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원하는 날에 영화를”... 대법원, 시·청각장애인 영화관람권 소송 2심 파기환송
2심의 ‘300석 이상·전체 상영 횟수 3%’ 제한 판단 깨져… 서울고법에서 재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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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폐쇄형장비 즉, 화면해설과 자막 기기 등의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라고 청구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장애인 관객의 손을 들어줬다. 소를 제기한 지 10년 7개월 만이자,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된 지 5년 만에 나온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 재판장 신숙희 대법관)는 지난 9월 3일, 시각장애인 2인과 청각·언어장애인 2인이 국내 멀티플렉스 영화관 3사(CJ CGV,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중앙)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청구소송 상고심(2022다203507)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시·청각장애인의 영화 보기 위한 10년의 여정, 장애인의 보편적 관람권을 향한 움직임
이 사건은 시·청각장애인 당사자들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장애인단체, 공익변호사단이 영화관 내 차별적 환경을 개선하고자 뜻을 모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2016년 2월, 시·청각장애인 4명은 영화관 3사를 상대로 화면해설, 자막, 수신기기 및 접근 가능한 정보 제공을 요구하며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했으며, 2017년 12월 1심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화면해설과 자막, FM보청기기는 물론 웹사이트 정보와 점자·수어 통역 제공까지 명하며 영화관 측의 비용 부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영화관 측의 항소로 재판은 계속되었다.
4년 뒤인 2021년 11월, 2심 법원인 서울고등법원은 정당한 편의 제공 거부가 차별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의무 대상을 '300석 이상 상영관'으로 한정하고 제공 범위 역시 '전체 상영 횟수의 3%'로 축소했으며, 웹사이트 정보 제공 청구는 기각했다.
판결 직후 소송 대리인단과 장애계는 3%라는 제한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특수안경이나 수신기 등을 활용해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같은 공간에서 관람할 수 있는 '폐쇄형 상영 방식'의 법적 의의를 조명했다.
이어 2021년 12월 2일, 소송 대리인단과 장애인단체 등은 영화관람 보조기술 시연회를 열어 이미 개봉과 동시에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적 여건이 갖춰져 있음을 시문하며, 특정 상영관·특정 시간대로 제한되는 개방형을 넘어 보편적인 관람 환경이 마련되어야 함을 피력했다.
이 과정에서 보조기기를 개발한 유진희 하나캡션 대표는 “현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반관람을 가능케하는 보조시스템들은 상영 영화 중 자신이 선택한 영화를 언제라도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비장애인 관객의 영화관람을 방해하지 않고 저작권 보호 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영화진흥위원회 예산으로 충분히 자막과 화면해설을 넣을 수 있고 기간도 5일 정도면 충분하다”며 “상영관에서는 서버 비용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심 결과에 대해 판결의 한계와 실효성을 둘러싸고 양측 모두 상고했으나 대법원의 판단이 나오기까지 다시 5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마침내 2026년 9월 3일, 대법원은 2심 법원이 장애인의 관람권보다 영화관의 비용 부담을 지나치게 우선시했다고 판단하여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영화는 정보, 상영은 배포… 재정 부담만으로 차별 정당화 못 해”
이번 판결의 핵심은 영화 관람을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보 접근 및 전달’의 영역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자막과 화면해설 제공을 기업이 지켜야 할 법적 의무로 확립했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영화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제1항의 전자·비전자 정보에 해당하며, 영화의 ‘상영’은 해당 정보의 ‘배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300석 이상 상영관을 보유한 영화관은 화면해설과 자막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형체가 없는 파일 형태의 화면해설 및 자막 데이터, 수신기기와 서버 제공 거부 역시 차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특히 대법원은 원심(2심)이 영화관의 편의 제공 범위를 ‘300석 이상 상영관’ 및 ‘총 상영 횟수의 3%’로 한정한 것에 대해 “영화관의 비용 부담 측면을 지나치게 고려해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을 현저히 제한했다”며 법리오해를 지적했다.
대법원은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에 이르지 않는 한 최대한 성실하게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재정 부담만을 이유로 차별을 쉽게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소송 10년, 천만 영화 지나치는 동안 분리된 일상
대법원 판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법률대리인이자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김재왕 변호사(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는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극장에서,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다는 당연한 권리를 인정받는 데 10년이 걸렸다”며 “그럼에도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이 법적 권리임을 명확히 한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 김아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팀장은 최근 인기 영화의 IMAX 특수 상영관 예매 열기 기사를 언급하며 영화관람권 배제의 현실을 짚었다. 김 팀장은 “비장애인 관객들이 최고의 화질과 명당에서 개봉 첫 주에 영화를 보기 위해 겪는 연례행사 같은 열렬함과 아쉬움이, 장애인에게는 애초에 선택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일상이라는 권리의 격차가 선명하게 다가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장애인에게 영화관은 ‘가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는 공간’이지만, 장애인에게는 ‘볼 수 있는 영화를 찾아야 하는 공간’이었다”며 “원고들이 요구한 것은 특별관이나 특혜가 아니라, 그저 옆자리 관객과 같은 시간, 같은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게 해달라는 것 뿐이었다”고 소송의 본질을 강조했다.
장애계는 매달 정해진 특정 상영회(가치봄 영화 등)만으로는 장애인의 영화관람권이 온전히 보장될 수 없다고 지적해 왔다.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고르고, 가족·친구와 함께 개봉일에 극장을 찾는 일련의 과정 전체가 영화 관람이자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장애인차별상담전화 평지는 성명을 통해 “극장 3사는 환송심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즉시 화면해설과 자막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며, 국회와 정부 역시 이행 기준을 법률에 명확히 명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기환송에 따라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된다. 10년의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이번 판결이 장애인이 365일 원하는 날에 극장을 찾을 수 있는 '당연한 일상'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한편, 이번 대법원 선고 현장에서는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제공되었을 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 등을 위해 알기 쉬운 문장과 그림으로 정리된 ‘이해하기 쉬운 판결서(Easy-Read)’가 대법원 최초로 배포되었다. 대법원은 판결서에서 판결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개인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언어 수단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작성자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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