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민의 테마에세이] 인생의 이력서는 자기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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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이 "엉뚱한" 상상은 개인적으로 소설을 쓰고 기획하는 과정 중에서 아주 오래된 미완성의 테마이기도 하다. 아직 정식으로 글쓰기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꼭 완성하고픈 주제인 것이다.
만약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때, 자신의 수명을 몸 어딘가에 기록하고 태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78년 283일 오전", "69년 361일 오후"라는 예언의 기록이 새겨지는 게 인간의 운명이라면 어떤 세상이 될까? 삼신할머니께서 점지해 주신다는 엉덩이 어딘가의 푸른 흔적 아닌, 선명한 숫자로 기록된 생명의 예언이 확인된다면 인간의 삶은 어떻게 전개될까?
위에 적었듯이 "78년 283일"이나 "69년 361일"이라면 차라리 괜찮을지 모른다. "1년 86일 새벽"이라든지 "5개월 8일 자정"이라든지, "17일 정오"라는 식으로 급박하게 새겨져 있다면 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더욱 황당하고 허무한 것은 그 예언이 정말 맞았을 경우이다. 멀쩡하던 아기가 그 예언처럼 숫자 하나 틀리지 않고 갑자기 숨을 헐떡인다면, 도대체 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뒤범벅이 될까? 그게 과연 인간이 살 만한 삶이 될까?
나 자신의 수명은 몇 년이라고 예정되어 있는지 가끔씩 궁금해진다. 이제 겨우 마흔의 나이를 앞두고 있는데, 내 곁에서 너무 성급하게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다. 이런 사고로, 저런 병으로, 난데없는 운명으로 내 주소록에 담긴 얼굴들이 줄을 서듯 사라져 간다. 빈소를 함께 지키면서도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뿐이다. 언론에서 늘 떠들던 그 얘기가 맞다는 것 - 서른 후반과 마흔 초반 나이의 대한민국 남성 사망률이 가장 높다고 하던 그런 기사와 뉴스의 얘깃거리 말이다.
몇몇 친구들의 죽음을 보며, 또한 가까웠던 이들의 화장(火葬)을 곁에서 지키는 동안 내게 남겨지는 건 내 삶을 통째로 바라보는 일밖에 없다. 언젠가는 나의 아내와 2세가 저렇게 나의 마지막을 지켜보게 되리라. 삶의 허무가 무엇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왜 이런 결론으로 인생을 마무리했던가를 그제야 통한의 후회로 간직하게 되리라.
남겨진 유가족들에겐 위로의 말마저 떠오르지 않는다. 불과 며칠 전에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떠들었던 그 얼굴이 순식간에 빈소의 주인공이 된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는 말인가. 남의 얘기가 아니다. 당장 나 자신의 경우일 수도 있는 현실이다. 내일 오후에 어디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사람을 그날 저녁에 장례식장의 주인공으로 마주쳐서 큰절을 올려야 한다면 무슨 말이 필요할 것인가.
삶이라는 게 너무 빠르고, 숨이 막히고, 정리도 안 되고, 답도 없고, 대안도 없고, 압박만 늘어가게 만든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정말 넉넉하게 잘 사는 사람들의 얘기가 넘쳐나는데, 왜 주변의 현실 상황은 죽음마저 도피처가 되지 않을 만큼 절박함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정말 신(神)이라는 분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 대목이다.
탄탄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친구가 난데없는 부도를 맞았다. 거래처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자금줄이 순식간에 막히니까, 그냥 바라보며 부도를 맞았다고 한다. 또 한 친구는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정부 기관에서 승승장구하다가 과감히 사표를 내던졌다. 그냥 지내면 걱정 없이 여생을 설계할 수 있지만, 공무원의 삶은 본래의 자기 삶이 아니었다는 이유 때문이란다. 또 한 친구는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 집을 전세로 돌린 뒤, 1년 예정으로 세계 여행을 떠났다. 더 늦으면 이 세상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을 것 같아 서둘러 결정했다고 한다.
종합병원에 있는 의사 친구는 개업의가 될 것을, 개인병원을 운영하던 친구는 다시 종합병원으로 들어갈 것을 고민하고 있다. 기업 사장인 친구는 업종 전환 문제 때문에, 교수인 친구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유학을 가고 싶어 고심하며 지낸다. 개인 매장을 운영하는 친구들은 다른 분야의 일을 하고 싶어 끙끙 앓는 소리를 한다. 유난히 잦아진 고교 동기들과의 술자리는 토론과 넋두리와 하소연으로 끓어오른다. 전부 마흔의 나이를 앞두고 있는 탓이다.
불혹(不惑)이라는 나이의 무게는 정말 대단하다. "부질없이 흔들리거나 마음이 동하지 않는 상태"를 이른다는 그 단어의 뜻과 어감은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지학(志學·15세)과 약관(弱冠·20세)의 시절에 만난 친구들이 이립(而立·30세)을 거쳐 이제 불혹을 맞이한다는 건 갑자기 인생의 20년 정도를 도둑맞은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식이라면 지명(知命·50세)과 이순(耳順·60세)은 정말 순식간에 다가올 모양이다. 고희(古稀·70세)의 나이가 됐을 때 우리들 중 과연 몇 명이나 남아 있게 될지……. 이젠 지나가는 농담이 아니라, 숨이 탁 막히는 현실로 그 모든 걸 바라봐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올려다보던, 세상에서 가장 믿음이 가던, 내 키의 서너 배는 될 것 같던 아버지 어머니의 자리로 우리 세대의 위치가 바뀌고 있다. 우리가 내려다보는 아이들의 눈망울에서, 우리들은 정신없이 앞으로만 내달리던 십여 년의 시간을 되찾고자 몸부림을 친다. 민주화와 독재타도를 부르짖으며 긴 밤을 지새우던 그 얼굴들이 이젠 전세와 월세, 아이들의 교육, 나이 들어감에 대한 초조감과 허망함을 얘기 나눈다. 거의 매일 마주앉아 술을 마신다. 속 쓰림으로 다음 날 오전 내내 고생하더라도, 오후만 되면 서로의 전화벨을 울린다. 약속을 잡고 다시 마주앉아 또다시 끝도 없는 대화를 나눈다. 그래도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나마 그런 자리마저 없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나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을 책임지라고 누군가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라고 치부하며 살았었는데, 그 말처럼 무서운 뜻이 내포된 한마디는 없을 거라 믿어지는 게 요즘의 생활이다. 그 말의 뜻은 무엇인가? 모든 이들의 얼굴에는 어떤 삶을 살았고, 살고 있고, 살아갈 것인지가 보인다는 의미이다. 사기꾼의 눈빛은 보통 이들의 것과 확연히 구별된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간교함이 눈빛에 가득 담겨 있는 법이다. 인덕을 쌓은 성직자들의 얼굴 또한 일반인들과 다르다. 지나온 삶과 현재의 삶, 지향하는 미래가 눈빛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버릇이지만, 나는 길을 걷거나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마다 곁에 머물고 스쳐가는 사람들을 짧게나마 유심히 관찰한다. 그들의 얼굴에 적혀 있는 삶의 흔적들을 발견하려 혼자만의 애를 쓴다. 작가에게 있어서 작품 집필의 영원한 소재이자 주제가 되는 모든 건 바로 사람이라는 존재이다. 모두의 얼굴에는 구태여 말이 필요 없는 삶의 생생한 기록들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감정, 예를 들어 웃고 찡그리고 분노한 표정 등으로는 그 사람의 본질을 가릴 순 없다. 늘 변화되는 표정만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그건 정말로 껍데기만 보며 내면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는 법이다. 표정으로 감춰질 수 없는 내면의 진실은 무엇으로 알아내는가? 바로 눈이다. 눈동자는 절대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현재의 생각과 속마음과 인생의 여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누군가 거짓말을 한다면 그의 눈동자는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자기도 모르게 알려 준다. 아닌 척 감출 수 없는 사랑을, 희미한 미소로도 포장되지 않는 분노를, 선행 비슷한 행동으로 덮으려는 이기심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의 얼굴은 자기만의 삶이 무엇인지를 고백한다. 감추려 해도 숨김없이 공개되는 것이다. 살아온 삶의 이력이 드러난다는 것,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감 있는지, 찌들었는지, 외로운지, 허망한지, 즐거운지, 슬픈지 아닌지가 보인다. 습관처럼 화장실에서만 거울을 보지 말고, 아무 전제 없이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마주보면 거울 속 자신이 모든 걸 다 얘기해 줄 것이다. 나태한지, 지킬 건 지키는지, 감추는 게 뭔지, 왜 주저하고 있는지가 다 보인다.
얼굴에 칼을 대고 외모를 바꾼다 해서, 칼라렌즈로 가린다 해서 본질을 숨길 순 없는 일이다. 얼굴에는 모든 게 다 적혀져 있다. 취직할 때만 쓰는 게 이력서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인생의 이력서는 언제 어디서나 자기 얼굴에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겉모습에만 너무 익숙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속마음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눈빛을 보라. 눈동자는 다 말해 줄 것이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갈망인지 원망인지, 애원인지 환멸인지, 더불어 자기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 그 모든 걸 전부 세세한 기록으로 숨김없이 밝혀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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