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남성과 여성, 두 날개로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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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도 함께 이 퀴즈를 풀어보시기를 권합니다.
U40~50대 남성의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
U최단 시간내 출산율 감소가 가장 높은 나라
U남녀 성비가 가장 불균형인 나라
아마 세 번째 힌트에서 많은 분들이 정답을 아셨으리라 믿습니다. 바로 사랑스런 우리나라입니다. 이 모든 것이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에 기인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구요.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지구상 유일하게 남아있는 모순된 호주제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의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저는 2003년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호주제 폐지에 대한 과학적 의견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최교수는 제출한 의견서에 부계혈통주의의 생물학적 모순을 가치중립적인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속에 들어있는 정보의 양에 있어 정자는 난자의 부수적인 역할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결국 인간의 욕심, 구체적으로는 남성의 욕심에 의해 부계혈통주의가 수백 년째 내려오고 이로 인한 피해자는 여성만이 아닌 남성 자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근거있게 제시합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호주제 폐지를 얘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오늘 소개할 영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웨일 라이더(Whale Rider)’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출신의 여성 감독이 조상의 전설에 대한 소재를 마오리족의 눈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뉴질랜드판 호주제 폐지 영화인 셈이죠. 주인공 역시 마오리 소녀인 ‘케이샤 캐슬 휴즈(파이 역)’가 캐스팅 되었고 평범했던 이 소녀는 지금 유명 헐리우드 감독들의 영화출연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 금년도 5월이면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3’에서 신비로운 이 마오리 소녀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마오리 족의 선조는 고래를 타고 태평양을 떠돌다가 뉴질랜드에 정착하였다고 합니다. 이 부족의 족장은 당연히 남자아이, 특히 장남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파이의 엄마는 출산 도중 쌍둥이 오빠와 함께 숨을 거둡니다. 죽어가며 남긴 말은 ‘파이’라는 외침이었습니다. 엄청난 충격 속에 아빠는 할아버지의 명을 거역하고, 살아남은 여자아이의 이름을 ‘파이키아’라고 부르며 고향을 떠나갑니다. 할아버지 ‘코로’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이 여자아이의 이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파이키아’는 고래를 타고 온 전설 속 선조와 동일한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죽어버린 손자와 유럽으로 떠난 버린 아들에 대한 분노와 참담함 속에 할아버지는 손녀 ‘파이’의 영특함과 능력을 더욱 모질게 외면합니다. 장남에 대한 선호사상이 어느 곳보다 심해 여자 아이는 지도자를 선발하는 훈련장 근처에도 얼씬할 수가 없습니다. ‘코로’는 마을의 모든 장남들을 모아서 마오리족 특유의 훈련을 강행하며 미래의 지도자를 만들려고 하지만 아무도 이를 따르지 못합니다.
결국 족장 신분의 상징인 고래뼈 목걸이는 바다 속 깊이 가라 앉아버리고, 해변가에는 고래들이 상륙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 모든 잘못이 손녀 ‘파이’에게서 기인한다고 믿는 할아버지는 더욱 그녀를 외면합니다.
부계혈통주의를 고수하는 모든 보수의 중심인물로 할아버지는 역할을 다할 뿐입니다. 현대와 전통의 갈등 속에 마을 사람들은 ‘파이’를 조용히 응원합니다. 몰래 봉술을 가르쳐 주고 격려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파이’가 미래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지는 못합니다.
‘웨일 라이더’는 뉴질랜드 토착민족의 민담을 소재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니키 카로’는 ‘제인 캠피온’ 이후 떠오르는 뉴질랜드의 여성 감독입니다. 더욱이 그녀는 마오리 족의 후예로 자신의 선조에 대한 얘기를 여성적 섬세함이 돋보이는 수려한 이미지와 때로는 동적이지만 평온함을 잃지 않는 연출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저는 두 가지 관점을 배웠습니다. 하나는 부계혈통주의에 대한 모순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모순을 극복한 이후에 전개될 사회의 통합과 사랑입니다. 죽어가는 고래들을 데리고 고래 등에 올라탄 ‘파이’가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로 들어갈 때 마을의 모든 사람은 전통적 가부장제도의 수장을 지켜봅니다. 새로운 사회질서의 탄생을 예고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파이’가 지도자가 되면서 아빠는 다시 마을로 돌아오고 위대한 지도자를 여자라는 이유로 외면한 할아버지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합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카누에 올라탄 할아버지와 ‘파이’는 마오리 족의 노래를 부르며 새 배를 저어갑니다. 세대와 성별간의 통합이 이루어지며 부계혈통주의로 잃었던 가족의 사랑이 다시 이어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현실의 우리 사회가 이 영화의 해피엔딩 장면처럼 끝나지는 않겠지만, 호주제 폐지가 사회의 큰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점을 저는 확신합니다. 세상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날개로 날아간다는 자연의 법칙을 새삼 배운 영화였습니다. 금명간 새로운 사회질서의 탄생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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