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눈동자가 문장이 되기까지… 김창민 작가, 첫 에세이 출간
스무고개처럼 이어진 질문, 3년간 눈동자로 나눈 대화, 『눈동자로 쓰는 나의 일기』
본문

▲ 김창민 작가가 출판기념회 참석자에게 사인하고 있다. 이승홍 공동저자가 펜을 잡은 손의 움직임을 지원했다.
중증 뇌병변장애인 김창민 작가가 눈동자로 전해온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지난 7월 16일 생각나눔에서 출간된 『눈동자로 쓰는 나의 일기』다.
김 작가는 말하거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렵지만 눈동자를 위로 움직여 ‘그렇다’, 아래로 움직여 ‘아니다’라는 뜻을 전한다. 상대방이 하나씩 질문하고 김 작사가 눈동자로 답하는 과정이 이어지면서 가족과 친구, 첫사랑, 축구, 음식, 선물, 이별에 관한 이야기가 구체적인 문장으로 만들어졌다.
책에는 장애를 극복한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 사랑하고, 장난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김창민이라는 한 사람의 일상이 담겼다. 첫사랑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축구를 좋아하며, 자신이 받은 운영위원회 참석비로 여동생의 생일 선물을 산 이야기도 실렸다. 주변 사람들에게 치킨이나 선물을 건네는 일, 좋아하는 사람과 수다를 나누는 일도 김 작가에게는 기록하고 싶은 중요한 일상이었다.
지원일지에서 한 권의 책으로
책의 출발점은 뇌병변장애인 평생교육시설 비전꿈터의 지원일지였다. 공동저자인 이승홍 특수교사는 김 작가와 약 3년간 생활하며 그날그날 나눈 이야기를 기록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질문을 던지면 곧바로 답을 얻는 방식이 아니었다. 김 작가가 전하려는 내용을 찾기 위해 여러 선택지를 제시하고, 눈동자의 움직임을 확인한 뒤 다시 질문해야 했다. 질문이 정확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범위를 좁혀가야 했다. 그렇게 반복된 질문과 응답을 통해 짧은 ‘네’와 ‘아니오’는 한 사람의 경험과 감정을 담은 문장으로 확장됐다.
쌓여 있던 기록을 책으로 만들자는 제안에서 ‘김작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프로젝트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2026년 장애예술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출판으로 이어졌다.
이승홍 공동저자는 “수많은 질문과 기다림을 통해 창민님의 눈동자 속 이야기를 글로 옮기고 번역했다”며 “장애라는 단어보다 먼저 김창민이라는 한 사람의 유머와 사랑, 관계와 일상을 만나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춤과 사인회로 문 연 출판기념회
지난 8월 7일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비전꿈터 이용자와 직원, 가족, 지인 등 65명이 참석했다. 이날 현장을 찾은 기자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김 작가의 사인회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손에 펜을 잡아주는 조력자와 호흡을 맞춰 책마다 직접 사인을 남겼다.
사인에는 상당한 힘과 시간이 필요했지만 김 작가는 참석자들이 가져온 책을 한 권씩 마주했다. 이승홍 공동저자는 행사 도중 김 작가가 사인하는 모습을 두고 “힘을 줘서 사인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본행사는 비전꿈터 휠체어댄스팀 ‘휠 유 댄스(Wheel You Dance)’의 축하공연으로 시작됐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단원들과 파트너들이 음악에 맞춰 행사장을 오갔다. 공연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박수로 출간을 축하했다.
이어 ‘김작가 프로젝트’ 영상 상영과 작가와의 만남, 책 속 에피소드 낭독이 진행됐다.
“내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작가와의 만남에서는 김 작가의 얼굴과 눈동자를 촬영한 화면을 참석자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승홍 공동저자가 선택지를 하나씩 읽으면 김 작가가 눈동자로 답했다. 이날 질문은 김 작가가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사전에 문장을 다듬고 보기의 범위를 좁혀 준비됐다.
책을 쓰고 싶었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 김 작가는 ‘내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어서’라는 보기를 선택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는 ‘장애인이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승홍 공동저자는 책을 만들며 장애로 인한 역경이나 고난을 이겨냈다는 이야기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창민님이 자신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제가 너무 감성적으로 쓰거나 슬프게 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할 때면, 오히려 창민님이 농담을 하고 담담한 모습을 보여줬어요. 제가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김 작가는 약 30편의 에피소드 가운데 출판기념회 참석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로 ‘생일 축하해, 내 동생’을 골랐다. 자신이 번 돈으로 여동생에게 처음 생일 선물을 건넨 날을 기록한 글이다. 이승홍 공동저자가 해당 부분을 읽자 김 작가는 눈동자로 내용을 확인하며 낭독을 함께했다.
“밥 먹었냐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행사 마지막에는 김 작가의 아버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책을 읽고서야 아들이 일상에서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새롭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매일 같이 생활하면서도 창민이에게 ‘밥 먹었냐’, ‘배고프냐’, ‘어디 아프냐’는 이야기는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는 많이 나누지 못했어요. 책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하고 있었구나’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는 책을 통해 아들의 생각을 알게 된 것뿐 아니라 김 작가가 출간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덧붙였다. 출판기념회를 앞둔 전날 김 작가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평소에도 기다리던 일이 있으면 잠들지 못할 정도로 기대한다는 설명이었다.
이번 책은 눈동자를 이용한 의사표현이 단순한 선택에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경험과 감정, 관계를 전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의사소통에는 당사자의 표현뿐 아니라 답을 기다리고 질문을 고쳐가는 상대방의 역할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함께걸음>은 김창민 작가를 비롯해 이승홍 공동저자와 비전꿈터 센터장, 김 작가의 아버지를 만나 책에 다 담기지 않은 일상과 관계, 집필 과정을 들었다. 김창민 작가의 자세한 이야기는 <함께걸음> 2026년 9·10월호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작성자글과 사진. 박수찬 기자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