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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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재천/ 출판사: 효형출판/ 값: 8,500원
두 달 전 새 생명을 얻었다. 살기 좋을 때보다는 살기 어려울 때가 훨씬 많아 생명에 대한 강렬한 애착은 없었는데 막상 나를 닮은 존재가 눈앞에 나타나니 놀랍고 신기하기만 했다. 아기에 대한 강렬한 애정을 느끼면서 생명에 대한 경외감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이렇게 해서 이런저런 흥취에 젖어 최재천 교수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다시 꺼내들었다. 최재천 교수는 이과 계통의 학자 중에는 보기 드물게 쉬우면서도 유려한 필체를 구사하고 있지만 말이 구수하면서도 막힘이 없어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분이다. 생물학에 원래 관심이 많던 나는 어느새 최 교수의 팬이 되었고 그의 책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반드시 사야한다는 의무감까지 가졌다.
평소 최재천 교수는 "알면 사랑한다"는 말을 강조하면서 동물의 생태를 알리는 대중적인 활동에 정열을 쏟고 있는데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도 그런 지조로 씌어진 책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동물들의 삶의 이야기가 들어있는데 갈매기는 일부일처이기는 하나 배우자가 새끼 양육에 불성실하면 이혼을 하기도 하고, 꿀벌들의 정찰병이 꿀을 발견하고 추는 춤이 어찌나 정확한지 그 춤을 보고 사람도 꿀이 있는 방향과 거리를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하고, 흡혈박쥐는 이틀 동안 피를 섭취하지 못하면 죽는데 동료끼리 피를 나누어주어 살아가고, 염낭거미는 자신의 몸을 바쳐 자식들을 키우고, 금술 좋다는 원앙새는 사실 기회만 있으면 바람을 피운다는 등 재미있는 동물 이야기가 짤막한 에피소드처럼 두, 세 쪽 분량으로 이어진다.
물론 최재천 교수는 동물학자답게 이런 재미있고 신기한 습성들은 단지 유전자 보존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그는 "동물의 왕국" 류의 동물 이야기로 빠지지 않고 자신의 철학을 이 책에 불어넣고 있다. 몸을 다친 동료를 돌보아주는 돌고래들을 이야기하면서 장애우에게 매정한 사회를 개탄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하는데 인색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남의 자식 기르는 것을 즐기는 타조를 예로 들면서 꾸짖기도 한다. 사실 동물보다 못한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세상이 가슴 아플 때가 많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을 부담 없이 슬금슬금 읽다보면 생명의 고귀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생명이 어찌나 위대하고 신기한지. 몇 년 전 기행을 일삼던 스님이 "괜히 왔다 간다"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전시회를 갖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나버려 삶의 허무감을 잊으면서 살던 사람들을 서늘하게 한 적이 있었다. 불교적 염세주의에서 본다면 생명은 참 부질없고 모든 고행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있는 그대로 보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 생명을 가진 자들의 의무이자 숙명이니 어쩌란 말인가.
독립생활(Independent Living)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아직도 생명을 생명 그 자체로 보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장애가 심각한데 어떻게 주체적으로 살 수 있냐는 식의 온정을 가장한 냉소적인 태도로는 세상은 늘 그 모양 그 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생명은 그 나름대로 자신의 의지대로 살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조그만 벌레나 동물에도 오묘한 생명의 신비가 숨어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야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중증장애우의 현실을 몰라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가슴이 터질 것 같을 때가 많은데 "알면 사랑한다"고 했으니 우리 중증장애우 살아가는 이야기를 묶어서 『장애가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면 어떨까? 설마 너무 처참한 내용이라 보려는 사람이 없진 않겠지?
어쨌거나 이 책을 읽으면서 생명 그 자체를 존귀하게 여기고, 나아가 아무리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더라도 사람 그 자체의 존귀함으로 대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글 윤두선(중증장애우독립생활연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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