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과 집에서 운동할 수 있을까? ‘감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칼럼 | 함께걸음

발달장애인과 집에서 운동할 수 있을까? ‘감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칼럼


발달장애인과 집에서 운동할 수 있을까? ‘감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모두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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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성 이미지 ⓒ함께걸음
 
1. 집에서 운동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최근 들어 운동하는 분들이 주위에 정말 많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운동의 필요성에 고개를 끄덕이시는 와중에 자신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인 집에서 즉시 할 수 있는 ‘홈트레이닝’을 시도해 보셨을 것 같습니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기구들을 집에 들이거나 운동 영상을 저장해두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빨래걸이가 만들어지거나 스마트폰 속 운동 재생목록이 아래로 밀려난 경험이 혹시 있으신가요? 발달장애인들에게도 집에서 하는 운동은 역시나 쉽지 않습니다.
 
“운동할 곳이 마땅치 않은데, 집에서라도 해봐야겠다.”
“(자녀가)집에서 누워있으려고만 하니 운동이라도 시켜야지.”
 
이처럼 발달장애를 가지신 분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가족분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 계신 모습을 운동 지도 현장에서 많이 보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이 문제를 발달장애의 특성에서 기인한 의지나 동기의 문제로 문제를 단순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2. 왜 집에서는 운동이 어려울까
 
집이라는 공간의 감각
사람은 생각보다 공간을 기능으로만 인식하고 기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공간에 있고,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하면 되는지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은 머리로 하는 판단이 아니라 몸이 받아들이는 감각입니다. 소파의 푹신함, 늘 켜져 있는 텔레비전, 편한 실내복의 촉감, 냉장고까지의 짧은 동선. 집은 이런 감각 신호들로 촘촘히 짜여 있고, 그 신호들은 하나같이 “여기는 쉬는 곳”이라고 몸에 속삭입니다. 문제는 이 감각 맥락 안에서 갑자기 “이제 운동하자”고 모드를 바꾸기란 대단히 어렵다는 점입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이 어려움은 한층 더 크게 다가옵니다. 특정 공간과 특정 행동이 한 번 몸에 연결되면, 그 연결은 쉽게 잊히거나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쉬는 곳’이라는 감각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을수록, 그 안에서 운동을 꺼내 오는 일은 더 낯설고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운동하는 곳의 감각
반대로 헬스장이나 체육관을 떠올려 봅시다. 그곳의 감각은 정반대입니다. 줄지어 선 운동 기구, 벽면을 채운 거울, 흐르는 음악, 옆 사람의 규칙적인 움직임, 갈아입은 운동복. 이 감각들은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여기는 운동하는 곳”이라고 몸에 신호를 보냅니다. 그래서 헬스장에서는 특별한 결심 없이도 자연스럽게 운동 모드로 전환됩니다. 공간 자체가 준비운동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셈입니다.
 
결국 집과 헬스장의 차이는 단순 의지력의 차이가 아니라 감각 경험의 차이로 볼 수 있습니다. 집에는 ‘운동하는 곳’이라는 감각자극 신호가 부족하고, 헬스장에는 그것들이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분명해집니다. 두 공간 사이의 감각 경험의 간극을,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어떻게 좁혀줄 것인가. 다시 말해 집 안에 몸이 알아차릴 수 있는 ‘운동의 감각 신호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입니다.
 
3. 집에서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세 가지 솔루션
 
첫째, 시간을 고른다
집에서의 운동은 ‘언제든 하면 된다’는 자유 때문에 오히려 실패합니다. 언제든 할 수 있다는 말은 결국 언제라도 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걸음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운동할 시간을 ‘한 칸’ 고정하는 것입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직후, 혹은 일과 준비 전 특정 시각처럼, 이미 몸에 밴 일과에 운동을 ‘살짝’ 얹는 방식이 좋습니다.
 
이때 발달장애인의 특성은 오히려 강점이 됩니다. 익숙한 순서와 반복되는 루틴은 안정감을 주고, 예측 가능한 시간대는 불안을 낮춥니다. 매회 같은 시간에 반복되는 활동은 “이 시간이 되면 우리는 몸을 움직인다”는 익숙함을 만들어 냅니다. 운동은 자발적이고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활동이어야 합니다. 익숙한 루틴 속에 운동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원래 하는 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언제 하느냐를 먼저 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감각 환경을 만든다
정해진 시간이 왔을 때 몸이 자연스럽게 운동 모드로 넘어가려면 그 순간을 알리는 감각 신호가 필요합니다. 헬스장이 자동으로 해 주던 일을 집에서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것입니다.
 
현장 지도하면서 제가 가장 먼저 바꾸는 것은 청각적 ‘환영’ 자극입니다. 스스로가 운동모드로 돌입했다는 것이 청각 자극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끌리듯 돕는 음악 루틴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이 준비돼 있어요”라는 말이 기대감을 높이듯 정해진 음악은 곧 운동이 시작된다는 예고가 됩니다. 시각적으로는 매트 한 장을 정해진 자리에 펴는 것만으로도 그 공간이 잠시 '운동존'이 됩니다. 촉각적으로는 운동복과 운동화로 갈아입는 작은 절차가 감각의 전환을 돕습니다. 운동 시작 전 같은 음악이 흐를 때 같은 인사를 하고, 같은 위치에서 경험하는 작은 반복 움직임들이 결국 몸속에 하나의 신호로 자리 잡습니다. 이것을 미리 설정하는 것 자체가 곧 마음의 준비를 끌어내는 다리가 됩니다.
 
셋째, 성공할 수 있는 과제를 준다
마지막 열쇠는 ‘해낼 수 있는’ 운동을 고르는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시간과 환경을 갖췄어도, 첫 과제가 어렵고 낯설면 그 경험은 실패로 남고 다시 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집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과제 분석입니다. 하나의 동작을 가장 쉬운 단계부터 차근차근 나누어, 지금의 수행 수준에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지점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시는 되도록 쉬운 말로 명료하게 전합니다. “근육을 이완시키기 위해 정적인 상태로 15초 이상 유지하세요”가 아니라 “몸을 천천히 늘리고, 15초 동안 그대로 있어 보세요”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운동 동작 수행이나 모방을 어려워하는 경우 먼저 올바른 자세를 만들고 ‘n초 버티기’ 등 지속시간과 관련된 과제를 부여하는 것이 운동 초반에는 도움이 됩니다. 작은 성공이 쌓일수록 “나는 이걸 할 수 있다”는 과제 인식이 자리 잡고, 그 인식이 다음 참여로 이어지는 동기가 됩니다.
 
4. 솔루션 성공률을 높이는 꿀팁
 
하나의 세트 구성하기
앞의 세 가지 열쇠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스토리로 묶일 때 힘을 발휘합니다. 1회기 운동을 “리듬운동 - 근력운동 - 미니게임”이라는 짧은 세트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간단한 리듬 스텝으로 운동을 시작하고, 이어서 쉬운 플랭크 운동을 실시합니다.
 
그리고 마무리로 쉬운 플랭크 자세로 탁구공 입으로 불어 멀리 보내기 게임을 합니다. 준비-본 운동-마무리라는 체육수업의 기본 구조를, 집이라는 무대에 맞게 축소해 옮긴 예시입니다. 이 과정에서 함께하는 가족이나 지도자는 처음에는 시범을 보여 따라하도록 돕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요소를 활용합니다.
 
운동 칠판 활용하기
미니 화이트보드나 칠판을 마련하여 한 회의 운동이 끝나면 오늘 한 활동을 작은 보드에 적어 보면 좋습니다. 그리고 이 칠판을 운동 공간 근처 잘 보이는 곳에 게시합니다. 공책보다 칠판을 추천해 드리는 이유는 게시가 가능하고, 쓰고 지우기가 편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록의 목적은 평가나 독촉이 아닙니다. 얼마나 했는지 점수를 매기고 다그치는 순간, 운동은 다시 부담이 됩니다. 운동 칠판은 오늘의 시간과 다음의 시간을 이어 주는 상호작용의 장치입니다. “오늘 이 동작 정말 잘했어!”, “다음에 해보고 싶은 건 뭐야?” 같은 대화가 기록을 사이에 두고 오갈 때, 오늘의 운동은 어떻게 해서든 다음 운동과 연결되는 개연성이 만들어집니다.
 
1일 1성공 만들기
‘오늘의 성공’을 최소 하나 이상 발견하고 만들어 내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시작하기 전에 오늘 반드시 해낼 수 있는 작은 목표를 하나 정합니다. 예를 들어 ‘스쿼트 다섯 번’, ‘매트에서 15초 스트레칭’, ‘음악한 곡이 끝날 때까지 제자리 걷기’처럼, 지금의 컨디션에서 실패할 수 없는 수준이면 충분합니다. 그 하나를 해내면 그날의 운동은 성공입니다.
 
혹시 정한 목표가 버거워 보이면, 기준을 더 낮춰서라도 반드시 성공으로 마무리합니다. 혹시 여러 이슈로 인해 사전에 작아 보였던 목표를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다면 “어려운 마음으로 오늘 운동하는 시간을 잘 지켜주었다”고 격려해 주세요. 이 시간을 ‘성공한 기억’으로 끝내는 것,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작은 성공이 하루하루 쌓이면서 ‘집=쉬는 곳’이라는 기존 인식 옆에, ‘집=내가 해내는 곳’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조금씩 자리를 넓혀갑니다. 그렇게 어느 날 “내일 또 하고 싶어요”라는 말이 나온다면, 우리는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5. 다시, 처음 질문으로
 
집에서 운동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집에서 운동하는 일은 원래 어렵습니다.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은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이 본래 운동과 어울리지 않는 감각으로 채워져 있다는 시선으로 보면 “집에서 운동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 운동을 일상의 어느 주기에 놓을 것인가, 어떤 감각 조건을 만들어 줄 것인가, 어떤 성공 경험을 안겨 줄 것인가”로 질문을 전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감각 조건이 일률적으로 형성된다면, ‘집에서 운동하기’는 누구나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각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작성자글. 김지수 베어베터 생활체육팀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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