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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나를 말하다

도민기자단 / 충청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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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부터 여름까지, 충청북도에서 작지 않은 시도가 시작됐다. 충북도립극단이 도내 특수학교 또는 특수학급을 운영하는 초·중학교를 대상으로 ‘장애인연극교실’을 열기로 하고,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6일까지 참여 학교 모집에 나선 것이다. 5월 12일부터 7월 3일까지 약 두 달,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발성과 신체 표현 같은 기초 훈련부터 참여자 자신의 일상을 소재로 한 창작 활동까지 단계적으로 구성된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그동안 함께 만든 것을 무대에서 선보이는 발표회가 이번 7월 4일 오후, 원평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이 소식이 반가운 것은 단순히 프로그램 하나가 진행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를 들여다보면, 충청도 장애인 문화예술 환경을 둘러싼 오랜 과제와 그것을 넘으려는 의지가 함께 보이기 때문이다.
 
도립극단이 손을 내밀다
이번 장애인 연극교실의 출발점은 지난 3월 25일 충청북도장애인회관에서 체결된 업무협약이었다. 충북문화재단(충북도립극단 운영)이 한국연극치료협회, 충청북도장애인단체연합회와 손을 잡고 장애인을 위한 연극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세 기관은 참여자 모집과 홍보, 전문 강사 연계, 교육 공간 지원까지 전 과정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재원은 고향사랑기부금이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돈이 충북 장애인의 문화 경험을 만드는 데 쓰이는 구조다. 충북도립극단 예술감독 김낙형은 협약 당시 이렇게 말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장애인들이 연극을 경험하며 자기표현의 기회를 넓히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지역사회와 문화예술계가 함께 만드는 의미 있는 협력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충북도립극단은 지역을 대표하는 공공 연극 단체다. 이 단체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전문 연극치료 기관·장애인 단체와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는 것은 공공 문화예술 기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 편의 동화, 그리고 두 달의 연습
7월 4일 오후, 원평초등학교 강당은 무대가 됐다. 이날 발표된 작품의 제목은 <빛나는 무대, 반짝이는 우리!> 참여자들이 두 달간 발성과 몸짓을 익히며 쌓아온 시간이 하나의 무대로 이어졌다. 객석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자리를 채웠다.
 
강당 한쪽에는 작은 전시가 마련돼 있었다. 참여자들이 직접 그린 호랑이 그림과 저마다 만든 무지개 물고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물고기의 비늘 하나 하나에는 각자의 소망과,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적혀 있었다. 화려하지 않은 규모였지만, 두 달의 시간이 무대 뒤에도 쌓여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무대는 액자식으로 구성됐다. 무료하고 자신 없는 일상을 보내던 아이들이 동화 속 인물들을 만나면서, 이들을 따라 여러 공간을 지나 그림책 속 세계로 들어선다는 큰 이야기 안에 네 편의 동화가 담겼다. 첫 장은 모자장수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따라쟁이 원숭이가 되어 잠든 모자장수의 모자를 훔쳐 달아난다. 모자를 되찾은 방법은 다시 흉내 내기였다. 모자 장수가 모자를 벗어 던지자, 원숭이가 된 아이들도 그대로 따라 던진다. 늘 따라 하던 몸짓이, 이 순간만큼은 스스로 답을 찾는 몸짓이 된다. 모방이 곧 언어인 발달장애인들에게, 그 모방이 창의적인 해결로 이어지는 장면은 예사롭지 않았다. 두 번째 장은 브레맨 음악대였다. 아이들은 각자 다른 동물이 되어 브레맨으로 향하다 도둑을 만난다. 당나귀 울음, 개 짖는 소리, 고양이 우는 소리, 닭 우는 소리가 하나로 겹쳐 도둑들을 쫓아낸다. 어느 하나 같은 목소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 다른 목소리들이 모여야만 힘이 됐다. 각자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움직이는 참여자들이 몸으로 보여준, 가장 정직한 협력의 장면이었다.
 
세 번째 장은 팥죽할멈과 호랑이였다. 아이들은 알밤, 자라, 지게, 멍석처럼 저마다 다른 힘을 가진 사물로 변신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호랑이에 맞서 결국 할머니를 구해낸다. 누구도 똑같이 싸우지 않았지만, 결국 할머니를 구해낸 것은 그 서로 다른 힘들이었다. 강해지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이 장면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 장은 무지개 물고기였다. 아이들은 문어 할머니에게 그동안의 모험을 이야기로 풀어놓는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이들의 몸에는 저마다 다른 빛깔의 비늘이 하나둘 돋아난다. 누군가에게 나눠 받은 비늘이 아니었다. 자신이 겪고 말한 이야기가 그대로 몸에 새겨진 비늘이었다. 원작의 물고기는 비늘을 나눠주고서야 친구를 얻지만, 이 무대의 아이들은 나누지 않고도 이미 빛나고 있었다.
 
이야기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모험을 마친 아이들은 용기 있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무대를 마무리한다. 동화가 끝난 뒤에도 무대는 끝나지 않았다. 극 중 지게 역을 맡았던 안용민 학생이 무대 중앙으로 나와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선보였다. 연습 내내 유독 문워크를 잘 춘다고 소문났던 그의 특별 무대에, 객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동시에 터졌다. 이어 배우들 전원이 무대에 올라 싸이의 <챔피언>에 맞춰 다 함께 춤을 췄다. 각자 다른 동화 속 역할을 맡았던 이들이 한 무대 위에서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며, 두 달간의 여정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충북에는 이미 선례가 있다
충북도립극단의 이번 시도가 이 땅에서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충북 제천에는 발달장애인 전문 극단 ‘마중’이 있다. 발달장애인 배우 15명과 비장애인 활동가 5명으로 구성된 마중은 2021년 창단 이후 9개 작품을 전국 무대에 올렸고, 지난해 대한민국 예술과 기업 동반성장 대상에서 전국 유일 장애인 예술단체로 대상을 받았다. 같은 해 제천에서는 장애 여성 극단 ‘예그리나’가 발달장애 여성들의 삶을 소재로 한 생애사 즉흥극 <달팽이 함께 나아가다>를 무대에 올렸다. 민간에서 먼저 시작된 이 실험들이 이번엔 공공의 힘을 만나 조금 더 넓은 무대로 이어지고 있다.
 
오늘의 박수를, 다음 걸음의 힘으로
두 달간의 연습이 짧지 않았을 것이다. 낯선 발성, 낯선 몸짓, 낯선 무대 앞에 서기까지 참여자들이 지나왔을 시간을 짐작해본다. 그 시간을 지나 오늘,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몸으로 무대 위에 세웠다. 앞으로 이 아이들의 모험에는 더 많은 시련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무대에서 흘린 땀과 객석에서 터진 박수 소리를 기억한다면, 그 다음 걸음도 함께 뗄 수 있을 것이다. 반짝이는 비늘은 이미 저마다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오늘 무대가 말해주었으니까. 이 무대를 만든 열다섯 명의 이름을 여기 남긴다. 문서연, 박소현, 박수진, 안예원, 홍정우, 김서연, 김보민, 한세현, 원다을, 허나겸, 안용민, 전재은, 전가은, 이로운, 김규현. 오늘의 박수는 이 열다섯 개의 이름을 향한 것이었다.
 
 
작성자글. 충청지역 최은파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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