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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수화가 석창우의 선과 묵과 누드의 세계

화선지에 쓰는 꿈

본문

서예크로키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한 작가 석창우는 의수에 붓을 끼우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젊은 시절 순간의 사고로 양팔을 절단한 그가 각종 공모전을 휩쓸고 다섯 번의 해외 초대전을 치를 정도로 유명작가가 되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좌절을 극복한 인간승리를 그린 감동의 드라마 한편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에겐 극복할 좌절도, 이겨야할 고통도 없었다. 단지 인생의 전환점이 있었을 뿐이다. 강물이 유유히 바다로 흘러가듯 그렇게 장애와 그림을 받아들인 화가 석창우. 그에게 바람이 있다면 자신의 그림이 보는 이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주었으면 하는 것. 집이자 작업실이기도 한 19층 아파트에서 석창우를 만났다.

 
                             

1.상실한 손의 흔적 뿐

어린 시절 우리는 꿈을 많이 꾼다. 특히,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꿈꾼다. 그 꿈은 사무쳐 잠 든 후 꿈속에서 실제처럼 재현되기도 한다.
석창우는 양팔을 잃은 후 한 때 낚시하는 꿈을 자주 꾸었다고 한다. 단지 취미로 했던 것에 대한 여운이려니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꿈의 종류가 다양해 졌다. 꿈속에서 그는 두 손이 모두 있는 모습이었다. 손에 대한 갈망이,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 꿈속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는 갈망이 재현되는 꿈과, 현실에서의 갈망의 느낌이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꿈과 현실이 다른 것은 상실한 손의 흔적뿐이었다. 그리고 12년이 흐른 어느 날 매일 꾸던 꿈이 사라졌다. 원인을 분석 해 보았더니 누드작품을 화선지에 옮기기 시작한 시기였다.
자유로운 붓 놀림으로 꿈속의 일을 화선지에 작품화하기 시작한 때 그의 갈망은 더 이상 꿈속에서 재현되지 않았다. 자기의 꿈(갈망)을 화선지에 실현하는 순간 꿈이 사라진 것이다.
석창우는 그 꿈과 함께 자신을 억누르던 자괴감, 열등감도 사라졌다고 술회한다.


함께걸음(이하 "함께")> 선생님 이름 앞에 으레 붙는 "의수화가"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석창우 (이하 "창우")> 저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 저 사람 젊은 나이에 그런 일을 당하고 참 불행했겠다, 그런데 저 몸을 하고 그림까지 그리다니 참 대단하다라는 것입니다. 정작 나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예요. 사고를 당하고 난 후에도 그냥 뭐 내가 좀 다쳤구나 하는 정도지 심각한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생계걱정도 없었어요. 보험금도 나오고 연금도 나오고 그럭저럭 생활은 되잖아요. 화가라는 이름을 단 지금도 그래요 대단할 거 없어요. 그저 재미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니까 하는 거죠
 
함께>  사고를 당한 당시에도 절망감 같은 것이 전혀 없었나요? 갑자기 차가운 기계를 몸에 지니는 삶을 살게 된 것인데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창우>  바로 적응이 됐습니다. 이런 말하면 기자들이 황당해해요(웃음). 물론 절망감이 전혀 없었다 라고 한다면 거짓말일 테죠.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절망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것은 단지 "사고"였을 뿐이었거든요. 그냥 인정하면 됩니다. 나의 지금 모습, 과거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 내 모습 그 자체를 인정하는데 절망감이 들 이유가 없죠. 저와 같이 장애를 가지신 분들 중에는 장애를 인정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전의 완전했을 때의 나와 자꾸 비교하면서 억울해 하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면서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도 버스를 탈 때나 거리를 지날 때 사람들의 시선을 느껴요. 당연히 이상하죠. 그것은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나쁜 쪽으로 쳐다보는 사람은 의외로 적어요. 대부분은 선의의 눈으로 쳐다봅니다. 요즘 같이 삭막한 세상에 나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거 랍니다(웃음). 중요한 것은 남들의 시선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본인이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사실 생각하면 별것도 아니거든요. 
 
그는 절망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고 당시의 기억을 남의 이야기하듯 덤덤하게 말하는 사람,"후크선장"이라는 별명을 자랑처럼 말하는 사람이 석창우다. 선입견이 박살나는 시원함을 느끼며 그의 유쾌함에 기자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2.엔지니어에서 예술가로의 전향

함께> 사고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림과의 인연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 가요?
창우> 갓 두 살 된 아들이 어느 날 자꾸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어요. 불가능한 일이지만 졸라대는 아이를 위해 한번 해보자는 맘에 의수에 볼펜을 끼우고 그림을 그렸죠. 그런데로 괜찮은 그림이 그려졌어요. 그걸 본 친지들이 소질이 있다며 그림을 그려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학원을 찾았었는데 손이 자주 가야하는 일이라 받아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서운한 마음이 쉽게 가시질 않았습니다. 서운한 마음을 달래면서 생각했습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러다 먹 하나만 있으면 그릴 수 있는 사군자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런 후 서예학원을 찾았죠. 이때 스승인 여태명 교수를 만났고 서예를 배웠습니다.

처음에 여태명 교수 또한 그 가능성을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매달렸다. 힘들어 지치면 스스로 포기하겠다고 약속까지 하면서.

창우>그리고 이내 서예의 굳세고 싱싱한 붓놀림에 매료됐죠. 지금 생각하면 사고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팔은 없었지만 새 길을 찾았거든요. 사고 전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았다면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삽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이게 재밌거든요. 그래서 자꾸 하게 됩니다. 이것저것 도전도 하게 되고요. 서예크로키도 재밌어서 시작한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 미술대회 출품도 하고, 수상도 하고, 전시회도 열게 된 겁니다.  

그는 공고를 졸업했고 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했다. 그리고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산업대학원에 들어가 산업안전을 공부했다. 한마디로 그는 그림과 별개의 인간이었던 것. 삶이란 얼마나 역설적인가를 석창우의 삶이 그대로 보여준다. 

3.서예와 크로키의 조우

함께> 서예크로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다면?
창우> 크로키와 서예는 서로 통하는 구석이 많아요. 순간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단숨에 그려내는 크로키와 일필휘지의 서예는 궁합이 잘 맞습니다. 글자는 그림에서 나왔으니까 뿌리는 같은 셈이죠. 그러니까 서예가 곧 글씨를 그리는 거라면 크로키는 그림을 쓰는 것이라 볼 수 있어요. 결국 같은 거죠.

함께> 동양의 서예와 서양의 크로키의 만남이라... 그래서 일까요? 선생님 작품을 보면 참 신기해요. 먹과 종이, 흰색과 검은색만으로 이루어진 그림인데 그림 속 인물들이 금방이라도 걸어나올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합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선이지만 생동감이 넘치거든요. 여백조차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듯합니다. 비결이 있나요?
창우> 신기한 게 정적인 포즈에서도 움직임이 잡힙니다. 내 그림에서 역동성을 느낀다면 아마 그 때문일 거 에요. 비결 같은 건 없어요 그저 직관으로 바라 볼 뿐이죠. 그것에 집중하면 드러난 외형말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내면을 볼 수 있어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바로 그겁니다. 집중. 정적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보니까 활동의 욕구가 그런 식으로 작업과정이나 작품에 투사되는 것인지도 모르죠.

흔히 화가의 손이란 보통 사람의 손 보다 섬세하고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는 꼿꼿한 의수에 의지해 작품을 만든다. 그러나 그의 의수는 단순한 보조장치가 아니라 이미 "몸"이다. 그는 쇠갈고리 손끝으로 화선지의 앞뒤를 가려 낼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다. 수많은 시간들을 담금질 한 후에 얻어진 의식집중의 결과일 터. 정지된 물체를 관통해 그 기운과 내면을 읽어 내는 이 의식집중의 힘은 어쩌면 그가 가진 또 하나의 감각기관일지도 모른다. 피나는 노력 끝에 예술가 스스로 만들어낸 "감각기관".


4.석창우가 찾은 길

함께>선생님이 비상한 솜씨를 발휘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의수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보통의 열정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닐텐데요. 
창우>앞서도 말했지만 그냥 재밌어서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 에요. 남이 볼 때는 신기하고 대단한 능력처럼 보일지 모르나 나는 내가 재미있어 하는 일을 할 뿐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나 발명하는 사람, 사람의 병을 고치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 아닐까요? 남들은 "능력"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할 뿐이거든요. 능력은 이미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다만 그 능력을 발휘할 환경이 주어진 것에 감사할 따름이죠.

함께> 선생님께선 특별할 것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힘든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법이잖아요. 그 시간을 견디는 데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무엇인가요?
창우>한번도 절망에 빠지거나 그렇다고 실체 없는 희망에 기대본적도 없습니다만 믿음과 확신은 분명 희망에 실체를 불어넣는 힘이라 믿습니다. 나의 꿈이 화선지에 옮겨지고 작품이 되었습니다. 작품(현실)은 나의 꿈이요, 어떤 이의 꿈입니다. 꿈과 현실은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그 증거입니다. 이 둘이 같다는 믿음이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것 같습니다.
 
그는 역시 삶의 고수다. 웬만한 일에는 조급함도 없고 얽매임도 없이 모든 일에 넉넉하고 초연한 삶을 사는 것 같다. 장애를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자신의 별명 "후크선장"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석창우. 의수를 낀 팔이 때로는 조금 불편하지만 "도움을 주고받을 줄 아는 사람"이기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갈 길을 찾았고 그의 길을 즐겁게 걸어가고 있는 그가 부럽기만 하다.

글 함은혜 기자
사진제공 석창우 홈페이지 (http://myhome.naver.com/cwsuk)

 

 

작성자함은혜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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