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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문의 영화 읽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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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본능적으로 갖게 되는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셨습니까?

불안입니다. 예, 맞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속에 포근하게 있던 태아가 세상밖으로 몸을 내밀 때 닥쳐오는 찬 기운은 갓난 아기들에게 무서움으로 다가오지요. 마구 소리를 지르며 울게 되고 곧이어 포근함, 따뜻함이 함께 오면서 아기는 편안해지고 잠이 들게 됩니다.

조금씩 커가면서 아기들은 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무서움이 엄마의 손길이 깊어질수록 사라지게 되고 혼자서 걷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걷지 못하게 되는 장애우들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마음속에 지닌 채 성장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독립이라는 것. 참 어려운 말입니다. 자립 이전에 독립입니다. 스스로 설 수 있다는 뜻이지요. 장애우들은 이 기본적인 일상을 본인의 뜻과는 달리 얻지 못한 채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흔히들 자아(自我)라는 것이 심리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스스로 걷고 뛰면서 신체자아가 결합될 때 온전하게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사회와 자신을 통하게 하는 것은 심리적인 관계만이 아닌 신체적인 일로써 먼저 시작합니다.

오늘은 걷지 못하는 여성 장애우의 사랑과 세상만나기에 대한 영화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조제는 신도시의 외곽지역 빈민촌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걷지 못하는 장애우입니다. 세상을 보고 싶은 그녀에게 주변의 시선은 너무나 차갑습니다. 할머니는 유모차에 조제를 태우고 새벽에 몰래 산책을 나갑니다. 주변 사람들은 유모차 안에 마약이 있다고 쑤군거립니다.

조제가 어렵게 산책을 하는 이유는 보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지요. 꽃과 고양이, 그리고 사실은 무서움의 극치인 호랑이를 가장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어야만 용기가 날 것 같아 사진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우연히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츠네오는 조제를 도와준 인연으로 아침밥을 얻어먹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먹은 츠네오가 계란말이을 어떻게 맛있게 하냐고 물을 때 조제는 태연하게 대답합니다.

“내가 만들었는데 맛이 없으면 이상하지.”
자의식과 나르시즘이 담긴 멋진 말입니다.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고 남자에 대해 특히 적대적인 조제는 점차 츠네오에게 끌리고 츠네오 또한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혼자 남은 조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일순간의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사랑을 느낍니다. 영원히 조제의 두 다리가 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지요. 조제는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츠네오를 일찍부터 이해합니다. 츠네오의 눈물과 조제의 독립은 어쩌면 예정된 사랑의 수순이었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 성장합니다. 아픈만큼 성장한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지요. 

물고기를 좋아하는 조제는 걷지 못하는 자신을 물고기에 비유하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두 사람의 마지막 여행에서 물고기의 성이라는 호텔은 조제에게 다시금 세상을 마주 대할 수 있는 행복을 줍니다. 영화의 제목은 그러한 연유로 만들어졌습니다. 잠들어 있는 츠네오를 향해 조제는 독백합니다.

‘너를 만나려고 나는 바다에서 헤엄쳐 도망쳤지. 빛도 소리도 없는 그 곳은 바람도 안불고 비도 오지 않는 곳이지. 오직 정적만이 있는 곳이야.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으니까. 언젠가 내가 사라지고 나면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해저를 굴러 다닐거야.’

츠네오를 만나면서 부서진 휠체어를 버렸던 조제는 헤어진 이후 전동휠체어를 타고 세상을 다시 만나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얼굴을 가리지 않고 주변과 소통합니다. 여전히 맛있는 고기를 구워 혼자 저녁을 먹고 정적만이 흐르는 자신의 성에서 책을 읽고 밥을 먹습니다. 더 이상 조제는 외로워하지 않고 세상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츠네오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이 기억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장애우를 주인공으로 다룬 대부분의 영화는 어설픈 해피엔딩을 전제로 합니다. 영화는 현실을 닮아가려고 노력하지만 현실 그 자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관객들이 원하는 환타지를 대리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적 생각 때문이지요. ‘나의 왼발’이나 ‘말아톤’이 그러하지만 이 영화는 반대입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힘든 삶의 현실을 관객들에게 던집니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하이웨이의 노래는 그 현실을 반영합니다. 세상에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백가지가 넘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여기가 답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또한 달의 유혹 때문이기도 하고 운전면허를 따고자 하는 욕구를 강화시키려는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여행을 떠날 이유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여행은 현실의 자신에게 정직하게 돌아오는 것이니까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1년 뒤’라는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영화는 장애우에 대한 어설픈 연민이나 영원한 사랑 따위를 외치는 인본주의자들에게 현실적 담론을 던집니다. 사랑하는 것과 헤어짐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는 법이니까요. 그들 사이에는 흘러버린 시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조제는 마지막 여행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혼자되기, 작은 추억 만들기, 떠날 사람 떠나 보내기, 남는 시간에 침묵하기.

언제나 큰 하늘은 자신의 등 뒤에 있다는 강은교 시인의 ‘사랑法’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조제의 모습은 비장애우에게 사랑에 관한 더 많은 가르침을 선사합니다.

오늘도 일상을 담담하게 관조하며 살아가는 이 땅의 장애우들에게 일상의 일탈을 권하며 이 영화를 드립니다. 건강한 여름 보내십시오.

작성자이영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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