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불평등에 맞서는 상호 돌봄의 정치
인권 / 기후위기와 장애
본문
1. 기후재난이 드러낸 부정의한 현실
‘기후위기’로 재난이 일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폭염과 집중호우, 산불과 가뭄 같은 재난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를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과 기상 이변으로만 설명하면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누구의 어떤 위기인가?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 결과를 누가 더 많이 감당하고 있는가? 이 위기를 부추기는 불평등과 부정의에 맞서 우리는 어떤 정의를 만들어갈 것인가?
‘위기’라는 말은 때로 억압과 불평등,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지우는 정책적 용어로 전유되어 왔다. 국가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취약계층’으로 분류하고 보호의 대상으로 호명하지만, 누가 위험을 초래하고 공모하고 있으며, 왜 어떤 삶이 더 쉽게 위기에 노출되는지는 가려진다. 장애인 역시 기후위기에 ‘취약한 몸’으로 분류되지만, 이를 개인이나 몸의 특성으로만 설명하면 위기를 발생시킨 차별적 구조도 위기에 맞설 전략도 지워진다. 그렇기에 기후재난은 위기를 초래해온 다양한 권력의 교차적인 작동을 문제 삼아야 하며, 그 권력을 바꾸는 일은 곧 정치와 정의의 문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2020년 3월 경기도는 노인·장애인 등 의료·거주시설 1,824곳을 대상으로 예방적 코호트격리를 시행했다. 시설 거주인을 시설 안에만 머물게 하고 외부 접촉을 제한했다. 이미 사회와 분리된 장애인 거주시설은 감염병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집단 격리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후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10개소를 조사해 코로나19 장기화 과정에서 외출 제한과 동일집단 격리 등으로 기본권과 건강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음을 확인하고, 동일집단 격리를 지양하며 긴급분산조치 등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대응체계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1) 돌봄공백으로 돌봄의 위기를 말하던 정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코로나19는 재난 자체뿐 아니라 재난에 대응하는 방식이 기존의 시설 위주 정책과 분리를 강화할 때 장애인의 위험과 권리의 박탈을 함께 키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탈출하지 못하는 사람들2)이 고통을 통과하며 시설사회가 문제라는 구조적 폭력성을 드러냈다.
2. 자본주의와 식민주위가 가속화하는 불평등한 위기
그렇다면 위기를 만들어내는 구조는 무엇인가. 이송희일은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에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사회적 위험과 환경 비용은 끊임없이 개인들에게 청구된다”3)고 강조한다.
정부는 탄소발자국 줄이기, 분리수거 등 책임을 개별화하는 전략을 강요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1%가 하위 1%에 비해 1천 배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고, 화석연료와 자동차 기업을 비롯한 100개 대기업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71%를 배출하며, 한국의 경우 10개 대기업의 배출량이 전체의 26%를 차지한다”4)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정부와 자본은 탄소를 발생시키는 자본의 덩치는 감추고 개인에게만 ‘착한 소비자’로서 순응할 것을 강요한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를 아끼자는 주장은 과연 정의로운가? 에너지 문제야말로 자본과 식민주의 폭력을 드러낸다. 에너지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국가와 기업의 권력, 자본의 투자, 전쟁과 점령이 만나는 영역이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폭력은 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은 해양 가스 탐사 구역인 Zone G에 대한 탐사권 낙찰을 발표했고, 이 컨소시엄에는 한국석유공사가 100% 지분을 보유한 다나 페트롤리엄과 이탈리아의 Eni가 참여했다.5) 팔레스타인 인권단체들은 Zone G의 약 62%가 팔레스타인이 2019년 선언한 해상 경계와 겹친다고 지적하며, 팔레스타인 주민의 천연자원에 대한 권리와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국제법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사례는 화석연료의 탐사와 개발을 단순한 탄소배출의 문제로만 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에너지 산업에는 자본의 축적과 국가의 지정학적 이해관계, 자원에 대한 통제와 점령의 문제가 함께 작동한다.
따라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치적 실천은 어떤 자본이 어떤 국가에 결합하고, 그 결합이 전쟁과 점령, 자원개발, 기후위기를 어떻게 지속시키는지를 물어야 한다.
3. 성장의 지속화는 시설사회를 지속시킨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장의 지속화’는 곧 ‘시설사회의 지속화’와 연결된다. 녹색성장, 케어워싱(carewashing, 돌봄사업으로 구조적 불평등을 가리는 것을 일컫는 말) 등은 장애인을 전시하거나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동원한다. 장애인이 이러한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저항의 주체로 나서기 위해서는 시설사회를 지속시키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장애인을 배제하는 효과적인 장치로서 장애인 집단 거주시설은 사회복지정책으로 정당화되었다. 권리를 박탈당하고, 삶을 유예 당하며, 감금되어 왔다. 시설사회로 내몰린 사람들, 밀려난 몸들이 놓인 자리는 차별과 반인권의 현주소다. 기후위기의 재난은 여전히 오늘 이 자리에서 더욱더 가혹하게 드러나고 있다.
기후위기를 가속해 온 자본주의적 성장 체제는 생산과 효율, 이윤을 중심으로 특정한 국가와 몸, 삶을 비생산적이고 무능한 것으로 규정해 주변부로 밀어냈다. 이 구조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가부장제와 결합해 이주, 난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소수자의 삶을 ‘보호’와 ‘관리’의 대상으로 만들고 시설사회를 지속시켜 왔다.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생산성과 효율성 중심의 정치경제를 떠받쳐온 체계로서 가족과 시설이 상호 긴밀하게 연결6)되어 왔다.”
자본주의적 성장은 세계를 연결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은 특정한 국가와 사람, 공간을 배제하고 착취하는 방식으로 유지되어 왔다. 기후위기는 이러한 관계가 만들어낸 결과다. 따라서 기후위기는 결코 자연의 위기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소유하고 통제하는가, 어떤 삶을 보호하고 어떤 삶을 배제하는가를 둘러싼 정치의 위기다. 기후정의는 바로 이 관계를 드러내고 변화시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4. 기후불평등에 맞선 공공성 운동
2022년 8월 8일 폭우가 쏟아지던 날,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 살던 40대 발달장애 여성과 가족 두 명이 침수로 목숨을 잃었다. 다음 날인 9일에는 상도동에 사는 발달장애인이자 기초생활수급자인 50대 여성이 숨졌다.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은 불평등이 곧 재난임을 외치며 “불평등 해결을 위한 사회공공성을 강화하고 기후위기 대응과 기후정의에 기반한 주거권 보장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7) 기후재난 속에서, 차별받는 위치에서, 위기를 온몸으로 겪는 이들이 기후불평등을 발생시킨 체제를 지목하고 그에 맞서기 위한 공공성 토론과 투쟁을 벌여가고 있다.
2025년 진행한 공공성 토론회에서 나영은 “‘모두’의 범주와 의미를 계속해서 갱신해야 하며 ‘모두’에 포함되지 않는 이들의 위치와 교차성8)을 찾아내야 하고, 새로운 관계와 자원을 정치적으로 조직9)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미류는 공공성 개념을 “모두의 삶의 필요가 충족되는 질서를 가질 권리를 위한 투쟁10)”으로 제안한다. 또 다른 사회서비스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운영하는 윤리와 정의를 다시 묻자는 의미일 것이다.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이성애중심주의, 정상신체중심주의와 인종주의 등 복합적인 차별의 구조적 맥락 속에서 읽어내야 한다. 얽힌 문제들을 발견하고 싸우기 위해서는 빈곤, 젠더, 인종, 장애 등이 교차하는 관점과 운동에 함께하자. 재난을 전시하고 대상을 ‘취약계층’으로 분류하는데 그치는 미온적인 사후 대책의 구조에서 벗어나자. 모두에게 배제되었던 몸들의 경험으로 말하자. 더 이상 국가가 소수자의 삶을 ‘착한 소비자’나 ‘자격을 갖춘 시민’으로 훈육하며, 장애인 개인이 플라스틱 빨대를 덜 쓰게 할 것이 아니라, 시설 밖으로 나올 권리를 보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정치를 해야 한다. 녹색성장과 사후적인 보호정책은 결코 이 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5. 취약성의 정치로 상호돌봄의 세계를 재구축하자
기후위기와 장애인의 현실을 교차적으로 바라볼 때, 취약성은 개인의 몸이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와 정치의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장애여성운동은 이러한 취약성을 개인의 무능이 아닌 사회와 정치의 무능으로 드러내며, 장애 여성을 변화와 투쟁의 주체로 위치시켜 왔다.
장애여성운동에서 말하는 ‘취약성의 정치’는 그렇기에 시설사회와 기후위기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장애인의 기후불평등을 말한다는 것은 왜 장애인의 삶이 재난에 취약하도록 구조와 권력이 유지되는가를 묻는 것이며, 내 몸과 삶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겨온 권리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시설에 가두어 자원 관계, 선택과 실패를 차단한 것이 성과 재생산 권리를 침해한 것이며, 사회와 맞설 기회를 박탈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취약성의 정치는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데 머무를 수 없다. 장애인을 기후위기의 피해자로 전시하는 대신, 실제 재난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빈곤, 젠더, 장애, 나이, 인종, 가부장제의 불평등이 교차하는 재난의 현장과 몸의 경험을 통해, 기후 위기를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다시 볼 수 있다.
불구의 몸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 이 위기를 만들었고, 어떤 삶의 경험과 속도를 통해 지속할 사회를 만들 것인가 질문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취약성의 정치와 투쟁은 누군가를 취약하게 만드는 사회를 바꾸는 투쟁이다.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불구의 존재들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주체로 바라볼 때 기후불평등을 바꿀 정의로운 정치로 출발할 수 있다. 위기에서도 서로 의존하는 감각에 매달려 앞으로만 뛰어가는 성장과 개발의 속도를 비판하며, 꼬이고 뒤틀린 몸으로 서로 의존하며 뒷걸음치는 이들이 다른 삶의 전략을 만들어갈 것이다.
1) 국가인권위원회,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생활인의 인권보장과 동일집단 격리 지양 등 인권상황 개선 권고」, 2022.5.4.
2) 이진희, ‘동선 위의 사람들’, 경향신문, 2020. 03. 22. https://www.khan.co.kr/article/202003222044015
3) 이송희일,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99쪽.
4) 위의 책, 101쪽.
5)「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에너지 기업 대응 실천 가이드」
6) 황지성, 「장애여성의 시설화 과정에 관한 연구: 서울시립부녀보호지도소 사례를 중심으로, 1961~2010」,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3, 3-4쪽.
7) 김소영, 반지하 폭우참사 3주기, “불평등이 재난” 바뀌지 않은 기후약자의 현실, 비마이너, 2025. 08. 07.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8278
8) 이 글에 쓰인 아래의 용어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음을 밝힙니다. 1. 의존: 서로에게 기대거나 살필 수 있는, 힘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의 상태 2. 상호돌봄: 서로 기대어 돌봄을 주고받으며 평등하게 연대하는 관계 3. 취약성: 아프거나 늙거나 장애로 인해 몸이 약해진 상태, 사회적 불평등으로 삶의 재생산이 위협받는 상태. 4. 교차성: 집단이나 개인의 정체성과 차별이 젠더, 인종, 계급, 성적 지향, 장애, 연령, 종교 등 다양한 요소의 교차적 작동으로 구성됨을 밝히는 분석 개념.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김영옥, 이진희, 조미경 <파도: 나이듦과 장애의 교차적 만남> 공연 해설중)
9) ‘공공성과 재생산정의 운동의 전략에 대한 고민들’ 나영. [작은포럼] 「체제전환을 위한 공공성의 탈환과 재구성」, 2025.6.26., 체제전환조직위원회.
10) ‘체제전환과 공공성의 재구성’ 미류. [작은포럼] 「체제전환을 위한 공공성의 탈환과 재구성」, 2025.6.26., 체제전환조직위원회.
작성자글.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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