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좋은 계절, 책을 ‘볼 수’ 없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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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상당도서관 3층 디지털·정기간행물실 한쪽에 놓인 독서보조기기. 안내는 벽에 붙은 종이 한 장이 전부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도서관마다 가을맞이 독서 행사가 이어지지만, 글자를 읽기 어려운 시각장애인과 저시력 이용자에게 도서관 서가는 여전히 멀다. 이들이 책을 펼치려면 먼저 글자를 크게 보여 주는 독서확대기, 화면 속 글을 소리로 바꿔 주는 낭독 프로그램 같은 독서보조기기가 있어야 한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은 9월 23일 「2026년 독서보조기기 지원사업」 대상 도서관 61곳을 발표했다. 공공도서관 51곳, 장애인도서관 8곳, 작은도서관 2곳이다. 8월 27일부터 9월 16일까지 열린 공모에 171곳이 손을 들었으니, 신청한 도서관 셋 중 둘은 올해 기기를 받지 못한다. 선정된 도서관에는 독서확대기, 화면낭독 프로그램, 공공이용 보청기기, 점자 프린터 등 84종 가운데 도서관 사정에 맞는 기기가 11월까지 들어간다.
그렇다면 충북과 충남의 도서관은 어떨까.
충북·충남 117곳 중 3곳
올해 기기를 받는 충북·충남 공공도서관은 세 곳이다. 충북에서는 충주시립호암도서관이, 충남에서는 당진교육지원청 당진도서관과 부여 홍산공공도서관이 이름을 올렸다.
국가도서관통계를 보면 2023년 말 기준 충남에는 공공도서관 62곳, 충북에는 55곳이 있다. 두 도를 합친 117곳 가운데 올해 지원 대상은 2.6%에 그친다. 대전과 세종까지 넓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네 시도의 공공도서관 159곳 가운데 선정된 곳은 대전 한밭도서관을 더해 네 곳이고, 장애인도서관으로는 세종점자도서관이 포함됐다.
이 사업은 2009년에 시작됐다. 국립장애인도서관 집계를 보면 지난해까지 17년 동안 기기를 받은 도서관은 전국 507곳이다. 한 해 평균 30곳 남짓이고, 지원이 가장 많았던 2024년에도 68곳이었다. 올해 61곳을 더해도 568곳이다. 같은 도서관이 여러 번 받은 경우와 장애인도서관까지 모두 더한 숫자인데도 전국 공공도서관 1,328곳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충북에서는 지난해 증평군립도서관이 선정돼 2층 종합자료실에 공공이용 보청기기와 점자프린터 등을 들여놓았다.
청주 시립도서관 15곳, 기기 안내는 5곳
충북에서 도서관이 가장 많은 청주는 어떨까. 청주시 시립도서관 15곳의 홈페이지 시설 안내를 하나씩 살펴보니, 독서보조기기를 안내한 곳은 다섯 곳뿐이었다.
가장 많은 기기를 갖춘 곳은 사천동 청원도서관이다. 독서확대기와 점자정보단말기, 음성독서기, 특수 키보드와 마우스, 터치 모니터, 공공이용 보청기 등 12종을 안내하고 있다. 금천동 금빛도서관은 탁상용·휴대용 독서확대기와 광학문자판독기, 무선 음성증폭기, 의사소통 보조기기를 갖췄다. 수동 상당도서관은 홈페이지에 점자정보단말기, 휴대용 독서확대기, 음성독서기, 점자라벨러를 한 대씩 안내하고, 오창호수도서관은 독서확대기와 시각장애인용 모니터 등 4종을 두고 있다. 용암동 청주시립도서관은 장애인 자료실에 ‘독서보조기기’가 있다고만 적었을 뿐 어떤 기기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나머지 열 곳 가운데 네 곳은 점자도서나 큰글자도서만 안내했고, 여섯 곳은 관련 내용이 아예 없었다. 지난해 9월 리모델링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연 흥덕도서관도, 2021년 새로 지은 가로수도서관도 마찬가지다.
법이 정한 기준에 비추면 아쉬움은 더 커진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규칙은 연면적 1,000㎡가 넘는 도서관이라면 독서확대기, 화면낭독 프로그램, 보청기기를 반드시 갖추도록 정하고 있다. 안내가 없는 열 곳 가운데 흥덕(2,480㎡), 서원(2,692㎡), 기적의도서관(4,209㎡), 오창(1,781㎡), 내수(1,628㎡), 강내(1,140㎡)는 모두 이 기준을 넘는다. 홈페이지에 안내가 없다고 기기가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용자가 찾아가기 전에 알 방법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기기를 어디에 두었는지도 살펴볼 대목이다. 청주에서 가장 많은 기기를 갖춘 청원도서관은 기기 12종을 2층 아동자료실 한쪽의 ‘노인·장애인 코너’에 모아 두었다. 어린이책 서가와 유아 열람 공간이 이어지는 층이다.
문제는 동선과 시간이다. 일반 도서와 큰글자도서, 신문과 잡지는 3층 종합자료실에 있다. 저시력 어르신이 큰글자도서를 고른 뒤 독서확대기를 쓰려면 한 층을 내려와 아이들 사이에서 책을 펴야 한다. 이용 시간도 다르다. 종합자료실은 평일 밤 10시까지 문을 열지만, 아동자료실은 오후 6시면 닫는다. 낮에 일하는 장애인이 퇴근 뒤 도서관을 찾으면 책은 빌릴 수 있어도 기기는 쓸 수 없는 셈이다.
직접 찾아간 상당도서관
보조기기가 있다는 청주 상당도서관을 직접 찾아갔다. 기기는 3층 디지털·정기간행물실에 있다. 하지만 3층 안내 어디에도 독서보조기기가 있다는 문구는 없었다. 자료실 안으로 들어가서야 기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닥의 점자블록도 자료실까지 이어져 있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용자가 이곳에 기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혼자 찾아오기는 어려운 구조다.
▲상당도서관 층별 안내. 보조기기가 있는 3층 설명에 보조기기 이야기는 없다
홈페이지에는 점자정보단말기와 휴대용 독서확대기, 음성독서기, 점자라벨러가 한 대씩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이경옥 주무관이 보여 준 장비 목록에는 12종 15점이 올라 있었다. 높낮이 조절 책상과 독서확대기 등은 자료실에 내놓았고, 휴대용 독서확대기는 안쪽에 보관하다가 요청하면 꺼내 준다. 기기는 홈페이지에 적힌 것보다 많았지만, 이용자가 그 사실을 미리 알 길은 없었다.
▲상당도서관이 보유한 독서보조기기 목록. 12종 15점 가운데 홈페이지에 안내된 것은 4종이다
이 기기들은 2018년 국립장애인도서관 지원사업에 선정돼 들여온 것이다. 처음 들였을 때는 장애인 기관에 기기가 있으니 와서 쓰라고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용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 주무관은 컴퓨터에 깔린 화면낭독 프로그램이 오래돼 잘 쓰이지 않고, 독서확대기는 장애인보다 시력이 약해진 어르신들이 주로 쓴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이용자가 잘 오지 않는 이유를 묻자 이 주무관은 “법적 사항이기도 해서 비치는 해 놓는데, 장애인분들이 다 같이 쓰는 공간에 일부러 오셔서 이용하시는 게 어려우신 것 같더라”고 말했다. 많은 장애인이 이미 개인 기기를 쓰고 있다는 점도 이유로 꼽았다. 대신 책을 집까지 무료로 보내 주는 ‘책나래’ 서비스는 꾸준히 나간다. 한 해 100권 안팎이다. 도서관 주변이 오래된 주택가라 나이 든 주민이 많은 것도 영향을 준다고 했다.
낡은 기기를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상당도서관은 올해 지원사업에 화면낭독 소프트웨어를 신청했지만 선정되지 않았다. 이 주무관은 “이런 기기들이 비싸더라”고 했다. 한 대에 몇백만 원씩 하는 기기를 도서관 예산만으로 새로 들이기는 쉽지 않다.
기기는 있었다. 다만 홈페이지에는 일부만 적혀 있었고, 오래된 프로그램은 바꾸지 못했으며, 정작 써야 할 사람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충남의 사정
충남에서 올해 기기를 받는 곳은 도내 공공도서관 62곳 가운데 두 곳, 당진도서관과 부여 홍산공공도서관이다.
이미 기기를 갖춘 도서관은 얼마나 될까. 국립장애인도서관은 누리집에 도서관별 독서보조기기 보유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지역을 충남으로 골라 검색하면 이름이 나오는 곳은 일곱 곳뿐이다. 아산시립중앙·배방·송곡도서관, 보령시중앙도서관과 죽정도서관, 공주기적의도서관, 충청남도교육청평생교육원이다. 광역대표도서관인 충남도서관도, 충남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천안의 도서관들도 목록에 없다.
목록에 오른 곳 사이에도 차이가 크다. 아산시립중앙도서관과 충청남도교육청평생교육원은 각각 12개 품목을 올렸지만, 공주기적의도서관은 5개다. 법이 1,000㎡ 넘는 도서관에 반드시 두도록 한 독서확대기, 화면낭독 프로그램, 보청기기를 모두 갖춘 것으로 나오는 곳은 아산시립중앙도서관과 공주기적의도서관 두 곳이다. 나머지 다섯 곳의 목록에는 화면 속 글을 소리로 읽어 주는 낭독 프로그램이 없다.
이 목록이 각 도서관의 실제 보유 현황을 모두 담고 있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용자가 가까운 도서관에 어떤 기기가 있는지 찾아볼 수 있는 공식 창구는 사실상 이곳뿐이다. 목록에 이름이 없으면, 이용자에게는 기기가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같은 충청권이라도 차이가 크다. 세종시립도서관은 이미 2021년에 독서확대기와 화면 확대·낭독 프로그램, 소리증폭기,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높낮이 조절 책상 등 14종 30개의 기기를 갖추고, 고정형 기기를 장애인 열람석 한곳에 모아 두었다.
무지개도서관에서 들은 이야기
그렇다면 이 기기를 정작 써야 할 사람들은 공공도서관을 어떻게 볼까. 청주 흥덕구의 무지개도서관을 찾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으로, 일주일에 40~50명이 넘는 이용자가 찾아와 책을 빌리고 독서 토론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곳 이용자들의 독서는 대개 세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봉사자가 책을 소리 내어 읽어 녹음한 파일을 기기에 넣어 듣거나, 일반 책을 타이핑해 문서로 만든 뒤 기기가 읽어 주는 소리를 듣는다. 그다음이 전자책이다. 시각장애 당사자인 무지개도서관 권남균 부장은 “비장애인은 도서관에 가서 바로 책을 골라 읽을 수 있지만, 저희는 타이핑하고 녹음하는 제작 기간 때문에 책을 읽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책을 읽으려면 기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기값이 만만치 않다. 권 부장에 따르면 비교적 싼 편인 음성도서 재생기 ‘책마루’는 개인이 사면 100만 원 정도이고, 손끝으로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는 600만 원에 이른다. 국가 보조기기 지원 대상으로 뽑히면 각각 18만 원, 120만 원 정도에 살 수 있지만, 그 기회는 해마다 정해진 사람에게만 돌아간다. 권 부장은 “지원이 매년 줄면서 기계가 필요한 사람들이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기기가 없는 이용자들은 점자책을 손으로 직접 읽는다. 활동지원사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지만, 곁에 도와줄 사람이 있을 때만 가능한 방법이다.
▲무지개도서관의 점자책. 기기가 없는 이용자들은 이렇게 손끝으로 책을 읽는다
공공도서관에 독서확대기나 음성독서기가 있다는 사실은 이용자들도 대체로 안다. 문제는 쓰는 법이다. 권 부장은 “젊은 사람들은 컴퓨터 화면낭독 프로그램을 많이 쓰지만, 저희 이용자는 노인분들이 많다”며 “전자제품을 다루는 데 서툴러서 컴퓨터는 쓰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기를 들여놓아도 쓰는 법을 알려 줄 사람이 없으면, 이들에게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충북의 사정은 더 아쉽다. 권 부장은 충북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은 무지개도서관 한 곳뿐이라고 했다. 올해 지원사업에서는 장애인도서관 8곳이 선정됐지만 충북의 도서관은 없었다. 권 부장은 “서울과 수도권이 많이 선정되는 건 당연하지만, 충북에도 나름대로 이용자들이 있는데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해법도 내놓았다. 기기를 공공도서관에만 보낼 것이 아니라 무지개도서관 같은 장애인도서관에도 지원하면, 기기를 오래 다뤄 본 경험으로 이용자들에게 사용법과 요령을 잘 알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법이 정한 기기, 공모로 받는 권리
도서관의 보조기기는 베풂이 아니라 권리의 문제다. 2008년부터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도서관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부담이 아니라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도서관의 시설과 자료, 서비스를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정한다. 도서관법 역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장애인처럼 정보에 다가가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정책을 세우도록 하고 있다.
이번 지원사업이 보급하는 기기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갖추도록 정한 의무·권장 기기다. 법이 갖추라고 한 기기를 도서관이 공모에 뽑혀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기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한국장애인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말 등록장애인은 263만여 명이고, 이 가운데 9.4%가 시각장애인이다. 등록장애인의 절반이 넘는 55.3%는 65세 이상이다. 나이가 들며 눈이 침침해진 노인 이용자까지 헤아리면 독서확대기를 찾는 손은 더 많다.
제도를 바꾸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2024년 7월 김예지 의원 등 11명은 모든 도서관에 장애인 전용 열람 공간을 두도록 하는 도서관법 개정안을 냈다. 당시 김 의원이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받은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한 공공도서관 285곳 가운데 장애인 열람실을 갖춘 곳은 20곳뿐이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정희용 의원 등이 시·도마다 장애인 서비스를 이끌 ‘광역장애인대표도서관’을 지정하거나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두 법안 모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상정된 뒤 걸음을 멈췄다. 국회 검토 과정에서는 1,000㎡가 넘는 도서관은 이미 장애인 열람석을 둘 의무가 있으니 지금 법으로도 취지를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다는 의견이 붙었다. 광역장애인대표도서관에 대해서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부담을 따져 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나왔다. 법에 이미 의무가 있다는 이유로 새 법이 멈춘 사이, 청주에서는 그 의무 기준을 넘는 도서관 여러 곳이 보조기기 안내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이번 사업으로 지역과 도서관 사이의 장애인 서비스 격차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 약속이 충청권에서도 실감되려면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 하나는 지원받는 도서관을 늘리는 일이다. 해마다 수십 곳을 골라 기기를 나눠 주는 방식으로는 법이 정한 기준을 채우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다른 하나는 이미 있는 기기를 이용자가 알고 쓸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어떤 기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리고, 쓰는 법을 안내할 사람을 두고, 누구나 쉽게 닿을 수 있는 자리와 시간에 기기를 놓아야 한다.
기기를 들이는 일과 기기를 쓸 수 있게 하는 일은 다르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 모두에게 같은 계절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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