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청소년의 권리를 위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세상의 중심에 선 장애아동
본문
지난 호에서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장애아동이 잘 자라도록 장애아동의 부모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국가와 지역사회는 장애아동과 장애아동을 키우고 있는 부모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장애청소년의 삶 일부분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장애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최근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개인적 모델에서 사회적 모델로 바뀌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회적 모델에 대한 이야기는 장애인 복지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학, 특수 교육학, 아동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함께걸음>을 오랫동안 구독하신 독자들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러한 용어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장애를 바라보는 개인적 모델은 장애로 인해 말하는 것, 움직이는 것, 듣는 것, 보는 것 등의 신체기능에 제한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열심히 재활에 참여하거나 수술을 받는 등의 노력을 통해 장애를 가지기 이전의 신체기능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개인적 모델의 핵심은 ‘개인이 노력’ 해야 하고, ‘의료적인 도움’을 받아 장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다른 말로는 ‘의료적 모델’이라고도 합니다.
반면 사회적 모델은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는 개인이 가진 신체적인 기능의 제한 때문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개인이 사회에 참여하여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사회가 적절히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봅니다. 즉,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에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이 없다거나, 왜소증을 가진 사람이 마트에 갔을 때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꺼내야 할 때 사다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보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욕구에 따라서 사회 환경을 바꾸고 적절한 지원을 한다면,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는 대부분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자칫 두 가지 모델 중에 어느 모델이 더 중요한가, 우선순위인가를 논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장애인 당사자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환경의 변화도 필요하고, 개인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대한민국은 장애인이 지역에서 살아가거나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필요한 사회환경이 잘 마련되어 있거나, 장애인 당사자의 사회참여를 위한 정책, 제도 등이 제공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최근 들어 장애 당사자들의 사회참여, 지역사회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도 개발하고 환경도 마련하고 서비스도 제공하는 등의 사회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노력은 장애아동, 장애청소년, 장애청년, 장애중장년, 장애노인, 장애여성, 1인가구장애인, 부모장애인을 대상으로 장애의 유형과 정도를 고려하여 촘촘하고 세심히 제공되어야 합니다.
장애청소년의 신변처리
장애청소년도 지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장애청소년이 이용할 수 있는 학교, 병원, 화장실, 식당, 상점, 문화체육시설, 여가생활시설 등의 환경이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청소년기본법」 제3조에서 청소년이란 9세 이상 24세 이하이며, 2021년 12월 말 기준 9세 이상 24세 미만의 등록장애인은 111,897명(전체 등록장애인의 4.23%)이고, 그중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은 96,676명으로 전체 장애청소년 중 86.4%에 해당합니다. 장애 청소년들도 비장애청소년과 마찬가지로 학교에 다닙니다. 장애 정도에 따라서 일반학교 일반학급, 일반학교 특수학급, 특수학교, 전공과에 다니게 됩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아동들은 7살 여름부터 스스로 샤워해보기, 용변을 본 후 스스로 뒤처리하기 등의 신변처리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시기를 보냅니다.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고 개인의 위생관리를 스스로 수행하기 위한 연습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장애청소년의 경우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서 음식을 씹어서 삼키지 못해 튜브를 통해 경관영양을 제공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탄 채 학교에 등교하기도 합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이용하는 대신 기저귀를 착용하고, 교사나 지원 인력(특수교육 실무사, 특수교육 보조원, 공익근무요원, 시간제기간제교사, 유급자원봉사자, 무급자원봉사자, 활동지원사 등)을 통해 기저귀 갈이를 지원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내지는 보행이 가능하여 걸어서 학교에 등교했다 하더라도 왜소증 장애청소년의 경우 팔다리가 짧은 특성으로 인해 스스로 신변처리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혹은 여러 가지 복합장애를 가져 신변처리 방법을 익히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소증 장애청소년의 경우 사실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하면 스스로 신변처리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저귀를 착용하는 최중증 장애청소년의 경우에는 누군가의 지원이 없으면 신변처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죠.
학교에서 교사나 지원인력이 장애청소년의 신변처리를 지원하는 상황을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 차이가 있습니다. 매슬로우(Maslow, 1943)는 인간으로서 생물학적인 유지와 생존을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가장 강렬하고 기본적인 욕구를 ‘생리적 욕구’로 정의하며 의식주 욕구, 성적 욕구, 추위나 더위 또는 고통을 피하려는 욕구가 해당한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다 먹고, 배설하는 일련의 과정을 매일 수행하고 있고, 이것은 생명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가장 자연스럽고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욕구라는 것이지요.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에 배치되는 지원인력은 장애 청소년의 교육활동이나 급식을 보조하거나 교내외 활동 지원, 신변처리 지원 등의 보조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지원인력은 장애청소년의 학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만, 지원인력 중에서 ‘나는 장애청소년의 학교 활동을 보조하러 왔지, X 치우러 온 게 아니다’라고 하거나, 어떤 병무청에서는 사회복무요원 업무처리 유의 사항에 ‘사회복무요원 혐오 업무 금지(장애청소년의 대소변 처리 지원 등)’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장애청소년의 신변처리 지원을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당연한 권리로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욕구를 스스로 할 수 없어 지원받는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장애청소년의 입장에서는 2차 성징을 나타내고 있는 자신의 신체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교사와 지원인력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어떤 학교는 장애청소년의 신변처리를 위한 물리적인 공간과 비품이 잘 구비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도 더러 있습니다. 다른 장애청소년의 수업이 진행되는 중에 교실 한쪽에서 커튼이나 칸막이를 치고 기저귀 갈이를 지원받게 되는 것이죠. 만일 씻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에 장애청소년이 샤워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진 학교가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또한, 장애청소년 중 여성을 지원해야 할 때 남성 교사나 지원인력이 지원하는 경우, 장애청소년이 남성 일 때 여성 교사나 지원인력이 지원하는 경우 장애청소년도, 교사나 지원인력도 편한 것만은 아닙니다. 이제 갓 특수학교에 처음 발령받은 미혼의 교사나 지원인력은 장애청소년의 신변처리를 처음 지원하게 된 날 상당한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중 신변처리를 지원해야 하는 경우 다른 학생의 학습권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장애청소년의 신변처리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각 지역의 교육청과 특수교육지원청, 각급 학교의 장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장애청소년의 신변처리를 잘 지원할 수 있도록 교사와 지원인력을 대상으로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지, 장애청소년의 신변처리를 지원할 때 필요한 편의 시설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요. 장애청소년의 신변처리가 교사나 지원인력 개인의 역량에 따라서 질적인 차이를 보이며 지원하는 활동이 아니라 교육청, 특수교육지원청, 학교장이 함께 나서서 장애청소년의 신변처리를 위한 환경을 마련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지역사회에서도 장애청소년이 외출을 하거나 지역사회활동을 할 때 필요한 편의시설이 얼마나 갖추어져 있는지를 세심히 살펴 환경을 마련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보편적 복지’에 장애청소년은 포함되어 있는가?
또 한편으로는 장애청소년의 방과 후 일정이나 주말활동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중·고등학생은 하교 후에 친구들과 함께 놀거나, 학원 또는 과외를 통해 공부를 하며 일과를 보냅니다. 그러나 장애청소년의 경우 하교 후에는 집에 있고, 주말에도 대부분의 일과를 집에서 보내게 됩니다. 재활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도 장애청소년은 12살이 되면 발달상황과 상관없이 성인재활치료기관을 이용해야 합니다.
장애청소년의 경우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정책이나 서비스가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는 지역에 살고 있는 경우에는 방과 후에 이용할 수 있는 기관과 서비스가 다양합니다. 그러나 장애인 대상 정책과 서비스가 다양하지 못한 지역에 살고 있는 장애청소년의 경우에는 다른 활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복지정책은 보통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의 형태로 제공되고 있으며 그 대상도 청소년을 포함한 가족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편적 복지’ 안에 장애 청소년을 포함하고 있는지, 장애청소년의 가족을 포함하고 있는지 정책 입안자들과 현장에서 일하고 계시는 전문가분들께서 한 번쯤 살펴봐주셨으면 합니다.
장애청소년이 학교에서 교육활동에 참여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지고 제공되어야 하는 환경은 무엇인지,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때 필요한 사항은 무엇이 있는지, 청소년으로서 장애청소년을 인정하고 보편적 복지의 차원에서 정책이 수립되고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지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살피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날이 속히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작성자글. 원영미/남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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