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이 되는 장애아이들
본문
대부분 장애우복지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고 한다.
“다른 일도 아니고 장애우단체에서 일을 계속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장애를 가진 학생을 지도할 때 선생님 나름대로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왜 다른 장애우도 아니고 정신지체인들에게 관심을 갖습니까?”
때로는 나보다 더 경험도 많고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질문을 받다보면 죄송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또한 이러한 질문들을 받을 경우에, 또한 나 자신도 갈등하는 부분이 있을 경우에 난 대답 대신에 ‘사랑의 집’,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은 일본에서 5년간에 걸쳐 연재가 되었고 작년에는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도토리집 설립에 관여한 중복장애우 가족과 학교 선생님들, 관계자들의 수기가 기록된 <미래를 바라보며 살자>라는 책을 작가 야마모토 오사무가 수화서클에 가입을 하면서 보게 되어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신 분과 의기투합이 되어 사랑의 집을 번역하고자 저자와 통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이 만화로 작년 10월에 출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1년 만에 7권이 완역이 되었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이나 특수교사 그리고 장애학생과 만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임이 틀림이 없다.
난 이 책을 한번에, 단숨에 읽은 적이 없다. 읽다가 울다가 다시 덮고 한참을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는 소중한 책이다. 비록 만화지만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의 마음이 전해져 오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애쓰는 장애아동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장애아동들과 생활하는 선생님과 관계자 등의 노고가 남의 일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10여년의 특수교사의 경험 중에 잘못했던 일들, 이제서야 깨닫게 되는 사실들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 책은 나를 깨우쳐준다. 여기에 그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힘내라 힘내!”
장애아동이 있는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하듯이 장애아동이 있음으로 해서 남편과 소원해지고 형제들의 갈등, 그리고 이웃들과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이사도 수없이 하고 자녀를 시설로 보내고자 때로는 모질게 마음도 먹고 심지어는 함께 죽으려고 시도도 하게 된다.
장애를 가진 아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그 마음을 가진 순간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힘껏 살려고 몸부림치는 케이코를 보면서 “힘내라, 제발 살아만 다오!”라는 부모들의 절규와 간절함 속에 케이코는 새 생명 뿐만 아니라 부모와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만 온전한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생각을 한다.
장애아동을 가진 것은 어느 누구의 죄도 아니고 팔자 사나운 일도 아닌 것이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고 나의 자녀로 오게 된 것도 다 때가 되어서, 나에게 적합해서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만남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눈높이”
말도 못하고 소리도 못 듣고 게다가 지적 능력에도 문제가 있는 중복장애아동들, 아이들은 몸짓과 소리 그리고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 등을 우리에게 알리려고 한다.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체면과 남의 이목과 불편함 속에서 지쳐만 간다. 그게 현실이고 보통 부모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길가에 있는 돌에게도 멋진 노을을 보여주고 싶어서 돌을 올려놓는 키요시. 시설에 보내려고 하는, 힘든 결정을 한 엄마는 아무 것도 모르고 돌만 올려놓는다고 야단만 쳤는데, 키요시와 함께 쪼그리고 앉아서 아름답게 펼쳐진 저녁노을을 보고서야 비로소 키요시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라도 알게됨을 감사드리며 키요시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자 결심한다. 자신이 먹어서 가장 맛있다고 느낀 귤, 배추, 브로콜리를 가장 사랑하는 아빠에게 주고자 입안에 있던 음식을 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고 고맙다고 눈물 흘리는 미도리 아버지. 자신에게 맛있던 것이 입안에 있던 것이라도 훌륭하고 소중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버지가 먹여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아이들의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지나갔는지......
어느 외국 서적에서 자폐아동을 비누방울에 갇혀 있는 모습으로 그린 적이 있는데 세상이 훤히 보이면서도 자신을 폐쇄하고 있지만 아주 자그마한 힘이라도 가해지면 비누방울이 터지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 열쇠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눈높이에 있음을 잘 나타내준 키요시의 저녁노을이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사회에 통합이 되어 직장생활을 잘 하고 있던 한 학생이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다”라는 필담을 직장에서 나가라는 말로 이해를 하고 자포자기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깨닫는다.
소리를 못 듣는 학생들에게 비장애우들의 언어를 강요하고 수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하는 반성을 한다. 구화교육을 강요하고, 소리를 내라고 한 것도 그 학생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장애우에게 비장애우의 입장만 강요하는, 또 다른 폭행이 아닌가 하는......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는 것을 수화로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를.
난 이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고의는 아니지만 장애우들에게 비장애우의 잣대로 판단한 적이 없는가? 혹 나의 잣대에 상처받은 사람은 없는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소에 손자아!”
단지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한다는 사실만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거절당하고 친척들의 결혼식에도 오지 말았으면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타로의 가족들은 깨닫게 된다.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므로 타로는 우리까리 보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타로를 보호하기 위해 더 튼튼한 벽을 쌓고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살생으로 인해 타로가 장애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죽음과 타로에 대한 기록을 통해 타로의 유일하게 남아있던 언어인 ‘소에 손 자아(손에 손잡고)’대로 이제 세상을 원망하고 행복한 사람들을 미워하고 정부를 비난했던 암울한 벽을 부수고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 타로의 노래처럼 손을 잡아보는 것이다. 다함께 손에 손을 잡고...
타로의 단 한가지 부탁이었던 소에 손 자아!! 장애우가 장애우로 사는 것은 장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장애운동이 아니라 생명의 운동입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중복장애우이기는 했으나 점토세공을 잘하고 나무타기도 잘했던 쯔또무, 달리기 시합에서 넘어진 친구를 도와 골인을 했던 그 해맑은 쯔또무는 졸업 후 지역복시사업소를 다니다가 우연한 사고로 폐인이 되어버린 쯔또무를 도깨비선생님이 만나면서 학교생활 15년 후에 갈 곳을 만들자라는 공동작업소는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여성장애우에게 화분을 보여주기 위해 달리다가 “멈춰!”라는 소리를 듣지 못해 상처를 입히게 된다. 직장에서 말도 안 통하고 그 사건으로 더 고립이 된 쯔또무는 밤마다 배회를 하고 자해를 하는 행동을 보이다가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까지 다치게 된다. 오랜 은둔생활로 인해 23세살의 청년은 늙은 소년이 되어 버렸다.
가장 행복했던 농아학교 시절의 앨범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인 쯔또무, 이것은 일본의 현실만이 아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갈 곳이 없어서 길거리를 방황하는 우리 아이들, 그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공동작업소는 학교를 졸업한 장애학생들에게 갈 곳을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이 되었다. 1년 동안 기금을 마련하여 오오사카 내에서 처음으로 열게 된 청각중복장애우 전용의 모즈공동작업소는 도토리집을 계획하는 부모님들에게 커다란 힘을 주었다.
장애우시설에게는 집을 빌려주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편견과 맞서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인형을 만들면서 사람들은 배웠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격려와 사랑 속에 세상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 장애아동을 키우면서 힘들었던 일들, 세상은 내 편이 아닐 것 같았던 생각들이 이제 세상은 아직도 살만하다는 믿음으로, 켄이치의 환한 웃는 모습을 보면서 작업소를 만들기를 잘했고, 죽어가는 켄이치의 “고마워요” 수화는 부모님들 마음 속에 언제나 남아있게 된다. 공동작업소에서 일하는 것,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자신을 최대한 표현하고 실현하면서 인간답게 살았다는 것, 그런 것들이 한없이 기쁘고 고마웠던 것이다.
공동작업소를 설립하기 위하여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금에 협조해주는 사람들도, 나이든 사람이나 어린아이나 모두들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고, 도토리집을 통해 나도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감사드리는 우치노씨, 자신의 아이도 아니고, 자신이 입소하는 것도 아닌 시설을 세우기 위해 협조해 준 사람들, 자기 자신을 극복하여 서로 돕고 의지하여 격려하고 살아가길 원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믿고 이 운동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믿음, 이것은 장애우운동이 아니라 새 생명을 얻는 생명운동이며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하나 둘씩 친구로 만들어가는 운동인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다음은 5권에 나오는 레드너 맥시밀러의 “왜 이 아이들은 세상의 빛인가”라는 시이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실어본다.
<야마모또 오사무 지음. 최윤선 옮김. 대원출판사 발행. 전 7권. 각권 값4천5백원>
글/ 전정옥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모임 사무국장)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천사들이 말했습니다. 글/ 레드너 맥시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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