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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문 닫는데, 180명은 어디로… “또 다른 병원 아닌 지역사회로” > 국내소식


병원은 문 닫는데, 180명은 어디로… “또 다른 병원 아닌 지역사회로”

반구대병원 입원환자 180명 대상으로 국가인권위 긴급구제 신청

본문

 
울산 반구대병원이 잇따른 입원환자 사망 사건 끝에 폐원을 앞둔 가운데, 장애·인권단체들이 병원에 남은 입원환자 180명을 다른 정신병원으로 일괄 전원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폐원이 병원의 책임을 없애고 입원환자를 또 다른 병원에 수용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울산반구대정신병원공동대책위원회는 8월 11일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구대병원 입원환자 180명을 대상으로 한 긴급구제 신청서를 제출했다. 공동대책위원회에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비롯해 한국동료지원인협회,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장애인권법센터 등 정신장애인 당사자·동료지원단체와 장애·인권·공익법률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반구대병원에서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입원환자 5명이 사망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4월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병원장과 행정원장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 올해 6월과 8월에도 입원환자가 잇달아 사망하면서 2022년 이후 확인된 사망자는 모두 7명으로 늘었다.
 
직권조사에서는 지적장애인 한 명이 약 2평 규모의 보호실에 외부 진료 시간을 제외하고 2,282시간 55분 동안 연속 격리된 사실도 확인됐다. 약 96일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월 합동조사 당시 입원환자 202명 가운데 발달장애인은 129명으로 63.8%를 차지했다.
 
병원 측은 오는 9월 3일까지 운영한 뒤 폐원하겠다는 의사를 울주군보건소에 전달한 상태다. 그러나 공동대책위원회는 입원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사와 자립 욕구를 확인하는 절차 없이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방안이 먼저 논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발언 중인 이한결 한국동료지원인협회 회장
 
이한결 한국동료지원인협회 회장은 “병원이 문을 닫는 순간 국가가 지켜야 하는 것은 병상이 아니라 사람”이라며 “반구대병원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또 다른 정신병원의 닫힌 문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사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만나 그 의사를 독립적으로 확인하고, 비자의적인 집단 전원을 중단해야 한다”며 “의사결정에 조력이 필요한 사람에게 충분한 지원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주거와 복지, 동료지원과 자립지원을 연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폐원 과정에서 입원환자들이 다른 정신병원으로 흩어지면 사망 사건과 인권침해에 관한 책임을 규명하기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진료기록과 간호기록, 격리·강박 기록, CCTV 등 관련 자료를 보존하고 당사자에게 기록 사본을 제공할 것도 긴급구제 내용에 포함했다.
 
발언 중인 조인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조인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폐원은 사고가 발생한 정신병원이 책임을 회피하는 가장 빠른 수단이 될 수 있다”며 “문을 닫으면 의료진이 흩어지고 기록이 사라지며, 남은 사람들은 집단 전원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정신병원으로 옮겨진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울산시와 정부는 180명을 어디로 보낼 것인가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왜 여전히 정신병원에 있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며 “개별 의사 확인과 자립지원 욕구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 일괄적인 전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입원환자별로 강제입원 요건이 현재도 성립하는지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폐원 일정에 맞춰 일괄적으로 발급된 의사 소견서만으로 전원을 결정해서는 안 되며, 입원 여부와 자립 욕구를 조사하는 과정에 독립적인 전문기관과 당사자단체가 추천한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언 중인 유인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팀장
 

유인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팀장은 반구대병원 폐원을 단순히 한 병원의 운영이 끝나는 사건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병원이 문을 닫을 때마다 입원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당사자가 원하는 삶을 확인하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팀장은 “수년 동안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던 생존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병원이 아니다”며 “퇴원하고 싶은지, 퇴원하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디에서 누구와 살고 싶은지를 직접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 전원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사소통이 어렵다면 각 당사자에게 맞는 의사소통 지원을 통해 욕구를 파악해야 한다”며 “반구대병원에서 살아남은 수용생존자들을 행정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시민으로 봐달라”고 촉구했다.

 
발언 중인 권재은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총괄팀장
 

이어 권재은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총괄팀장은 정신장애인에게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고 단정하는 사회적 인식이 장기입원과 재수용을 정당화해 왔다고 비판했다. 혼자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은 병원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당사자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권 총괄팀장은 “혼자 결정하기 어려울 때 그 결정을 지원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라며 “힘들 때 알아차려 줄 동료와 살고 싶은 집이 필요한 사람들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좋아하는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삶은 누구나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라고 전했다.

 

또한 입원환자의 63.8%가 의사표현이 어렵다고 조사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를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권 사무국장은 “63.8%의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며 개별 당사자에게 맞는 의사소통 지원과 자립 욕구 전수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발언 중인 이은솔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마지막으로 발언에 나선 이은솔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정신장애 당사자로서 병원에 다시 입원할 가능성을 고민해 온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그는 정신장애인이 치료받기 위해 반드시 지역사회와 분리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필요한 치료와 지원을 받으면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병원에 가도 약을 먹어야 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나를 지켜주는 동료·동지들과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약을 먹겠다”며 정신장애인의 치료와 삶의 터전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계절의 변화와 명절,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보내는 일상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병원이 폐원하더라도 입원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진다면 반구대병원의 수용 구조는 이름만 바뀐 채 계속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180명은 또다시 이름 없이 병원에 갇힐 뿐”이라며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은 설득해야 할 특혜가 아니라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폐원이 또 다른 수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입원환자들의 지역사회 자립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에 ▲입원환자에 대한 집단 전원 중단 ▲개별 의사와 자립지원 욕구 전수조사 ▲CCTV와 진료·간호·격리·강박 기록 보존 ▲강제입원 요건 재심사 ▲지역사회 자립지원 자원 연계 ▲인권침해 피해 조사와 심리지원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당사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 합동 전환지원 조직 구성을 요청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 신청서를 제출한 뒤 장애차별조사2과 노정환 과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면담에서 긴급구제 신청의 취지와 요구사항을 전달했으며, 인권위 측은 제출된 내용을 검토해 관련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작성자글과 사진. 박수찬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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