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는 멈췄다…남은 것은 장애인의 일상을 바꾸는 일
73차례 이어진 지하철 탑승 행동 중단…이동권·노동권 요구는 조례와 예산의 단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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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5년 가까이 이어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멈췄다. 2021년 12월 3일 첫 행동 이후 약 4년 9개월 동안 모두 73차례 진행한 지하철 탑승 행동이다.
전장연은 지난 8월 24일 73차 행동을 마친 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과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선언했다. 서울시의회 민주당이 장애인의 이동권과 노동권 보장을 위한 조례를 추진하고 내년도 예산 확보에 나서기로 하면서, 전장연도 출근길 지하철 탑승 행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관계자들도 기자회견에 참석해 향후 입법 지원 등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멈춘 것은 지하철에서의 행동이지, 그곳에서 요구했던 권리까지는 아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필요한 때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지, 중증장애인도 장애 정도를 이유로 노동에서 배제되지 않을 수 있는지는 여전히 정책과 예산으로 답해야 할 문제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한국장총)도 28일 논평을 내고 전장연의 결정을 환영하면서 “시위가 멈췄다고 요구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5년여간 시위 방식을 둘러싼 찬반 논쟁 속에서 정작 장애계의 요구가 가려졌다며, 이제 논쟁의 중심을 이동권과 노동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시위가 멈춘 이유, 이동권이 보장됐기 때문은 아니다
이번 ‘사회적 대타협’의 핵심에는 서울시의회 민주당이 추진하기로 한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복원을 골자로 한 당론 1·2호 조례안이 있다. 서울시와 전장연이 정책에 최종 합의한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회 민주당이 이동권과 노동권 관련 제도 마련에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했고, 전장연은 이를 신뢰해 지하철 탑승 행동을 중단한 것이다.
서울시의회 민주당은 관련 조례를 오는 9월 11일 의결하고 내년도 예산 확보에도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역시 서울시의회의 정치적 책임을 신뢰한다면서도, 이제 정치와 행정이 예산으로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권과 관련해서는 저상버스와 장애인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을 실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가 핵심으로 거론된다. 한국장총은 이번 논평에서 서울시의회 민주당이 저상버스 예외노선 사후관리와 특별교통수단 운전원 확충 등을 조례와 예산으로 뒷받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저상버스 예외노선에 대한 사후관리 자체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행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에는 예외승인 노선에 대한 사후관리 규정이 있고, 서울시도 지난 3월 이에 따라 저상버스 예외승인 노선 현황을 공개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이러한 행정적 관리가 실제 도로 여건 개선이나 대체 이동수단 마련으로 얼마나 이어지는지다.
특별교통수단 역시 차량 대수만으로 이동권을 판단하기 어렵다. 서울시는 올해 1월 기준 장애인콜택시 818대를 운영하고 있으며, 정규직 운전원 834명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평균 대기시간도 2023년 47분에서 2025년 33.5분으로 줄었고, 올해 단시간 운전원 175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차량과 인력을 확대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용자가 필요한 시간에 실제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번 논의에서 차량 수와 함께 운전원 확보와 실제 운행 여건이 거론되는 이유다. 현행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도 국가 또는 도가 특별교통수단 확보와 이동지원센터 등의 설치·운영에 필요한 자금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권리중심 일자리,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두 번째 쟁점은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이다. 서울시의회 민주당은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의 제도적 근거를 다시 마련하는 방향의 조례를 추진하고 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기존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최중증장애인에게 노동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서울시가 2020년 시작한 사업이다. 당시 서울시는 최중증장애인도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를 밝히며 장애인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개선 등의 활동을 직무로 제시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2023년을 끝으로 기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을 종료하고 이후 ‘장애 유형 맞춤형 특화일자리’ 등 다른 형태의 사업으로 전환했다.
서울시는 올해 1월 공식 팩트브리핑에서 2023년 자체 조사 결과 지난 3년간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참여자의 직무활동 중 50.4%가 집회·시위·캠페인에 집중돼 정책 효과가 떨어졌다고 판단해 사업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이는 서울시가 제시한 자체 조사 결과와 사업 평가다.
서울시는 동시에 중증장애인 일자리 지원 자체를 중단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3년까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참여했던 400명 가운데 285명(71%)이 이후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다시 참여했다. 올해는 62억 원을 투입해 미취업 최중증장애인 380명에게 특화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반면 전장연을 비롯한 장애계에서는 장애인권리협약을 알리고 장애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 역시 기존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기 쉬운 중증장애인이 수행할 수 있는 노동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 문제를 단순히 집회나 캠페인을 노동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찬반으로만 좁히면 더 앞에 있는 질문이 사라진다. 장애 정도와 지원 필요가 크다는 이유로 기존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기 쉬운 중증장애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노동할 권리를 보장할 것인지다.
서울시가 제시한 285명의 다른 장애인 일자리 재참여 수치는 이 논의를 판단할 하나의 자료다. 다만 해당 자료만으로는 재참여한 사람들의 고용 기간과 조건, 어떤 일자리로 이동했는지, 나머지 참여자들의 이후 상황까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복원 여부를 둘러싼 논의에서도 사업의 명칭이나 방식만이 아니라 중증장애인의 노동 기회가 실제로 확대되고 지속되는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 이후, 조례 의결과 예산 반영이 남았다
이번 합의가 곧바로 장애인의 이동권과 노동권 보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약속을 제도로 만들고, 제도를 실제 사업으로 집행하는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회 민주당은 9월 11일 장애인 권리보장 관련 조례안을 의결하고 내년도 예산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우선 확인해야 할 것은 조례 심사와 의결 과정에서 이번 합의의 내용이 실제 제도에 어떻게 담기는지다.
조례가 통과된 뒤에도 예산이라는 다음 단계가 남는다. 특히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처럼 서울시 집행부와 정책 방향을 둘러싼 이견이 있는 사안은 조례가 만들어진 뒤 실제 사업비가 어떻게 편성되고 집행되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한국장총이 이번 논평에서 “이제 남은 것은 이행”이라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장총은 장애인의 이동권과 노동권을 위한 예산이 시위가 크고 오래 이어질 때만 주목받아서는 안 된다며, 시위 여부와 관계없이 필요한 정책을 마련하고 예산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라고 지적했다.
중앙정부 차원의 논의도 남아 있다. 한국장총은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특별교통수단 운영 개선과 중증장애인의 지속가능한 일자리 안착 등을 위한 국가 지원 확대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다만 현재 확인되는 것은 ‘검토’ 단계다. 정부 예산에 어떤 사업이 얼마나 반영될지는 이후 예산안을 통해 다시 확인해야 한다.
지하철 밖에도 남아 있는 이동권의 과제
출근길 지하철 탑승 행동이 끝났다고 장애인의 이동권 요구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다.
국회에는 지난 2024년 5월 30일 서미화 의원 등 28명이 발의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전부개정법률안」이 계류돼 있다. 제22대 국회 의안번호 2200001번인 이 법안은 현행 법률의 명칭을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을 위한 법률’로 바꾸고,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교통수단을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시외·고속버스를 포함한 모든 버스에 휠체어 탑승설비를 갖춘 차량을 의무적으로 도입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에 따르면 이 법안은 2024년 6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회부돼 같은 해 8월 소위원회로 넘겨진 상태다.
이는 서울 지하철에서의 행동이 끝났다고 해서 장애인의 이동 문제가 서울 안에서, 또는 지하철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울시 조례와 예산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가 하면 국회와 중앙정부가 법률과 국가예산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남아 있다.
지난 5년 동안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크게 갈렸다. 시민의 이동을 방해하는 방식이 정당한지를 둘러싼 논쟁은 반복됐고, 장애인의 이동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보다 시위 방식 자체가 더 크게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시위를 계속해야 하는지, 멈춰야 하는지를 논하는 것만으로 장애인의 이동권과 노동권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73차례의 출근길 지하철 탑승 행동이 멈춘 지금부터 확인해야 할 것은 다른 데 있다. 장애인이 필요한 때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지, 특별교통수단을 기다리느라 일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지, 장애가 중하다는 이유로 노동할 기회에서 밀려나지 않는지다.
조례와 예산, 법률이 그 일상을 실제로 바꿀 때 이번 ‘사회적 대타협’의 의미도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
한국장총은 이번 결정이 “장애인의 이동과 노동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변화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5년 가까이 이어진 요구에 이제 정부와 정치권이 정책과 예산으로 답할 차례다.
작성자글. 박수찬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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