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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듣고, 담고, 보여주다

춘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심사위원 대상작, <잘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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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 안녕 영화 스틸컷 네이버 영화
 
장애를 가진 사람의 차별은 죽음에도 존재한다?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하며 어린 자녀의 목숨을 앗아가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을 정부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 범죄로 규정하고 대응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이 사건으로 희생된 아동은 72명에 달하며, 피해 아동의 85%는 12세 이하 영유아와 초등학생이었다.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표현하기도, 스스로를 지키기도 어려운 아이들이 부모의 잘못된 선택으로 생명권을 박탈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를 가진 자녀가 피해자인 경우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장애를 가진 피해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는 현실에서, 장애당사자의 존엄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 역시 현저히 낮다. 최근 스레드에서 ‘발달장애 아동의 안락사’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로 인해 부모도 힘들고 아이 역시 고통스러우니 부모에게 아이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21세기다. 아직까지도 우생학적 사고에 지배당해, 장애를 가진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부모나 보호자의 결정에 맡기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정서가, 이를 명백한 범죄나 인권의 문제로 인식하는 감수성보다 앞설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돌봄의 어려움과 부모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도 장애를 가진 사람의 생명권을 타인이 결정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이 문제는 장애가 아니라, 돌봄의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사회에서 그 책임을 개인이나 가족에게 떠넘기는 구조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장애를 가진 사람을 배제하고 분리하며 설계한 사회가 이러한 현실을 자초했음에도, 장애 탓이라며 혐오하고 사라져주기를 바라는 사회인 것이다.왜 이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참혹하고 잔인하게 내모는 사회여야 하는가.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논쟁 어디에도 장애당사자의 목소리나 존재감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논하면서도 당사자를 결정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차별은 삶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도 존재한다.
 
'장애를 가진 자녀 살해'를 '부모의 사랑'으로 왜곡시키는 주류미디어에 태클 걸기가 통하다
그동안 한국영화와 드라마에서 '장애를 가진 자녀 살해'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있었는지 떠올려봤다. 내 기억에는 없다. 더욱이 살해당할 위험에 놓인 장애당사자의 눈과 입이 되어 그의 삶과 감정을 중심에 놓은 작품은 단언컨대 없었다. 언론 보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복합적인 사회 문제인 '장애를 가진 자녀 살해'를 부모의 고통과 살해에 이르기까지의 인간적인 고뇌를 세세히 써내려가며 하나의 비극으로 단순화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아이를 돌보겠는가'라는 문장은 사건을 설명하는 핵심 서사가 되고, 독자는 자연스럽게 이를 부모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살해'라는 범죄는 연민으로 포장되고, 희생된 장애당사자의 존엄을 지워왔다.
 
그 주류미디어의 시선과 논조에 정면으로 반문하는 영화가 있다. <잘가, 안녕>이다. 며칠 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리뷰가 올라왔다. 반응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물론 영화의 문제의식에 반대편에 선 듯 날선 의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존엄과 자기결정권을 새롭게 돌아보게 됐다"는 반응이었다. 반가웠다. 과연 이 영화의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인 것일까.
 
▲잘가, 안녕 영화 스틸컷 ⓒ네이버 영화
 
"나는 아빠와 함께 죽지 않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그를 배신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영화의 시작, 가난과 배신으로 삶의 의지를 잃은 아빠가 써내려간 유서의 끝 문장 ‘내가 없으면 내 딸은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 자신이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견디고 있는 뇌성마비장애를 가진 딸 영아의 속마음에 시선을 옮긴다. 그동안 주류미디어가 비추지 않았고, 어쩌면 비춰서도 안 되었던 시선이다. 영화는 영아에게 카메라를 고정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의지와 선택을 비추며 그 결행의 순간을 끝까지 따라간다. 그 여정 속에서 관객은 그동안 한 번도 서 보지 못했던 영아의 자리에 서게 되고, 이제껏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던 그녀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나는 아빠와 함께 죽지 않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그를 배신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잘가, 안녕 영화 스틸컷 ⓒ네이버 영화
 
영아의 이 한마디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맞아. 바로 이거지.’ 이 한마디면 됐다 했다. 이 말에는 살아내려는 의지와 실행하려는 결의가 담겼고, 자신의 삶과 죽음은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너무도 당연한 권리가 담겼다. 우리는 그동안 이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고, 기다렸던가. 장애를 가진 자녀가 자신의 입으로 "죽고 싶지 않다"고,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고 말하며, 자신의 죽음에 관한 자기결정권만큼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말이다. 이를 위해 사회가 존재하고,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말해주는 상식적인 세상을 얼마나 갈망해왔던가.
 
"이제는 내가 누군지 말하고 싶어요."
전동휠체어의 높이와 동선에서 보이는 세상을 담아낸다. 이는 장애당사자가 마주하는 현실을 관객이 체감하도록 하기 위한 연출이었으리라. 서서 보면 그리 높지 않은 턱도, 앉아서 바라보면 벽처럼 다가온다. 영화는 전동휠체어를 타는 사람의 시야를 따라가며 이동권과 조망권의 제약, 그리고 곳곳에서 마주하는 막힘의 현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 높이가 주는 위압감은 스스로 ‘이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위축을 낳고, 무언의 배제가 일상이 된 사회를 드러낸다.
 
그 현실을 가장 절감하게 한 장면은 엄마의 장례식장이었다. 영아는 경사로가 없어 끝내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녀는 이 상황을 너무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마치 이런 일이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라는 듯 체념이 배어 있다.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뒤 홀로 누워 컴컴함과 적막을 견뎌야 한다는 영아의 독백도 오래 남는다. 밤은 외로움의 시간이자,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과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점령당하는 시간이다. 이런 세상에서 영아 발의 흉터도 자신의 잘못이고, 생명 유지도 자신의 헌신 결과인 양 늘 미안해하고 전전긍긍하던 엄마를 회상하며 영아는 속엣말을 한다. "저는 제 발의 흉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 삶의 유일한 변수 같은 느낌이랄까요? 저한테는 위험이 허용될 수도 없었으니까요.”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공감한 대사다. 엄마가 늘 나를 걱정하며 신경을 곤두세울 때마다 내가 되뇌는 말이기도 하니까.
 
아빠의 결단만 남겨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영아는 활동지원사 정민과 함께 삶을 이어가려 부단히 애를 쓴다. 언제 있을지 모를 아빠의 살해 시도에 맞서 호신술을 연습하는 모습은 살아내려는 의지로, 그 의지가 만들어낼 또 하나의 변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보였다. 결국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뉴스에 소비되지 않을 권리,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지키기 위한 선택과 실행을 끝까지 응시하는 것으로 존중을 표한다. 그리고 장애에 갇히게 한 세상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기회를 빼앗겨 왔던 영아는 마침내 말한다. "이제는 내가 누군지 말하고 싶어요"라고.
 
영화 도입부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영아의 눈빛과 자신의 선택을 실행한 뒤 마지막에 보여준 눈빛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영화는 이 두 눈빛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자신의 의지는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과 생명의 존엄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잘가, 안녕>은 마침내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고 세상에 꺼내 말하고 있었다.
 
P. S. 이 영화의 주인공 영아를 연기한 배우는 실제로 뇌성마비장애를 가진 배우 김경민 씨다. 장애당사자 배우였기에 카메라의 위치도, 앵글도, 그 안에 담기는 세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위치에서, 그 구도에서 보이는 세상을 담아냈기에 영화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더 실질적인 이야기를 끌어낸다. 기존 영화들이 전동휠체어를 탄 인물이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장면을 통해 접근성이나 이동권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면, <잘가, 안녕>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일상에서 경사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리사회 곳곳에 설치된 폭이 좁고 길이가 짧은 가파른 경사로가 얼마나 위험하고, 신체에 큰 부담을 주는지를 관객이 자연스럽게 체감하도록 연출한다. 단순히 이동의 불편을 보여주는 것에서 한발 나아가, 무엇이 필요하고, 장애 당사자의 몸이 일상에서 어떤 현실을 견디는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장애당사자 배우의 존재감은 대사의 호흡과 동작, 동선에만 있지 않다. 존재 자체로 촬영 현장의 시선을 바꾸고, 질문이 생기게 하며, 결국 영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강력한 메신저가 되는 것이다.
 
 
작성자글. 백수정 대중문화비평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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