어제 김덕수의 조서를 꾸미는 과정에서 김덕수가 범행을 극구 부인하며 내뱉은 말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건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나는 하도 김덕수가 범행을 완강하게 부인하길래 김덕수의 아내인 여자를 불러 조사하면 뭔가 김덕수의 범행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나올 것 같아서 여자를 소환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 판단이 오판이었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되자 나는 정말 화가 났다. 아니 김덕수가 유괴범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유괴범이란 말인가. 거기다 분명한 증거도 있는데, 김덕수가 부인하는 것도 모자라 범행 과정을 소상히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한 여자까지 범행을 부인하다니,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김덕수 본인은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어느 모로 보나 김덕수는 유괴범임이 분명했다.

유괴 대상이 돈 많은 집 아이가 아니라 가난한 집 아이, 그것도 정신지체아라는 사실이 특이하긴 했지만, 그리고 보통 유괴범들은 아이를 납치한 후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는데 김덕수와 박인수 일당은 아이를 납치한 후 아이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는 점이 일반적인 유괴사건과는 다른 점이었지만, 멀쩡한 남의 집 아이를 강제로 차로 납치해서 데려갔다는 사실 자체는 아무리 발뺌해도 유괴사건임이 분명했던 것이다.

더구나 김덕수는 범행에 쓰인 차량을 직접 몬 당사자였다. 그런데 김덕수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니, 결국 김덕수와 앞에 앉아 있는 여자는 씨도 먹히지 않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새삼 기억을 더듬어보면 정확히 일주일 전, 처음 그 유괴사건을 접했을 때, 나는 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지다 보니 이젠 장애아까지 유괴 대상이 되는구나라고 개탄했었다. 그리고 그 개탄은 막상 어렵게 범인을 잡고 보니 범행을 저지른 박인수, 김덕수 둘 다 장애우여서 한탄으로까지 이어졌다. 장애우가 장애우를 유괴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라고 한숨을 토해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범인들 중 한쪽 팔이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박인수라는 작자는 잡히자마자 자신이 아이를 유괴했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내가 하필이면 장애아를 유괴한 이유를 박인수에게 묻자 그는 “앵벌이 일을 나갈 때 써 먹기 위해 아이를 유괴했다”고 대답했다. 이어진 그의 진술에 따르면 혼자서 구걸하는 것 보다 장애아를 한 명 달고 구걸을 나가면 사람들에게 처지가 더 비참하게 비쳐져서 혼자 앵벌이 일을 나갈 때보다 벌이가 훨씬 더 괜찮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애아가 한 명 필요했는데, 문득 예전에 구리시로 화장지 행상을 나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정신지체아가 생각나서 김덕수와 함께 그 아이를 납치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박인수가 유괴사실을 인정했는데도 박인수와 공모해 장애아를 유괴한 김덕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범행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었다. 확인해보니 김덕수의 직업도 앵벌이라서, 김덕수도 자신이 먹고 사는데 이용할 목적으로 아이를 유괴했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범행을 부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나는 나도 모르게 답답해져서 “이거 정말 미치겠는걸······”이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결국 그간의 정황을 고려해 볼 때 김덕수와 여자가 한 통속이 되어 나를 우롱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자를 향해 냅다 고함을 내질렀다.

“이거 안되겠구먼! 곱게 말로 했더니 사람 우습게 보나본데, 아줌마도 앵벌이 일을 한댔지! 그러면 아줌마도 공범일 수도 있겠구먼! 아줌마, 혹시 남편하고 짜고 애를 유괴한 거 아냐?”

순간 짧은 침묵이 흘렀다. 여자는 내 고함소리에 놀랐는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이거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했나, 내가 잠시 후회하는 사이 여자가 다시 고개를 들었고, 어느 새 여자 눈동자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내가 아차,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여자가 조금씩 입술을 씰룩거리더니 끝내 울먹이며 시작했던 것이다.

“······ 흑······ 장애우로 태어나서 험한 세상 바닥을 기며 이때껏 살아 왔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들 입에 오르내릴 큰 죄를 지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요. 장애 때문에 죄를 지을래야 지을 수가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이지요. ······ 흑······ 그런데 내가 아이를 유괴했다니······ 아무리 형사라지만 어떻게 내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하실 수가 있는 거죠? ······”

그러면서 여자는 내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더 가관인 것은 여자가 눈물바람 끝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러움에 겨웠는지 자신이 살아온 과거 이야기를 줄줄이 토해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전개였다.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게 여자를 진정시킬 수 있는 다른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나는 말 한마디 실수로, 여자를 유괴범으로 몰았다는 것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여자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모두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흑······ 경찰서에 불려 와서 내가 유괴범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듣고 보니 새삼 산다는 게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는군요. ······ 그래요.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된 거죠. 흑······ 나는 왜 세상에 태어났을까, ······ 불현듯 제 어렸을 적 일이 생각나네요. ······ 형사 아저씨처럼 나에게 심한 말을 한 사람이 또 한 사람 있었지요. 바로 아버지였어요. 칠남매 중에 여섯 번째로 태어난 내가 갓난아기 때 소아마비 장애를 가지게 되자, 아버지는 병신 자식이라고 맨날 구박만 하셨지요. ······ 동네 창피하다고, 병신 자식은 필요 없으니까 나가 죽으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시는 통에 아버지가 술 먹고 들어오는 날이면 저는 엄마 등에 업혀 뒷산으로 피신해야 했지요. ······ 아버지는 구박뿐만 아니라 병신 자식은 학교에도 보낼 필요가 없다며, 저를 학교에 보내지도 않았어요. 그 시절 멍하니 툇마루에 앉아 가방 메고 학교 가는 또래 아이들 모습을 바라볼라치면 어린 마음에도 저절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었지요. ······ 제 나이 열 살 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엄마 등에 업혀 재활원에 들어가야 했어요. 나를 재활원에 데려다 주면서 엄마는 내가 떨어지기 싫어 울자 내 손을 꼭 잡고 한 달 후에는 꼭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을 했지요. 그 약속을 믿고 한 달이 지난 후 저는 매일매일 재활원 옥상에 올라가 마주보이는 대문을 쳐다보며 이제나 저제나 엄마가 오길 기다렸었지요. 그 여름 땡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그리고 소나기가 퍼붓는 날에도, 전 옥상을 떠나지 않았어요. ······ 하지만 결국 엄마는 오지 않았지요. 나중에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며 보채는 내 모습을 딱하게 여긴 재활원 원장님이 집에 사람을 보냈어요. 그렇지만 집 주소에는 엉뚱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소식을 원장님이 내게 전해 주었을 때 나는 내가 아버지 뿐 아니라 엄마한테도 버림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죠. ······ 그 때 열 살 이후로 엄마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해서 우연히 길에서 엄마와 마주치다 해도 아마 못 알아볼 것 같아요. ······”

여자는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고 나서 다시 독백을 이어갔다. 나는 여자가 도대체 뭘 바라고 가슴 속 이야기를 내게 털어 놓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그렇게 부모한테 버려져서 재활원에서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팔년을 살았지요. 학교는 겨우 초등학교 과정만 마칠 수 있었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재활원에 있으면서 물리치료를 받은 덕에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세월이 흘러 내 나이 열아홉 살, 저는 시설을 나와 무작정 서울로 왔지요. ······ 막상 서울에 왔지만 나같이 장애를 가진 여자는, 더구나 가족도 없고 배움도 짧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지요.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몸이라도 팔았겠지만······ 장애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지요. 그렇다고 그 때부터 바로 앵벌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내가 앵벌이로 나선 것은 훨씬 후 지금 남편인 시현 아빠를 만나고 나서부터였지요. 그 전에는······ 여러 군데 공장을 전전하며 질긴 목숨을 이어가야 했지요. 전자부품 조립공장에도 있었고, 벽시계 만드는 공장에도 다니고, 열쇠공장에서도 품을 팔았어요. 나중에는 기술을 배워 자립해야겠다는 생각에 두 눈 부릅뜨고 동양자수 놓는 일까지 했지요. 그렇게 해만 뜨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살기 위해서 뼈빠지게 일만 했는데, 다니던 공장에서는 한결같이 내가 장애우고 오갈 데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월급을 터무니없게 적게 주기만 했지요. 기술이라고 배운 동양자수는 하루종일 앉아 수를 놓아 봤자 몇 푼 수중에 들어오지도 않았구요. 결국 나는 공장 다니는 것도 그만두고, 수 놓는 일도 그만둔 채 자취방에서 조금 모아논 돈을 까먹으며 하릴없이 지냈지요. ······ 그 때 내 나이 스물세살, 정말 오갈 데가 없었던 나는 누군가가 나타나 나를 지긋지긋한 자취방에서 꺼내 따뜻한 곳으로 데려다 주기만을 간절히 염원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지요. ······”

“그러니까 아주머니가 절박하셨을 때 남편인 김덕수 씨를 만났던 거군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스물세살 때부터 앵벌이 일을 시작하셨나 보죠?”

나는 이번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여자 말을 속히 끝내게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래서 여자가 잠시 뜸을 들이는 사이 때는 이 때다 싶어 바로 김덕수 얘기를 꺼냈다. 여자 입에서 김덕수를 만나게 된 얘기가 나오면, 어쩌면 김덕수가 이번 유괴 사건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정황이 여자 입에서 나올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에 김덕수 얘기를 꺼낸 것이었다. 그랬는데, 여자는 내 기대를 무시한 채 엉뚱한 이야기를 이어가기만 했다.

“······ 그런 내 바람이 헛되지 않아 길가 화단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어느 날 한 남자를 소개 받았지요. 동네 슈퍼 주인 여자가 중매를 했어요. 그 여자가 나를 붙잡고 아가씨 선 한 번 보지 않을래? 내가 아는 참한 남자가 있는데 외모에 조금 문제가 있지만 마음만은 착한 사람이야, 번듯한 직장에도 다니고 있고, 한 번 만나봐, 후회하지 않을 거야라고 제의했을 때 나는 마음이 따뜻한 남자라는 그 여자 말에 솔깃했지요. 그래서 외모에 조금 문제가 있다는 말은 귀담아 듣지 않았어요. ······ 내심 내가 기다려온 남자가 이제 나타났다는 기대감에 들떠 앞뒤 가리지 않고 덥썩 그 여자가 던져준 미끼를 문 것이지요. ······ 그랬는데 어땠는지 아세요? 며칠 후 커피숍에서 한 남자를 만났지요. 그 남자는 저처럼 외모에 장애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내막을 알고 보면 그 남자는 내 장애보다 훨씬 더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남자였지요. ······ 형사님은 혹 백반증이라는 병을 알고 계시나요? 저도 나중에 그 병 증세를 알았는데, 피부에 멜라닌 색소라는 게 없어지면서 살갗에 흰 반점이 생기는 병을 백반증이라고 부른다더군요. 그 백반증으로 이해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세를 남자가 가지고 있었던 거지요. 그 남자는 서른살 밖에 안됐다고 했는데 머리카락이 노인처럼 하얗게 샜더군요. 얼굴도 하얗다 못해 창백했고, 팔에도 곳곳에 흰반점이 있었지요. ······ 아무리 마음이 따뜻한 남자라지만, 그리고 슈퍼 주인 여자 말대로 백반증 외에는 탓할 게 없는 남자라지만, 나는 남자의 하얀 외모가 무서워서 도저히 그 남자에게 시집갈 수는 없었지요. 나는 결국 울면서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고 말았지요. ······”

“제발, 아주머니 진정하세요! 진정하시고 내 질문에만 대답하시란 말입니다! 도대체 김덕수를 만난 게 언제입니까? 그리고 언제부터 부부가 앵벌이 일을 하게 됐는지 그 이야기부터 하세요!”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내가 다급해서 여자의 말을 끊고 소리쳤지만, 그때쯤 여자는 내 고함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나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멍한 표정으로 자기만의 세계에 도취돼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심한 갈증으로 입술이 바짝바짝 탔다. 도대체 이 여자의 신세타령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형사님은 제가 여자로 보이시나요? 그렇지 않죠? ······ 말씀이 없으신걸 보니 제가 여자로 보이지 않나 보군요. ······ 하긴 그럴만도 하죠. 내가 생각해도 나는 여자가 아닌 것 같아요. 장애 때문에 두 다리를 쓰지 못하면서 더더구나 거리에서 구걸하며 세월을 보내는 나를 누가 여자라고 생각하겠어요? ······ 하지만 내게도 한때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가 있었지요. 그 남자와 정붙이며 살았던 꿈 같은 세월이 있었지요. ······ 지금은 없어졌지만 칠 년 전 수원에는 사랑마을이라는, 구걸을 해서 먹고 사는 밑바닥 장애우 이십여 명이 모여 살었던 공동체가 있었답니다. 어느 날 그곳에 사는, 예전에 동양자수를 배우는 과정에서 알게 된 같은 처지의 언니가 나를 찾아 왔지요. 그 때 나는 당장 끼니를 잇지도 못해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 지내고 있었던 처지였어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그 언니는 나를 사랑마을로 데리고 갔답니다. ······ 거기서 만난 남자가 바로 그 남자였지요. 서른두 살 먹은, 나처럼 소아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그 남자는 비록 먹고 살기 위해 거리에 나가 구걸을 하긴 했지만 무척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내였지요. 그리고 너무나 불쌍한 사내이기도 했지요. ······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그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인 것은 무엇보다 그 남자가 너무 불쌍해서였던 것 같아요. ······ 그 남자는 장애에 더해 심한 폐결핵을 앓고 있었지요. 세수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 사랑을 할 때 내 몸 위에 올라타서도, 시도 때도 없이 기침을 하며 빨간 피를 토해내곤 했지요. 그렇게 심하게 병을 앓고 있었는데 누구도 그 남자를 돌봐주지 않았지요. 그 남자도 나와 마찬가지로 생고아여서 가족이 없긴 매한가지였기 때문에 세상에서 그 남자를 돌봐줄 유일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지요. ······ 남자 벌이가 시원치 않아 끼니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지만 그래도 그 남자와 살 때가 제일 행복했지요. 나만 의지하고 한시도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남자는 흡사 내 몸에서 나온 아기 같았으니까요. 그게 모성애였는지 아니면 사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남자와 살았던 이 년여 동안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는 재미를 느꼈지요. 그랬는데······ 같이 산 지 이 년을 못 넘기고 그 남자는 폐결핵이 악화돼서 결국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지요. ······ 그 남자가 내 품에 안겨 눈을 감았던 날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 남자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요. ······ 그리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됐지요. ······”

“그래서요?”

나는 여자에게 다음 말을 재촉했다. 여자는 거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나서 잠시 상념에 잠긴 듯 말을 멈추고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가 이야기를 늘어논 순서로 보아 이번에는 김덕수를 만난 얘기를 할 차례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니까 여자가 두 번째 만난 남자가 김덕수였군, 나는 지레 짐작을 하고 여자 입을 쳐다봤다.

“그러고 나서 만난 남자가 시현 아빠였어요. ······”

여자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제야말로 뭔가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밀어놓았던 노트북을 다시 끌어당겼다.

“김덕수를 만난 게 언제입니까?”

나는 눈으로는 노트북 화면을 쳐다보며 바로 여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생각해 보니 나는 벌써 같은 질문을 세 번째 반복하고 있었다. 우라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정작 황당한 일은 다음 순간 벌어졌다. 여자가 내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정색을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형사님 말대로 시현 아빠는 유괴범이에요. 시현 아빠가 아이를 유괴했지요.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요. 그 작자는. ······ 시현 아빠는, 아이를 유괴하고도 남을 사람이지요. 그 작자는 아이를 유괴했을 뿐만 아니라 내 인생도 망쳐논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랍니다. 형사님, 제발 부탁인데 시현 아빠를 꼭 처벌해 주세요. ······ 안 그래도 내가 그 작자를 고발하려던 참이었어요. ······”

“뭐라구요!”

내가 어찌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부부가 한 통속이 되어 범행을 부인하더니, 그리고 여자는 한술 더 떠 시키지도 않았는데 불행했던 자기 과거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아 어떻게든 내 동정을 사서 자기 남편을 감옥에 보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더니,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지금 여자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한꺼번에 김덕수가 유괴범임을 인정하고, 남편이 아주 나쁜 사람이니까 처벌해 달라고 나에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자가 심경에 변화를 일으켰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자의 말하는 투로 보아 여자가 단순히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고만은 볼 수 없었다. 뭐랄까, 여자가 남편을 처벌해 달라고 매달리는 배경에는 남편에 대한 뿌리 깊은 원한 같은 것이 배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여자가 김덕수가 유괴하는 현장을 봤다고 증언한 셈이어서 나는 여자를 소환한 소기의 목적을 이룬 셈이 됐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자가 김덕수의 범행을 인정했음에도 나는 처음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이 여자가 정말 제대로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일까?’라고 다시 한 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그런 내 혼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집스레 멈추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여자의 말하는 투로 보아 이번에는 김덕수에 대한 원망이 주를 이룰 것 같았다. 틀림없이 여자 입에서는 남자를 잘못 만나 남자란 동물에게 학대당하는 여자들의 그렇고 그런 뻔한 얘기가 나올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여자를 제지하지 않았다.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심문 과정으로 보아 내가 여자 말을 제지한들 여자가 말을 멈출 리 만무했고, 한편으로는 내 머릿속의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그녀 말대로 세상 밑바닥을 박박 기며 살아온 한 장애우여자가 또 다른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 얘기가 궁금하기도 한 터여서 나는 가만히 여자 입을 주시했다.

여자는 내가 원하는대로 김덕수와 만나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후 긴 시간을 나는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은 채 여자 이야기를 그냥 듣기만 했다. 여자가 김덕수와 만나 겪은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여자 너머로 바라본 벽시계의 시계추는 어느 새 아내와 약속한 시간인 열 시에 근접해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조바심이 나지 않았다.

여자가 김덕수를 만난 곳은 사랑마을이라는 앵벌이 일을 하는 장애우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였다. 그때 여자 나이 스물아홉 살, 막 이 년을 정 붙이며 살던 남자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뒤였다. 그때 김덕수는 뭘 하고 있었나? 김덕수는 나이가 마흔네 살이었고, 사람들에게서 흔히 꼽추라고 불리는, 뒷등이 불룩 튀어나온 척추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역시 앵벌이 일을 나가 벌어먹고 살고 있었다.

폐결핵을 앓아 오늘 내일 하던 남자와 살다 혼자 된 여자에게 먼저 접근한 것은 김덕수였다. 명분은 혼자 된 여자의 슬픔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는데, 명분에 걸맞게 김덕수는 여자에게 여행을 같이 떠날 것을 제의했다. 단 둘이서 떠나는 여행이라면 여자는 당연히 그 여행을 거부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장애우 네 명, 즉 여섯 명이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고 해서 여자는 바람도 쐴 겸 김덕수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김덕수가 운전한 봉고차에 실려 일행이 도착한 여행지는 경주였고, 일행 모두 장애우였기 때문에 차에서 내려서 구경할 생각은 못하고 겨우 차로 석굴암만 둘러본 후 저녁이 되자 일행은 여관에 들어가 방을 잡고 술을 마셨다.

마침 일행 중 여자는 그녀 혼자뿐이었기 때문에 여자는 술 마시는 일행과 떨어져 김덕수가 따로 잡아준 방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다 시간이 늦어 막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다. 그때 누군가 여자가 든 방문을 똑똑 노크했다.

바로 김덕수였다. 김덕수는 술을 많이 마셨는지 얼굴이 벌겋게 취해 있었으며 한 손에는 소주병을 들고 있었다.

김덕수는 여자가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방안으로 성큼 들어섰으며 자리에 앉자마자 병나발을 불었다. 그런 다음 역시 시키지도 않았는데 여자를 상대로 신세타령을 늘어 놨다.

“임자, 내가 지금 비록 구걸을 해서 먹고 사는 처지이긴 해도 말이야, 이래봬도 근본은 있는 놈이라고. 내가 학교는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지만 어렸을 때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지. 그래서 지금도 사서삼경 중 논어 맹자는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구. 내 말이 믿어지지 않나? 맹자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오지. 왕이 맹자에게 물었어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느냐? 맹자가 대답했지. 노인에게 지게를 지게 하지 않고 고기를 먹게 하는 것이 정치를 잘 하는 놈이라고, 어때? 맹자 말이 그럴듯하지 않나? 지금 정치하는 놈들은 모두 썩었어. 바른 정치란 모름지기 우리 같은 소외계층인 장애우들이 잘 먹고 살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하는 건데 말야. 맨날 자기들끼리 싸우기만 하니 나라꼴이 뭐가 되겠어? ······ 그때 한문을 계속 배웠으면 지금쯤 서당 선생, 아니 주역을 배워 점쟁이라도 됐을텐데, 머리통이 커지면서 먹고 살기 위해 한문 공부를 그만두고 시계 고치는 기술을 배웠지. 한동안은 시계 기술자로 먹고 살았지만 세월이 지나 전자시계가 나오면서 누가 시계를 고쳐야지. 그래서 어렵게 배운 아까운 기술을 써먹지도 못하고, 그래도 당장 호구를 이어야 하니까, 거리에 나가 구걸을 하기 시작했지. 내가 이래봬도 평생 거지 생활을 하면서 전국 방방곡곡 안 다닌데가 없는 놈이야. 제주도만 빼놓곤 다 가봤지. 그러다가 오 년 전에 수원에 와서 정착하게 된 거야. 지금 사는데서, 왜 임자도 알지? 시현 엄마, 임자 같이 다리를 쓰지 못하는 그 여자를 만나 살림을 차린거야. 나는 애도 있고 해서 시현 엄마한테 잘 해주려고 했지. 하지만 그 여자는 내 말을 도통 들어먹질 않았어. 맨날 나한테 대드니 내가 그런 여자와 어떻게 살겠어? 가기다가 뭐 잘났다고 남자만 보면 아는 체하며 꼬리나 쳐대고, 그래서 헤어졌지. 내가 임자한테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지만, 내가 이혼해서 애가 딸린 몸이지만, 그래도 나 근본은 착한 사람이야. 세월을 잘못 만나 요모양 요꼴로 살고 있어서 그렇지 기회만 있으면 나도 맘 잡고 잘 살고 싶다구. 임자, 실은 내 남은 소원이 뭐냐면 임자같이 착한 여자를 만나 오손도손 행복하게 사는 거야. 나, 임자가 그 폐병쟁이와 사는 모습 보고 완전히 감동받았어. 임자 때문에 그 폐병쟁이가 부러운 적도 있었지. 임자, 이리 와봐. 내가 행복하게 살게 해줄테니까. 겁내지 말고 앞으로 나만 믿어. ······”
김덕수의 달변에 넘어갔나, 아니면 행복하게 살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꼬임에 넘어갔나, 그도 저도 아니면 어차피 혼자 살 능력이 안되니까 밥이라도 계속 먹기 위해 못 이기는 척 남자를 받아들였나, 그 밤 여자는 결국 김덕수에게 몸을 허락했다.

김덕수에게 몸을 줬다는 것은 곧 김덕수와 같이 살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셈이었으므로 여자는 경주와 돌아오자마자 곧 짐을 싸서 김덕수와 네 살 먹은 남자 아이 시현이가 살고 있는 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랬는데, 여자 입장에서 보면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이뤄진 김덕수와의 동거는 처음부터 문제의 싹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김덕수는 착한 여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기 위해 여자를 데려온 게 아니라 그 나이에 혼자 아이를 데리고 살면서 자기 손으로 밥 해먹고 빨래하며 살자니 워낙 귀찮고 곤궁한게 아니어서, 그를 대신해 밥 해주고 빨래해 줄 여자가 필요했고, 그래서 계획적으로 여자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김덕수는 빚도 잔뜩 짊어지고 있었다. 방안에 있는 침대며 텔레비전이며 하다못해 냉장고도 모두 현금이 아니라 신용카드를 긁어 구입한 것이어서 나중에 여자가 두고두고 갚아야 했다.

이런 사실을 여자는 처음에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랬던 여자가 비로소 김덕수의 속셈을 안 것은 너무나도 빠른 시간인 동거 며칠 후였다. 그 날 아침 김덕수가 일을 나가면서 여자에게도 앵벌이 일을 같이 나가자고 강요했던 것이다. 여자는 당연히 김덕수의 제의를 거부했다. 여자는 앵벌이라는 힘든 일을 하기 위해 김덕수를 선택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김덕수는 화를 내며 “네가 지금 나랑 살 마음이 있는거야! 없는거야!”라고 소리친 후 방안에 있는 재떨이를 집어 여자에게 던졌다. 다행히 재떨이는 여자 머리위 벽에 맞고 떨어졌다.

그런데 김덕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여자에게 다가와 한 손으로는 여자의 멱살을  부여잡고 나머지 한 손 주먹으로 여자의 가슴을 쥐어박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자는 뜻밖의 김덕수 폭력에 혼비백산했다.

“왜 이러시는 거예요. 시현 아버지. ······”

여자는 살기등등한 김덕수 앞에서 미처 울지도 못하고, 흡사 고양이에 몰린 쥐처럼 잔뜩 겁을 집어먹고 웅크린 채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런 여자에게 김덕수는 “몰라서 물어? 밥값을 해야 할 거 아냐?”라고 단 한 마디를 했다. 결국 마음이 여렸던 여자는 그 날 김덕수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해서 앵벌이 일을 나가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자의 거리에서의 구걸은 김덕수와 사는 동안 내내 이어졌다. 어떤 때는 김덕수와 같이, 어떤 때는 여자 혼자서 거리를 나가 엎드려서 주로 슬픈 노래를 부르며 행인들을 상대로 구걸을 했는데, 혼자 구걸을 나가는 날보다는 김덕수와 같이 구걸을 나가는 날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여자에게는 자유가 전혀 없었다.

김덕수 말로는 여자와 둘이서 구걸을 하면 혼자 구걸을 할 때보다 벌이가 더 괜찮기 때문에 같이 일을 나간다고 했지만, 그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여자 입장에서는 그건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김덕수 내심으로는 여자가 혹시 도망칠까봐 감시하기 위해 여자를 데리고 일을 나가는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자가 앵벌이 일을 하면서 정작 힘들어 했던 것은 김덕수의 감시가 아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여자가 거리에서 구걸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용변을 보는 일이었다. 앵벌이 일을 나가는 날이면 여자는 어떻게든 소변을 보지 않으려고 아침부터 일체 물을 입에 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줌보는 부풀어 오르기 일쑤였고 오줌을 참다가 도저히 참기 힘들 때면 여자는 할 수 없이 사람들 인적이 드문 거리 구석으로 기어가서 팬티를 내리고 엉덩이만 살짝 든 채로 소변을 처리해야 했다. 여자가 거리에서 치부를 드러내야 한다는 건 누가 보건 말건 수치스러운 일임이 분명했기에 여자가 앵벌이 일을 지겨워 했다면 그 이유의 팔십프로는 바로 거리에서 오줌을 누는 게 창피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것뿐 여자는 단칸방에서 김덕수와 지지고 볶고 싸우느니 차라리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구걸하는 게 마음이 더 편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여자는 앵벌이 일을 나가지 않으면 좀이 쑤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거리에서의 생활에 적응해 갔다.

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앵벌이 일에도 어김없이 적용됐다. 여자는 어떤 때는 앵벌이 일이 지겹기는 커녕 오히려 재미있었던 것이다. 흔치는 않았지만 운수좋은 날 여자를 가엾게 여긴 어떤 남자가 다가와 용기를 갖고 살라며 만 원짜리 지폐를 선뜻 바구니에 넣어 주는 일도 있었고, 겨울에는 걸치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 친절하게 여자 목을 감싸주는 어떤 남자도 있었으며, 반대로 여름에는 음료수를 사가지고 와서 여자가 음료수를 목으로 다 남길 때까지 컵이나 캔을 받쳐 들고 땡볕 아래 앉아 있는 착한 남자도 있었다. 여자는 그 재미가 쏠쏠해서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은 비록 힘들게 살지만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 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에서의 생활이 하나도 지겹지 않았다.

그랬는데, 문제는 김덕수였다. 김덕수는 여자가 꼬박꼬박 돈을 벌어 갖다 바쳤는데도 허구헌날 돈이 없다는 타령만 늘어놓았다. 거기다가 김덕수는 평균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외박을 했다. 여자가 외박한 이유를 물어보면 김덕수는 친구집에서 자고 왔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김덕수의 그 말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사실 김덕수는 친구집에서 자고 온 게 아니라 술집 여자와 여관에서 밤새 뒹굴다가 아침이 되면 부스스한 얼굴로 그래도 집구석이라고 기어 들어왔던 것이다. 즉 김덕수는 여자가 구걸해서 번 돈을 술집 여자 밑구멍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여자는 우연히 김덕수 옷에서 나온 쪽지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가 술집이라는 대답과 함께 낯선 여자가 전화를 받는 걸 보고 알았다. 당연히 여자는 김덕수를 추궁했다. 그러자 철면피인 김덕수는 “내 돈 벌어 내가 쓰는데 뭐가 잘못됐냐!”고 오히려 화를 냈다.

그때 퍼뜩 정신이 든 여자가 곰곰이 따져보니 자신의 신세야말로 술집 여자 좋은 일 시키면서 밥 해주고 빨래 해 주는 가정부에 지나지 않는게 아닌가. 그 사실을 알게 된 여자는 정말 김덕수에게 정내미가 떨어졌다. 그래서 김덕수와 사는 동안 단 한 번뿐이었던 도망을 갔다. 

여자가 구걸한 돈을 김덕수 몰래 꼬불쳐 두었다가 도망간 곳은 멀리 부산이었다. 마음으로는 다시는 김덕수 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작정에 작정을 하고 떠난 도망이었지만 여자는 결국 도망간지 단 하루만에 다시 수원으로 올라 왔다. 여자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연히 부산 거리를 걷다가 레코드점에서 흘러나오는 한 곡조 유행가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 묻지 마세요. 내 이름도 묻지 마세요.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며 살아가는 인생입니다······”라고 첫 소절이 시작되는 그 유행가는 김덕수가 거리에서 구걸을 할 때, 그리고 술이 진탕 취했을 때 즐겨 부르곤 했던 노래였다.

그 노래를 듣게 되자 여자는 괜시리 눈물이 났다. 갑자기 김덕수가 보고 싶어지면서 김덕수 처지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김덕수가 자신을 괴롭힌 생각은 들지 않고 김덕수가 나이 들어서까지 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이 못내 여자 가슴을 쓰라리게 해서 여자는 꺼이꺼이 울면서 기차를 타고 다시 김덕수 곁으로 돌아 왔다. 그 날 여자는 또 김덕수에게 죽지 않을만큼 맞았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기지만 김덕수의 폭력은 난폭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집요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 예를 말해주는 게 여자가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한다는, 어느 여름날 벌어졌던 폭력사건이었다. 그 날 비가 와서 여자와 김덕수는 앵벌이 일을 나가지 못했다. 방에서 투닥거리고 있는데 저녁 무렵 김덕수 친구가 맥주 다섯 병을 사들고 놀러 왔다. 김덕수와 친구가 그 술을 나눠먹은 것까지는 괜찮았다.

사단은 양이 차지 않았는지 김덕수가 지갑을 열어 소주 세 병을 더 사오면서 벌어졌다.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소주 세 병까지 해치우고 나자 김덕수는 취해서 쓰러졌다. 여자는 그런 김덕수를 겨우 침대에 데려다 눕혔는데, 김덕수는 취중에서도 여자 머리카락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 뿐 아니라 여자를 강제로 자기 옆에 눕힌 다음 여자 얼굴을 깨물고, 주먹을 휘둘러댔다.

매에 견딜 수 없었던 여자가 반항했고, 두 사람은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겨우 김덕수의 구타에서 벗어난 여자는 진저리를 치며 불을 끄고 방구석으로 가 어둠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자 김덕수가 “불켜! 불켜!”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그래도 여자가 가만히 있자 김덕수는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손으로 더듬어 빗자루를 찾아 들고 자신이 방금 전 마신 술병을 산산조각 부셔대기 시작했다. 놀란 여자가 불을 켜자 여자를 발견한 김덕수는 “이 씨발년, 너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라고 욕을 내뱉은 다음 이번에는 빗자루로 사정없이 창문을 부셔대는 것이었다.

유리 파편이 방 안 여기저기로 튀어 여자 몸에도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김덕수는 난폭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부엌으로 튀어 나가더니 이번에는 바가지로 물을 퍼다가 떨고 있는 여자에게 들이붓기 시작했다. 여자가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김덕수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김덕수가 퍼다 부은 물이 방안에 흥건히 고여 질퍽질퍽해지자 그제서야 김덕수는 잔인한 미소를 얼굴에 떠올린 다음 그 집요한 폭력을 멈췄던 것이었다.

그런데 한없이 착하기만 한 여자를 괴롭힌 건 비단 김덕수만이 아니었다. 여자는 참다 참다 못해 한번은 김덕수에게 “제발 나를 놔달라!”고 울면서 매달린 적이 있었다. 그렇게 여자가 단발마적인 비명을 내지른 계기는 김덕수의 네 살 된 아들, 즉 시현이 생모까지도 여자를 못살게 굴었기 때문이었다.

김덕수의 전처인 그 여자는 김덕수와 이혼하고도 갈 데가 없었는지 사랑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그것도 바로 옆방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그랬지만 여자는 일체 김덕수 전처를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전처는 화가 단단히 났는지 어느 날 길에서 마주치자 “혼자 유식한 척 하지 말라!”며 다짜고짜 여자 머리끄뎅이를 나꿔챘다. 그런 다음 있는 힘을 다해 머리카락을 뽑아대는 것이었다. 여자는 별다른 대항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이 한 웅큼씩 뽑혀 나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이렇게 김덕수의 폭력에 더해 김덕수 전처까지 나서 어처구니 없는 폭력으로 여자를 짓밟으면서 매에 이기는 장사 없다고 마침내 여자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먹거리를 입에 넣기만 하면 삼키지 못하고 토하는 증상이 일 년 여 계속됐고 여자는 날이 갈수록 눈에 띄게 야위어만 갔다. 심할 때는 몸무게가 삼십 킬로밖에 나가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런 여자의 병세는, 정신을 차렸는지 아니면 이러다 여자가 죽기라도 하면 또 다시 홀애비가 될 게 두려워서 그랬는지 몰라도 김덕수가 거금을 들여 개소주를 달여 먹인다, 무당을 불러 굿을 한다, 제 딴에는 병구완을 한다고 했지만 좀체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차도를 보이기는 커녕 여자의 병세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그래도 그 몸으로 여자는 앵벌이 일을 나갔다. 아니 나가야만 했다. 일을 나가지 않으면 김덕수의 성화가 보통 심한 게 아니어서 여자는 어떻게든 몸을 추스르고 거리로 나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병든 몸으로 앵벌이 일을 나가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요즘 여자는 병세가 매우 악화된 상태에서 눈을 뜨고 있으니까 살아 있는거지 사실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무기력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여자는 앵벌이 일을 나갔다 오면 일체 집안일을 하지 못하고 만사가 귀찮아 누워있기만 했는데, 김덕수는 그런 여자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봤던 것일까. 아니면 몸이라도 더듬을라치면 귀찮아하며 밀어내는 여자에게 화가 단단히 났기 때문일까? 영악한 김덕수는 얼마 전부터 여자를 대신해 자신이 먹고 사는데 도움을 줄 또 다른 대상을 찾는 눈치였고, 그 대상으로 정신지체 아이를 점찍었으며, 결국 박인수와 공모해 그 아이를 유괴했다는 것이었다.

여자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나는 이야기를 마친 후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을 토해내는 여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내가 여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나는 시선을 여자 너머로 돌려 어느 새 열두 시에 다가서고 있는 벽시계의 시계추를 무심히 쳐다보기만 했다.


글/ 이하진 (지체장애우)

작성자이하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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