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뉴노멀 2.0의 시대. 발달장애인이 배제되지 않는 안전한 미래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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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회
전혀 다른, 완전히 낯선 세상의 도래
2020년 초반부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의 맹위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7월 16일을 기준으로 전 세계 133만8천여 명이 감염되었고, 그 중 58만 명이 사망했다. 한국은 같은 시점에 1만3천6백여 명이 확진을 받고 사망자가 291명인데, 1일 확진자 수가 1개월 가까이 20여 명에서 60여 명 사이를 들쭉날쭉하며 일관된 감소추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인구 100명 당 1명이 감염되고, 1만 명 당 4.1명이 사망하고 있는 수준인 미국에 비하면 코로나 사태에 잘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사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종결이 되기는 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데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감염으로 지난 3월 WHO가 다소 늦게 팬데믹(2개 대륙 이상 세계적인 감염병의 급격한 확산 경고)을 선포했고, 이러한 현실은 인류의 건강과 생명뿐만 아니라 경제와 산업구조의 근간을 동시에 흔들고 있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래를 전망하는 많은 학자들이 감염병의 공격이 앞으로 더 자주, 더 강력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하는 가운데,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산업영역이나 사회 전반에서 기존과 다른 기준인 뉴노멀 2.0의 적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뉴노멀(New Normal)은 당초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과 다른 경제정책과 세계질서 재편을 위해 대두된 용어이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회사 핌코의 최고경영자 모하메드 앨 에리언이 그의 저서 〈새로운 부의 탄생〉에서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 경제질서로서 뉴노멀을 언급하면서, 금융위기 이후 나타나고 있는 저성장·저물가·저금리·높은 실업률 등의 상황에 대응하는 기준이 뉴노멀로 논의되었다. 그러던 것이 올해 들어 확산된 코로나 위기가 기존의 글로벌 금융위기 차원을 넘어, 개인의 생명과 안전까지 위협하는 데 대응하는 전략으로, 더욱 전향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뉴노멀 2.0으로 언급되었다. 공교롭게도 감염병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언택트(비대면) 기술들이 정보통신기술(ICT)과 맞물리며 4차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를 촉진하는 결과를 야기하고 있는데, 이러한 산업구조와 사회 기반의 변화가 발달장애인의 직업재활과 일자리 마련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가 심도 있게 고민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앞당겨진 4차산업혁명, 그 이면
일반적으로 뉴노멀 2.0 시대의 산업 특성은 ‘개인주의 성향과 디지털 기술을 통한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가속화 예상’, ‘비대면(언택트) 비즈니스와 온라인 서비스의 가속으로 디지털 경제 촉진’, ‘탈세계화(제조업 리쇼어링), 글로벌 가치사슬보다는 자국 가치사슬을 강화하여 안정적인 제조 생태계 구축’, ‘대면 활동 감소로 온라인 유통 강세(오프라인 매장도 IT 활용 비대면 보편화)’, ‘IT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 산업 강세(온라인 동영상, 게임, 웹툰 등)’, ‘원격진료 서비스 확대 및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 성장’, ‘에듀테크 및 화상회의 관련 산업 급성장 전망’, ‘녹색경제의 부상(기후변화로 인한 전염병 확산 대응과 에너지 공급 안전보장)’ 등으로 설명된다.
기존 산업을 혁신하는 긍정적 면모들도 보이지만, 문제는 그 이면에서 일어나는 노동시장의 특성 변화가 ‘실업증가, 업무방식 변화, 근로조건 악화, 일자리 양극화, 인력 수급격차 등 기존 일자리 문제 심화’와 같은 부정적 전망을 수반한다는 데 있다. 특히 비대면 원격 업무나 교육·서비스의 경우 직관성이 낮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에게는 대면 상황에 비해 이해와 적응이 어렵다는 점이나, 단순·비숙련 반복 작업 위주의 직종들로 형성된 발달장애인 일자리가 산업구조 개편의 충격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우려가 발생한다.
뉴노멀 2.0의 산업적 충격 외에도, 팬데믹으로 인한 발달장애인들의 건강과 안전 유지에 직접적인 위협이 증폭될 수 있다. 발달장애의 특성상 코로나19 등 감염병에 대한 이해나 정보의 습득, 행동수칙 학습과 이행의 어려움, 감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일상 속) 거리두기 실천, 위생관리 강화, 접촉대상 관리의 어려움, 밀접접촉 제한에 따른 인적지원 서비스·집단 활동 프로그램이나 거주서비스 이용의 제약과 같은 실질적인 불편과 위협에 노출될 위험이 커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규칙적 일상 활동에 갑작스럽고 수긍하기 어려운 변화가 발생되면서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낮 시간에 충분히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하며 나타나는 문제들, 가족의 지원 부담이 가중되면서 나타나는 가족 갈등의 심화 등도 사회적 문제로 노출되고 있다. 또한 규칙적으로 영위하던 참여 및 활동 기회의 감소는 개인적·사회적 역량과 기능 저하를 발생시키면서 발달장애인의 직업적 가능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미국 등에서도 동일한 우려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완화시키기 위해 직업조정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 기관인 JAN(Job Accommodation Network) 등을 통해 장애인의 직업 영위 권리가 코로나19로 인해 침해되지 않도록 활동을 강화하거나, ADA(미국장애인법)에 의한 장애인의 권리·고용주의 책임 범위 등을 보다 명확히 정리하여, 팬데믹으로 인해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조치를 취하고 있는 점 등은 우리도 참고해야 할 노력이다.
더욱 중요해진 함께 사는 세상의 가치
팬데믹 시대와 뉴노멀 2.0의 도래는 더 이상 우리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감염병과의 전쟁이 장기화되는 동시에, 비대면과 IT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으로 4차산업혁명 시대의 도래가 예상보다 앞당겨지는 특징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의 안전과 일자리 문제에 대한 미래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제적인 대응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발달장애인에게 직접 적용되는 미시적 차원에서는, 질병감염 예방과 피해 최소화를 위한 감염병 대응 체계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 ‘감염병 예방을 위한 쉬운 글 자료의 제작과 교육, 감염 예방 수칙에 대한 훈련 및 증상 공유 등을 위한 의사소통 촉진 방안 마련, 인적 서비스 제공자 및 가족 등 밀접 접촉 지원자의 행동 수칙 마련’과 함께, 팬데믹으로 인해 대면 서비스가 최소화된 상황에서 ‘규칙적인 일상 활동을 유지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의 개발과 보급’, 다가오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발달장애인 정보통신기술 접근성 강화 및 교육훈련 제공, 당사자 및 가족의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심리적 지원, 직업조정(job accommodation) 활성화’ 등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사회적·정책적인 접근이 필요한 거시적 차원에서는 뉴노멀 2.0 시대, 4차산업혁명 기술의 혁신이 가져올 파급효과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고려되어야 한다. 초고속 통신,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블록체인 등의 기술이 결합되면서, 기계들이 인간보다 값싸고 탁월한 노동생산성을 발휘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미 우리사회는 고속도로의 하이패스 차로나 무인주차장 시스템, 매장의 키오스크 주문 장치,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비대면 서비스의 확산이 단순·반복·비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모습을 경험하고 있다.
더 값싸고 정확한 생산성을 자랑하는 기계들이 발달장애인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한편에서는, 단순·반복·비숙련 일자리의 비장애인 노동자들이 생계형 노동을 지속하기 위해 업무의 특성이나 보수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고 발달장애인과 경쟁하는 2중의 위협이 다가올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비대면 유통·물류 산업의 확장이 단순 일자리를 늘려주는 모습을 보이면서, 곳곳에서 발달장애인에게 새로운 직업의 기회를 마련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전반적이고 혁신적인 무인화 기조의 산업구조 변화 속에서는 생성되는 단순 일자리보다 소멸되는 단순 일자리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시대에 발달장애인의 일자리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생산효율성 경쟁력을 우선시하기보다,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가치 중심의 발달장애인 직업재활 패러다임’을 사회에 통용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한 축에서는 선택과 의사표현에 어려움을 가진 발달장애인들이 비대면 4차산업혁명(디지털 스마트) 기술의 보급과 활용 촉진 속에서 각종 사기나 착취, 인권 침해의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각종 계약이나 거래, 금융 활동 등의 비대면 스마트 기기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미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대포폰, 사기 계약 등의 사건에 피해자가 되고 있다. 뉴노멀 2.0 시대에 장애인의 디지털 의사결정 권리 옹호와 피해 예방·구제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안전망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정당한 편의제공이나 직업조정(job accommodation)으로 표현될 수 있는 보조공학기기의 적극적인 보급과 활용 촉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장애인의 고용을 확대하고 유지하는 장애인 고용 사업체 및 직업재활 시설에 대한 적극적 재정지원 확대도 보다 전향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예측한 사회변화 속에서는, 발달장애인의 노동 수입이 생계유지를 위한 주 수입원이 되기는 점점 더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발달장애인의 자발적 노동 참여 유인동기를 더 약화시킬 수 있고, 종국에는 발달장애인이 존중 받는 대상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역할과 가치의 부여나,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제도 도입이나 직업재활 시설 등에 대한 정부의 임금보전 정책 도입’ 등을 통해, 발달장애인의 자립적 생계유지를 위한 안정적인 수입 확보와 지속적 노동 참여가 가능하도록 우리 사회의 선제적 고민과 협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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