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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석과 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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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9월19일 서울 강동구 마천2동 104-6 지하셋방 한구석에서 휠체어를 탄 소아마비 장애우 김순석 씨가 음독 자살했다. 그의 품에서는 “스스로 부딪쳐 보지 못하고 피부로 느껴보지 사람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서울시장 앞으로 남긴 편지지 5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후~우  그는 오늘도 버릇이 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남대문시장에 있는 납품처를 찾

 
아가는 날은 늘 이랬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그는 잔뜩 긴장해야만 했다. 그는 머리핀 샘플을 넣은 손가방을 챙겨들고 아내 등에 업혔다. 아내는 그를 업고 지하방을 벗어나 지상으로 난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고, 그가 다시 한번 길게 한숨을 내쉬는 사이 아내는 그를 지상에 놓여 있는 낡은 휠체어에 태웠다.
햇볕이 눈부셨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힘에 부쳐 씩씩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햇볕아래 드러난 아내 얼굴은 백지장 같이 창백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거기다 하루종일 지하방에서 지내는 아내이고 보면 병색이 완연한 게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봐…” 갑자기 가슴 한켠이 시려온 그는 아내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그만뒀다. 아내는 자신을 쳐다보는 그의 눈길을 외면하고 방금 그녀가 빠져 나온 지하셋방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생활고에 지쳐서일까, 요즘 들어 부쩍 말이 없어진 아내였다. 말이 없어진 것뿐만 아니라 생각해보면 아내가 지쳐가고 있다는 징조는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같이 일을 하다가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한밤중에 횡하니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횟수도 잦아지고 있었다. 그럴 때면 아내의 두 눈은 어김없이 퉁퉁 부어 있었다.
급기야 얼마 전 아내는 좀체 하지 않던 말을 꺼내기도 했다. 아내는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치면서 “여보 우리 이사가요. 나는 견딜 수 있지만 동민이 때문에 더 이상 안되겠어요. 보세요. 동민이가 마른 꽃처럼 시들어가고 있잖아요. 제발 단칸 셋방이라도 좋으니 우리 햇볕 드는 지상으로 이사가요. 당신이 어떻게 좀 해보세요. 제발 여보…” 그렇지만 울면서 매달리는 아내에게 그는 아무런 언질도 해줄 수 없었다. 그가 세들어 있는 전세보증금 2백만원으로는 방 한 칸과 방에 딸린 일을 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지상에서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아내가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아내가 급속하게 무너져가고 있다는 반증으로밖에 달리 해석되지 않았다.
“나 다녀올 테니까 동민이 잘 보고 있어…”
그는 착잡한 심정을 감추고 아내의 무표정한 얼굴에다 빠르게 말을 던졌다. 그런 다음 두 손으로 천천히 휠체어를 굴려 골목길로 나섰다.
그녀는 지하로 내려가지 않고 한참동안 지상에 서 있었다. 저만치 남편이 탄 휠체어가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남편이 탄 휠체어가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불현듯 한올 불안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
그녀는 얼마 전부터 심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지금처럼 갑자기 남편이 탄 휠체어가 보이지 않으면 그녀는 두려움 때문에 안절부절 해야 했다. 3개월 전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생긴 그 두려움은 그녀를 쉽게 놔주지 않고 있었다. 그 날 남편은 거래처에 간다며 외출했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귀가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마치 경기에 들린 사내아이처럼 끙끙 앓았다. 그것뿐 처음에는 남편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무 말 없이 땀을 비오듯이 쏟으며 누워있던 남편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순간 남편이 지었던, 고통으로 심하게 일그러진 채 금방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은 살기가 넘쳐나던 그 표정을 그녀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었다. 남편과 8년을 살을 부비며 살았지만 남편의 그런 표정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녀는 순간 뭔지 모르지만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런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꽂듯 잠시 후 남편의 광폭한 행동이 이어졌다. 남편은 베개부터 내던졌다. 그리고 그릇과 밥상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살림을 집어 내던졌다. 남편의 그런 광기 앞에서 그녀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닥치는 대로 살림살이를 내던지던 남편은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방바닥을 기어서 셋방 옆 추녀 밑에 있는 작업실로 갔다.
작업실에는 악세사리를 만들기 위해 구입한 금형과 공구 그리고  공들여 만든 악세사리 제품이 쌓여있었다. 남편은 작업실에서도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망치가 창문을 뚫고 날아가고 비싼 금형이 바닥에서 박살났다. 남편의 손은 이제 머리핀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황급히 남편에게 달려갔다. “안돼요, 여보, 그것만은 안돼요. 그 물건은 내일 납품할 물건이잖아요. 그걸 내던지면 우리는 굶는다구요. 당신도 잘 알잖아요. 여보 제발 참아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내가 잘못했어요. 당신 제발 화내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엎드려 빌게요. 제발 여보…”
그녀는 남편을 뒤에서 껴안았다. 서러움에 복받쳐 올라 그녀 눈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녀 손에 잡힌 남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은 적막감이 찾아왔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남편을 품에 안았다. 남편은 조금 전 광폭함이 언제 있었냐는 듯 아이처럼 고분고분해졌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갔을까, 남편이 “크으윽…” 깊은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쳐다봤다. 남편은 서럽게 울고 있었다.
“절단기를 빌리려고 박씨를 찾아가는 길이었어… 어제따라 웬일인지 쉽게 택시가 잡히더군. 아니야, 당신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게, 택시기사에게 요금의 두 배를 줄 테니 제발 태워달라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얻어 탄 택시였어… 택시를 타고 성수동에 갔지, 그런데 박씨가 전화로 가르쳐준 건물을 찾지 못한 거야. 할 수 없이 길가에 내렸어. 그때부터 길가는 사람에게 물어물어 건물을 찾아 나섰지. 박씨가 일러준 건물을 찾는데 얼만큼의 시간이 걸린 지 알아. 무려 한시간이야. 한시간이나 그 동네를 헤맸다구… 그렇게 해서 겨우 박씨가 일러준 빌딩을 찾아냈어. 그런데 겨우 찾아낸 건물이 내가 서있는 길 반대쪽에 있었던 거야. 별 수없이 차도를 건너야 했어. 처음에는 나도 횡단보도로 건너려고 했어. 실제로 횡단보도 근처까지 갔어. 그런데 그 망할 놈의 도로 턱 때문에 도저히 횡단보도에 내려설 수가 없었던 거야. 할 수 없이 인도를 거슬러 올라갔지. 마침 인도 끄트머리에 인도와 차도가 경사로로 이어진 길이 있었어.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 길로 차도를 건넜지. 달리는 차가 몇 번 빵빵 클랙션을 울려대는 소리는 듣긴 했지만 나는 별 탈 없이 차도를 건넜어. 그런데 차도를 건너 막 인도로 올라서려는 순간이었어. 어디서 나타났는지 교통경찰이 다가와서 나를 잡는 거였어. 나를 잡으며 경찰이 뭐랬는지 알아? 내가 무단횡단을 했다는 것이었어. 사정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지. 나는 다시는 무단횡단을 하지 않을테니까 제발 한 번만 봐달라고 경찰에게 사정했어. 그랬는데 경찰이 내 호소를 외면했어. 그러면서 몸이 불편한 사람은 무단횡단을 해도 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라고 말했어. 그렇게 묻는데 나는 아무대꾸도 할 수 없었지. 꼼짝없이 경범죄 위반으로 경찰서에 실려갈 수밖에 없었어… 나는 혹시나 해서 경찰서에 가서도 경찰들을 붙잡고 사정했어. 한 번만 봐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을 테니 제발 한번만 봐주십시오… 수치스럽고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지만 내 동생뻘 되는 경찰들에게 그렇게 빌고 또 빌었던 거야. 그랬는데 그 자식들은 누구도 내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 화가 난 나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지. 이 자식들아! 누가 무단횡단 하고 싶어서 했냐! 도로 턱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널 수가 없으니까 차도로 건넌 거잖아! 나는 죄가 없어 죄가 없다구… 그때 젊은 경찰 한 놈이 천천히 내게 다가왔어. 그놈이 나한테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 병신 꼴값하고 있네… 그렇게 말했어. 여보 그 놈이 나한테 병신 꼴값한다고 욕을 했다구. 그놈이… 동생뻘도 안 되는 그놈이 나한테 흐흐흑… 내가 그놈한테 어떻게 대항할 수 있었겠어. 내게는 아무런 대항 수단이 없었어. 밤새 나는 사람도 아니구나. 사람이 아니야… 이 말 만을 곱씹고 또 곱씹을 수밖에 없었지. 꼬박 밤을 뜬눈으로 지샜어. 새벽녁이 되어서야 그놈들이 나를 풀어주더군. 여보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아.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면서 구차하게 살아서 뭐하겠어. 이젠 무서워서 차도로 나설 수도 없어. 이제 어떡하지 여보…”
그녀는 진저리치며 남편의 아픔을 뼛속 깊이 이해했다. 그래서 그녀는 두려웠다. 남편이 외출할 때면 혹시나 잘못되면 어떡하나, 또 경찰서에 잡혀가서 수모를 당하지나 않을까, 길을 가다가 차에 치이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조바심에 몸둘 바를 몰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각이 그날의 악몽에 미치자 그녀는 도저히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남편이 사라져간 골목길을 내달렸다. 골목길을 벗어나 큰길가에 다다른 그녀는 남편의 그림자를 찾으려 사방으로 눈길을 던졌다. 그러나 그녀가 그토록 애타게 찾는 남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남대문 시장으로 들어섰다. 그가 찾아가고자 하는 악세사리 상가는 시장 안 깊숙한 곳에 있는 건물에 있었다. 그는 그곳에 가기 위해 시장 상인들이 노점을 벌여놓은 좁고 어지러운 길을 헤쳐나가야 했다. 그가 이 길을 지날 때면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오늘도 그는 뒤통수에 와 닿는 상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야 했다. 웬일인지 그가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은 그의 출현을 못마땅해했다. 하긴 휠체어가 지나가려면 노점에서 물건을 고르던 행인들이 한켠으로 비켜서야 하는 번거러움이 따르고, 그 때문에 장사에 지장을 받는다고 상인들이 생각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전적으로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오히려 잘못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 물건을 잔뜩 내어놓은 상인들에게 있었다. 길이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이상 그에게도 길을 갈 권리가 있는 것이다.
권리, 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가면서 잠시 이 말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 봤다. 몸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길을 갈 권리가 있다는 말에 길을 걸어가는데 무슨 거창한 권리를 내세우느냐며 피식 웃고 말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길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었다. 길을 지날 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도로 턱과 산처럼 버티고 서있는 계단 계단들, 그런 한계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그는 가슴이 서늘해 오는 절망감을 곱씹어야했다. 계단 앞에만 서면 그는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과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생활방식을 공유하며 사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마치 외계에서 뚝 떨어진 이방인이 미로에서 출구를 몰라 헤매는 것처럼 그는 계단 앞에만 서면 가로막힌 자신의 생의 출구를 찾지 못해 늘 허둥거려야했던 것이다.
계단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계단들의 강을 건너면 나를 따듯이 맞아주는 꽃향기 가득한 온실이 있을까, 나는 과연 그곳에 다다를 수 있을까… 그는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계단만 맞닥뜨리면 매번 이런 생각을 하며 쓸쓸한 표정으로 자신을 달래야 했다. 그 생각 끝에서 그는 만약 내가 도로 턱과 계단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내 궁핍한 삶은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 텐데, 라는 결코 이루어질리 없는 바람을 애타게 갈구하곤 했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상인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멸시가 모두다 자신이 장애우이기보다는 가고싶은 곳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어쨌거나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가 아장아장 걷는 세 살 먹은 어린아이보다 못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를 깔보기는 지금 그가 찾아가고 있는 악세사리 도매상점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서른이 됐을까, 새파랗게 젊은 게 그를 대놓고 깔봤다. 상점주인이 그를 깔보는 것은 우선 그를 부르는 호칭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상점주인은 나이로 보아 당연히 존칭을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김씨라고 부르며 하대했다. 그런데 호칭뿐만 아니라 악세사리 제작 단가를 대놓고 깎으려 하는 데에는 인내심이 많은 그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주인은 어떻게 된 게 그가 만든 머리핀을 개당 70원이나 80십원 밖에 줄 수 없다고 완강하게 우겨댔다. 그가 아닌 다른 하청업자에게는 씨도 먹히지 않을 수법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거래처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이 솟았지만 기동력이 없는 그가 새로운 거래처를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달래든지 아니건 사정을 하던지 해서 그 주인에게 계속 제품을 납품해야 했다. 그럴려면, 새로운 샘플을 선보이는 오늘은 확실하게 주인과 담판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좁은 길을 벗어나 악세사리 상가에 도착했다. 그가 찾아가려는 상점은 건물 3층에 있었다. 그는 정문을 놔두고 길을 돌아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에는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되는 엘리베이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점에는 마침 주인이 있었다. 그는 상점 문을 밀고 들어서며 주인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넸다. “응, 김씨 왔구먼, 오느라고 고생 많았겠소” 주인이 아는 체를 했다. 그러나 그것 뿐 주인은 잠시 그를 일별하고 나서 하던 일인 제품을 포장하는 일에 다시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런 주인의 모습에서는 의도적으로 그를 무시하는 표정이 역력하게 묻어 나왔다. 그는 뜻밖의 냉대에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도 말을 먼저 꺼낸 것은 그였다. “저 저번에 전화로 말씀드린 머리핀 샘플을 가져왔는데요…” “무슨 샘플? 아 그거…” 비로소 주인이 관심을 보였다. 관심이 사라질세라 그는 재빨리 손가방을 열어 머리핀 샘플을 꺼내 건네줬다. 샘플을 받아든 주인은 전등 아래로 샘플을 들고 가서 한참을 비춰보았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마침내 주인이 입을 열었다. “김씨 이거 얼마면 되겠소?” “개당 120원은 주셔야 합니다” 그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120원을 달라구? 김씨, 지금 나하고 농담하자는 거요?” 주인이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보시다시피… 제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겁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손도 훨씬 더 많이 가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말을 더듬거렸다. “웃기는 소리 작작하쇼, 누굴 호구로 아나본데, 개당 60원에 납품하려면 하고 말려면 그만두쇼” 주인이 말을 내뱉고 귀찮다는 듯이 그가 온갖 정성을 들여 만든 샘플을 내던졌다.
그는 정신이 아득해져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 순간 불현듯 가난에 찌들어 누렇게 뜬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온통 마른버짐이 하얗게 핀 동민이 얼굴도 떠올랐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는 정신을 차리고 휠체어를 움직여 주인에게 다가갔다. 그런 다음 주인의 손을 찾아 붙잡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이러지 마십시오! 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장님이 왜 이러십니까! 제발 봐주십쇼. 저에겐 딸린 식구가 있습니다. 제가 일을 해야 식구들이 먹고산다는 사실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사장님, 납품만 받아주면 몸이 부숴지는 한이 있어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납품 기일을 지킬 테니 더도 말고 개당 100원만 쳐주십시오. 사장님 제발…”
“사장님이고 뭐고 나는 60원 밖에 줄 수밖에 없으니까 100원 받으려면 딴 데 가서 알아봐요. 그리고 나 일해야 하니까 저리 비키쇼.”
순간 그의 가슴에서 무언가 커다란 것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34년을 지탱해 온 삶의 무게였다. 삶이 우두둑, 뿌리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삶의 버팀목을 붙잡으려 했다. 상점 주인은 그러나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돌아섰다. 건물을 빠져 나오는 그의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건물을 벗어나서 택시를 잡기 위해 차도 옆에 섰을 때 그는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내 삶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왜 나는 매사에 당당하지 못하고 이렇게 비굴하게 살아야하지, 왜 나는… 그는 몹시 자신이 저주스러워져서 한참동안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남편은 꿈을 이야기하곤 했다. 남편의 꿈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녀가  보기에 그 꿈은 너무나 보잘 것 없어서 남들에게 말하기조차 창피한 것이었다. 남편의 꿈은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도 아니었다. 남편의 꿈은 다른 게 아닌 생각만 해도 지겨운 악세사리 공장을 차리는 것이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악세사리 공장을 차려서 나같이 몸이 불편해 설움 받으며 사는 사람들과 같이 살 거야” 남편은 아이처럼 수줍어하며 말을 꺼내곤 했다. 그녀는 그런 남편의 꿈이 너무나 소박해서 정말이지 남편의 꿈이 곧 이루어질 거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남편의 꿈이 이루어지려면 큰 돈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여러 사람이 먹고 잘 공간만 있으면 가능한 꿈이었다. 지금 세들어 있는 전세 보증금에 몇 백만원만 더하면 조금 큰방을 얻을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작업실에 어지러이 널려져 있는 공구들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하나하나 남편의 손때가 묻어 있는 공구였다. 언젠가 그녀도 돈으로 따지면 몇 푼 되지 않는 이 공구들로 장밋빛 미래를 설계한 적이 있었다. 그이와 내가 열심히 일하면 3년 지나면 방 두 개 짜리 전세방을 얻고, 길어도 10년이면 작은 집을 살수 있을 거야, 그러면 동민이도 다른 아이들 부럽지 않게 잘 키울 수 있고, 거기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작은 가게도 낼 수 있겠지, 그렇게만 된다면 남편도 불편한 몸으로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
하지만 남편의 꿈이 멀어져 가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꿈도 시간이 지날수록 한 점 한 점 허공으로 흩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3년을 훨씬 넘기고 5년째 숱하게 밤을 새며 일했지만 전세방을 얻기는커녕 지하방을 벗어나지도 못했다. 그녀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와 남편은 열심히 일하고 또 일했는데 늘 돈에 쪼들려야했고, 이제는 당장의 끼니 걱정을 해야할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그녀는 공구를 정리하다 말고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제는 다른 방도가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남편을 설득해서 그녀가 파출부 일을 나가는 것이 그나마 끼니 걱정을 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파출부로 나서면 남편의 자존심은 커다란 상처를 받겠지만 별 수 없었다. 동민이를 생각해서라도 파출부 일 나가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방으로 돌아와 외투를 걸쳐 입었다. 파출부 일을 나가려면 언젠가 봐둔 동네 입구 에 있는 용역회사에 찾아가 일자리를 부탁해야 했다. 그리고 밖에서 노느라 돌아오지 않고 있는 동민이도 찾아서 데려와야 했기에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그날 그녀가 용역회사에 구직 등록을 하고, 동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동민이를 찾아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도 집에 돌아와 있었다. “어떻게 들어왔느냐?”고 묻자 남편은 “응 2층 사는 이씨가 지나가길래 부탁해서 들어왔어.”라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나갔던 일은 잘됐느냐?”고 물어보았다. 남편은 그녀의 질문에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마치 넋이 빠진 사람처럼 허공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상심한 표정에서 직감적으로 일이 틀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체념했다. 그렇지만 오늘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야했다. 그녀는 우선 저녁을 먹고 나서 남편에게 다시 물어볼 요령으로 찬거리를 사기 위해 동네 슈퍼에 갔다. 그녀가 미역과 콩나물을 사들고 돌아왔을 때, 집에 있어야할 남편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몹시 불안했다. 다음 날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다음 날도 남편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녀는 남편이 갈만한 곳을 수소문해 찾아 봤지만 세상 어디에도 남편은 없었다. 그녀는 거의 절망적인 상태가 되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집에 돌아온 것은 가출한지 사흘이 지나서였다. 그는 초췌해진 채 거의 실성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이번에도 그는 어디서 뭘 하고 있다가 돌아왔는지 그녀에게 일절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캐묻자 그는 낮은 목소리로 단 한 마디를 하고 돌아누웠다. “당신에게 너무 미안하구려…”
그 말이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이튿날 그녀가 전화를 받고 파출부 일을 나간 사이 그는 서울시장 앞으로 유서를 남기고 세상과 영원한 작별을 했다.
“시장님, 왜 저희는 골목골목 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또 우리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만 합니까… 택시를 잡으려고 온종일을 발버둥치다 눈물을 흘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휠체어만 눈에 들어오면 그냥 지나치고 마는 빈 택시들과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저렸습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저에게 보내는 그까짓 신경질과 욕설이야 차라리 살아보려는 저의 의지를 다시 한번 다져보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지 않은 서울의 거리는 저의 마지막 발버둥조차 꺾어 놓았습니다. 시장님 을지로의 보도블럭은 턱을 없애고 경사지게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밖에는 시내 어느 곳을 다녀도 그놈의 턱과 부딪혀 씨름을 해야합니다. 또 저 같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화장실은 어디 한군데라도 마련해 주셨습니까… 저 같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사람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우를 받아도 끝내는 이용당합니다. 저는 그 동안 조그마한 꿈이라도 이뤄보려고 애써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는 저를 약해지게만 만듭니다. 시장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 같은 사람들에게도 살길을 열어 주십시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 당시 서울시장 김아무개 씨는 아침 간부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가 오늘 기가 막힌 얘기를 신문에서 봤습니다. 몸이 불편한 어떤 사람이 내 앞으로 보내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는데, 그 유서 내용이 너무 가슴 아파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뿐 그후 그의 자살을 계기로 당시 서울시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편의시설 설치에 나섰다는 보도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1994년 3월 8일 오후 9시경, 서울 서초구청 앞에서 장애우 한 명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노점상이었던 그는 구청의 극심한 노점단속으로 자신의 생계를 이어갈 터전을 잃게 되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중증장애우인 최정환씨는 결국 3월 21일 새벽 1시 50분 그의 고달픈 37살 인생을 마감했다. 

돌아보면 즐거웠던 일이 하나도 없었고, 따뜻함을 느꼈던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그는   구청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쳐다보며 벌써 한 시간째 내내 이 생각을 머리에 떠올리며 침울해 하고 있었다. 구청 건물 외벽인 유리창들이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고 있었고,  점심시간 끝무렵이어서인지 구청 앞 인도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모두들 제 갈 길이 바빠서 인도 한 켠에 놓여 있는 낡은 삼륜 오토바이 한 대와 그 옆에 오토바이를 닮은 낡은 옷차림의 한 사내가 목발을 짚고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돌아보면… 37년을 살아오는 동안 사람다운 대접을 받은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그래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분노에 차서 짧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그는 구청 공무원들이 자신을 인간이 아닌 벌레 취급을 하면서 경멸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가 어제 저녁 무렵 구청을 찾은 건 해가 뉘엇뉘엇 질 무렵 구청 단속반원들이 그가 행상을 하고 있는 곳에 들이닥쳐 순식간에 스피커의 배터리를 탈취해서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배터리가 없으면 장사를 할 수 없고, 장사를 할 수 없으면 굶어야 했기 때문에 그는 어떻게든 배터리를 되돌려 받아야 했다. 그렇지만 구청 어느 부서에 단속반원들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어서 그가 무작정 찾아간 곳은 구청 당직실이었다. 당직실에는 머리가 벗겨진 사내 한 명이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다가 그를 맞았는데, 사내는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힐끗 그를 쳐다보고 다시 눈길을 신문으로 돌리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저기… 배터리를 찾으러 왔는데요…”
“배터리? 무슨 배터리?”
“저기… 단속반원들이 나와서 배터리를 가져가서… 돌려 받으려고 왔습니다.”
“아 노점상이구먼, 그런데 여긴 배터리 보관하는 데가 아닌데, 그리고 단속반원들도 다 퇴근했으니까 볼일이 있으면 내일 오쇼.”
그가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는 결의를 다지기 위해 입술을 한 번 꽉 깨문 다음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배터리를 찾아야 합니다! 배터리가 없으면 내일 장사를 나갈 수가 없고… 장사를 못 나가면 굶어 죽기 때문에… 하늘이 두 쪽 나는 일이 있어도, 이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오늘 배터리를 꼭 찾아갈 겁니다…”
그가 말을 마친 다음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자 그제서야 사내는 신문을 접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답답한 양반이구먼, 기다려 보쇼. 아직 단속반원들이 남아 있는지 연락해 볼 테니까,”
사내가 전화기를 붙잡고 누군가와 통화를 했고 잠시 후 그와 안면이 있는 단속반원 한 명이 당직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누군가 했더니 최정환 씨 였구먼.”
단속반원이 아는 체를 했다. 그는 눈앞에서 희미하게 웃고 있는 코에 작은 점이 있는 사내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해 6월 그는 불시에 들이닥친 단속반원들과 실갱이를 하다가 떠밀려 넘어졌고, 그 과정에서 하나 남아있는 왼쪽다리마저 부러지고 말았다. 그 때 그를 밀친 대여섯 명의 단속반원들 중에 이 사내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피해보상을 받으러 구청을 찾아갔을 때 “고소만 하지 않는다면 편안히 장사하도록 해주겠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 사내였다. 당시 그는 사내의 말을 철떡 같이 믿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에, 행상밖에는 다른 먹고 살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분하고 억울했지만 다친 것에 대해 피해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단속반원들을 고소하지도 않았다. 그랬는데 결국 사내의 말은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병원에 입원한 지 3개월만에 돈이 없어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퇴원한 그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양재역 부근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나갔다. 그런데 노래 테이프를 팔기 위해 스피커의 볼륨을 높이자마자 득달같이 단속반원들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그는 “편안하게 장사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소리치며 거칠게 항의했지만 “그런 약속 한 적이 없다.”는 싸늘한 대답만을 들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단속반원들의 단속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분노한 그는 자신이 입원했던 병원을 찾아 전치 8주의 상해 진단서를 발급 받은 다음 그 진단서를 가지고 경찰서를 찾아갔다. 그는 고소장을 접수하는 경찰에게 “단속반원들의 과잉단속으로 부상을 당했으니 보상을 받게 해주고 과잉 단속을 한 단속반원들을 처벌해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경찰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젊은 경찰관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노점

 
자체가 불법이고, 정황도 분명하지 않은데다 현장을 목격한 증인도 없으니까 고소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낙담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행상 외에는 먹고 살 다른 수단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오토바이를 끌고 나왔다가 단속반원들에게 배터리를 뺐기는 사태에 이르고 말았던 것이다.
다리를 다치게 만들고, 거짓말로 자신을 속인 당사자가 앞에 있으니 그의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사내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이것 봐요. 최정환 씨, 째려보면 어쩔 거요? 한 대 칠 거요? 그러길래 내가 알아듣게 충분히 얘기했잖아요. 거기서 장사하면 안 된다고, 불법이라고 누누이 얘기했는데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요?”
“그때 선생님이… 내 다리가 부러졌을 때, 고소하지 않으면 편안하게 장사하게 해준다고 약속 하셨잖아요…”
“무슨 약속? 나는 그런 약속 한 적이 없는데, 약속을 할 위치에 있지도 않고 말야, 어찌됐건 노점은 불법이니까 다시 장사 할 생각은 마쇼.”
“장사를 하지 않으면 무슨 수로 먹고 삽니까? 일자리도 없는데, 저더러 굶어 죽으라는 말인가요…”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고, 왜 당신 먹고사는 문제를 나한테 얘기하는지 모르겠군. 그리고 말야 최정환 씨 입에서 먹고살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사내가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당신도 먹고살아야 하겠지만 나도 먹고살아야 한단 말이오. 나한테 딸린 자식이 셋이나 되는데 이 자리에서 짤리면 나도 먹고살 길이 막막하단 말야. 이것 봐요 최정환 씨, 내가 이런 얘기는 하지 않으려 했지만 난들 왜 감정이 없겠오. 당신 불쌍하지. 불편한 몸으로 먹고살려는데 어떻게든 봐주고 싶지. 그렇지만 당신을 봐주면 내가 짤린단 말야. 사정이 어떤지 아슈? 노점상 때문에 장사 안 된다며 세금 내지 않겠다는 민원 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지, 위에서는 거리 미관을 해치는데 뭐하고 있느냐고 닦달해 대지. 몇 푼 월급 쥐어 주면서 똥개 내몰 듯이 내모는데, 이 짓이라도 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내 처지는 생각해 봤느냔 말야? 더 이상 긴 말 필요 없고 배터리 절대 돌려줄 수 없으니까 그렇게 알고 돌아가!”
사내는 흥분했는지 어느새 반말로 지껄이고 있었다. 
“배터리를 돌려주지 않으면… 저도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봐 최정환 씨, 당신 지금 땡깡 부리는 거야! 왜 먹고살 길이 없어! 당신같이 몸이 불편한 사람은 신청하면 정부에서 돈주잖아,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먹고살면 되지 왜 한사코 거리에 나오겠다는 거야. 나는 이 짓 그만두면 정부에서 돈주지 않아. 당신이 나보다 처지가 낫다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그는 “정부에 생계비를 지원해 달라고 신청했어요. 하지만 호적에 보호자가 있어서 생활보호대상자가 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어요. 나도 행상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절대 아니에요. 취직이 안되니까 어쩔 수 없이 노점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되는데 어떡해요…” 라고 대꾸하려다가 그런 말까지 하면 자신이 너무 비참해질 것 같아 꾹 참았다. 그렇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는 몇 번 동사무소를 찾아가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호적에 보호자인 아버지가 있다며 거절당했던 것이다.   

그는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아 고아원에서 자라야 했다. 그리고 나이 스무살 때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장애우가 된 그는 여기저기 떠돌다가 마천동에 있는 해바라기회라는 장애우 공동체에 들어가게 됐고, 거기서 행상 일을 하면서 고달픈 삶을 이어갔다. 그런데 고아인줄 알고 있었던 그는 실제로는 고아가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스물일곱살 때 부모님을 찾는다는 신문 광고를 냈는데, 광고를 보고 친아버지가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아버지를 만나고 호적도 찾게 되면서 그의 삶에는 잠시 햇살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는 아버지라는 사람을 몇 차례 만났는데 어느 순간 아버지가 그가 찾아오는 것을 꺼려하는 표정을 역력하게 드러냈다. 그는 아버지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자세히 알아보니 너는 내 자식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 말속에 숨겨져 있는 뜻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말인즉슨 몸도 불편하고 변변한 직업도 없는 자식이 부담스러우니까 만나지 않겠다는 뜻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는 아버지라는 사람을 찾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되찾은 호적에 아버지가 살아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그는 동사무소를 찾아가 사정하고 또 사정했지만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생계비를 지원 받는 생활보호대상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최정환 씨, 내 말 알아들었으면 돌아가요. 내 이런 얘기까지는 하지 않으려 했지만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장애우들이 욕먹는 거요. 장애가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떼쓰고 억지 부리면 안 되는 것도 다 되는 줄 아니, 그러면 안돼. 그런 거지 근성은 빨리 버려야지…”
사내가 말을 마치고 그가 뭐라고 대꾸할 새도 없이 그의 어깨를 한 번 툭 친 다음 당직실 문을 열고 나갔다. 남겨진 그는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 분노가 치솟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떼쓰고 억지를 부리고 거지같다는 사내 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머리는 하얗게 비어서 더 이상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빌어먹지 않고 행상 일이지만 열심히 내 힘으로 벌어 먹고살려고 했는데 그런 모습이 사람들에게 거지같이 비쳐졌다는 사실이 그는 못내 괴로웠다. 내가 거지인가? 그래 어쩌면 나는 거지일지도 몰라… 그는 배터리를 돌려 받으러 왔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그 자리에 무너지듯 스르르 주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 삶의 마지막 벼랑까지 밀리고 또 밀려서 세상 어디에도 이젠 발 딛을 곳이 없다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주를 병째 들이키면서, 만약 죽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을까를 곰곰이 따져봤지만 결론은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행상 일을 하지 못하면 구걸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거리에 나가 바구니를 앞에 놓고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 몇 개에 기대 남은 삶을 이어가야 하는데, 말 그대로 그렇게 거지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그는 다짐했다.
이렇게 죽는 건 나뿐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을 앞둔 그는 불현듯 먼저 간 동료들이 생각났다.    
그보다 네 살 많은 장 씨가 전기 줄에 목을 매 자살한 것은 작년 봄이었다. 장 씨는 반신불수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장 씨는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12만원의 셋방에서 노모와 부인 그리고 3남1녀의 자녀들을 부양하고 있었다. 장 씨는 7년 전부터 노점상으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해 왔는데 수입이 변변치 못해 그 즈음 집세 보증금마저 모두 까먹고 월세마저 열 달치나 밀려 집주인의 방을 비워달라는 독촉에 시달리고 있었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겨우겨우 살던 장씨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2월경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빚을 얻어 1백2십만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포장마차 한 대를 마련했는데, 장사를 시작한지 며칠만에 노점상 일제 단속에 걸려 구청 철거반원들에게 포장마차 손수레를 빼앗겨 버렸던 것이다. 장씨는 포장마차를 되찾기 위해 여러 차례 구청에 찾아가 눈물로 호소했으나 구청 관계자는 벌금 30만원을 내야 한다며 장씨의 호소를 묵살했다. 장씨는 자신의 무능한 처지를 비관해 자살했다.
장씨가 자살한 며칠 후 이번에는 인천에서 그보다 세 살 어린 김 씨가 빨래 줄로 목을 매 자살했다. 김씨는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편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김씨에게는 소아마미 장애를 가진 아내와 다섯 살 난 아들이 딸려있었다. 김씨는 신문팔이를 하다가 3년 전부터는 가방에 수세미와 좀약 고무장갑 등 생활용품을 넣고 다니며 각 가정을 방문해서 판매하는 행상 일을 해왔는데 수입이 형편없었다. 두 다리는 멀쩡했지만 한쪽 팔을 쓸 수 없어 공장에 취직할 수 없었던 그는 자살하기 며칠 전 다섯 살 난 아들을 앉혀놓고 “내가 무슨 일을 해서라도 이 자식만은 제대로 교육시켜야 할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결국 김씨는 3월 초 내내 날이 궂어 행상을 못나가게 되자 몹시 침울해진 상태에서 찬장에 양념이 하나도 없는 등 극심한 생활고를 확인하게 되자, 장난처럼 내가 죽어야지… 라고 한탄을 하며 집을 나가더니 그 길로 목을 매 자살했다는 것이다.  
이런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그는 “악착같이 살아 남아야지 죽긴 왜 죽어.”라며 먼저 간 동료들을 비난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동료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지금의 그처럼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거대한 벽과 마주쳤던 것이다. 몸이 불편하지 않다면 어떻게든 그 벽을 부수려 애라도 써보겠지만 남은 한 손으로 한 발로 그 벽을 부수겠다고 몸부림치는 것은 애당초 무모한 바위에 계란 던지기에 다름 아니었다. 장애를 가지게 된 순간부터 속절없이 스러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점지 받았다면 그 운명에 거역하지 말고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는 마침내 자살을 결심했다. 이제 남은 건 어떻게 죽느냐는 자살에 이르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뿐인데, 그는 빨래 줄에 목을 매는 소극적인 방법보다는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내 몸을 활활 불사르면 어쩌면 높은 곳에 있는 양반들이 자비를 베풀어서 나 같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노점상을 허가해 줄지도 몰라. 그러면 내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을 거야…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아침을 맞았다.
  구청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쳐다보며 한 시간째 서 있던 그는 오토바이에서 신나통을 꺼내 들었다. 그런 다음 차가운 액체를 머리에 부었다. 갑자기 주변이 깜깜해졌다. 그의 눈가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는 어둠 속에서 불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으로 라이터를 켰다.

분신 후 강남시립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그는 얼굴에 3도, 신체 2도, 전신 88%의 화상을 입고 14일을 누워 신음했다. 분신 직후 아직 정신이 있을 때 그는 찾아온 동료들에게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복수해달라…” “4백만 장애우를 위해서라면 내 한목숨 죽어도 좋다…”라고 세상에서의 마지막 말을 남겼다. 1994년 3월 21일 최정환 그는 그 힘든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글 이태곤 기자
삽화 이상윤 만화가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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