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 일본 오키나와에 대한 기록과 기적-사진가 10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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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전쟁이남긴것 |
"상기하자 625"
6월 말쯤 이었던 것 같다. 종로일대를 지나던 기자는 위 문구가 선명하게 박힌 커다란 현수막 앞에 이삼백 여명의 어르신네들이 집회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 본 적이 있다.
그들에게 상기해야할 625는 어떤 것일까?
전쟁을 잊지 말고 상기하자는 말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 무엇을, 어떤 형태로 기억해야 하는 가를 정의(定義) 내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은 히로시마를 핵전쟁의 공포로 기억하지만 미국은 정의(正義)의 실현으로 기억한다.
한반도에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고 "잠시 멈춤" 상태로 지낸지도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상기해야할 전쟁의 기억을 명확히 정의 내리지 못한 채, 아물지 못한 전쟁의 상처와 끝나지 않은 전쟁의 현실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고 있다. 지난 날 이라크 파병 문제를 두고 반전과 반미로 나라가 분열되는 형국을 보라.
우리는 전쟁의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 것일까?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얼마 전 이러한 의문에 답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전시회가 있었다. 지난 8월 13일부터 22일까지 <한국 일본 오키나와에 대한 기록과 기억 - 사진가 10인의 눈> 전시가 서초동 한전갤러리에서 열렸다.
한국과 일본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열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이 전시회의 테마는 바로 ‘전쟁’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과 일본 오키나와에서의 전쟁이다. 사진이란 사진 찍은 자가 물리적으로 그곳에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사진가는 곧 목격자이며, 기록자인 것. 그래서 다큐멘터리 사진은 본질적으로 기록의 작업이요, 진실을 위한 탐색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우리에게 기억해야할 "무엇"을 제공한다.
이 전시가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기억해야할 전쟁의 진실이란 바로 "상처"이다. 전쟁은 피해당사자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 어떤 정책당국자가 "단기전"을 외치더라도 전쟁은 본래 단기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피해자들의 육체와 정신에 새겨진 "상처"는 말하고 있다.
<한국 일본 오키나와에 대한 기록과 기억 - 사진가 10인의 눈>은 전쟁이 주는 상처가 어떤 것인지 생생히 증언하는 자리였다. 전쟁의 기억과 상처가 왜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지 수백 점의 사진들은 말없이 웅변하고 있었다.
해안에 폐기된 포탄 위에 앉아 있는 소녀의 모습(매향리 이야기-국수용), 미국의 신형 무기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파주의 지방자치단체장(미국의 두 얼굴-이용남), 작년 전국을 촛불행렬로 타오르게 했던 미선이 효순이의 영정사진(아이들은 열 네 살이었다-노순택), 한 서린 얼굴로 담뱃불을 붙이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쓸쓸한 모습(과거의 사진첩에서 찾아낸 기억들-안해룡)은 전쟁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으며 이 땅의 전쟁이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생생히 보여준다.
<전쟁이 남긴 것>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강렬하고 직접적인데 비해 일본작가들은 전쟁의 상흔과 본질을 보다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오키나와 주둔미군을 주제로 30여 년 간 사진을 찍어온 이시가와 마오씨는 젊은 시절 직접 미군클럽 종업원으로 일하며 "기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촬영했다. 사진 속 미군의 친근한 표정은 역설적으로 침략자의 여유를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게 다가온다.
주일미군과 오키나와 여성사이에서 태어난 존 마쓰모토 씨는 그와 같은 혼혈인인 히가 바이론을 주제로 사진을 내놨다. 동양인 체구에 서양인의 얼굴 선을 가지고 있는 바이론은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닌 "오키나와 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거듭 확인한다. 류큐왕조 시대의 머리모양을 하고 거울을 바라보는 모습, 이제는 거의 잊혀져 가는 오키나와 토박이말을 너무 실감나게 쓰는 탓에 오키나와 노인들이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생뚱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는 모습이 재미있다.
애초 이 전시는 일본 작가인 이시가와 마오 씨와 한국 작가인 신동필, 국수용 씨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원폭피해자들을 찍어 온 신동필씨와 매향리 폭격장을 다뤄온 국수용씨 그리고 오키나와 고향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이시가와 마오 씨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적인 건지도 모르겠다.
미국과 전쟁이라는 공통분모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들은 의기투합해 1년 남짓 준비기간을 거쳐 뜻을 함께 하는 다른 7명의 작가들과 일본 한국을 오가는 한일합동전시회를 성사 시켰다. 지난 6월 오키나와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오사카를 거쳐 한국이 세 번째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어서 미국에서도 전시가 기획중이다.
글 함은혜 기자
사진제공 <한국 일본 오키나와에 관한 기록과 기억 - 사진가 10인의 눈> 실행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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