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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건강권, 우리가 직접 되찾자

의료파업 속 장애

본문

 
응급실 뺑뺑이를 아시지요?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이런 의료기관 뺑뺑이가 일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 경기장애인부모연대 회장 김미범
 
지난 5월 13일, 아버지가 홀로 돌보고 있는 평소 행동 지원이 많이 필요한 중증의 발달장애인이 집에서 분노행동으로 유리창을 깨뜨렸다. 상처가 심해서 경찰의 도움을 받아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으나, 간단한 응급처치만을 받은 뒤 과잉행동으로 더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병원 측 판단으로 항생제약 처방 등 외래진료도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치료를 위해 119 구급차를 요청해 타고 2시간여를 서울 시내와 경기도까지 치료를 할 수 있는 3차 병원 등 무려 27곳에 문의했으나 어느 곳도 발달장애 청년을 받겠다는 곳이 없었다. 이 중에는 발달장애인 거점병원인 한양대병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그는 충북 음성의 한 정신병원에 입소해야 했다. 
 
여기서, 이 발달장애인이 진료를 받지 못한 이유는 의사 파업 때문일까?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인 김미범은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출범대회에서 뺑뺑이가 일상인 발달장애인의 삶에 대해 증언했다. 애초에 갈 수 있는 의료기관이 별로 없지만 보호자나 활동지원사 등 간병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1인실 병상이 없어서, 전신마취가 불가능한 곳이어서, 잘 모르는 장애 유형이라, 장애유형에 맞는 검진 기기가 없어서, 갖가지의 이유로 다른 병원으로 돌려보내지는 장애인의 삶에 대해 말이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은 과연 의사파업 이후에 일어나는 진료 거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동안 싸워왔지만, 권리에 대한 인식은 충분히 나아갔을까. 장애인은 애초에 건강할 수 없다는 인식과 환자가 일시적 상태라면 장애인은 상시적 환자와 같이 대해져 온 정체성을 순순히 받아들여 온 것이 아닌가? 장애인은 접수과정에서, 진료과정에서 겪은 일에 대해 의료차별 혹은 진료 거부라고 말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는가? 환자로서, 시민으로서 의료기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무엇인가? 나를 진료해줄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는 상황에서, 과연 의사와 맞서 싸울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우린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보건복지부가 발표하는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항상 장애인이 국가·사회에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이 소득보장 다음으로 ‘의료보장’이었다. 그 이후에도 고용보장, 주거보장, 그 다음은 ‘장애인 건강관리’다. 그러나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연구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건강 격차와 시사점'에 따르면,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치료 가능한 사망률이 6.2배 높으며, 이는 예방 가능한 사망률보다 높다. 게다가 장애인의 건강검진 수검률은 비장애인에 비해 10% 정도 낮으며, 발달장애인은 그보다도 10% 정도 낮다. 왜 장애인건강권법이 있고, 장애인보건의료센터가 있고, 장애인주치의가 있는 국가에서 장애인은 치료받지 못해 죽어가는가?
 
장애인 건강권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된 계기는 코로나 팬데믹이다. 2020년 2월 코로나로 인한 첫 사망자는 청도대남병원 폐쇄병동에 20년 이상 장기간 입원한 무연고자인 정신장애인이었으며, 코로나19 전체 사망자의 3명 중 1명은 장애인1) 이었다. 게다가 100인 이상 대규모 장애인거주시설에서는 2명 중 1명이 누적 확진되었다. 그러나 장애인 감염병 대응 매뉴얼은 실효성이 없었고, 장애인은 고위험군으로 인정받지조차 못했다. 감염병 상황에서 장애인의료지원체계는 국립재활원에 있는 16개의 병상이 전부였다. 2022년 2월 21일 서울에서 중증시각장애인은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에 명시된 PCR 이동지원도 받지 못한 채 길거리에 쓰러져 사망했고, 같은 해 5월 12일 광주에서는 중증장애여성이 코로나 확진 이후 보건소도, 의원도, 병원도 갈 수 없어 5월 17일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은 2022년 8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회의에서 왜 한국은 유독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장애인의 사망률이 높은지에 대한 질문에 “한국 장애인 절반 이상이 기저질환을 가진 노인이다. 기저질환,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의 사망률은 높다”고 답하며, 코호트 격리 밖에 대안이 없었던 한국 사회의 현실은 철저히 가린 채, 장애인의 생물학적 특성으로 원인을 돌렸다.
 
△ 서울대학병원 앞에서 출근 선전전하는 모습
 
국립재활원의 2023년도 장애인 건강보건통계 컨퍼런스 자료집에 따르면, 자폐성 장애인의 사망 원인이 1위 낙상, 2위 고의적 자해(자살), 5위 운수사고, 6위 가해다. 지적 장애인의 사망 원인 또한 1위 낙상, 4위 고의적 자해, 7위 운수사고, 9위 가해, 10위 우발적 익사 및 익수 등으로 유사하다. 과연 발달장애인의 높은 사망률은 조기노화로 인한 생물학적 원인일까, 사회적 지원의 부재 때문일까?
 
정부와 의료계가 장애인 불건강의 원인을 생물학적 특성으로 삼아오는 한편, 의료제도가 무너지는 원인은 의료취약계층에게 돌려왔다. 건강보험 재정이 바닥나고, 우리나라 의료비 지출이 과도하다는 비판에 대해 정부는 의료기관과 제약회사를 규제하고, 의료공공성을 보장하기보다는 의료취약계층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려왔다. 최근에는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도덕적 해이로 인한 비합리적 의료이용을 하고 있다”며 의료급여 정액제로 정률제로 개편하는 안을 추진 중2) 이다. 이에 7%의 의료급여 수급자들에 대한 자기부담금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대강 구도 속에서 장애인은 항상 끽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죽어왔다.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의 의사 파업 이후 두 번째 의사 파업을 맞이하고 있다. 2000년 의약분업과 2013년 원격의료로 인한 2번의 의사 파업이 있었지만, 이 당시에는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의 의사 파업은 공공의료에 종사할 의사 수가 모자람을 온 국민이 함께 확인하는 팬데믹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의사는 공공재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밥그릇 지키기에 바빴다. 또한, 시민들을 설득하고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공급자 중심의 의료체계에서 언제나 장애인의 자리는 없었다. 진료받을 때는 의사 앞에서 자신이 받는 의료서비스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조차 요구하지 못하고, 의료차별을 겪거나 진료 거부가 일어나더라도 문제제기를 할 제대로 된 창구조차 없다. 정책과 제도에 대해서는 더더욱 대책이 부재하다. 장애인건강보건관리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도 장애인이 거의 없다. 내가 직접 겪는 서비스, 장애인이 직접적으로 얽혀있는 사업,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제도에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현실에 균열을 내야 한다.
 
정부는 의사 파업을 수습하기 위해 다음 달 초까지 건강보험 재정으로 2조 3천억 정도를 쓴다고 한다. 그 대부분은 민간 대형병원의 손실을 메꿔주는 예산이다. 정부가 의사파업으로 인한 민간 대형병원의 피해를 메꿔주기 위해 많은 비용을 쓰고 있는 한편, 장애인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예산들은 줄어들고 있다.
 
울산과 세종에 여전히 1개소도 없는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는 내년도에도 지정을 위한 예산을 배정 받지 못했으며, 2023년도 삭감된 장애인건강보건관리사업 예산 총액은 여전히 원상복구조차 되지 않았다. 최근 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 시행령'은 이전까지 의무대상이 아니었던 의원·치과의원·한의원까지 포함한 모든 의료시설의 편의시설 설치 의무화를 이루었지만, '건축주 및 시설주 등 피규제 대상의 규제비용을 최소화'한다는 명목으로 소급적용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 의료급여를 정률제로 전환하는 내년도 의료급여 예산은 2,500억 원 정도 줄었다.
 
2번에 걸친 의사 파업은 더 이상 의료에 있어 우리의 권리를 우리가 찾지 않는다면, 강대강 구도 속에서 권리는 빼앗길 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사회는 장애인이 갖고 있는 손상과 기능적 제약에 대한 재활 치료·의료적 개입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장애인이 일상적으로 겪는 의료차별에 대해서는 누가 이야기하는가? 의료는 치료 중심적 사고에 갇혀 시설화 될 것인가, 지역사회에서의 의료지원체계로 나아갈 것인가? 장애인과 의료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장애인 당사자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장애는 의료에 종속될 뿐 의료를 적절한 지원으로서, 건강권을 권리로써 향유 할 수 없다. 그것이 의사 파업이 우리에게 알려준 교훈이지 않을까.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는 2번에 걸친 의사 파업 속에서 꽃 피웠다.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로 공급자 중심의 의료체계를 무너뜨리고, 장애인 건강권이라는 열매를 쟁취해 나갈 것이다. 
 
△ 서울대학병원 앞에서 출근 선전전하는 모습
 
함께해 주세요
1)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가입 : https://bit.ly/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2) 의료급여 정률제 개정안 시행 중단을 촉구하는 탄원인 모집 : https://forms.gle/5Sp6c3Ud11C4Zq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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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2년 4월 3일 기준. 2022년 5월 27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질병관리청에서 제출받은 자료.
2) [성명서] 사탕발림 집어치워라! 보완이 아닌, 지금 당장 의료급여 정률제 폐지! (https://readmore.do/CK1h)
작성자글과 사진. 박주석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사무국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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