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을 넘어 '권리'로, 제주 귤밭에서 발달장애인의 새로운 일자리가 싹튼다
도민기자단 / 제주지역
본문
-발달장애인, 자연(농업)과 예술 매개로 한 권리중심형 일자리 프로젝트 참여
-네덜란드 '케어팜', 이탈리아 '사회적 농업' 등 해외 선진 모델의 핵심 가치를 제주형으로 구현
-'발달장애인, 자연의 돌봄을 나누다' 사업 통해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생태적 사회 역할 부여
그동안 단순한 생산 활동이나 보호 중심의 서비스에 머물러 있던 발달장애인의 일자리가 제주의 따뜻한 지역 특성을 입고 '권리중심형 일자리'로 새롭게 피어납니다.
이 변화의 마중물이 된 것은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경제 지역생태계 활성화 사업'입니다. 지역사회의 민간기관과 사회적기업이 손을 잡고 노동통합과 통합돌봄이라는 두 가지 영역에서 새로운 모델을 그려가고 있으며, 현재 5개의 수행기관이 지역 현안에 맞춘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회적협동조합 '별난고양이꿈밭'은 올해 7월부터 12월까지 <발달장애인의 자연의 돌봄을 나누다 – 귤밭 프로젝트>를 펼칩니다. 이 프로젝트는 발달장애인이 생산성과 효율성만을 따지는 노동 시장에서 한 걸음 벗어나, 제주의 자연(농업)과 예술을 매개로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새로운 일자리 모델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권리중심형 일자리는 경제적 이윤 창출을 넘어, 장애인 당사자가 지역사회 안에서 고유한 역할을 맡고 그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 것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깁니다.
흙을 만지고 생명을 돌보는 '농업'을 매개로 한 사회참여는 이미 유럽 등 복지 선진국에서 훌륭한 통합 모델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케어팜(Care Farm)'은 발달장애인 등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답답한 복지 시설에 머무는 대신, 탁 트인 농장에서 가축을 돌보고 유기농 채소를 가꾸며 주체적으로 일하도록 돕습니다. 이들은 일련의 농업 활동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을 얻을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자신의 쓸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1970년대부터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을 이끌어온 이탈리아의 사례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사회적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중증 장애인들이 농산물을 길러내고 가공하며 시장에 판매하는 전 과정에 참여합니다. 이들은 더 이상 누군가의 돌봄만 받는 대상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당당한 생산 주체로서의 권리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제주 역시 귤밭과 농업, 그리고 아름다운 관광과 문화예술 등 무궁무진한 자원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발달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지역 기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이번 귤밭 프로젝트는 앞선 선진국의 사례처럼 '귤밭'이라는 살아 숨 쉬는 공간을 바탕으로 자연돌봄, 문화예술, 콘텐츠 제작 활동을 한데 어우러지게 합니다. 제주의 지역 특성에 꼭 맞는 발달장애인의 새로운 사회참여형 일자리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참여자들의 주체성을 살리고 지역사회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 활동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 첫째, '귤밭 가꾸기'입니다. 잡초를 뽑고 물을 주며 귤나무를 돌보는 일부터 가을·겨울철의 수확과 포장까지 계절에 맞춘 농업의 일상을 함께합니다.
▲ 둘째, '문화공간 조성'입니다.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도록 직접 안내판을 만들고 평상과 쉼터를 아기자기하게 꾸밉니다.
▲ 셋째, '자연 속 예술활동'입니다. 귤밭을 무대 삼아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그 결과물을 모아 전시회도 엽니다.
▲ 마지막으로, 정성껏 길러낸 친환경 귤을 직접 판매하며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수익 연결 실증' 과정이 이어집니다.
참여자들은 매트 깔기나 귤나무 전정 같은 기초적인 농작업부터 귤청 담그기, 포장, 택배 발송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직무를 경험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자 역할입니다.
이번 귤밭 프로젝트가 유럽의 훌륭한 선도 사례들처럼, 제주의 발달장애인들이 수동적인 돌봄의 수혜자를 넘어 제주의 자연을 보듬고 문화를 피워내는 주체로 우뚝 서는 아름다운 이정표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
작성자제주지역 강인철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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