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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과 기울지 않는 추

장애인 권익옹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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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는 권익 침해를 경험한 장애 당사자의 인권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학교, 직장, 영화관, 복지시설 등에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적인 대우를 당했거나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빼앗긴 경험을 한 장애 당사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인권센터로 도움을 청한다. 나는 이곳에서 근무하며 마주하게 된, 어쩌면 지금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공유하고자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 속으로
2022년 5월은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내 이동권 시위로 매일같이 기사가 쏟아지던 때이자, 내가 처음으로 장애인 단체의 활동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때이다. 면접을 보기 위해 서둘러 온 건물에는 예상과 달리 이동권 시위와 관련된 부정적 입장의 현수막이 마구잡이로 걸려있었다. 분명 면접에서 해당 주제에 대한 질문을 받을텐데 어떤 입장의 답변을 해야 할지 뒤섞인 현수막만큼 어지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땐 시위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노의 대상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활동가로서의 첫 기억은 중심 없이 이리저리 흔들렸던 혼돈의 시기를 어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대부분이다. 이 혼란 속에서 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문제의식을 깨닫기 시작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장애인 복지에 마음이 기울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가장 열악해서. 사회는 특정 집단, 특히 장애인을 향해 끊임없이 불평등한 환경에 순응하기를 강요한다. 아동, 청년, 노인 등의 영역은 누구나 일생에서 접하게 되므로 이들에 대한 관심과 활성화된 복지 서비스는 자연스레 이어진다. 그러나 장애 영역은 당장 내일, 정말 내 일이 될 수 있음에도 어떠한 특정성을 부여하여 타자화 되어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특혜의 영역으로 인식된다. 사실 본인은 공익적 선의보다는, 내가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장애인이 되었을 때의 부당함과 열악함을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장애인 복지에 관심 가지게 된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드물게 발생하는 일은 사건이지만, 자주 반복되는 일은 일상이 된다
인권센터에서 근무하며 알게 된 현실의 장애인들은 상상 이상으로 사회 곳곳에서 일상과 같은 차별과 불이익을 경험하고 있었다. 뉴스에 나오는 특정한 사건은 그저 장애인이 겪는 일상의 한순간을 소개하는 것과 같았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의무교육에서 배제되는 사건이, 고용시장에서 응시조차 하지 못하는 사건이, 수십 년을 강제로 노동해도 학대가 아니게 되는 사건이, 체육·문화·여가 시설 이용을 거부당하는 사건이, 그 흔한 식당도, 화장실도 이용하지 못하는 사건이 우리에겐 더 이상 사건이 아닌 일상이었다.
 
이렇게 일상 곳곳에 녹아든 차별은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를 반영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별 사례에 대응하는 것이 아닌, 보다 포괄적이고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단순히 중심에 서서 무게중심을 바로 잡는 것이 아니라, 그 기울어짐 자체를 바로잡는 역할이 절실하다.
 
 
객관성과 주관성의 경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차별행위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줄줄이 나열하고 있다. 그리고 3항에서는 “1항에도 불구하고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차별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아주 폭넓고 추상적인 예외를 둔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이 정당한 사유를, 과도한 부담을, 현저히 곤란한 사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열차게 싸우는 일이기도 하다.
 
때로는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당사자의 욕구보다, 당사자를 둘러싼 환경에 더 이입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활동가로서 ‘아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라는 마음이 들 때 그 순간을 가장 경계한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단순히 ‘괜찮은’ 정도로는 안 된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안을 파악하되, 그 중심은 오롯이 당사자의 경험과 입장에 두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사례일지라도 예외를 인정하고 한 발을 빼면 차별 행위를 한 자들은 모두 정당한 사유를 주장하며 예외로 인정되는 차별을 주장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차별의 예외를 제한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어쩌면 과한 주장들을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중립성 유지의 딜레마
인권센터에서 상담을 진행하고 현안에 대응할 때 가장 어려운 순간은 또 다른 인권과의 충돌이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장애인의 사법 절차상 인권침해를 옹호해야할 때나 몰카 범죄를 저지른 장애인의 의사소통을 지원해야 할 때 아주 복잡한 감정을 경험한다. 두 사례 모두 그들이 적절한 법적 권리를 지원받아야 함에는 변함이 없지만 사회적 맥락과 피해자의 고통을 무시할 수 없기에 강한 도덕적 갈등을 직면하게 된다. 스스로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괴로움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이러한 충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명확하다. 인권센터의 역할과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수행하는 역할은 그들의 죄책감을 경감하거나 면죄하는 것이 아니라, 방어권 행사가 어려운 장애인이 적절한 지원과 공정한 수사를 통해 차별적인 사법절차를 겪지 않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물론 피해자의 고통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기에, 그럴 때일수록 가령 피의자와 피해자로 구분되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복잡한 맥락을 최선으로 살피고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피의자에게 필요한 법적 지원을 하되, 그 지원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인지하고 피해자의 목소리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균형을 잡는 것. 이것이 현재로서 내린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결론이다.
 
기울지 않는 추
오래 속해 있던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똑바로 서고자 할 때, 때때로 내가 정말로 바로 서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기울어져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심지어는 어떻게 해야 똑바로 설 수 있을지 그 방향조차 모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곳을 벗어나 바라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울지 않는 추가 되기 위함은 단순히 균형을 잡는 것이 아닌 근본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불공정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쳐나가고자 할 때의 혼란과 갈등은 앞으로도 필연적으로 동반하겠지만, 이 과정의 본질과 분노의 방향만큼은 더 이상 헤매지 않을 수 있다. 현실적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평평한 운동장으로 변화해 가는 여정이 끝날 때까지 장애 인권 활동가로서 ‘기울지 않는 추’가 되어 고민과 노력을 기꺼이 거듭하고, 그 변화를 위해 함께할 것을 다짐해 본다. 
작성자글. 김아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간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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