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장애인의 여름휴가
본문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됨에 따라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이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다가오는 여름철 휴가를 기대하며 준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 2년간 제대로 된 여름휴가를 보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처음 맞이하는 여름휴가이기 때문이다. 덥고 뜨거움이 절정인 시기, 시원하고 보람있게 휴가를 보내기 위해 사람들은 어떤 계획을 세울까? 문득 궁금해진다. 장애인은 여름휴가를 어떻게 계획하고 준비할까? 장애인도 당연히 누려야 하는 여름휴가를 즐길 ‘권리’를 얼마나 향유하고 있는 걸까?
장애인의 휴가, 결국은 이동권 문제다
휠체어 여행작가 하석미 씨는 여행을 다니며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곳이 어떤 곳인지 소개한다. 누구보다도 여행 경험이 많기에 다가오는 휴가철에 대한 기대가 클 것 같다. 하지만 하석미 씨는 오히려 휴가철에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하석미 “휴가철처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시기에 장애인은 손님 대접을 못 받거든요. 예를 들어 점심시간이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면 휠체어 이용자는 그 시간대에 점심을 먹으러 잘 안 가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많을 때 식당에 들어가려고 하면 별로 반기지도 않을 뿐더러 손님으로서 대우를 못 받는 거예요. 그래서 12시 전이나 1시 이후에 가야 그나마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어요. 또 휴가철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니까 물가도 너무 비싸요. 그래서 돌아보면 오히려 휴가철을 피해서 여행을 다니지 않았나 싶어요.”
하석미 씨가 예를 든 점심시간의 경우,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식당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손님이 방문한다고 생각해보자. 휠체어 손님을 위해 식탁의 의자를 빼내서 다른 공간으로 옮기고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공간이 좁은 식당인 경우 안 그래도 손님들이 많아서 발 디딜 틈이 없는데 빈 의자가 괜한 공간을 차지하게 되고, 휠체어가 차지하는 공간이 생기면서 종업원이나 사람들이 다니기가 더 복잡해진다. 그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휠체어 이용 손님을 보는 시선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석미 씨도 점심시간에 식당을 들어설 때부터 그런 시선을 느낀 적이 많다고 한다.
하석미 “예전 휴가철에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저를 포함해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세 명이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어느 식당에 들어가니까 자리가 없고 다 예약되어 있다고 하는 거예요. 자리는 많았거든요. 우리한테는 자리 없고 예약이 다 되어 있다고 해놓고는 비장애인인 다른 손님이 오니까 흔쾌히 받는 거예요. 비장애인은 되고 장애인은 안 된다는 식으로 차별대우 한 거죠.”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간 거고, 똑같이 돈을 내고 먹고 싶은 메뉴를 선택한다. 그런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식당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장애인은 밥을 먹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부하면 식당 수입이 오르지도, 장사가 잘 된다는 보장도 없다. 요즘 대세가 된 ‘SNS 후기’를 통해 식당의 이미지만 더 나빠질 뿐이다. 온라인에서의 무서운 확산 속도를 고려한다면 ‘장애인 거부 식당’ 이미지 등극은 시간문제다.
하석미 “그래서 휴가는 쉬고 즐기는 거니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잖아요. 가능한 사람이 덜 붐빌 때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특히 장애인은 더울 때 이동을 하는 것에 취약할 수 있어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땀을 흘리기 시작하면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힘들어져요. 그래서 너무 더운 날은 피하고 오히려 실내 여행이 우리에게는 훨씬 편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굳이 여행이나 휴가를 보내는 시기를 꼽는다면 4~6월, 9~10월이 좋은 것 같아요. 너무 추운 겨울도 힘드니까요.”
그래도 여름휴가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바다’일 텐데, 아무리 사람들이 붐비는 시기를 피해서 간다고 해도 휴가 계획을 세우게 되면 고려하는 곳 중 바다도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여름휴가 때 바다로 계획을 짜 보는 것에 대해 하석미 씨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 을까?
하석미 “일단 바다에 가까이 접근하기 어렵잖아요. 휠체어가 모래에 취약하거든요. 휠체어가 모래에 한 번 빠지면 장정 4~5명이 도와줘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바다를 간다’라는 개념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달라요. 모래가 있는 바다는 그냥 멀리서만 바라봐야 하니까요. 그래도 요즘은 바다로 접근가능한 수상 휠체어가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활성화되어 많은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바다를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멀리서 바다를 보는 것과 밀려오고 떠내려가는 파도를 눈앞에서 보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충분히 알 것이다. 부산 해운대에는 휠체어 이용자와 같은 교통약자들을 위해 나무갑판을 통해 바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즐기기 위해서는 바다 속으로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장애인 여행사에서 대여해주는 수상휠체어는 개인이 부담해야 해서 너무 비싸다고 한다.
하석미 “여름에 많이 가는 곳이 바다 외에 계곡이 있죠. 저는 계곡을 정말 가고 싶은데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갈 수 있는 계곡은 아직까지 보지 못한 것 같아요. 계곡은 휠체어가 바위 등을 통해 내려갈 수가 없고 해운대처럼 갑판이 되어 있는 곳도 거의 없으니까 근처에서 그냥 바라만 보게 돼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계곡에 그런 갑판을 설치하는 작업을 하게 되면 자연을 손상하게 되는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하석미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장애인이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 가장 먼저 보장되어야 하는 것도 결국 이동권이다. 바다와 계곡처럼 장애인이 제대로 접근할 수 없는 곳도 있고, 식당도 장애인이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접근 가능한 곳, 심지어 받아주는 곳에만 갈 수 있다. 그리고 휠체어 이용자는 휠체어에 앉은 위치에서 경치를 봐야 하는데, 휴가철로 사람이 많은 곳이면 많은 사람들로 인해 어떤 것이라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휴가를 보내기 위한 장소로 가기 위한 ‘이동 방법’은 둘째치고, 휴가지에서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장애인에게 ‘휴가를 향유할 권리’는 먼 나라 이야기나 다름없다.
인권만큼 중요한 것, 안전
장애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김현주 씨는 휴가를 준비할 때 혹시라도 아이를 잃어버릴까 늘 걱정하고 신경쓴다. 어느 관광지나 식당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때, 아이에게 기다려야 된다는 의사를 전달하더라도 청각장애와 다운증후군을 동시에 가진 아이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부모가 메뉴나 입장권 등을 알아보는 사이에 아이가 사라지는 건 아닌지 항상 경계하고 있다.
김현주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아이를 데리고 필리핀도 다녀온 적이 있어요. 우선 아이에게 가능한 많은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애 아빠와 제가 돌아가면서 지키려고 하고 있어요. 또 큰애가 있어서 아이가 어디로 가려고 하면 ‘엄마, 동생이 어디 가요’ 라고 말해줘요.”
지금은 아이가 어려서 부모가 돌봄을 할 수 있지만,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면 돌봄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최근 지역사회에서 지적장애인이 실종되었다가 며칠 지나서 찾게 되거나,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소식도 접한다. 인지가 제대로 되지 않는 장애인이라면 그만큼 함께하는 과정에서도 언제 사라질지 예상하기 어려워서 가족이 걱정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김현주 “저는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면 좋겠어요. 신발마다 GPS(비행기·선박·자동차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인공위성을 이용해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시스템)를 장착한다거나 아니면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게 되면 소리로 신호를 보내준다거나 하는 것처럼 어떤 방법이라도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지적장애인을 데리고 휴가를 갈 경우 텐트를 치거나 하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죠. 아무리 조심하고 신경 쓴다고 해도 휴가철처럼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는 더 그럴 수도 있고요.”
김현주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GPS와 관련하여 한때 뜨거운 논쟁이 되었던 소재가 떠올랐다. 바로 GPS를 신발이나 어디에든 부착하는 과정에서 인지를 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인의 ‘동의’를 받지 않음으로써 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권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당사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위치추적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당사자가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위치를 다른 사람이 알게 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김현주 “사실 인권적인 부분도 정말 중요하죠. 하지만 저는 안전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인지 기능이 정상인 경우라면 몰라도, 그게 아닌 아동들 같은 경우 만약 잃어버리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느냐고 생각해보면 인권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장애인의 휴가, 이동권과 안전이 보장될 수 있길
오는 여름 휴가철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게 될까? 이른바 ‘명당’으로 알려진 휴가 장소는 대부분 관광객들로 북적일 것이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역 수칙을 준수하느라 제대로 된 휴가를 즐기지 못했던 사람들의 ‘휴가 욕구’가 거리두기 해제 후 처음 맞이하는 이번 여름, 그야말로 대방출될지도 모른다.
장애인도 휴가를 즐기고 싶을 것이다. 어쩌면 코로나19 사태에서 비장애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장애인들에게 휴가는 ‘달콤한 휴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괴롭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잠시 뒤로 하고 즐겁게 휴가를 보낼 권리는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없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권리다. 다만 장애인이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이동권과 안전이라는 ‘장치’가 확실하게 보장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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