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본문
시기 - 멀지 않은 미래 어느 날
장소 - 서울 고등법원 325호 법정
장애우가 가상 성 서비스 제공 업소 이용시 차별을 받았다고 제소한 사건에 관해 판사와 검사, 그리고 사건을 제소한 원고 장애우 1, 2와 피고인 업주가 증인으로 참석해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이다.
판 사 이 사건의 본질은 장애우 차별과 관련된 것이다. 심문에 앞서 먼저 분명히 해둘 것은 얼마 전 개정 보안된 장애우차별금지법은 모든 영역에서 장애우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장애우가 편익시설 이용시, 예를 들어 업주가 이용을 거부하는 등의 행태로 장애우를 차별했을 경우 처벌을 받게끔 법에 명시되어 있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향락 시설을 과연 편익시설로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본 판사는 향락시설도 편익시설에 포함된다는 적극적인 판단을 해서 이 사건을 법정에 세웠다. 분명히 말하지만 장애우에 대한 차별 행위는 장애우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다. 이런 관점에서 본 판사는 이번 사건이 과연 차별인지 아닌지 분명하게 시비를 가릴 것이다. 먼저 검사 나와서 심문하라.
검 사 피고인으로 소환된 업주에게 묻겠다. 피고가 운영하고 있는 업소가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어떤 향락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업 주 제가 운영하고 있는 업소는 쉽게 말씀드리면 사이버 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곳입니다. 손님들이 찾아오면 실제가 아닌 가상 현실에서 성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간당 2만원의 이용 요금을 받고 있습니다. 남 여간의 성 접촉이 없고, 매춘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불법적인 소지가 전혀 없는 건전한 업소입니다.
검 사 사건에 대한 빠른 이해를 위해 업소에서 성 서비스가 어떤 방식으로 제공되는 지 자세하게 설명해 줄 것을 요구한다.
업 주 저희 업소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인공 현실입니다. 검사님도 사이버 스페이스란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전자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가능해진, 현실을 넘어서는 가상공간이죠. 좀 더 부연해서 설명 드리면 가상공간에서 성에 관한 3차원 시뮬레이션을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시뮬레이션은 아시다시피 실제상황과 유사하다는 의미인데, 현재 비행 시뮬레이션 전쟁 시뮬레이션 등등과 컴퓨터 게임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죠. 저희가 제공하는 성 서비스도 실제상황과 매우 흡사하게 제작된 성에 관한 프로그램을 가상공간에서 사람들에게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되신다면 좀 더 설명을 드리죠. 기초적인 지식이지만 1차원은 말 그대로 선이죠. 2차원은 평면입니다. 그리고 3차원이 입체이고, 4차원은 시간의 개념이 덧붙여져서 미래로 이동할 수 있고 과거로 거슬러 갈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아직 일반적인 전자기술의 발전이 4차원까지는 이르지 못했는데, 저희 업소가 가맹점으로 가입해 있는 본사가 개발한 프로그램은 각고의 노력으로 수년간에 걸쳐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결과 마침내 4차원에 근접한, 시간을 초월한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성에 대한 가상현실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됐던 것입니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큰비용을 들이지 않고, 또 간편하게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인류의 달 착륙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발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검 사 지금 피고 말은 이 사건의 본질과 전혀 관계없는 얘기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업소에서 실제로 성 서비스가 어떻게 제공되느냐이다. 본 검사는 원고인 장애우가 피고가 운영하는 업소를 이용하면서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업소가 어떤 환경이기에 차별을 받았다고 하는지 그 내막을 알고 싶어서 질문한 것이다. 빠른 심리를 위해 피고는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증언은 생략해 주기 바란다.
업 주 검사님이 요구하신 대로 구체적으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희 업소가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팔고 있는 상품은 꿈입니다. 이해가 안 되신다면 다시 설명을 덧붙이죠. 인간은 늘 꿈을 꿉니다. 비단 수면 상태의 꿈뿐만이 아니라 특정 대상에 대한 간절한 갈망 역시 꿈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죠. 그 중에서도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인 성 욕구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내밀한 마음속으로는 특정 대상을 염두에 두고, 특정인과 한 번 성행위를 갖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 보는 유명한 배우, 텔레비전에서 보게 되는 유명 탤런트가 바로 그 특정인이 될 수 있겠죠. 검사님도 눈치 챘겠지만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특정인과의 성행위가 저희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가상현실에서는 가능한 것입니다. 고객이 사전에 사진이나 이미지를 통해 대상을 지명한 후 수면상태에 빠져들면 꿈속에서 특정인을 만나 성행위를 갖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말씀드리면 마치 저희 업소가 사이버 섹스를 파는 불건전한 업소로 오해하실 까봐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데,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희 업소는 싸구려 사이버 섹스 제공 업소가 아니라 휴먼 사이버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이 개발된 데는 주목적이 이혼과 사별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혼자 된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건 다른 얘긴데, 검사님도 알다시피 성매매 특별법 시행으로 매매춘이 불법화 됐습니다. 현실에서는 성에 대한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근본적으로 막힌 거죠.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건 어차피 섹스는 육체적인 만족이 아니라 뇌의 쾌락을 위한 행위라는 겁니다. 실제적인 성행위를 통해 뇌의 쾌락을 얻거나, 가상현실에서의 성행위를 통해 뇌의 쾌락을 얻거나 쾌락을 얻는 과정은 똑같다는 거죠.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 됐다고 생각합니다만, 더 설명이 필요한가요?
검 사 판사님, 질문을 원고인 장애우 1에게 하겠습니다.
판 사 허락한다.
검 사 원고인 장애우는 다른 법도 아닌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피고인 업주를 고발했다. 고용에서의 차별도 아닌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여겨지는데 원고는 업주를 고발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기 바란다.
장애우1 저는 지체 1급의 중증장애우입니다. 양하지 소아미비 장애를 갖고 있죠. 나이는
올해 49세입니다. 제가 이 법정에 서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저기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업주가 명백하게 우리 장애우를 차별했다는 것을 고발하기 위해서입니다. 제 얘기를 하자면 부끄럽지만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단 한 번도 이성과 성행위를 가진 적이 없습니다.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상대가 없었던 거죠.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성과 단 한 번도 성적 접촉을 갖지 못했다는 게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검사님은 모르실 겁니다. 한때 여성만 보면 가슴이 뛰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성만 보면 같이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 수십 번도 더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본능적인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검사님도 아시겠지만 성 욕구를 해결하려면 범죄자가 되어야 하는데, 범죄행위를 저지르면서까지 성행위를 갖는다는 건 저 자신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고, 그래서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검사님,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장애를 특별하게 봐달라는 건 아니지만, 제 처지가 이러니까 여성들이 저를 외면하고 저에게 눈길 한 번 돌리지 않는 거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장애우이기 전에 사람입니다. 동물이 아닌 사람이란 말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짝을 못 찾은 것도 서러운데 누구나 갖고 있는 본능적인 욕구 한 번도 해결하지 못하고 죽어야 한다면 이보다 더 비참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요즘 제 머릿속은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이성과 성행위를 갖고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 생각 때문에 밤새 잠 못 이룬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죠. 그런 제 눈에 띈 것이 언론에 보도된 사이버 섹스방이었습니다. 실제적인 성 접촉 없이도 성행위를 한 것과 똑같은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그 기사를 보고, 저는 이 섹스방이 주제넘지만 마치 저를 위해, 제 소원이 너무 간절하니까, 하늘이 저를 위해 내려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소개 기사를 보자마자 바로 달려갔죠. 그런데 결론을 말씀드리면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다 만족한 표정으로 업소를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저를 비롯해서 제 옆의 여성장애우 같은 장애우들은 만족은커녕 저 업주에게 철저하게 기만당하고 고개를 떨군 채 업소를 나와야 했습니다. 명백하게 업주가 우리 장애우를 깔보고 차별했기 때문입니다. 처지도 서러운데 장애우를 두 번 죽이는 행위를 저지른 업주는 마땅히 법의 이름으로 준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검 사 판사님, 내친김에 또 한 명의 원고인 장애우 2의 증언도 같이 들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판 사 허락한다.
검 사 원고는 여성장애우다. 본 검사의 편견이 아니라 사회적인 통념상 여성의 입장에서 이자리에 서는 게 쉽지 않았을 거라는 판단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선 것은 참을 수 없는 차별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 차별의 실체를 증언해 주기 바란다.
장애우 2 저는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지고 있고, 올해 33세이고 미혼입니다. 검사님 말씀대로 여성이고 미혼인 제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는 갈등이 무척 많았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부끄러움보다는 장애우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끊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용기를 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성 경험이 있습니다. 심한 장애 때문에 일반학교에 가지 못하고 특수학교에서 학업을 마쳐야 했는데, 고등부 때 담임 선생님이 제 상대였습니다. 선생님과 사귀게 된 것은 이동할 때 선생님이 저를 자주 업어주셨기 때문인데 얼마 안가 신
체 접촉이 성 행위로 이어졌습니다. 저도 선생님을 좋아했고 선생님도 저를 좋아했기 때문에 저는 모든 걸 허락했습니다. 당연히 선생님과 수십 번 넘게 성행위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제 장애 때문인지는 몰라도 결혼까지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고등부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오는 순간 어느 날 무 자르듯이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제 사정을 아는 친구는 선생님이 나를 성적 노리개로 갖고 놀았다고 선생님을 고발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도 저를 좋아하지만 제 심한 장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별을 선택한 거라고 반박했습니다. 그 후로 단 한 번도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내 가슴 속에는 늘 선생님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문득 문득 선생님 생각이 났고,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지만 선생님과 다시 한 번 같이 잘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 제게 언론에 보도된 사이버 섹스방 기사는 오아시스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본 기사에는 분명히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다른 건 필요 없고 성행위를 하고 싶은 사람 사진을 가져오면 된다고, 그러면 그 사람과 같이 자는 효과를 느낄 수 있다고, 그래서 용기를 내서 선생님 사진을 들고 저 업주가 운영하는 업소를 찾았던 겁니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된 기사는 모두 다 사기였습니다. 제 장애를 이유로 체험을 할 수 없다면서 저 업주가 저를 차별하고 거부했던 것입니다.
검 사 심리를 위해 원고는 좀 더 구체적으로 원고가 업주가 운영하는 업소를 찾았던 그 날 벌어진 상황을 설명해주기 바란다.
장애우 2 밤 10시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콜택시를 불러 타고 업소 앞에 내렸습니다. 그런 다음 기사 아저씨에게 휠체어를 밀어달라고 부탁해서 업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카운터에 저 업주가 앉아 있었고, 저는 업주에게 업소를 찾아온 이유를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제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업주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만 했습니다. 제가 품에서 사진을 꺼내들자 그제서야 업주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저는 돈을 꺼내 이용료를 계산했고 업주가 저를 밀실로 안내했습니다. 밀실에는 블랙홀 같이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연결된, 정확하게 말하면 그 어두컴컴한 공간에 끝이 걸쳐 있는 침대가 놓여 있었고, 업주가 저에게 침대를 가리키며 거기 누우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장애 때문에 혼자서는 침대에 못 올라간다고 말하자 친절하게도 업주는 저를 업어 그 침대에 뉘어 줬습니다. 제가 침대에 눕자 업주는 산소마스크 같은 기구를 제 얼굴에 씌운 다음 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침대에 꽁꽁 결박했습니다. 저는 곧 수면상태로 빠져들었기 때문에 이게 제가 기억하는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저는 업주가 말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용료도 정당하게 지불하고 업주가 하라는 대로 다 했지만 제가 원한 경험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제 심정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업소를 찾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참담한 심정 때문에 혀를 깨물고 그 자리에서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검 사 어떻게 된 상황인지 업주는 해명하라.
업 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날 저 분이 제 업소를 찾아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실을 말씀드리면 저는 업소 문을 연 후 처음 맞는 이 특별한 손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척 당황했습니다. 우선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검사님도 목격했겠지만 저 분은 장애의 특성상 심한 언어 장애도 동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못 알아들어 허둥거릴 수밖에 없었는데 저 분이 품에서 남성 사진을 꺼내 들어서 비로소 고객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쯤에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장애우를 차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 분 증언대로 저는 저 분이 장애를 가졌지만 일반 손님들과 똑같은 절차를 밟아 밀실로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제 딴에는 배려한다고 업어서 침대에 눕혀주기까지 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장애우들의 프로그램 이용 자체를 거부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저 분이 원하는 체험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저도 일단의 책임을 통감합니다. 하지만 저 분이 체험을 하지 못한 것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지 일부러 그런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차별이라뇨, 맹세코 저는 그런 단어를 상상해본 적도 없습니다.
검 사 당신은 차별하지 않았다고 하고 원고인 장애우는 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이 상반된 주장이 혼란스럽다.
업 주 검사님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설마 프로그램이 그렇게 정교하게 짜여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 장애우 손님을 받기 전에는 프로그램의 오류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거죠. 오류를 쉽게 이해시켜 드리기 위해 저분의 증언을 예로 들어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분 얘기대로 우리 업소에는 어두컴컴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 빈 공간에는 생산라인처럼 긴 콘베어벨트가 설치되어 있는데, 고객이 침대에 누워 수면상태에 빠지면 저희가 침대를 콘베어벨트에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침대는 콘베어벨트를 따라 약 한시간 가량을 천천히 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입력된 프로그램에 의해 특정인과 사랑에 빠지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오류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불가항력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프로그램 자체가 너무 섬세하고 민감해서 저 분이 체험을 하지 못한 건데, 무슨 말이냐면 일반 고객의 경우 수면상태에 빠지면 대부분 마치 시체처럼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데 저 분의 경우는 장애 때문에 수면상태에 빠져서도, 이런 표현을 써서 죄송하지만 자꾸 꿈틀거렸습니다. 몸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거죠. 그렇게 된 겁니다. 저 분이 자꾸 움직이다보니 입력된 프로그램이 제대로 반응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체험을 하지 못한 거죠. 본사에 문의해보니 원래 프로그램이 그렇게 짜여있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던 거죠.
장애우 1 잠깐 검사님, 저 업주의 말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그럼 저의 경우는 왜 체험을 못한 겁니까, 저는 수면상태에 빠지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잡니다. 업주도 제가 몸을 움직여서 체험을 하지 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검 사 장애우 1의 경우는 어떻게 된 건지 업주의 설명을 요구한다.
업 주 마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유를 말씀드리면 저 분이 가슴 아파할까 봐 미처 설명드리지 못한 부분인데, 이 역시 프로그램의 오류라고 밖에 달리 설명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프로그램이 애초에 그렇게 짜여있다는 겁니다. 즉 프로그램의 한계가 거기까지인 거란 얘기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 프로그램은 사람의 기억력에 바탕해서 특정한 기억을 재생시켜주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시나요? 다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고객이 사이버 성행위를 갖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침대에 누워 수면상태에 빠지면 프로그램은 고객이 과거 가졌던 다양한 성행위 장면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꿈속에서 재현시켜 주게 되는 겁니다. 파노라마처럼 고객의 과거의 성 경험이 펼쳐지고 그게 마치 실제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저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전부입니다. 즉 성행위를 갖는 대상은 다를 수 있어도 장면은 모두 고객의 과거 경험인 거죠. 이제 설명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분 장애우 1은 체험을 하는데 꼭 필요한 과거 성 경험이 전혀 없었던 겁니다.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사람인데 나이 50살이 되도록 단 한번의 성행위 경험도 갖고 있지 못하다니, 그 사실을 과연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검 사 심문을 마치겠습니다.
판 사 업주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번 사건을 장애우 차별과 관련해서 기소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다. 내가 직접 업주를 심문하겠다. 본 판사가 이번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들춰보니 업주가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는 성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50억원의 개발비를 지원 받은 사실이 있다. 인정하는가?
업 주 본사에서 들었는데,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판 사 그러면 업주가 보기에 이 사건의 원고인 장애우는 성에서 소외된 사람인가, 아닌가.
업 주 성에서 소외된 분들이긴 한데, 저희 입장을 말씀드리면, 이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분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저희 프로그램의 대상은 소수가 아니라 노인과 혼자된 분들 그리고 미혼 상태에 놓여 있는 분들 등 다수를 성 소외자라고 보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겁니다. 즉 장애우가 대상이 아니라…
판 사 말을 잘라서 미안하지만 장애우를 성 소외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넓은 의미에서 차별이라고 인정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차별뿐만 아니라 성 소외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50억원의 개발비를 지원 받아 놓고 정작 프로그램 개발에서 장애우를 배려하지 않은 것은 목적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은 걸로 인정돼 결과적으로 정부를 대상으로 사기를 쳤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본 법정은 피고와 피고가 속한 본사를 장애우 차별에 더해 사기 혐의를 추가해 기소한다. 이상 재판을 마친다. 땅땅땅
글 이태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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