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속의 장애우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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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속에서 발버둥치는 러시아의 ‘시각장애우 타운’ - 루시노보(Rusinovo)
(http://www.boston.com/daily_news/wirehtml/264/Amid_Russia_s_turmoil_blind_town_.shtml)
처음 이 작은 마을 루시노보를 보게 되면 전형적인 소비에트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있고, 독특한 자연미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가이드레일은 포장도로를 따라 이어지고 공장 바닥에는 고무바닥이 지도처럼 펼쳐져 있고, 사무실 문에는 점자가 인쇄되어 있다. 루시노보는 1천 명의 인구 중 3백 명이 시각장애우인 ‘시각장애우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모스크바의 남쪽 약 65마일쯤에 위치한 이 도시는 1948년 국립시각장애우협회가 2차대전 때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시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공장과 아파트를 지은 것으로 출발했다. 러시아 국내적으로는 장애우를 위한 지원이 조금 있는 편이지만, 특별히 루시노보는 지난 수십 년간 시각장애우에게 의미있는 삶과 직장을 제공해 왔다.
공장 감독이자 마을에서 중요한 일을 도맡아 하는 빅토르 클리코프 씨가 밝힌 “시각장애우가 일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는 것은 직업적으로나 삶의 내용으로 보아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는 언급은 이 마을의 매우 중요한 모토이기도 하다.
그런 이 마을이 현재 위기를 직면하게 되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수백 명의 시각장애우들이 루시노보로 이주해 왔고 정착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찾았으나 이 마을도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경제적인 침체에 빠지게 되었고, 모스크바 시정부에서도 지원의 손길이 줄어들었다.
50년이나 루시노보에서 살아온 올해 일흔 한 살의 드미트리 테레코프는 “우리가 만든 물건들을 방치하고 있고 연금은 2,3개월간 지급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정부에게서 버림받았다”라고 말하며 분노와 걱정을 감추지 못한다.
소비에트 시절 루시노보의 공장은 국공기업인 루빈텔레비전의 하청공장이었지만 이 기업도 몇 년 전에 망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제는 마요네즈 병뚜껑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천5백개의 뚜껑을 만들어서 3루블을 버는데, 이는 미국 50센트 정도 가치밖에 안되는 것이다. 그나마 그것도 몇 개월간 지급받지 못할 때도 종종 생겨났다.
시각장애우들은 소일거리로 작은 마당의 포플러나무 그늘에 있는 나무 탁자에 둘러앉아 체스를 둔다. 체스의 말과 움직임을 느끼기 위해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이며 체스를 두고 상대에게 말을 어디서 어디로 옮겼다고 말한다.
러시아 전체에서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이 마을의 가이드레일과 몇 안되는 점자인쇄물 등 특수 기구들과 편의를 위한 도구들이 루시노보에 있다. 아무도 맹도견은 갖고 있지 못하다. 너무 비싸기 때문인 것이다. 장애우들은 그나마 생활용품도 간신히 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루시노보는 시각장애우들에게 매력적인 곳이다.
“우리는 비록 지금 어렵지만 함께 모여 있는 것이 서로에게 힘이 됩니다”라고 71세의 테레코프는 말한다. 아무 것이 없어도 그들에게 루시노보는 낯익은 곳이다. 보이지 않는 눈이지만 걸어가게 될 때 철저하게 계획해서 지어진 환경 등으로 인해 어려움 없이 길을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우에게는 담, 움푹 패인 구멍, 구덩이 등 아주 사소한 것들이 큰 장애물이 됩니다” 니콜라이 포푸니코프는 이렇게 말한다. 올해 60세인 그는 4살이었을 때 홍역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시각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이곳에 이주하여 살아왔다. “빨간색이라던가 하얀색 등의 밝은 색은 기억 속에 아직 남아있어요.”
그러나 풀의 색깔같은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이 걸어다닐 때 언제나 자신을 지나는 공기의 소리를 들으며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왔다.
공장 감독인 쿨리노프는 루시노부가 과거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몇 가지 아이디어들을 실행하고 있다. 그는 모스크바 시장인 유리 루즈코프에게 공장의 생산물 중 하나인 플라스틱 빗자루로 붉은 광장을 청소하는데 사용하도록 공급하겠다고 제안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일자리는 점차 부족해지고 어떤 시각장애우들은 구걸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들은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와서 지하철역 안이나 길모퉁이에서 지내거나 음식 찌꺼기라도 찾기 위해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있다.
루시노보에서 몇 안되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 중의 하나인 에레나 스트레카로바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는 지원서조차 못내는걸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지난 1월 재정의 부족으로 문을 닫기 전까지 지방 라디오방송국에서 일했다. 지금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러시아문학책의 점자번역서를 읽거나 13살 된 그녀의 아들 맥심의 학업을 돋는데 보내고 있다.
“주저 앉아 있기만 할 수도 있어요. 거미집이 들어차겠지요. 그리고 먼지가 많은 방에서 먼지 속에 빠져있을 수도 있구요. 아니면, 살려고 발버둥을 치겠지요. 그건 정말 어려워요. 때로는 많은 상처를 받기도 하니까요.”
스리랑카 국립재활프로그램의 성과
(http://www.lanka.net/lakehouse/1998/07/13/news15.html)
스리랑카 사회복지부에서 계획하고 착수한 장애우를 위한 지역사회재활(Community-Based Rehabilitation) 프로그램이 몇몇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복지부 대변인이 발표했다. 올해 2천3백만 루피를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작년에는 이 프로그램에 1천8백만 루피를 지원했으나 몇 가지 결점과 미숙한 점들로 인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사회복지부 베트리 프레말랄 디산아야케 장관의 지시 하에 프로그램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으로는 장애아동 발생 예방, 지역사회 내 장애우 조기 발견 및 재활, 지역사회의 구성원, 여러 집단의 구성원, 자원활동자나 관련단체 등의 직원들의 훈련과 인식향상, 그리고 의학적·직업적·사회적 재활프로그램을 확립하기 위한 조사사업 등이 있다.
장기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스리랑카 국내외 정책으로 공식화되고 장애우들의 사회·경제적 참여를 향상하도록 진행될 것이다. 모든 정부, 비정부 기관의 재활 서비스들은 국제연합이 규정한 프로그램에 맞게 적용될 것이다.
또한 1만2천여 명의 재활을 이룬 사람들 중 약5천여 명의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나름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알바니아 정신장애우들의 희망과 절망
(http://news.bbc.co.uk/hi/english/world/newsid%5F40000/40301.stu)
영국의 BBC가 5년 전 내전 중인 알바니아에서 지내는 정신장애우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도한 후 몇가지 사안들은 극적일 정도로 매우 좋아졌다. 그러나 일부일 뿐 여전히 정신병원의 ‘살아있는 지옥’이 존재하고 있다.
BBC특파원 빌 해밀턴이 1993년 베라시에 있는 고아원을 방문했을 때, 그는 어린 수용인들 사이에서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 보호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헐벗고 다 쓰러져가는 광장을 목적없이 배회했으며 벌거벗은 몸 위로는 파리떼가 가득했다. 억압되고 의기소침한 그 아이들은 지저분한 주위 환경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는 죽은 듯이 보였다. 빌 해밀턴의 알바니아 아동들의 상황에 대한 보도로 인해 영국에서는 아동원조단체 등의 주도로 자선활동이 일어났고, 그가 최근에 베라시로 돌아갔을 때는 고아원들이 공식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바뀌게 되었다.
이전 여행에서 보았던 슬프고 고통어린 아이들의 얼굴들은 웃음으로 변해 있었고, 아이들은 새롭게 고치고 깨끗하게 개조한 시설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고아원에서 새롭게 일하는 전문 인력들은 이 새로운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물리치료실을 외부의 약탈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무장을 하고 있다. 이곳의 에들리라 카디우 원장은 빌 해밀턴에게 “당신이 만든 필름으로 인해 많은 유럽 사람들이 이 집을 재건하라고 기증을 해 줬어요. 이제 우리는 어느 누구도 이곳을 해치거나 파괴하지 못하게 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빌은 고아원 이외에도 성인 정신병원을 취재했는데, 그 자신은 이곳을 “인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묘사했고, 스텝들은 “지구상의 지옥”이라고 했다. 그곳에는 병약하고 처참한 몰골의 환자들이 방온장치도 없고, 창틀에 유리도 없는 황량한 방에서 떨고 있다. 시트도 없는 침대틀 위에 앉아 있는 어떤 환자는 이 초만원으로 붐비는 공간에서 애처롭게 탈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상황은 더 나빴다. BBC 취재팀은 격리병동에서 25명의 환자들이 결핵에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직원들은 이 환자들이 말 그대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공공연히 얘길 했습니다. 지난 며칠간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거긴 난방이라곤 조금도 되지 않고 더더욱 나쁜 것은 겨울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라고 빌 해밀턴은 말했다.
“알바니아 보건사업보조단체는 세계은행으로부터 저당을 잡혔습니다. 이곳의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 환자의 수는 너무나 많아서 이 문제는 다른 나라가 얼마나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지원해 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는 이 시설의 개선이 개개인의 건강과 용기를 북돋우기 위한 자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실제적인 예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한편 만일 국제사회가 알바니아에 대한 원조에 대해 반응이 없다면 이 알바니아의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여전히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고 베라의 아이들에게 여전히 악몽같은 미래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장애우의 직업지원을 확대하는 홍콩의 복지부
(http://home.ican.net/~pegger/hong.html)
홍콩의 사회복지부(The Social Welfare Department)의 차관인 오펠리아 찬 취링은 장애우의 직업과 노동에 대해 지원을 확대하기로 발표했다. 사회복지부를 포함한 27개의 기관들이 정신지체 장애우와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직업을 최대 2년 이상 제공할 경우 연간 2만1천7백92달러를 받게 된다. 장애우에게 제공되는 일은 세탁, 세차, 가게일 보조 등이다. 정부는 고용 서비스 프로그램을 위해 사회복지부와 이외 관련 비정부기관에 2천3백97만8백달러를 제공했다.
찬 취링에 의하면 이 프로그램은 장애우가 보호작업장을 떠나 직업을 찾기 전에 일시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 노동부의 선임담당 슈랍케이는 한 해 동안 노동부에 구직 등록된 3백33명의 정신장애우 중 2백7명, 즉 62%가 직업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반면 평등위원회는 1996년 9월 이후 장애에 관련해 차별을 받은 4백77건의 사례를 접수했고 그 중 절반 이상이 고용과 관련된 것이었다. 평등위원회의 위원장인 패니 무이칭은 여전히 사회 안에서 장애우에 대한 편견이 공공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학령전 장애아동 부모회’의 회장인 줄리 리 라우 추 레이는 사회복지부의 프로그램을 비판하며 “많은 정신장애우들의 경우 이 계획에 의해 고용되는 것이 적당할지 모르지만, 나 자신은 내 아들을 외부로 보낼 자신이 없다. 나는 그를 정해진 보호작업장에 보내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말한다.
정부 주도의 사업과 그에 따른 효과와 부작용, 개인차와 다양성 속에서 장애우에 대한 정책이 결코 간단히 돈으로 지원해서 숫자로 성과를 평가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홍콩 정부는 현재 확대한 사업에서 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글 번역 및 정리/ 지석연 (연세대 재활학과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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