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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에는 이자가 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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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장애인활동지원사 처우개선 토론회(출처: 충청북도의회)
 
지난해 6월 17일 충청북도의회 정책복지위원회가 개최한 ‘충북 장애인활동지원사 처우개선 정책토론회’. 그로부터 1년이 넘도록 처우 개선비는 예산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7일 오전 충북도청 앞에 활동지원사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장애인활동지원지부 충북지회가 든 손팻말에는 “처우개선은 특혜가 아니라 최소한의 존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낯선 구호가 아니다. 도가 올해 4월부터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활동지원사의 생계유지 충분성은 5점 만점에 2.18점, 응답자 65%가 “현 임금으로는 최소한의 생계도 어렵다”라고 답했다. 89.4%는 시간제로 일하고, 61.8%는 법정 휴게시간조차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지회는 밝혔다.
 
숫자는 매번 나쁘게 나온다. 이상한 건 이 숫자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년 전에도 같은 얘기를 했다
지난해 5월, 노조가 활동지원사 548명(응답 기준)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이미 비슷한 그림이 나왔다. 72.3%가 월평균 수입 200만 원에 못 미쳤고, 67.9%는 “안전사고 대비가 미흡하다”라고 답했다. 한 달 뒤인 6월 17일, 충북도의회 정책복지위원회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주제 발표를 맡은 김지영 전남대 사회학과 강의 교수는 “활동지원사는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사회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 노동자임에도 고강도 육체노동과 감정노동·불안정한 고용·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짚었고, 이상식 위원장은 조례 제정과 시책 개발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리고 8월, 노조는 도청 서문에서 청주시의회까지 350m를 행진하며“지원 조례를 제정하라”고 외쳤다.
 
조례는 통과됐다, 그런데
그 요구는 실제로 관철됐다. 지난해 장애인활동지원인 력 처우개선 조례가 제정됐다. 도는 올해 그 조례에 따라 실태조사까지 마쳤다. 절차만 보면 나무랄 데가 없다. 문제는 그다음, 처우 개선비를 예산에 반영하는 단계에서 멈췄다는 것이다. 노조 충북지회는 9월 7일 기자회견에서 “약속한 조례를 방치하고 활동지원사의 희생을 강요한다면 피해는 장애인 당사자와 지역사회 돌봄 공백으로 되돌아온다”라고 했다. 1년 넘게 행진하고 토론하고 결의해 만들어낸 조례가 예산 한 줄 없이 무력화되는 데는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 공백을 메운 건 도가 아니라 시·군이었다. 충주시는 지난 7월 도내 최초로 활동지원사에게 처우 개선비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3개월 이상 재직, 월 60시간 이상 근무한 약 320명에게 매달 3만 원씩, 반기별로 18만 원이다. 진천군도 8월 관련 예산을 11% 늘리고 처우개선 수당을 신설했다. 두 사례 모두 반가운 소식이지만, 동시에 도 단위 대응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누구는 3만 원을 받고 누구는 한 푼도 못 받는 시·군별 격차를 없애자는 게 애초 조례의 존재 이유였다.
 
사라진 유류비 산정식
처우 개선비보다 더 오래 방치된 문제도 있다. 활동지원사들은 거동이 어려운 당사자와 병원이나 복지관으로 이동할 때 자신의 차량을 사용한다. 장애인 콜택시(해피콜)의 평균 배차 시간은 17분이라지만 체감은 다르다. 한 이용자는 “빠르면 5분 안에 오지만 어떤 날은 1~2시간까지 걸린다”라고 했고, 아침 저녁으로는 대기자가 50명을 넘기기도 한다. 결국 활동지원사의 자가용이 그 공백을 메운다.
 
그런데 이 운행에는 아무 보상이 없다. 2016~2017년에는 “이동 거리 × 당일 유류 기준가 ÷ 유종별 연비”라는 산정식이 있어 유류비를 계산할 근거라도 있었다. 이 공식은 2018년 조용히 사라졌다. 왜, 누가 지웠는지는 지금도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후 보건복지부는 활동지원사의 자가용 운행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소지가 있는 행위로 규정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업용 자동차가 아닌데 경비를 받고 사업용으로 운행한 사실이 드러나면 사고가 났을 때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라며 대중교통이나 장애인 콜택시 이용을 권장한다고 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시골 등 일부 지역에서는 콜택시 이용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국가는 활동지원사에게 자가용을 쓰라고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차가 없으면 서비스는 멈춘다. 활동지원사가 사비로 그 틈을 메우면, 국가는 그 행위를 불법의 경계에 세워둔 채 보상도 면책도 주지 않는다. 결국 활동지원사 개인 차량 이용을 불법으로 막을 거라면 특별운송수단을 대폭 늘리거나, 그 외 유류비를 지원하는 방법을 찾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청주시는 다른 싸움 중이다
같은 시기 청주시는 전혀 다른 전선을 열었다. 시가 활동지원기관 2곳을 새로 지정하겠다고 밝히자,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즉각 반발했다. “기관 간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는 서비스 질을 높이기 어렵다”라는 게 이들의 논리다. 인근 지역에서 최근 활동지원기관의 부정수급·편법 운영 사례가 불거진 것도 근거로 들었다. 시는 청주에서만 해마다 400여 명이 신규 활동지원사 교육을 이수한다며, 기관 확대가 이용자의 선택권을 넓힌다고 맞선다. 활동지원사의 임금과 식비조차 해결하지 못한 시장에 기관 수부터 늘리는 게 맞느냐는 질문에 아직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자 없는 빚
9월 7일 팻말의 문구로 돌아가 보자. “처우개선은 특혜가 아니라 최소한의 존중.” 이 말이 1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답이다. 충북이 활동지원사에게 진 빚은 조례라는 문서로 남았지만, 이 빚에는 이자가 붙지 않는다. 갚지 않아도 다그치는 사람이 없고, 미룬다고 원금이 불어나지도 않는다. 그러니 예산은 해마다 다음 해로 넘어가고, 사라진 계산식의 행방은 아무도 캐묻지 않는다. 이자 없는 빚은 이자 없는 채로 쌓여, 지금도 어느 활동지원사의 기름값 영수증 위에 조용히 얹힌다.

 
작성자글. 충청지역 최은파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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