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아톤’과 ‘밀리언 달러 베이비’
본문
갑자기 웬 달리기? 웬 산? 요즘 유행하는 웰빙? 그 중에서도 정신분석 공부하는 친구들의 놀림이 압권입니다. 저 자신의 공격성, 성적 에너지의 승화된 형태라는 것이지요. 여기서는 말문이 막힙니다.
과연 그러한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나는 왜 힘들게 달리고 산에 오르는가?’
그러던 중 최근 개봉된 두 편의 영화가 의식 한편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영화 ‘말아톤’과 미국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바로 그것입니다.
‘말아톤’의 초원(조 승우 분)과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매기(힐러리 스웽크 분)가 달리고 권투를 하는 이유에서 답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강한 개인에 대한 동기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자유를 향한 본질을 본 것이지요.
자폐증은 정신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뇌질환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유지됩니다. 다만 기성세대의 눈으로 봤을 때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할 뿐이지요. 초
원이는 매일 달립니다. 처음에는 엄마의 권유로 타율적인 달리기를 하지만 점차 자신만의 가치를 본능적으로 느끼기 시작합니다. 초코파이와 짜장면으로 길들여지지 않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느끼는 것이지요. 일찍이 작가 장정일은 강아지 기르기와 인간 교육에 대한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강아지는 교육을 통해 길들여지지만 깨달음이 없다. 인간은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다. 다만 교육을 통해 깨달음이 있을 뿐이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네 역사는 늘 인간과 환경간의 반복되는 싸움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성장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초원에게 이 사회는 늘 위협적인 환경으로 존재합니다. 엄마의 눈물과 강인함 그리고 한숨과 비탄마저도 초원에게는 불안의 그림자로 작용하지요. 언젠가부터 초원은 달라집니다.
이름 그대로 얼룩말이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낍니다. 엄마의 손을 놓고도 초코파이가 없이도 바람의 저항을 가르며 달립니다. 흔히들 이 영화를 보고 자폐증이라는 병을 이겨낸 휴먼드라마라는 평을 많이 합니다.
저는 단연코 아니라고, 당신들의 휴머니즘은 동정에 바탕을 둔 온정주의적 사고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아톤’에서 본 초원의 모습은 환경에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아름답고 자유로우며 강인한 청년의 자화상이었습니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확신. 더 이상 비참하고 싶지 않은 자기 존중감이 전해집니다. 가족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차갑게 거절당하는 매기의 모습에서 우리는 분노를 보지 못합니다. 강한 개인은 자유로움에 모든 것을 바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지요. 환경이 가져다주는 거대한 저항을 온 몸으로 느끼며 걸어가는 기쁨을 느낍니다. 그 동기가 어디서 오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히말라야를 등정하는 사람들이나 가까이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이들에게 왜 힘들여 그곳으로 가느냐는 질문은 우문에 불과합니다. 단지 그리하는 것이 자유롭고 그것이 바로 지고지선(至高至善)이라고 믿기 때문이지요.
프랭키 또한 권투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영혼입니다. 매기와 프랭키는 강한 개인이라는 공통분모에서 출발하고 함께 사라집니다. 더 이상의 구차한 행복은 그들에게 사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두 영화를 바라보며 저는 인간이 지닌 무한한 강인함에 경외를 표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명제 앞에 저는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하나는 기억이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우리는 흔히 자신의 목숨을 가볍게 하지 말라는 충고를 듣습니다.
전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자신의 목숨을 지나치게 무겁게도 하지 말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있다’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틀렸습니다. 허약한 신체에도 건강한 정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건강한 신체를 지녔지만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개인들이 줄지어 이 나라를 좀먹고 있습니다. 민중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이 땅의 의사로서 충언을 드립니다.
“지나친 신체건강은 권태로움, 무미건조, 몸짱 신드롬의 원인이 되며, 특히 이기적 성향을 지닌 분들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건강한 공동체 형성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봄이 오고 있습니다. 겨울바람을 이겨낸 씨가 꽃으로 피어나듯이 환경을 이겨낸 강한 개인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것입니다. 건강하십시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