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노리개3
본문
아이들은 나를 바보라고 부르지. 밥 맛 없는 어떤 애새끼들은 미친년이라고 놀리며 돌을 던지기도 해. 끈질기게 따라오면서, 내가 고함을 지르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내 몸에 벌꿀이 묻었는지 아니면 내가 토끼라도 되는지 나를 졸졸 따라 다니면서 돌을 던져. 뭐 돌 몇 개 맞는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니까 참을 수 있지. 내가 정말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견딜 수 없어 하는 건 말야. 바로 하루종일 집에 있는 거야.
우리 집은 아빠가 없다. 엄마가 그러는데 아빠와 오래 전에 이혼했대. 이혼이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아빠가 죽었다는 걸 말하는 거겠지. 세상에 없으니까 우리 집에도 없는 거겠지. 그래서 우리 집 식구는 엄마와 남자 동생 나 이렇게 셋 뿐이야. 고등학교 다니는 동생은 학교 다니고 엄마는 일하러 나가. 엄마가 일을 하지 않으면 방세도 내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하니까, 엄마는 청소 일을 하는데, 깜깜한 새벽에 집을 나가서 깜깜한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 그래서 나 혼자 집에 덩그마니 집에 남겨지는 거야. 우리 집은 햇볕도 들지 않는 깜깜한 지하 셋방이거든. 축축하고 시큼한 냄새도 나는 방에서 하루종일 지내야 하니 지옥에서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지. 무엇보다 너무 심심해서 미칠 것만 같았어. 텔레비전을 켜놓지만 텔레비전도 낮에는 먹통이라는 거 잘 알잖아. 할 일이 없어서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다 보면 어떤 때는 하루가 후딱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나날들은 하는 일 없이 집에 있는 게 너무 심심하고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은 괴로운 심정으로 지내야 했던 거야. 그래서 엄마는 내 속도 모르고 절대 밖에 나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고, 나가면 혼날 줄 알라고 겁을 주곤 했지만 당장 엄마에게 들켜 매질을 당하더라도 나는 밖에 나가고 싶었어. 집을 벗어나 밖에 나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었어. 그래서 나는 엄마 몰래 거의 매일 밖에 나갔지. 그 아저씨를 만나게 된 건 거리에 붕어빵 장사가 보이기 시작하고, 나무에서 노란 나뭇잎들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 작년 가을 어느 날 이었어.
혹가다 엄마가 “정희는 세상에서 뭐가 제일 좋니?” 라고 물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한다. 인형이라고 말야. 나는 세상에서 인형을 제일 좋아하지. 곰인형 토끼인형 예쁜이인형을 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하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거든. 엄마는 돈이 없으니까 인형을 사주지 않으니까 나는 밖에 나가서 하루종일 인형을 쳐다보고 있는 거야. 내가 사는 동네에는 인형 가게가 두 개나 있는데, 하나는 거리에서 바닥에 잔뜩 인형을 늘어놓고 파는 가게가 있고 또 하나는 유리 진열장 너머 인형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는 가게가 있어. 그 중에서 예쁜 인형이 많은 가게는 유리 너머 인형이 아주 많이 있는 가게였거든. 그래서 그 날도 가게 앞에서 인형을 쳐다보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 참이었어. 날씨가 추워 손을 주머니에 넣고 얼굴을 어깨에 묻고 웅크린 채 인형을 보고 있었지. 갑자기 누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길래 쳐다보니 몇 번 동네에서 얼굴을 본적이 있는 아저씨가 옆에 서 있었어. 그 아저씨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더니 대뜸 “인형 사줄까?” 라고 묻는 것이었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네.” 라고 바로 대답했지. 점찍어둔 내 키만큼 큰 곰인형을 꼭 갖고 싶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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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잡고 있던 내 팔을 놓지 않은 채 “인형 사줄게 들어가자.”라고 말했지. 나는 “싫어요!”라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지.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아 “나 집에 갈래, 집에 데려다 줘요!”라면서 화난 목소리로 아저씨에게 대들었어. 그런데 그 순간이었어. 아저씨 표정이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본 강도처럼 변하더니, 단지 무서운 표정에 그치지 않고 아저씨가 손을 들어 내 뺨을 철썩 소리도 크게 때리는 것이었어.
“이 기집애가 좋게 얘기했더니 말을 안 듣네! 너 아저씨 말 안 들으면 혼난다…”
나는 울음보를 터뜨렸지. 아저씨가 너무 무서워서 오줌을 쌀 것 같았어.
“울음 그쳐! 너 인형 갖고 싶다고 해서 아저씨가 인형 사주려고 여기 데리고 왔잖아, 저기 들어가면 인형 있다니까, 왜 말을 안 듣는 거니, 그리고 너 아저씨 말 안 들으면 여기 너 혼자 놔두고 나 혼자 집에 갈 거야, 너 집도 잃어버리고 엄마도 볼 수 없게 될텐데 그래도 괜찮아?”
“그냥 집에 가면 안되나요…”
나는 울면서 겨우 그 말밖에 할 수 없었어. 아저씨 말대로 집도 못 찾고 엄마도 볼 수 없으면 큰일이니까 갑자기 조바심이 생겨서 나쁜 짓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저씨 손을 뿌리칠 수 없었던 거야. 여관에 끌려 들어갔고 예상했던 대로 아저씨가 내 옷을 벗겼지. 그 짓을 하는 동안 내내 내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서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어. 아저씨 몸 밑에 깔려 버둥거리면서,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면서, 어떻게든 집 생각과 곰인형 생각, 그리고 엄마 생각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어. 아프고, 나중에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조금씩 기분이 좋아져서 신음도 나오고 달떠서 더 이상 아무 것도 생각하기 싫은 상태에 다다랐던 거야. 그 짓이 끝나고, 아저씨가 바지춤을 올리면서 말했어. “어때, 막상 해보니까 기분 좋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아저씨가 바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더니 내 손에 쥐어주더군. “자 이걸로 인형 사고, 오늘 일은 절대 비밀이다. 엄마한테도 얘기하면 안돼, 알았지.” 손바닥을 펴보니 파란 돈 두 장이 거기 있었어. 돈을 보니까 그렇게 떠올리려 애썼던 곰인형이 하얀 색깔도 선명하게 눈앞에 성큼 다가오는 거 있지. 순간 나는 너무 행복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어.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저씨는 동네에 있는 가방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어. 그 가방 공장도 우리 집처럼 지하에 있어서 그 아저씨를 만나러 갈 때면 마치 우리 집에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지. 그 아저씨와 만나면 꼭 그 짓을 했는데 가방공장에서 한 번 하고, 여관에 가서 세 번 더했어. 달뜨고 얼굴이 빨개지는 일이 끝나고 나면 아저씨가 꼭 돈을 줬는데 글쎄 나중에는 돈이 없다면서 달랑 천 원 짜리 한 장 밖에 주지 않는 거 있지. 천 원으로는 인형을 살 수 없으니까 나는 더 이상 아저씨를 찾아가지 않았지.
그 다음에 만난 아저씨는 우리 옆집에 사는 아저씨였어. 얼굴이 털복숭이고 빼빼마르고 키도 작아서 볼품없는 그 아저씨는 가족이 아무도 없는지 혼자 살고 있었거든. 거기다 직업도 없는지 밖에 나가지 않고 나처럼 집에서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 눈치였어. 어느 날 대낮 텔레비전이 먹통이 된 순간 누가 우리 집 문을 쿵 쿵 소리나게 두드렸어. 문을 열어 보니 그 아저씨가 서 있었는데, 아저씨는 내가 들어오라고 얘기한 적도 없는데 나를 밀고 집에 발을 들여놓고서는, 와락 손을 뻗어 나를 꽉 껴안는 거였어.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나는 대들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지. 천천히 아저씨가 내 옷을 벗겼고, 그 다음은 물어보나마나 그 짓을 했지. 아프지도 않았고 별다른 느낌도 없었어. 아저씨가 옷을 챙겨 입고 난 뒤 천 원 짜리 세 장을 줬어. 또 똑같은 말을 하면서 말야. “오늘 일 비밀이다. 엄마에게 얘기하면 절대 안돼. 정희 아저씨 말 잘 들으면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정희 착하니까 아저씨 말 들을 거지?” 나는 “네”라고 대답했지. 아저씨는 일주일에 두 세 번 우리 집 문을 두드렸어. 찾아오는 사람을 막을 수도 없고, 아저씨는 꼭 삼 천 원씩 주니까 그 돈으로 인형은 살 수 없지만 떡볶이도 사먹고 맛있는 과자도 사먹을 수 있으니까 아저씨가 침을 꿀꺽 삼키며 내 옷을 벗기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어. 그런데 나를 찾아오는 아저씨가 그 아저씨 말고 또 있었다. 그 아저씨는 머리가 훌렁 벗겨진 대머리 아저씨인데,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는 나를 구해주고 나 대신 아이들을 따끔하게 혼내준 착한 아저씨였어.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일일이 꿀밤을 먹이고 난 뒤 아저씨가 내게 물었어. “너 어디 사니?” “저기요” 나는 손을 뻗어 우리 집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지. “아저씨가 집에 데려다 줄게, 괜찮지?” 나는 대답하지 않고 앞장을 섰고 아저씨가 내 뒤를 졸졸 따라왔지. 우리 집에 도착해서 내가 문을 열었는데도 그 아저씨는 돌아가지 않았어. 내가 빤히 쳐다보자 아저씨가 말했어. “들어가서 차 한 잔 하고 가도 되겠니?” 나는 아저씨의 번들거리는 눈빛을 보고 아저씨가 나를 상대로 뭘 하려고 그러는지 뻔히 알 수 있었지. 내가 고개를 끄떡거렸던 건, 이런 말을 하면 창피하지만 순전히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어. 아저씨가 나를 따라 서 둘러 집으로 들어섰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옷을 벗었지.
하루는 이 아저씨, 하루는 저 아저씨, 가방 공장 아저씨까지 세 남자가 돌아가며 우리 집을 찾아왔어. 나는 아저씨들과 거의 매일 그 짓을 한 셈이지. 그랬으니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네에 내 얘기가 파다하게 퍼졌나 봐. 며칠 전 엄마가 일을 나가지도 않고 나를 불러 앉혔어. 뻔한 얘기를 물어보길래 그간 아저씨들과 그 짓을 했던 것을 다 얘기했지. 엄마가 내 머리끄댕이를 잡고 울고 불고 같이 죽자면서 난리 쳤지만 솔직히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어. 내가 아무리 생각이 없다지만, 아저씨들과 그 짓을 한 게 나쁜 짓이라면, 그건 엄마가 인형 살 돈을 주지 않고, 과자를 사먹을 돈도 주지 않고, 나 혼자 집에 내버려둬서 벌어진 일인데 내가 책임질 일이 뭐가 있겠어. 안 그러니, 내 말이 틀렸니, 그리고 어제 밤, 엄마와 친하게 지내는 순이 엄마가 우리 집에 왔어. 둘이서 내 얘기를 하는데 나는 자는 척 눈을 감고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들었지.
“순이 엄마, 이 일을 어째, 글세 정희 저 기집애가 애를 밴 것 같아…”
“누구 앤데? 어떤 사내놈이 정희에게 몹쓸 짓을 한 거야?”
“한 두 놈이 아니야, 우선 옆집에 사는 최가 놈, 어제 그 놈을 붙잡아다가 얘기했거든. 그랬더니 글쎄 그 놈이 오늘 집을 나가서 도망쳐 버렸어. 아까 집에 가보니까 짐이 싹 치워져 있더라구, 내가 그 놈 말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어제 뭐라고 했는데 그래?”
“뭐라고 그러긴, 정희가 생리도 안하고 임신한 것 같으니까 좋게 끝내고 다시는 정희 만나지 말라고 타일렀지. 그 놈이 처음에는 정희에게 몹쓸 짓을 한 걸 인정을 안 하더라구, 그래서 내가 경찰에 알리겠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그 놈이 내참 재수가 없을라니까 그러면서 아이 지우는데 20만원이면 돼? 라고 묻길래 내가 20만원 가지고는 안 된다, 수술하고 주사 맞고 병원도 5일 이상 다녀야 하니까 30만원 달라고 얘기했지. 그랬더니 오늘 저녁에 와서 돈을 주겠다고 철떡같이 약속 해놓고 낮에 도망쳐버린 거야.”
“집세 보증금이라도 있을 거 아냐, 집 주인에게 얘기하지 그랬어?”
“그 놈이 살던 방은 보증금도 없는 방이야. 월초에 세를 미리 내고 사는 방인데, 보아하니 떠돌이니까 나타날 것 같지 않아. 동사무소에 가봤더니 주민등록도 되어 있지 않았어.”
“또 다른 놈은 어떤 새끼야?”
“순이 엄마도 몇 번 본 적이 있을 거야, 놀이터 근처에 사는 머리 벗겨진 채 혼자 사는 남자 있잖아. 내가 오늘 그 남자를 찾아가서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따졌어. 그랬더니 그 남자, 내 참 기가 막혀서, 정희를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거야, 정희를 데리고 살겠다고 아주 생떼를 쓰더라구, 가진 것도 없고 하루라도 술을 안 먹으면 못 견뎌하는 알콜중독자인 주제에, 월세방에서 보증금도 없이 10만원씩 내고 사는 주제에, 순이 엄마도 잘 알지만 나이도 쉰이 다 됐잖아. 그런 놈이 정희를 데리고 살겠다는데, 이런 기가 막힐 일이 또 어디 있겠어? 내가 억장이 무너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슴만 치다가 돌아 왔다니까…”
“둘 뿐이야? 어떻게든 정신 차리고 어떻게든 정희를 책임질 놈을 찾아내야 할 거 아냐, 다른 놈은 없었어?”
“정희년 말에 따르면 가방공장 다니는 놈이 한 명 더 있는데, 이 동네 사는 놈팽이 놈들 다 똑같을 것 같아서 찾아가지도 않았어. 다 떠돌이들이니까 보나마나 얘기하면 내빼기에 바쁘겠지… 다 내 잘못인데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겠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일을 해야지만 먹고사니까 정희를 혼자 집에 놔둘 수밖에 없는 내 처지를 원망해야지 누구를 탓하겠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순이 엄마를 부른 건 다름아니라 부탁 하나 하려고, 정희가 갈만한 시설을 알아봐 줄 수 없을까, 집에 놔두자니 불안하고 그렇다고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어디 시설에나 보내버려야지 내가 안심하지. 이런 상태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아…”
엄마는 말 끝에 신세타령을 하며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고 순이 엄마는 연신 엄마 눈물을 닦아주며 내가 갈만한 시설을 알아봐 주겠다고 약속했지. 나는 슬픔 대신 은근히 약이 올랐어. 나를 어디 보내 버린다고, 치 엄마 말대로 될 줄 아나보지, 날이 밝으면 집을 나가야지. 나가서 아저씨들도 실컷 만나고, 그 짓도 많이 하고, 인형도 많이 사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먹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 거야, 나는 엄마 말에 토라져서 돌아누우며 입술을 쑥 내밀고 속으로 다짐했어. 여기까지가 내가 아저씨들을 만났던 얘기야. 그런데 영자 너는 그 아저씨 어떻게 만났니?
응, 나는 아저씨가 아니라 할아버지들이었어. 우리 집은 산골 마을에 있거든. 여름에는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마을 한가운데로 냇물이 흐르고 있어서 거기에서 빨래를 하고, 뒷산에 밤나무가 빼곡이 들어차 있어서 가을이면 밤송이를 주워담느라 바쁘게 하루를 보내곤 했어. 시골에는 젊은 사람들이 없는 거 너희들도 잘 알지? 당연히 내 친구들도 할아버지들뿐이었어. 엄마는 아침이 되면 버스를 타고 공장으로 일하러 가고 혼자 남겨진 나는 마을 여기저기를 쏘다니면서 남의 집에서 밥도 얻어먹고 강아지랑 놀다가 그래도 심심하면 뒷산에 올라 풀밭에 누워 있었어. 하루는 뒷산에 갔는데 거기 강씨 할아버지와 서씨 할아버지가 있었어. 할아버지들이 손짓으로 나를 부르길래 다가갔더니 강씨 할아버지가 내가 좋아하는 감자튀김 과자를 품에서 꺼내서 내 손에 쥐어 줬어. 그러더니 “우리 영자 얼마나 컸는지 할아버지들이 봐도 되겠지?”라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어.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가만히 서 있었지. 이번에는 서씨 할아버지가 말했어. “영자 찌찌 얼마나 컸는지 할아버지가 볼려고 그러는 거니까 가만히 있어야돼. 알았지?” 그러면서 서씨 할아버지가 다가오더니 내 치마를 벗겼어. 나는 “내 찌찌 거기 아니라 여기 있는데…” 손으로 가슴을 가리켰지. “그래 맞아. 이런 할아버지가 착각했네, 영자 찌지 여기가 아니라 옳지. 여기 있는 거였지. 어디 한 번 보자. 영자 찌지 얼마나 잘 여물었는지,” 그러면서 웃옷을 벗겼어. 나는 팬티만 입은 상태로 서 있게 됐고 그런 나를 쳐다보며 할아버지들도 서둘러 옷을 벗기 시작했어.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하늘의 햇님만이 웃으면서 재미있다는 듯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지. 그때만 해도 나는 할아버지들이 옷 벗기 놀이를 하는 줄 알았다. 누구 찌찌가 더 큰지 재보려고 내 옷을 벗기고 할아버지들도 옷을 벗는 줄만 알았어. 그랬는데 그게 아니었어, 할아버지들은 나를 풀밭에 누이더니 돌아가면서 내 찌찌를 빨고 또 내 팬티를 벗기더니 할아버지 거시기를 내 몸에 들이미는 것이었어. 나는 아파서 고함을 질렀지. 그래도 할아버지들은 막무가내로 돌아가면서 그 짓을 했어. 나는 너무 아파서 막 울었거든. 그런 나를 달래며 강씨 할아버지가 말했어. “할아버지들이 너무 심심해서 영자와 재미있는 놀이를 한 거야, 그러니까 이 일 누구한테 얘기하면 절대 안돼, 만약 얘기하면 할아버지들이 영자 많이 혼내줄 거야, 혼내는 것 뿐만 아니라 영자를 마을에서 쫓아낼 거야, 그러면 영자는 엄마도 못 보고 그럴테니까 누구한테 이 일 얘기하면 절대 안돼, 알았지?” 나는 엄마를 볼 수 없을 거라는 말에 겁이 나서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어.
그 날 이후 할아버지들은 심심하면 나를 불렀어. 그때마다 뒷산에 올라가서 그 짓을 했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는데, 어느 날 저녁 동네 아주머니 두 명이 우리 집을 찾아왔어. 그때 나는 방안에 있었고, 엄마와 아주머니들은 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니 내 얘기를 하고 있었어.
“영자 엄마,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어떻게 우리 마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글세 이 일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영자 엄마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 당장 그 노인네들을 고발해야 적성이 풀리겠지만 마을 어른들이다 보니 그러지도 못하겠고, 이 일을 어떡하면 좋죠?”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글쎄 오늘 낮에 강씨 할아버지네 집에 갔는데, 장 보러 읍내에 간 영호 엄마가 전화로 비가 올 것 같으니까 마당에 널어 논 고추를 걷어달라고 부탁해서 영심이 엄마와 둘이서 고추를 걷으러 강씨 할아버지 집에 갔거든요.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는데 마루에서 너무 기가 막힌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무슨 일인데요? 답답하니까 뜸들이지 말고 빨리 얘기해 보세요.”
“글쎄 강씨 할아버지가 옷을 다 벗은 채로 영자와 그 짓을 하고 있었어요. 그 옆에 서씨 할아버지가 역시 옷을 다 벗은 채로 먼저 영자와 그 짓을 끝마쳤는지 정신을 놓은 몽롱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구요. 영자는 연신 할아버지 저기 아줌마 왔어요! 아줌마 왔어요! 라고 외쳤지만 귀가 어두운 강씨 할아버지는 듣지 못했는지 우리들이 보고 있는 데도 그 짓을 멈추지 않았어요. 우리가 달려가서 강씨 할아버지와 영자를 가까스로 떼 놨죠. 정말 남사스러워서… 우리가 온 것은 영자 엄마 얘기를 듣고 고발을 하려구요. 영자 엄마 어떡할까요? 아무래도 몹쓸 짓을 한 두 노인을 경찰에 고발해야겠죠?”
“그랬군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후… 내가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어요… 나쁜 양반들, 자식도 아니고 조카 같은 아이를 상대로 그 짓을 하다니…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다 내 잘못이죠. 아이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했는데 먹고사느라 바쁘다보니 아이를 건사하지 못하고 내팽겨쳐놓고 다녔으니 이런 일이 벌어진 거겠죠. 잘못이 있다면 내 잘못이 크죠. 그건 그렇고 나야 고발을 해도 상관없지만 마을 남자들이 그러라고 하던가요?”
“실은 그 문제 때문에 우리가 찾아온 거예요. 영자 엄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이들 아빠에게 이 일을 얘기했더니 마을 어른을 어떻게 고발하냐고, 동네 망신시킬 일 있냐고 펄펄 뛰면서, 고발하면 다시는 너 안 본다고 이혼 얘기까지 꺼내니, 마을 남자들이 모두 한결같이 그러니,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이렇게 찾아 왔어요. 생각 같아서는 당장 경찰서에 달려가서 고발하고 싶지만 그러면 마을에 큰 분란이 생길 테고, 영자 엄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놔두세요. 이미 벌어진 일인데 주워담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 죄가 있다면 없이 사는 내 죄가 큰 거죠. 저도 이 마을을 떠나면 당장 갈 데가 없는 처지니까, 그냥 참고 살아야지 어떡하겠어요…”
“그래도…”
“돌아가세요. 됐어요. 내 팔자가 이런데 누구를 탓하겠어요. 돌아가서 강씨와 서씨 두 노인네에게 내 얘기나 전해주세요. 영자 데리고 노는 건 좋지만 제발 임신이나 시키지 말라고, 내 말 뜻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랬구나. 영자 너에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영자 너네 엄마 정말 바보다. 우리 아빠는 그 아저씨 경찰에 고발했는데, 그래서 그 아저씨 감옥에 갔어. 정말이다. 절대 거짓말 아니다. 나는 스물다섯 살, 정신지체 3급 장애를 가지고 있고, 복지관에 있는 자립작업장에 다니고 있었어. 내가 만난 그 아저씨는 우리 아빠 친구였어.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하고 나도 그 아저씨 집에 여러 번 놀러갔었지. 하루는 내가 지훈이, 지훈이가 누구냐면 복지관 자립작업장에서 만난 남자 친군데 나보다 더 장애가 심하고 어리버리하지만 생긴 것은 가수들 뺨치게 잘 생겨서 내가 애인으로 만들어버린 남자 친구였지. 그 날 지훈이 집에서 카드 맞추기를 하며 놀고 있는데 창 밖에서 누가 은경아 은경아,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거였어. 내다보니 아빠 친구인 그 아저씨가 술에 취했는지 빨간 얼굴로 서 있었어. 내가 고개를 내미니까 아저씨가 “은경아 우리 집에 가자.” 그랬지. 무슨 일인가 싶어 “알았어요.” 대답하고 신발을 신고 아저씨를 따라갔어. 지훈이도 내 뒤를 졸졸 따라왔지.
아저씨 집은 큰 아파트거든.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어. 아저씨가 “지훈이 너는 필요 없으니까 집에 가!”라고 소리쳤지만 지훈이는 말을 듣지 않았지. 당연하지 내 애인이니까 내 곁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런데 말야. 그 날 따라 아저씨가 이상했어. 그 동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나를 부르더니 글세 강제로 옷을 벗기는 거였어. 나는 “이러지 마세요. 왜 이래요!” 몸을 뒤틀며 반항했지만 아저씨의 힘을 당할 수는 없었어. 아저씨는 나를 쇼파에 누이더니 강제로 그 짓을 했어. 몸에서 피가 나오고, 그래서 겁이 나고 너무 아파서 막 소리질렀지만 아저씨는 막무가내였어. 지훈이가 옆에 있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지. 걔는 어리버리하니까 가만히 서 있기만 했어. 그 짓이 끝나고 나는 아파서 막 울었거든. 그랬더니 아저씨가 다정한 목소리로 “은경아, 예쁜 운동화 사줄게 울지 마,” 그랬어. 내가 새 운동화를 갖고 싶어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저씨가 그 말을 했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울음을 그쳤지.
다음 날, 생각지도 않은 아주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나는 새 운동화를 받으려고 아저씨 집에 가는 길이었어. 그 때가 저녁 6시경이었는데 지훈이가 내 뒤를 졸졸 따라왔어. 복지관에서 아저씨 집에 가는 길 중간에 나무가 많은 공원이 하나 있거든. 공원 앞에 이르렀는데 지훈이가 내 팔을 잡아끄는 것이었어. 얘가 왜 이러나 그랬지. 지훈이는 막무가내로 나를 끌고 공원 안에 있는 화장실로 데리고 갔어. 거기서 글쎄 내 몸을 막 더듬더니 옷을 벗기고 어제 아저씨가 한 짓과 똑같은 짓을 하는 거였어. 재수 없게, 더러운 화장실에서 그 짓을 하다니 나는 너무 분하고 화가 나서 그 짓이 끝나고 난 후 지훈이를 막 때려줬지.
며칠 후 그 날도 지훈이네 집에서 카드 맞추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또 아저씨가 불렀어. “은경아, 은경아,” 부르길래 내다보니 “아저씨가 맛있는 닭튀김 사줄게 가자.”그래서 지훈이를 앞세우고 아저씨를 따라갔지. 시장 닭튀김 집에서 튀김을 먹고 난 후 아저씨가 “지훈이 너는 이제 집에 가!”라고 소리쳤지. 지훈이는 머뭇거리며 내 곁을 떠나지 않았거든. 그러자 아저씨가 지훈이 머리에 꿀밤을 먹였어. “집에 가라니까, 아저씨 말 안 들으면 맴매한다.” 그 말에 지훈이는 집에 가고 나는 아저씨 손에 이끌려 아저씨 집에 갔지. 아저씨가 옷을 벗기려고 하길래 내가 “싫어요!”라고 말했어. 아저씨가 당황했는지 “왜 재미없니? 그만둘까?”라고 물었어. 나는 “전에 운동화 사준다고 해놓고 안 사줬잖아요. 거짓말하는 아저씨 싫어요.”라고 말했어. 아저씨는 웃으며 “난 또 뭐라고, 알았어. 아저씨가 은경이 운동화 살 수 있게 돈줄게. 만 원 줄게. 됐지?”라고 말했어. 나는 그 약속을 철떡 같이 믿고 옷을 벗고 아저씨와 그 짓을 했거든. 그런데 끝나고 나서 아저씨가 돈을 주지 않았어. 마음이 변했는지 “내일 꼭 줄게. 내일 우리 집에 와.”그랬어. 약이 올라서 다음 날 저녁, 이번에는 나 혼자서 아저씨 집에 찾아갔다. 아저씨와 그 짓을 또 하고 겨우 만 원을 받아낼 수 있었지.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 아저씨가 아니라 다른 남자 얘기인데, 혼자서 청량리역에 놀러 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돈줄게. 비디오방에 놀러 가지 않을래?”라고 묻길래 그 아저씨를 따라갔어. 비디오방에 가서 그 짓을 했거든. 그런데 “화장실에 갔다올게.”라며 방을 나간 아저씨가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아저씨가 돈을 주기는커녕 내 돈 2만원도 훔쳐간 거였어. 호주머니를 뒤져보니까 아침에 가지고 나온 돈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어. 너무 원통해서 막 울었지 뭐, 아저씨들은 한결같이 왜 그렇게들 치사한지 모르겠어. 돈을 준다고 해놓고 돈도 주지 않고, 옷만 벗기려고 하고, 그래서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나는 아저씨를 만날 때 꼭 먼저 돈을 받는다. 그래야 안심이 되거든.
그런데 그 아저씨는 어떻게 감옥에 가게 됐냐구? 지금부터 내가 그 얘기를 할게. 내가 고자질 한 게 아니라 지훈이가 문제였어. 지훈이가 글쎄 나와 그 짓을 한 번 하고 나더니 그 짓이 재미있는지 아무 여자나 보면 몸을 만지고 옷을 벗기려고 덤벼들었던 거야, 하고 싶으면 나한테만 하라고 내가 몇 번 상대해 줬거든. 그랬는데도 이 바보자식이 만족하지 못하고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려댔어. 작업장에 선생님이 있는데도 여자아이들 옷을 벗기려고 했으니 그걸 선생님이 가만 놔두겠어? 얼마 안가 지훈이는 복지관 작업장에서 쫓겨나고 덩달아 지훈이 애인인 나도 쫓겨날 지경에 처하게 됐지. 하루는 선생님이 나를 불렀어.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라고 그래서 다 얘기했어. 아저씨 얘기, 청량리에 간 얘기, 그리고 지훈이와 그 짓을 한 얘기까지, 잘됐다 싶어 다 얘기했지. 그러니까 속이 편해졌어. 비밀을 혼자 간직하느라고 너무 힘들었었거든.
내가 얘기해서 아저씨는 감옥에 가고 나는 집에 갇혀 지내고 있어. 요즘 밤마다 꿈을 꾸는데 아저씨와 그 짓을 하는 꿈이야. 모르겠어 내가 왜 이러는지,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그 짓을 하고 싶어서, 누가 내 몸을 만지고 그 짓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서 얼굴이 빨개지거든. 정희 영자 너희는 그런 생각 안 하니? 치, 나도 어른이지만 어른들은 나빠,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이 장애를 가졌다고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 내 말이 틀렸니?
글 이태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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