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민의 테마에세이] 그래 가라 고이 잠들어라
본문
친구가 죽었다. 아프리카 리비아 사막의 한가운데서 홀로 숨을 거두었단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건설회사 과장으로, 해외 현장 근무를 주저하지 않던 나의 친구가 그 객지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14일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고, 돌아온 지 하루 만에 영결식을 마친 뒤 희미한 유골이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남겨진 유족과 어린 두 아들이 내 눈에도 밟히는데, 떠나간 그 친구는 어느 하늘에서 자신의 영혼을 접지 못한 채 떠돌고 있을까. 피부가 타들어가는 사막 한가운데 쓰러져서 마지막 숨을 헐떡였을 그의 눈물과 허망함을 그 누가 대신 전해 줄 수 있을까. 영육(靈肉)이 분리된 자신의 현실을 모두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싶었을까.
그런데 왜 자꾸만 할 말이 솟구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영결식은 회사장(會社葬)으로 아주 신속하게 치러졌다. 단순한 차량 전복 사고였고 과속에 의한 개인 과실이란다. 하지만 현지에서 보내 준 사고 차량의 사진을 분석한 국내 보험사 전문가들마다 똑같은 진단을 내린다. 이건 무언가와 충돌한 1차 접촉 사고가 난 뒤에, 인위적으로 방치된 채로 숨진 희생이라고. 개인 과실로는 그렇게 사고가 날 리가 없고, 운전석이 멀쩡한 전복 사고는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라고.
대기업과의 싸움은 아주 힘겹다고 한다. 그런 얘기는 늘 들어왔지만, 막상 내 친구가 죽은 뒤의 협상 과정을 지켜보니 그 말이 정말 맞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회사는 잘못이 없으니까 얼마의 보상금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법대로 할 테면 하라는 것…….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머리는 이성적(理性的)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떠나간 남편과 아빠와 아들과 사위가 떠올라 통곡할 뿐이다.
더 답답한 건 이런 큰 사고가 났는데도, 국내 언론에는 단 한 줄의 기사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땅 어딘가에서 누군가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해도 신문에 몇 줄 나오는 세상인데, 외국 파견 근무를 하던 대기업 건설 현장 관리자의 죽음은 어느 언론에도 등장한 적이 없다. 과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떠나간 친구는 지금도 내 꿈에 나타나 눈물을 흘린다.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다가 뒷모습으로 사라진다. 나의 첫 시집이 나왔을 때 가장 기뻐해 주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당시엔 마실 줄도 몰랐던 소주를 내 입에 들이부으며, 소주의 쓴 맛을 알아야 시를 쓴다며 얘기하던 그 친구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런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뭔가.
그래서 적고 싶지 않은, 아니 적을 필요도 없었던 시를 난데없이 적어야만 했다. 억지로 적은 게 아니라, 그 친구를 떠올리면 책 한권이라도 만들어질 만큼의 글을 줄이고 줄여야 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아직까지도 난감하기만 하다. 초롱한 눈빛의 그의 두 아들, 인생의 의미를 상실한 아버지와 어머니께 무슨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친구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나는 여기에 대답도 없는 글 한 편을 올려야겠다. 이미 한줌의 재로 변해버린 친구지만, 아직까지도 그 넉넉한 웃음이 귓가에 남아 있기에, 눈물 흘리는 영정 앞에 이 글을 바쳐야 할 것 같다. 친구가 근무하던 그 기업의 그 사무실엔 지금 이 순간에도 평상시와 같은 여유로운 일상이 흐르고 있을지…… 솔직히 나는 그게 궁금하다.
그래 가라 고이 잠들어라
- 친우 故 정호진 君의 영정 앞에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났기에
온다는 말도 너는 않는구나
쓰디쓴 소주가 그리웠느냐
술잔 맞대고 건배하면 그만일 것을
신위神位 앞에 따르는 그 술로 너는 마시고 싶었더냐
그 술이 모두의 피눈물이라는 걸 너는 정녕 몰랐더냐
나이도 같은데
왜 너에게 큰절 올려야 한단 말이냐
살아가는 얘기만으로도 모자란 나날인데
왜 네 앞에 향을 피워야 한단 말이더냐
적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누워 있을 때
너는 무엇을 떠올렸더냐
마지막 호흡 가쁘게 몰아 내쉴 때
네 두 눈엔 무엇이 아른거렸더냐
초롱한 눈망울의 두 아들
따스한 손길의 아내
고향의 부모님 형제가 그렇게 스쳐갔더냐
혹시라도
내 얼굴도 떠올렸더냐
난데없는 통증으로 내 가슴 움켜쥐어야 했던
그날의 어느 순간이
혹시라도 마지막 도움 청하던
너의 숨 가쁜 손짓과 절규와 여운이었더냐
아빠를 찾는 아이들의 음성이 들리느냐
남편 부르는 메아리가 네게도 머무르더냐
흰머리 새치 헤아리기도 전에
무엇이 그리 바빠 그 먼 길을 찾아갔더냐
갔다한다
이제 정말 제대로 살아야 할 37년 나이에
네가 갔다한다
왔다한다
선물꾸러미 품에 안은 밝은 손짓 온데간데없이
누워서 왔다한다
눈을 감고 왔다한다
36점 5도의 체온을 사막 위에 내버리고 왔다한다
홀로 가야 할 아주 먼 길인데
길동무는 찾았느냐
노자는 넉넉하게 챙겨놨느냐
잠시 쉴 때 기울일 소주 한 병 주머니에 꽂아뒀느냐
떠났구나
네가 떠났구나
영정 속 네 눈에서 눈물 흘러내리고
한 방울 또 한 방울 솟구치고 있구나
그래 가라
고이 잠들어라
돌아오지 않겠다면 가는 길일랑 편하게 가라
너를 묻은 가슴들 속에 웃는 얼굴 남기고 떠나거라
외로우면 찾아와라
가는 길 주저되면 돌아와라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믿는 가족의 마음 곁에 머물러라
멀지 않은 우리의 재회로
다하지 못한 얘기 모두를 나눌 거라 약속하거라
그래 가라
고이 잠들어라
큰절 다시 올리마
향불 한번 더 태우마
향내음 가슴에 묻고
네 얼굴 하나 마음에 묻어 큰절 다시 올리련다
그래 가라
친구여…… 고이고이 잠들어라.
(2003. 6. 5. 오후 3:48 知友 채지민 올림)
- 채지민 (시인·소설가)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