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대책은 늘었는데 왜 장애인의 여름은 여전히 위태로운가
도민기자단 / 충청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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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뜨거워진 게 아니다. 여름의 이름이 바뀌었다
올해 여름 우리가 견디는 것은 더위가 아니라 재난이다. 기상청은 18년 만에 폭염특보 기준을 바꿨다. 기온 대신 습도와 바람, 햇볕까지 반영한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삼았고, 주의보·경보 2단계 위에 폭염중대경보를 새로 얹었다. 폭염이 태풍이나 호우와 같은 반열에 올랐다. 숫자는 그 변화를 앞질러 달렸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는 5월 중순 감시 첫날부터 사망자를 기록했다. 역대 가장 이른 죽음이었다. 8월 초에는 서울 전역에 처음으로 폭염중대경보가 내렸고, 온열질환자가 하루 100명을 넘긴 날이 이어졌다. 한여름에 접어들자 누적 환자는 2천 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두 자릿수가 됐다.
피해가 어디서 생기는지가 중요하다. 질병관리청 집계에서 온열질환은 열에 여덟이 실외, 그중에서도 작업장과 논밭과 길가에서 나왔다. 더위는 냉방 되는 사무실에 앉은 사람보다 밖에 있어야 하는 사람에게, 안에 있어도 냉방을 켜지 못하는 사람에게 먼저 닿는다. 재난은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 폭염도 그렇다.
충청도 예외가 아니다. 충청권질병대응센터 통계에서 초여름 한 달 남짓 동안 충청권 온열질환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배에 가까웠다. 65세 이상 고령 환자 비중도 유난히 높다. 나이, 만성질환, 야외 노동이 겹치는 땅에서 더위를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은 그만큼 많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주 이름이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에게 폭염은 ‘같은 더위’가 아니다
폭염 대책의 안내문은 대개 이렇게 시작한다. “물을 자주 마시고, 더운 시간대 외출을 삼가고, 시원한 곳으로 이동하세요.”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이 말은 스스로 물을 마시고, 나갈지 말지 판단하고, 시원한 곳으로 옮겨 갈 수 있는 몸을 전제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이 안내는 안내가 아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해 「대상자별 온열질환 예방 매뉴얼」을 개정하며 장애인 항목을 새로 넣었고,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올해 6월 〈장애인 재난안전가이드〉 포스터와 카드뉴스를 발행하며 장애 유형을 다섯으로 나눴다. 두 자료가 함께 말한다. 폭염은 장애 유형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로 온다.
심장이나 신장 기능이 약하면 체온과 수분을 조절하는 힘이 떨어진다. 같은 더위에도 몸이 더 빨리 무너지고, 물조차 의사와 상의해 양을 정해야 한다. 지체장애나 뇌병변장애처럼 이동이 어려우면 위험은 몸 밖에서도 온다. 달궈진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에 오래 노출되면 화상과 욕창 위험이 커지고, 휠체어와 보조기기의 금속과 플라스틱은 햇볕 아래서 스스로 뜨거워진다. 그래서 이 가이드는 물을 마시라는 말 대신 열을 막는 커버, 바람이 통하는 냉감 방석 같은 구체적인 준비물을 짚는다.
가장 조용한 위험은 위험을 알릴 수 없는 경우다. 발달장애나 정신장애로 위험을 알아차리거나 말하기 어려운 사람은 덥다는 느낌도, 어지럽고 메스꺼운 탈수 증상도 제때 전하지 못한다. 이때는 본인의 주의보다 곁에서 늘 지켜보는 눈이 필요하다. 개발원 가이드는 음성으로 소통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문장을 미리 준비하고 119 다매체 신고를 익혀 두라고 안내한다. 재난에서 말할 수 없음은 그 자체로 생사를 가른다.
장애인에게 폭염은 세 겹의 벽이다. 몸이 더위를 견디기 어렵고(신체), 시원한 곳으로 옮겨 가기 어렵고(이동), 위험을 알아차리거나 알리기 어렵다(정보와 소통).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짠 대책은 이 세 벽 앞에서 자주 멈춘다. 그러니 물음은 대책이 있느냐가 아니라, 그 대책이 세 벽을 넘어 당사자에게 닿느냐다.
2026년, 제도의 뼈대는 이렇게 바뀌었다
중앙정부의 뼈대부터 보자. 보건복지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2026년 여름철 취약계층 보호 대책을 내놓으며, 새로 생긴 폭염중대경보 단계에 맞춰 취약계층을 더 자주, 더 촘촘히 확인하기로 했다. 핵심은 안부 확인 주기다. 폭염주의보·경보 때 하루 한 번이던 고위험 어르신 확인은 폭염중대경보가 내리면 하루 두 번으로 늘어난다. 쪽방 주민 가운데 노인, 장애인, 지병 있는 사람은 이틀에 한 번에서 매일 확인으로 촘촘해진다. 정보를 전하는 길도 재난 문자와 방송을 넘어 안전디딤돌 앱, 마을 스마트 방송, 드론 점검까지 넓어졌다.
일하는 장애인을 위한 조치도 들어갔다. 폭염 속 야외에서 일하는 노인일자리·장애인일자리 참여자는 폭염중대경보가 내리면 활동을 멈추고 실내로 옮기거나 집으로 돌아간다. 장애인 일자리 참여자는 기상특보 때 근무 시간 안에서 출퇴근 시각을 조정하고 근무지를 실내로 바꿀 수 있다. 경로당·복지시설 냉방비, 에너지 취약계층 바우처와 냉방기기 지원, 장애인 거주시설의 여름철 안전 점검과 개·보수 예산도 대책에 담겼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여름철 재난은 모두에게 오지만 그 위험은 취약 계층에게 더 먼저, 더 크게 닿는다고 했다. 문제는 늘 그렇듯 발표된 대책과 현장에 도착한 대책 사이의 거리다. 그 거리를 좁히는 일은 결국 지역에서, 지자체와 복지관에서 이뤄진다.
충청의 여름은 어디서 지켜지고 있나
충청의 지자체들은 저마다 다른 손을 쓴다. 충청남도는 폭염 인명 피해를 ‘기후 살인’으로 규정하고 전담팀을 꾸려 AI 안부 확인과 드론으로 사각지대를 훑는다. 괴산군은 독거노인과 장애인 1천여 세대의 집에 응급안전안심 장비를 두고 폭염특보 때 실시간 알림 창구로 쓴다. 충주시는 장애인 일자리 참여자의 근무를 기상특보에 맞춰 조정한다. 대책은 분명히 많아졌다. 다만 이 대책은 두 갈래로 갈린다. 어떤 것은 명단에 이미 오른 사람에게 닿고, 어떤 것은 명단 바깥으로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 차이가 뚜렷한 두 곳을 들여다본다.
충청남도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은 폭염 대책의 가장 밑바닥을 건드린다. 복지관은 저소득 장애인 가정을 직접 찾아가, 선풍기조차 없거나 냉방가전이 낡은 집에 방충망을 달고 새 냉방기기를 들인다. 겨누는 것은 냉방 빈곤이다. 단열과 환기가 부실한 집은 바깥보다 실내가 더 뜨겁고,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요금이 무서워 켜지 못하는 집이 많다. 무더위쉼터로 오라는 안내가 이동 어려운 장애인에게 닿지 않는다면, 남은 답은 그 사람의 집을 시원하게 만드는 일이다. 쉼터로 나오라는 대신 집으로 들어가는 이 방식은 이동의 벽과 냉방 빈곤을 함께 겨눈다.
서천군의 대응은 재난 안전망의 최전선이 어디인지 보여준다. 군은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중심으로 비상 대응체계를 가동하고, 군청 부서와 읍·면 행정복지센터가 폭염 상황과 현장 조치를 나눈다. 취약계층을 실제로 챙기는 손발은 생활지원사와 마을 이장, 자율방재단이다. 이들이 독거노인과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의 안부와 건강을 수시로 확인하고, 도움이 필요한 주민을 기관으로 잇는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읍·면 행정복지센터가 직접 문을 두드리는 방식이다. 서천읍행정복지센터는 폭염에 취약한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독거노인, 장애인 20가구를 찾아가 쿨매트와 여름철 위생·건강용품, 보양 식료품을 전하며 안부를 확인했다. 군은 여름 두 달간 ‘작은 틈새 이웃 찾기’를 벌여 공적 지원 바깥에 있던 사각지대와 고립 가구를 새로 찾아낸다. 거대한 정책 문서가 아니라 동네의 행정복지센터와 생활지원사, 이장이라는 사람이 재난 안전망의 첫 매듭이다. 이름조차 명단에 없던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결국 문을 두드리는 손이다.
몰라서 못 쓴 안전망
폭염 대책의 상당수는 이미 동주민센터(행정복지센터)와 복지관에서 조용히 돌아가는 제도다. 거창한 신규 사업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는 사람만 신청하고, 신청한 사람에게만 도착한다.
응급안전안심서비스는 독거노인과 중증장애인 집에 화재·활동 감지 센서와 응급호출 장비를 단다. 위급 상황이나 낙상을 감지하면 응급관리요원과 소방으로 이어진다. 괴산군이 폭염특보 때 실시간 알림 창구로 쓴 그 장비다. 신청은 거주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나 지역 수행기관에서 한다. 사계절 내내 돌아가는데도 정작 대상자와 가족이 있는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119 안심콜은 소방청에 병력과 복용약, 보호자 연락처를 미리 등록해 두는 서비스다. 등록해 두면 119에 신고할 때 이 정보가 구급대에 자동으로 전달된다. 말로 상황을 설명하기 어려워도 대응이 빨라진다. 청각·언어장애인은 문자와 영상으로 신고하는 119 다매체 신고를 함께 익혀 두면 좋다. 온열질환은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다. 미리 등록해 둘수록 유리하다.
무더위쉼터는 안전디딤돌 앱과 생활안전지도(safemap.go.kr), 국민재난안전포털(safekorea.go.kr)에서 가까운 곳을 찾는다. 쉼터마다 여는 시간이 다르니 주민센터에 미리 물어 두면 좋다. 재난문자 수신이 꺼져 있지 않은지 스마트폰 설정을 확인하는 것도 기본이다. 냉방 지원도 있다. 에너지 바우처, 냉방비, 선풍기·에어컨 설치와 교체가 지원된다. 지자체마다 자체 사업을 더 얹으니 시·군·구 홈페이지와 주민센터를 함께 봐야 한다. 여기서 신청주의의 함정이 드러난다. 무더위쉼터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지원금과 물품은 신청한 사람에게만 간다. 그리고 신청 정보에 가장 닿기 어려운 사람이 대개 그 지원이 가장 절실하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장애인 재난안전가이드〉는 이동이 어려운 사람, 시각 정보를 얻기 어려운 사람, 음성으로 소통하기 어려운 사람,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 건강이 약한 사람까지 다섯 유형으로 나눠 폭염 대응 요령을 정리했다. 판에 박힌 대피 요령에서 벗어난 만큼, 당사자와 보호자가 미리 읽어 둘 만하다.
그물은 촘촘해졌는데 왜 여전히 빠져나가는가
제도의 가짓수는 분명히 늘었다. 그러나 촘촘해진 그물에도 코와 코 사이의 구멍은 남는다. 그리고 그 구멍은 늘 같은 자리에 난다.
첫째, 정보의 벽이다. 재난문자와 앱, 쉼터 검색은 모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전제한다. 지도 이미지로 뜬 쉼터는 시각장애인에게 닿지 않고, 긴 문장으로 쏟아지는 행동요령은 발달장애인을 비껴가며, 앱 설치는 정보기기가 낯선 고령 장애인 앞에서 막힌다. 정보가 재난 대응의 첫 단계인데, 거기서 이미 걸러지는 사람이 있다.
둘째, 쉼터에 실제로 갈 수 있느냐다. 무더위쉼터의 상당수는 경로당이다. 계단을 올라야 하거나 문이 좁은 경로당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지, 낯선 곳에 오래 머무는 일 자체가 힘든 발달장애인이 거기서 쉴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열려 있는 것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셋째, 집에 머무는 장애인의 사각지대다. 시설이나 일자리사업에 연결된 장애인은 그나마 확인 대상이 되지만, 홀로 지내며 어떤 서비스에도 등록되지 않은 장애인은 안부 확인 명단에 아예 오르지 못한다. 안부 확인을 하루 두 번으로 늘리는 대책도 그 명단에 이름이 있어야 작동한다.
그래서 이 여름의 과제는 더 많은 대책이 아니라 더 나은 연결인지도 모른다. 이미 있는 안전망을 가장 필요한 사람의 손에 쥐여 주는 일. 신청서가 있다는 걸 알려 주고, 대신 써 주고, 쉼터까지 같이 가 주는 일. 대책의 본문은 이미 쓰여 있다. 정작 부족한 것은 그 본문이 미처 부르지 못한 이름을 여백에 적어 넣는 일, 지면 아래 각주를 다는 일이다. 폭염은 앞으로 매년 더 길고 더 뜨거워진다. 재난의 이름이 바뀐 첫해에 우리가 던질 질문은 하나다. 이 여름의 대책 목록에서 당신 곁 그 사람의 이름은 어디에 적혀 있는가.
작성자글. 충청지역 최은파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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