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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존경할만한 여성들로 가득합니다

[이영문의 영화 읽기] 레이(Ray)

본문

 
 
지난 주말 저는 춘천과 가평사이에 있는 삼악산을 다녀왔습니다. 완만한 등선폭포 방향을 우회해서 가파른 돌산으로만 형성된 의암호 방향으로 올랐지요.

네발로 기어서 힘들게 올라간 삼악산에서 바라본 의암호와 춘천은 보기 드문 비경이었습니다.

또한 암벽사이로 무수히 피어난 진달래를 보며 처음으로 철쭉꽃과 이들을 구별하는 법을 함께 동행한 여성들로부터 배웠지요.

 이 분들은 저와 함께 정신건강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중요한 분들입니다. 언제나 제게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고 격려해주지만 정작 그들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즐겁게 일하기를 원할 뿐입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이 분들, 구체적으로는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어머니와 연약한 시각장애우 남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호에 제가 산에 가는 이유를 강한 개인화 작업의 하나라고 고백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넉넉한 자연에 대한 귀향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군데군데 중력과의 싸움이 있지만 숨가쁘게 오른 뒤에 느끼는 평온함은 산행의 백미지요.

저는 산이 남성의 강인함을 상징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산을 처음 오르는 사람들은 산을 정복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진정한 산꾼들은 산이 자신을 받아주어야만 오를 수 있다고 입을 모아 얘기합니다.

산은 바로 여성의 부드러움과 세월을 인고하는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모계의 상징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잉태하고 낳고 기르는 것만으로도 많은 어머니들과 여성들은 산과 동일합니다. 산에서 잉태된 강물은 굽이져 저 멀리 흐르지만 언제나 산은 그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수많은 계곡의 물을 떠나보내지만 산은 그 물결들이 되돌아오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확실히 산은 어머니의 품과 같습니다.

오늘 얘기하려는 영화이야기를 끄집어내는데 서두가 너무 길었습니다. 달리 이렇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영화를 보시라는 저의 강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후천적 시각장애우였지만 음악에 대한 지대한 영향을 끼친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영화한 ‘레이(Ray)’를 소개합니다.

대부분의 자서전적인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이 영화는 한 위대한 인간의 역경과 좌절과 희망과 꿈을 그리고 있습니다. 알바니라는 시골에서 흑인으로 태어나 7세때 녹내장으로 시력을 상실하고 동생마저 익사하는 비운을 겪는 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 그려집니다. 또한 영화 전면에 흐르는 레이 찰스의 음악들은 보는 이들을 감동시키지요. 많은 평론에서 레이 찰스의 음악과 그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관점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위대한 어머니와 그 영향을 받은 연약한 한 남성의 시각에서 보았습니다.

레이찰스는 위대한 음악가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자신이 받은 사랑보다 더 많은 것을 이 세상에 나누어주고 작년 봄날 이 영화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무려 15년 동안 이 영화 제작에 깊이 관여한 레이는 자신의 모습을 연기하는 제이미 폭스의 모습을 결코 볼 수 없었지만 영화제작과정 중에 충분한 교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의 예견대로 제이미 폭스는 금년도 미국내 모든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레이 찰스의 탄생이 된 것이지요. 

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가난한 레이에게 희망은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더욱이 동생이 익사하는 장면을 그저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점차 어두워지는 세상의 빛을 겪어야 하는 시각장애인 레이에게는 물에 대한 공포와 환각이 그를 마약중독으로 이끌게 합니다.

그러나 레이에게는 짧은 생애를 사시지만 독립과 강한 개인을 심어주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세상을 혼자 딛고 일어서라는 어머니의 교육은 어린 레이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무모합니다. 배운 것 하나 없지만 레이의 어머니는 시력과 동생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레이에게 본능을 일깨웁니다.

 ‘음악이 너의 모든 것이 될 것이다’라는 간결하면서도 신념에 가득한 메시지는 레이에게 볼 수는 없지만 언제나 느낄 수 있는 어머니의 심상을 심어놓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레이는 세상 여러 곳에서 느끼게 됩니다. 아내, 여성편력, 마약 등이 바로 그것이지요.

볼 수 없는 사람은 남을 쉽게 믿지 못합니다. 언제나 자기 옆에  있는 것만을 붙잡고 믿으려고 하지요. 아내에 대한 충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충절보다는 자신의 영혼을 뒤흔드는 어둠과 무서움으로부터 구원받으려는 연약함의 표현이 마약에 손 대게하고 바로 옆에 있는 여성음악인과 사랑에 빠지게 합니다.

영화는 결코 강인한 인간의 모습이 아닌 연약한 어린아이와도 같은 레이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델라를 만나 부른 노래 ‘I’ve got a woman’, 애인 마지와 싸우고서 서로 으르릉 거리며 부르는 ‘Hit the road Jack’등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솔직한 레이의 자전적 노래들입니다. 어머니를 포함한 이들 모두는 레이를 레이답게 만들고 레이가 이 세상에서 참으로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만들어 준 장본인들입니다.

아름다운 여성들이 많은 남성으로부터 사랑받고 성장하고 성숙하며 늙어가듯이 아름다운 남성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는 이런 여성을 ‘존경할만한 여성 혹은 입증할만한 여성(testimonial woman)’이라고 합니다. 법정에서 증언(testimony)하듯이 이 남성이 훌륭한 남성임을 입증해주는 여성들이란 뜻이지요. 역설적으로 이 영어단어는 바로 남성의 고환(testis)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옛날 용사들이 서로 결투를 한 뒤에 진 용사는 무릎을 꿇고 이긴 용사의 고환을 잡고 자신이 진 것과 상대방이 진정한 용사임을 인정하는 하나의 의식을 행했다고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레이’는 어머니, 아내, 여인들로 이어지는 레이 찰스의 여성상에 대한 고백과도 같은 영화입니다. 세상이 어두워 보이질 않았을 때 그의 손을 잡아끌어준 어머니의 손이 아내 델라에게 이어져 마약을 끊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음악에 대한 창조가 어려워질 때 동료 여성 음악인들은 그의 예술성을 북돋아줍니다.

저는 이 영화에 나타난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여성들과의 관계 속에서 레이를 봅니다. 그는 그저 연약한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마냥 즐겁게 음악만을 하고 싶은 어린 아이말입니다. 그런 그를 많은 여성들이 증명해주고 훌륭하게 성장시킵니다. 지난 호에 있었던 "말아톤"의 초원이 어머니 또한 그런 훌륭한 여성이지요.    

봄날이 가고 있습니다. 봄바람과 같은 부드러움과 역사를 잉태하는 자연스러움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흔히들 봄은 여성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 이 땅의 남성들이 자신이 살아가며 빚을 지고 있는 여성들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떠신지요. 건강하십시오.

작성자이영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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