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 건강권의 목표는 건강한 신체가 아니라 건강한 환경의 조성이다
본문
불꽃이슈 - 건강권의 목표는 건강한 신체가 아니라 건강한 환경의 조성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회
건강이란 의료적인 측면에서 신체적·정신적 건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장애인 건강권이란 ‘(비장애인을 모델로 하는) 건강한 상태’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장애 당사자도 건강에 대해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유지하며 또한 건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조성이 중요하다.‘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 건강권 법)’이 2015년 12월에 제정돼 2017년 12월 30일에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현재 본 법의 시행령에 담을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면 왜 이 법이 필요한 것일까? 여기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건강하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기에, 또는 건강을 유지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국가가 그들의 건강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시장경쟁시스템으로 내몰리고 있는 의료분야에서 장애인의 건강은 의료적 이익창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공공의료시스템과 공적보험시스템이 장애인의 건강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 지금까지 경제적, 의료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장애인이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힘겹게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즉 이 법의 필요성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취약한 건강 및 의료시스템의 단면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장애인 건강권 법은 크게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국가의 책무로서 장애인 건강보건관리종합계획을 수립, 장애인 건강검진 및 건강관리사업의 시행, 장애인 건강보건통계사업 및 장애인 건강보건정보사업 실시를 기술하고 있다. 두 번째 중요한 내용으로는 장애 당사자를 위한 건강주치의 제도와 재활운동 및 체육 실시, 그리고 의료비 지원을 명시하고 있으며 다음으로는 장애인의 건강에 대한 연구와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중앙 및 지방장애인보건의료센터를 지정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들이 효과적으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동법 시행령에 담겨질 내용들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에 시행령 제정 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측면을 제안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는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 즉 우리나라에 현재 주치의 제도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장애인 전담 주치의 도입은 여러 가지가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그것은 의사소통이 어려운 청각장애, 뇌병변장애, 그리고 지적 및 자폐성 장애인과 주치의 의사와의 의사소통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방안, 전담 주치의의 장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위한 지원방안, 전담주치의에 대한 행정적 또는 경제적 인센티브 도입, 그리고 1차 병원 중심의 주치의 선정방안 등 제도가 구체적으로 시행령 안에 명시돼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 내 가까운 곳에 위치한 주치의 선정방안 여부는 주치의 제도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둘째, 재가장애인의 건강권의 고려이다. 이것을 위해 시행령에는 중증장애로 인한 이동 또는 인지적 어려움을 가진 재가장애인을 위한 방문치료 강화 방안, 전화상담 및 지원강화, 특수영역의 이동진료 강화 및 희귀성질환을 가진 장애인의 고려, 회복단계의 재가지원, 그리고 치료를 위한 보조기기 지원 등이 구체적으로 포함돼야만 한다. 하지만 장애인 건강권 법에는 치료를 위한 보조기기 지원에 관한 조항이 없어 시행령에 담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셋째, 건강권과 관련해 자기결정권의 고려이다. 장애인 건강권 법의 시행으로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장애인 건강에 있어서 의료 권력을 통한 통제이다. 즉 의료적 측면에서 소위 ‘전문가들(의사)’가 장애인의 건강권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건강 주치의 제도와 장애인보건의료센터를 통한 장애인 건강보건 관련 정보 통계의 수집·분석(제19조)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우려를 지우기 위해서는 건강과 관련한 자기결정과 주체성을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시행령 안에 포함돼야 한다. 그리고 정보 수집에 관한 동의과정과 이의제기 과정이 반드시 포함돼야 할 것이다.
결국 장애인 건강권 법이 보다 실효성 있게 시행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장애인만을 위한 건강시스템의 구축을 넘어서 세밀한 일반 건강시스템의 바탕위에서 장애인을 포함시켜 이뤄져야 하며, 시장경제 안에서 의료적인 영역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중증장애인의 건강과 환경에 대해 폭넓게 다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두에 언급했듯이 ‘건강’에 대한 개념을 새로이 정의함으로 장애인이 자신의 몸과 환경에 대해 주체적으로 의식하고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생태학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