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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장차현실-이상윤 만화가의 만남

만화와 장애우 그리고 장애우 만화를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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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차현실과 이상윤은 직업이 만화가라는 점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장애우를 주제로 한 만화를 그리는 작가라는 점이다.
장차현실 씨는 최근 다운증후군을 가진 딸 은혜(14)와의 일상을 만화로 담은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한겨레신문사)를 펴냈다. 독신엄마와 장애우 딸의 씩씩한 웃음이 물씬한 책이다. 이상윤씨는 1996년 장애인을 소재로 한 만화가 전무했던 시절 1년 간 <함께걸음>에 만화를 연재했다. 장애인 문제를 만화로 연재한 최초의 만화가인 셈이다. 현재 작업중인 작품의 주인공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친구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 두 작가의 만남은 함께걸음이 마련한 자리였지만 만화가라는 유대감이 발동해서였을까? 그들은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활기차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누구든 어린 날 만화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부모님 몰래 만화방을 드나들던 기억, 머리맡에 책을 쌓아두고 만화책 보느라 밤을 하얗게 보낸 기억, 수업시간에 몰래 친구들과 만화책을 돌려보던 기억 등.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으로 천대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 만화는 많이 출세(?)했다. 만화적 표현, 기법은 단행본은 물론이거니와 신문, 방송, 광고, 영화, 인터넷까지 현대 시각매체의 전 분야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문화, 유행을 주도하고 언어와 사고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바야흐로 만화전성시대.   
쏟아지는 수백 수천의 만화 가운데 "아는 작가 이름" 찾기도 쉽지 않은 요즘, 우리가 만화가 장차현실과 이상윤을 주목하는 이유는 남다르다. 결코 쉽지 않은 주제인 장애우를 소재로 한 만화로 대중과 소통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아직 일반인들에게 장애우의 이미지는 어둡다. 그래서 만화라는 형식의 유쾌한 성격이 더욱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장애우가 주인공인 만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사회 모든 영역이 그러하듯 만화 쪽도 장애우는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장애우인 이들이 "장애우 만화"를 그리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는 걸까? 

〈이상윤, 함께걸음과의 인연이 만화가의 길로〉
"함께걸음이 인연이 되었죠. 동시에 만화와 인연을 갖게 해준 것도 함께걸음입니다. 장애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따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들락날락 하면서 함께걸음을 알게 됐죠. 그 때 이태곤 기자가 내가 미술 전공한 걸 알고는 만화연재 한번 해보자고 제의를 했었고 저도 대학 졸업하고 사회생활도 했지만 만화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을 때였거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거죠."
이상윤의 말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의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그림을 판돈으로 만화책을 빌려봤다면서 머쓱하게 웃는다. 그가 만화가의 꿈을 구체적으로 꾸게 된 동기는 아톰으로 유명한 오츠카데사무의 만화를 접하고 부터였는데 인생의 다양한 측면을 만화 특유의 상상력으로 풀어낸 오츠카데사무의 그림은 당시 명랑만화와 순정만화에 익숙해 있던 그로서는 "충격"이었다.
"그걸 보면서 만화가 표현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을까, 인간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만화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의 의사소통 수단이 언어와 문자가 대표적인데 사실 이것이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만화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나 상상 등을 표현해 내는 거예요. 형상화시키기 어려운 내 안의 수많은 생각들, 욕구들을 만화는 그려 낼 수 있다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참 흥분되는 일 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만화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만화 때문에 미술을 전공한 것은 아니다. 그는 서울대 서양화학과 출신인데 그가 대학을 가게 된 이유는 순전히 "오기"때문이었다.
"저는 폭력적으로 참 말썽 많은 학생이었어요. 그 날도 한 친구와 싸움이 붙었는데 그 친구 전교 1, 2등 하는 친구였거든요. 선생님이 그 친구만 두둔하더라고요. 그때부터 공부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잘하는 게 그림이니까 그림 쪽으로 공부를 하면 승산이 있겠다 싶었죠."
차분한 인상의 그가 소시 적 "사고뭉치"였다는 사실이 금방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는 순전히 "오기"로 대학을 간 것이라고 했다. 이점에선 장차현실도 비슷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장차현실, 딸 자랑하다 만화가가 된 사연〉
"저는 공부는 못했지만 그림은 잘 그려서 초등학교 때부터 죽 미술부였었죠. 그런데 고등학교 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집안 형편이 극히 어려워졌어요. 실기비 못 낸 적이 많았었는데 한번은 그것 때문에 망신을 크게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미술하는 친구들이 유복한 집 자제들이 많잖아요. 이상한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줄곧 1등만 했죠. 저는 수학여행도 안 갔어요. 그 기간에 그림 하나라도 더 그리려고요."
장차현실은 장애우 단체 소식지에 딸 은혜를 키우면서 겪는 소소한 일상을 그린<은혜의 하루>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에 <색녀열전>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만화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만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홍익대 동양과를 졸업한 그녀의 꿈은 탁월한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장애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 여성과 장애우 문제에 대해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원했고 그 매개체로 만화를 선택했다. 이상윤과 다른 점이라면 그녀는 말하고 싶은, 표현하고 싶은 내용을 먼저 갖고 있었고 이를 어떻게 나타낼까 생각하다가 만화를 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후 만화가 주는 매력에 푹 빠져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내가 은혜를 낳은 게 아니라 은혜가 날 찾아온 게 아닐까라는... 왜 사람들이 계획해서 애를 낳잖아요. 애를 갖기 위해서 담배끊고 술끊고 11월에 계획해서 내년 8월에 낳아야지 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은혜를 낳고 생각한 것이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예요. 부모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정하는 게 아닐까, 아이가 먼저 저 여자를 엄마로 해야지 그러려면 남자가 필요하니까 저 남자랑 이어줘야겠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웃음). 그래서 나도 은혜가 날 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 여자가 살림도 잘할 것 같고 씩씩하니까 그리고 그림을 좀 그리니까 그림 잘 그리게 해서 나를 위한 책을 만들게 해야지 이렇게 말예요(웃음)."
장차현실은 웃음이 많고 밝은 사람이었다. 이는 그녀의 만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최근 발간한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를 봐도 그렇다. 목욕을 하다 ‘남자가 등 밀어주는 상상’을 하며 빙그레 웃는 엄마. 그런 엄마를 ‘어이, 뱃살~’이라고 부르는 딸. 전혀 무겁지 않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잔잔한 미소를 번지게 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인터뷰 중에도 딸 이야기만 나오면 -모든 부모가 다 그렇듯이- 금새 얼굴이 싱글벙글해 진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도 처음 은혜를 낳았을 때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5층 아파트에서 떨어지면 어디부터 닿을까라는 몹쓸 생각도 했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할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은혜의 장애에 대한 정보를 구하러 다니다 보니까 내가 그동안 장애에 대해 참 무지했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사람들은 장애라 하면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그게 아니더라고요. 조금은 다른 세계가 아이에게 놓인 것일 뿐이거든요."

〈장애문제를 만화로 그린다는 것〉

이상윤씨의연재만화

분명 장애우를 만화로 표현하는데 있어 비장애우가 접근하기에 조심스럽고 민감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녀의 만화는 장애문제를 가볍게 다루지 않으면서도 어둡지 않다. 이유가 뭘까?
"제가 은혜엄마라는 점 때문이겠죠. 장애문제의 소용돌이 속에 있잖아요.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나와 은혜이야기를 그냥 하는 거죠. 남들이 볼 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참 즐겁게 살거든요. "
이상윤이 한 마디 거든다.
"장차현실 씨가 하는 만화가 바람직한 모델인 것 같은데요. 일상의 체험에서 나오는 뭔가가 있어야 하거든요. 함께걸음에 만화 연재할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저는 비장애우라 장애우의 상황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족했거든요. 나중에는 내 안에서 나올 게 더 이상 없으니까 독백이 돼버리는 거예요.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더란 말이죠. 일부러 감동을 짜내려다 보니까 이게 과장이 되고 낯설게 되는 겁니다. 이게 잘못하면 문제를 왜곡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위험해 지거든요."  
이상윤은 감동을 만들어 내려고 할 때 작가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걸음에 연재할 당시를 떠올리며 감동이란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것인데 이를 인위적으로 짜내려다 보니까 낯설고 자연스럽지 못하게 되더라고 술회한다.
이에 대해 장차현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교류가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속내를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친분이 두터워지는 것이 필요한 것. 관계가 깊어지면 속내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다양한 사연을 많이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장애우 본인이 하는 것인데 이게 불가능해요. 생계문제랑 부딪치는 거죠. 장애우를 만화로 그려서 먹고 살만 하다면 활성화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이게 안되거든요. 장애우 관련 단체나  잡지사들의 원고료를 보면 다른 데의 오분의 일 수준이거든요. 내가 장애우이고 당사자니까 이 분야에 대한 만화를 집중적으로 하고 싶다고 해도 여건이 안 되는 거죠. 참 안타까워요."

〈만화로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장애우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질곡을 숨김없이 드러내주는 만화, 삶 속에 숨겨진 무수한 편견을 깨고 뒤집는 만화를 하겠다는 장차현실과 이상윤. 각자의 개성과 스타일은 다르지만 그들이 만화를 통해 꿈꾸는 것은 한 곳을 향해 있었다. 장차현실과 이상윤은 앞으로도 계속 장애우를 테마로 만화를 계속 그릴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저는 만화 속에서 장애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외롭고 슬픈 그런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저도 슬픈 이야기를 하자면 구구 절절히 할 말 많거든요(웃음). 은혜를 키우면서 세상을 보는 눈과 사고 자체가 변했습니다. 슬픔은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희망을 주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할까... 저는 만화가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각인되어야 할 무엇을 제공하는데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만화는 웃기고 재미있는 거거든요. 한바탕 웃음 뒤에 장애우에 대한 편견에 대해 곱씹어 보게 만드는 그런 만화를 그리고 싶습니다."(장차현실)
"지금 제가 작업중인 만화 주인공도 장애우인데 저는 이 만화에서 직접적으로 장애문제를 언급하지 않으려고 해요. 장애우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나는 장애를 장애라고 규정하는 것이 싫습니다. 누구나 부족한 점은 있고 함께 어울리면서 사는 거죠. 그냥 일상에서 부딪치는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장애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좋은 만화라는 것은 물론 만화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닌데 사람을 자유롭게 해 주는 만화, 우리의 관념을 확장시켜서 편견을 해소해 주고 생각을 좀 더 편안하게 해주는 만화가 좋은 만화라고 생각해요. 보다 넓은 시각에서 사물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만화가 좋은 거죠. 만화를 통해 장애우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해소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죠. 저 또한 이 작업을 계속 할 겁니다."(이상윤) 


장차현실 사진 발문
"사람들은 아이가 장애라 하면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그게 아니더라고요. 조금은 다른 세계가 아이에게 놓인 것일 뿐이거든요."

이상윤 사진 발문  
"우리의 관념을 확장시켜서 편견을 해소해 주고 생각을 좀 더 편안하게 해주는 만화가 좋은 만화라고 생각해요. 만화를 통해 장애우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해소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죠."

 

글 함은혜 기자 사진 윤정은 객원사진기자

 

 

작성자함은혜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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