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내탓이오 > 문화

 다내탓 회장은 초점이 풀린 흐리멍텅한 눈길을 창문너머 공장 담벼락에 붙박아 둔채 멍하
니 서있었다.
 그러기를 족히 30여분은 되었을 것이다. 머리속에는 감쪽같이 잡념이 달아나 버렸는데 가
슴속 깊은곳에서는 왈칵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지금 심정같아서는 결재서류건 재떨
이건 의자건 책상이건 닥치는대로 집어던지고 짓이기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맺힌 화가 풀
어질수 있다면 직원들이 뭐라 하든 다내탓 회장은 그런 행동을 거리낌없이 시도했을 것이었
다.
 
그러나 문제는 그보다 더한 지랄발광을 떨고 푼수 없는 행위를 감행해도 가슴 속에 단단히
응어리져있는 그 우라질 분노는 풀어질 기미조차 안보이리라는 냉정한 상황판단을 별수 없
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을 고명 딸 희정이년이 달랑 쪽지 한 장을 남겨놓고 집을 나
간지 벌써 일주일째였다. 따지고 보면 지 애비의 기발한 착상을 과시하려 희정이년을 공장
에 데려온게 결정적인 실수였지만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이십여년을 금지옥엽 키워온 그
년이 이렇듯 철저하게 지 애비를 배신하리라고는 정말이지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
다.
 
다내탓 회장이 평소에 업신여겨 마지않은 희정이년 또래의 공장 노동자쯤이야 가출을 하건
공장을 그만두건 나아가 비관자살을 하건 내 알바 아니었지만 당사자가 희정이라면 그야말
로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그년을 어떻게 키웠는데... ... 다내탓 회장은 땅이 꺼져라 긴 한숨을 토해 내었다.
 다내탓 회장의 눈길이 머물러 있는 길건너 공장 담벼락엔 글자도 선명하게 내탓이오! 라고
쓰여있는 플랭카드가 길게 드리어져 보는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공장담벼락 뿐만 아니라
정문에도, 식당에도, 작업장에도 심지어는 화장실에도 내탓이오!는 위풍도 당당하게 "노동자
가 이 세계의 주인이다. 착취와 억압을 물리치고 가자. 노동해방의 세상으로!" "임투 승리하
여 노동자의 자존심을 되찾자... ..."어쩌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나 지껄이고, 그것도 모자
라 집단행동으로 속을 있는대로 긁어 놓는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여 노동자가 가난한 것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진리를 터득시키고 그 바탕위에서 작업에만 충실한 노
동자가 되게끔 돕고 있을 터였다. 그 사실을 다내탓 회장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고
있었다. 내탓이오!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단어인가, 동서고금을 통털어 이 단어보다 나은
만고불변의 진리는 단언하건데 아마 없을 것이다.
 
처음 가톨릭쪽에서 이 운동을 시작한 것을 알았을 때 다내탓 회장은 정말이지 십년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후련함을 맛보았다. 오죽했으면 그 소식을 듣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자신
의 남은 생애를 이 운동에 바치고저 김○○이라는 본명을 다내탓으로 바꾸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겠는가. 때마침 위대하신, 백년에 한번 날까말까한 불세출의 지도자라고 믿어 마지않는
대통령 각하께서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노동현장에서의 분규를 초전에 박살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천번만번 지당한 어명이었다. 다내탓 회장이 보기에도 하라는 일은 안하고 쓸데없는 노동
조합이나 만들어 분규나 일삼는 노동자들이야말로 극악무도한 범죄자임이 틀림없다. 범죄자
는 깡그리 잡아 들여야한다. 어느새 대통령각하의 시각에 일치하는 높은 식견을 공유하게
된 셈이라 다내탓 회장은 매우 흡족해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다내탓 회장은 노동자들의 의
식을 각성시키는 의식개혁의 효과적인 방법이 내 탓이오!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쳐나가는 것
임을 믿어마지 않았다.
 

내탓이오! 는 거리의 자동차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장,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사업장에
절실한 구호였던 것이다. 무위도식 정부의 실업자 통계속에 들어가려 발버둥치는 노동자, 열
등의식으로 뭉쳐져서 현대를 미개노예 시대로 착각하는 노동자, 먹여주고 재워주는 은혜를
모르고 날뛰는 노동자, 내 머리에는 쌍시옷이 입력되어 있지 않아서 씨팔이라고 하지 않고,
야 이 개새끼, 개년이라고 욕을 했는데 인격모독을 했다고 몰아부치는 노동자 년놈들... ...
 오호 통제라 이렇게 생각하니 노동자들이 가엾어서 다내탓 회장은 밤잠을 이룰 수 없을 지
경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구호만 써붙일 것이 아니라 한 시간에 한번씩 내 탓이오! 내 탓이
오!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을 권하고 싶었다.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자본가의 티끌만
지적하며 열을 올리는 노동자여, 왜 자신이 못사는 것을 자본가 탓으로 돌리며 분규를 일삼
는가.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다내탓 회장은 성자의 심정이 되어 일일이 내탓이오! 구호를 적어 공장안에 내 걸었다. 그
리고는 적어도 희정이년이 가출하기전 까지는 자신의 의식개혁운동이 알찬 결실을 맺으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희정이년은 가출을 하면서 남긴 쪽지에서
 "... ...아빠, 아빠가 내걸은 내탓이오! 는 노동자에게 필요한 구호가 아니라 아빠 자신에게
되돌려져야 할 절실한 구호임을 잊지마세요... ...아빠를 손가락질하는 노동자를 보고 저는 비
애를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아빠가 늘상 이야기한 평등한 인간이 아빠 한끼 식사 값에도
못미치는 몇천원의 임금으로 하루종일 혹사당하고 테니스 엘보우 라는 희귀한 병으로 팔이
늘어나는 참상 앞에서 언제까지 아빠는 노동자들 탓만 하고 있을 건가요?... ...아빠 저는 하
루를 살아도 참된 인간으로 살고 싶어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세상에서 아빠가 착취의
채찍을 휘두르는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죽고만 싶었답니다. 반성하세요 아빠,
부탁드릴께요... ...아빠가 지은죄를 속죄하려 저는 노동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아빠 곁을
떠납니다... ..."
 다내탓 회장은 저녁노을이 비껴드는 하늘을 보면서 참을 수 없어 가슴을 쳤다.
 내 탓이오!  <이태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